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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1년

노무현 정부 1년

기대가 실망과 분노로 바뀌다

김인식

2002년 12월 19일, 많은 사람들은 한나라당으로 표상되는 구체제의 복귀를 거부해 노무현에 투표했다. 그들은 민주주의, 평화, 부패 청산, 사기업화 중단, 더 나은 공공 서비스, 더 많은 일자리를 원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이런 염원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변화 염원을 수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도 없다. 노무현 정부는 진보적인 정책보다는 보수적인 정책에 더 의지했다.

노무현 정부가 평등과 정의를 구현하고, 기업 특혜에 제동을 걸고, 우리 사회에 움푹 파여 있는 가난의 웅덩이를 메워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지금 깊은 실의에 빠져 있다.

반면, 노무현에 적대적이었던 기업과 언론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이 손상받지 않았다는 사실과, 노무현 정부가 기업과 자유 시장을 찬미한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노무현에 대한 불안한 시선을 완전히 거둔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은 틈만 나면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1년은 이런 모순이 심화한 시간이었다. 대중이 기대했던 것과 제공받았던 것 사이의 격차는 매우 컸다. 이것이 노무현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데올로기적 위기를 낳았다.

일부 사람들은 씁쓸함과 정치적 환멸감을 느꼈다. 일부 사람들은 절망감에 빠졌고 심지어 일부는 자살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논쟁하고 저항하며 이런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한 기대를 거둬들이고 있다. 노무현의 지지율 하락은 토막나무 끈 자국처럼 뚜렷하다. 지난해 이맘때의 3분의 1로 떨어졌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무현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25.1퍼센트였다. 노무현의 집권에 대한 기대와 환희는 1년 만에 아득한 기억이 돼 버렸다.

노무현 정부 하의 상황이 점점 더 과거 정부들과 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해 대규모 군대를 파병하기로 했다. 철도와 화물 등 노동자 파업에 모두 일곱 차례 경찰력을 투입했다. 핵폐기장 건립 관련 부안 주민투표 결과를 부정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강행했다. 한총련을 계속 이적단체로 묶어 놓았고 국가보안법으로 지난 1년 동안 69명을 구속했다.

이 모든 일이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 왔던 수구 세력의 부패와 무능력에 오염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노무현 정부에서 일어났다.

게다가 가난한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하에서도 여전히 삶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적어도 5백만∼8백만 명(12∼25퍼센트)이 빈곤선에 놓여 있다. 이 가운데 136만 명만이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고 있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는 ‘참여복지’의 이름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를 2002년보다 4만 명 줄였다.(〈매일노동뉴스〉 2003년 12월 4일치.)

노무현은 부자들과 기성 권력자들에 대항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그는 주한상공회의소 명예회장 제프리 존스를 만나 “기업하기 아주 좋도록, 활력 있게 기업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데 대통령이 가진 모든 힘을 쏟을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황폐

노무현에게 투표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현실을 참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불만과 비판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상투적 반응은 모든 문제를 거대 야당과 보수 언론의 ‘흔들기’ 탓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급하게 굴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설교했다. 경제가 충분히 회생되기 전에는 큰 기대를 가져서도 안 된다고도 말했다.

이전 정부들이 남겨 놓은 황폐한 유산은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통계로 보더라도 한국은 극단의 세계가 돼 가고 있다. 가난과 불평등이 극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도시 가구 열 곳 중 한 곳은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 불평등을 나타내는 도시 가구의 지니계수는 1997년 0.389에서 2002년에는 0.427로 높아졌다.

이런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점진적 개선보다는 급진적 치유가 훨씬 더 효과적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이전 정부들의 파산한 정책을 따라하고 있다.

노무현은 사기업화를 계속 추진하고, 사회복지 재정도 재정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주 노동자를 경제 위기에 대한 속죄양으로 삼고 있다.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는 아예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무현은 “정부가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빼앗아 나눠 준다고 하면 큰 코 다친다”(〈매일경제신문〉 2004년 2월 24일치)고 말했다.

노무현 자신이 지난해 말에 “정책 측면에서는 정부가 한 일을 국회가 대부분 수용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노무현의 정책과 대다수 노동자들의 의식 사이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많은 점에서 노동자들은 변화와 개혁을 바랐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런 기대에 보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무현의 정책과 노동계급의 요구 사이에 불일치가 커지고 있다.

이것이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이 노무현의 ‘정신적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표를 던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도 아니다.

