기아차 노조 징계 항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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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노조 - 현장 조합원들이 징계와 소환에 항의하고 있다
이우상(기아자동차 노조 조합원)
노무현 정부의 검찰이 6월 25일 경제자유구역법 반대 투쟁 관련 소환 대상자를 다시 소환했다. 소환 불응시 체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소환자들이 투쟁을 진행하는 동안 전국노동자대회 투쟁과 관련해 기아차 화성지부 대의원 엄기서 동지가 긴급 구속당했다. 즉각적인 항의 행동이 필요했다. 그러나 기아차 노조 집행부는 행동을 조직하지 않았다. 아니, 노동 탄압 항의 투쟁 자체를 회피했다.
이에 항의해 기아차 화성지부 대의원들은 잔업과 특근 거부를 결의했다.
그런데 집행부는 잔업 거부 투쟁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오히려 잔업과 특근을 해 달라고 방송했다. 현장 조합원들은 그 방송이 노동조합 방송인지 사측의 방송인지 어리둥절했다.
노무현 정권의 노동 탄압 때문에 지금 기아차 화성공장에는 구속, 수배, 체포영장, 소환장 발부 대상자들이 20여 명이나 된다. 며칠 전에도 화성지부 상집 간부 한 명이 구속당했다.
노동조합은 소식지를 통해 대의원대회 결정 사항(경제자유구역법 반대 투쟁과 관련해 한 명이라도 구속당하면 총력 파업으로 맞서겠다는)을 이행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 내용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조합원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나는 노동조합이 투쟁을 한다면 17대 집행부 불신임 건을 뒤로 하고서라도 이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행부가 이 투쟁을 하지 않으면 비대위가 이 투쟁을 지도하면 좋을 것이다. 투쟁을 회피하는 노동조합 지도부를 바로 세우고자 비대위가 꾸려졌기 때문이다.
만약 비대위가 투쟁을 조직하지 않는다면 조합원들은 비대위나 집행부를 똑같이 대할 것이다.
징계
얼마 전 사측의 부당한 라인 가동에 맞서 조합원들의 요구로 라인을 중단하며 투쟁했던 대의원과 조합원들을 집행부가 노동조합 소식지를 통해 매도한 일이 있었다.
사측은 이 틈을 타 라인 중단을 주도했던 대의원을 징계위에 회부했으며, 해고까지 하려 했다. 단협상 명백한 노동조합 활동인데도 사실조사위원회라는 절차도 거치지 않고 징계위를 개최했다.
노조 집행부가 투쟁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에 12월 22일에 화성 3공장 노동해방 선봉대는 징계위 장소 앞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급하게 조직한 집회였는데도 40여 명이 모였다. 우리는 부당징계 시도를 무산시키기 위해 징계 장소를 점거했다.
점거자들의 발언이 끝나고 징계 대상자인 김우용 대의원이 발언하자 사측의 징계위 위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구호를 외치고 투쟁가도 부르며 1시간이 넘도록 점거를 진행하자 사측은 정회를 선언하고 퇴장해 버렸다.
12월 23일에 우리는 2차 징계위가 24일 오후 4시에 열린다는 공문을 받고 다시 집회 대오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약 100여 명이 모였다.
다시 회의장을 점거할 것인지 아니면 회의장 밖 연좌 농성을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다 장외 연좌 농성을 선택했다.
우리의 판단은 잘못됐고 징계위는 5분 만에 징계 투표를 끝내 버렸다. 우리는 순간 흥분했지만 다시 대오를 정비하고 곧바로 자유 토론에 들어갔다.
집회 참가자 전원이 현장 순회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현장에 가 이 사실들을 알렸고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항의 방문했다.
12월 26일에 김우용(징계대상자) 대의원 선거구 조합원들은 사측의 부당 징계에 항의하기 위해 반 자체적으로 운영위원 5명을 선출했다. 운영위는 대의원, 반대표, 전반대표, 조장, 선봉대로 구성됐다. 그리고 그 날에 반 인원 전체가 잔업을 거부했고 3공장 현장 순회를 했다.
29일에도 잔업을 거부했다. 이번 잔업 거부에는 40여 명 정도 더 늘어났다. 3공장 현장순회(100여 명 참가)가 끝난 뒤 조합원들은 다른 공장으로 확대 현장 순회를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했고 대다수 조합원들은 그러자고 했다.
12월 30일, 주간 조 점심 식사 시간을 이용해 비대위가 “민주노조 건설과 부당 징계 관련” 집회를 열었다. 약 400여 명이 참가했다. 평조합원 동지들의 참가가 두드러졌다.
이에 힘입어 우리는 야간조 4시간 조퇴 투쟁을 결의했고, 3공장 대의원 주최로 야간 중식 집회를 했다. 이 자리에는 다른 공장 조합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참가했다. 약 250여 명이 모였다.
우리의 투쟁이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자 사측은 한발 물러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정권과 사측이 벌이고 있는 기아차 노동자 마녀사냥에 맞서 더 강력한 행동을 조직할 것이다.
비대위는 현장 투쟁에 초점을 둬야
김인식
지난해 12월 15∼17일 속리산에서 기아자동차 노조 정기 대의원 대회가 열렸다. 무거운 긴장감이 대회장을 짓눌렀다.
새로 당선한 대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노동조합 지도부를 갈아치우려고 잔뜩 벼르고 대의원 대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리를 보존하려는 노조 지도부와 대다수 대의원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다수 대의원들이 현 집행부를 불신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5월에 당선한 현 지도부는 우경적 지도부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 집행부 쪽인 판매지부 사무국장이 조합비를 횡령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16일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대의원 대회는 먼저 회순을 놓고 충돌했다. 몇 차례 정회를 거듭하며 하루종일 계속된 회순 논쟁은 대의원 대회의 진정한 핵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논쟁을 통해 대의원들의 정서와 분위기를 일부 느낄 수 있었다.
대의원들의 압도 다수가 노조 지도부의 약점인 판매지부 조합비 횡령 건을 먼저 다루는 것에 표를 던졌다.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표결이었다.
곧이어 반대파 대의원들은 조합 비리를 들어 지도부 총사퇴를 압박했다.
그러나 박홍귀 위원장은 개인의 비리일 뿐이라며 총사퇴 요구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는 “여기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는 식으로 맞대응했다.
그는 반대파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반대파에는 전에 비리로 집행부에서 중도 하차한 쪽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반대파는 노조 지도부 비판 초점을 비리에 맞춰서는 안 됐다.
그러나 반대파 대의원의 다수는 노조 비리를 주되게 공격했다. 소수만이 투쟁을 회피하는 노조 지도부의 보수성을 비판했다.
보수적인 지도부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던 반대파 속에서 의견 불일치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불일치는 노동조합에 대한 근본적인 전략 차이에서 비롯했다.
노조 비리에 초점을 맞춘 대의원들은 현 지도부를 불신임한 뒤 더 좌파적인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은 듯하다.
물론, 보수적인 지도부를 좌파적인 지도부로 바꾸는 것은 지지할 만하다. 좌파 지도부의 등장은 좀 더 투쟁적인 현장 조합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투쟁 의지를 고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이런 전략의 근본적인 약점은 좌파 지도부도 투쟁이 일정 수위에 도달하면 그 사회적 위치에서 비롯하는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개인 심성의 문제가 아니라 노조 지도부가 수행하는 기능의 본질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1997년 1월 대중 파업은 국민파 지도부 하에서 일어났다. 반면, 좌파 지도자인 단병호 현 민주노총 위원장은 1998년 2월 파업 비대위 위원장 시절에 정리해고 법제화에 반대하는 파업을 철회했다.
결국 승리의 열쇠는 노조 지도자들이 아니라 현장 조합원의 자신감이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반대파 대의원들은 이 점을 놓치고 있었던 듯했다.
반대파의 공세에 시달리던 위원장은 16일 밤 11시경 정회를 선포하고 대회장을 퇴장했다. 그러자 남아 있던 3백여 명의 대의원들은 그 자리에서 ‘17대 집행부 불신임을 위한 대의원 비상대책위’(비대위)를 결성했다.
노조 규약상 지도부 불신임을 위해서는 조합원 총투표에서 67퍼센트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현재 불신의 정서는 비교적 광범할지 몰라도 전체 조합원 사이에서 불신임을 위한 조건이 충분히 무르익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전 경험 때문에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노조 지도부의 투쟁 약속에 대해 냉소적일 수 있다. 이해할 만한 정서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가 투쟁하겠다면 그것을 지지해서 실제 싸우도록 아래로부터 압력을 가해야 한다.
만일 집행부가 말만 하고 투쟁하지 않는다면 그 때는 독자적으로 싸울 필요가 있다. 이것이 효과적인 불신임 방식이다.
비대위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