특히 한나라당이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처럼 비쳐질 때는 더욱 그렇다. 노무현은 이런 정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을 맡겨 준 만큼 특별한 대안이 없으면 일 좀 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협박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노무현에 대한 지지는 점점 더 한나라당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고, 노무현 정책에 대한 지지는 갈수록 더 시들해지고 있다. 노무현과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까닭이다.

노무현이 일관되게 보수파를 비판하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중앙일보사 회장 홍석현을 ‘국가 원수’급으로 예우하며 융숭한 대접을 했다.

노무현은 왼쪽의 압력을 차단할 필요를 느낄 때만 가끔 ‘수구 세력 포위론’을 끄집어 냈다. 때론 왼쪽의 압력에 대해 그 자신이 보수적으로 대처하기도 했다. 특히 노동조합 투쟁에 대해서 그렇게 했다.

그는 노동쟁의와 시위를 이유로 204명의 노동자들을 구속했다. 사흘에 두 명꼴이다. 1년 평균 126명의 노동자들을 구속했던 김영삼 정부나 178명을 구속했던 김대중 정부의 기록을 깼다.

포승줄

이렇듯 노무현의 보수적인 정책들이 실행되면서 명백하게 드러난 불의와 좌파의 저항 때문에 흔히 노무현 정부는 이데올로기적 역습에 직면해 옹색한 처지로 내몰리곤 했다.

손석춘 〈한겨레〉 논설위원은 노무현의 ‘수구 세력 포위론’을 반박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비전투병으로 시작해서 결국 전투병까지 파병하는 일에 우격으로 나선 사람은 누구인가. … 민중의 고통을 모르쇠하는 오만이 과연 국회에 의석이 적어서인가. 송두율 교수를 포승줄로 꽁꽁 묶어 구속 수사하고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은 여전히 이적단체로 ‘사냥’하는 현실에서 대통령은, 청와대는, 강금실 법무장관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오마이뉴스〉 2004년 2월 21일치.)

홍세화 씨는 “민주화 시대에 수구와 ‘개혁’은 겉으로는 현란하게 싸우지만 반노동적·반민중적 신자유주의에서는 서로 만나는 멋진 공생 관계를 이룬다”고 지적했다(〈한겨레〉 2003년 11월 17일치).

지난 2월에 열렸던 제3회 한국사회포럼에서도 대다수 연사들은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해 한국사회포럼에서 적지 않은 연사들이 노무현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분위기였다.

보수 언론들은 여전히 노무현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비판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분열해 있고 대중의 혐오를 한몸에 받고 있다.

대중의 급진화 때문이다. 이것은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정치의 유력한 특징이 돼 왔다. 물론 이것은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급진화를 유지하는 일에는 한나라당 같은 우파의 부상을 반대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지난 1년은 우리 운동이 노무현을 지지함으로써 우파를 저지할 수 없음을 밝히 드러냈다. 노무현 자신이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우파의 부상을 막기 위해 노무현 비판을 자제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국민’의 이름으로 피억압 대중의 운동을 비난했고, 비정규직의 이름으로 조직 노동계급을 공격했다.

이 때문에 집권 몇 달 만에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 불만이 이토록 날카로우리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지난 1년 동안 벌어졌다. 이런 불만은 투쟁과 연결돼야 한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휘발성이 노무현 정부를 휘감고 있다. 노무현의 ‘가벼운’ 말 때문이 아니라 그가 놓여 있는 조건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전쟁과 신자유주의라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사슬에 단단히 묶여 있다.

노무현은 전쟁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기꺼이 지지하고 나섰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에 매우 밀접하게 얽매이게 됐다는 뜻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심각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 지배자들은 확전할 수도 있다. 노무현의 이라크 전쟁 지지는 한국 정치가 이런 불확실성에 휘말리게 만들었다.

노무현은 경제의 세계화 때문에 개방과 사기업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에 더욱 노출되게 됐다.

대중의 불만을 달래려면 개량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앞서 언급한 상황 때문에 이 정부의 운신의 폭은 대단히 제약돼 있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가 성공하려면 노동계급의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러면 신자유주의적 의제들을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것이 노동자 투쟁을 자극할 수 있다. 정치적 휘발성 때문에 한 부문의 투쟁이 전국적 초점 구실을 할 수 있다.

이 때 이런 투쟁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최상의 노동운동 투사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변혁적 정치조직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조직은 오직 투쟁 속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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