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은 공공기관 부채에 아무 책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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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정상화’는 노동자들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파상 공세 목록 중 상위에 올라 있다. 박근혜와 기획재정부 장관 현오석은 시도 때도 없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는 올해 첫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진돗개는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며 “비정상의 뿌리가 뽑힐 때까지 끝까지 추진해 나가라”고 표독스럽게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토록 공공기관에 대한 긴축과 구조조정을 다그치는 배경에는 심각해지는 세계경제 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신흥국 위기, 흔들리는 중국 경제 등 세계경제 위기가 한국의 재정 상황을 악화시킬 것에 미리 대비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공공기관부터 먼저 임금을 삭감하고 이를 발판으로 민간 부문 노동자들의 임금도 억제해 노동계급 전체에게 경제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정부가 철도 파업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밀어붙인 것은 ‘공공기관 정상화’의 대표 본보기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우선 부채 중점관리대상 18곳, 방만경영 중점관리대상 20곳을 꼽아 부채와 복리후생비 삭감 계획을 내라고 압박했다.
정부의 “부채 감축 계획”은 부채 비율이 2017년까지 2백 퍼센트 수준(현재 2백20퍼센트)이 되도록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불과 3개월 전인 지난해 10월에 국회에 제출한 중장기재무관리계획보다 부채를 30퍼센트나 더 낮춰 잡아 오라고 요구했다.
“방만경영 정상화 계획”은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복리후생비 공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퇴직금누진제 금지, 대학생자녀 학자금 지원 금지 등 그 삭감 규모가 매우 큰 것들도 포함돼 있다. 복리후생비는 노동자 임금의 일부이고 임단협 사항이므로 노조의 동의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도 정부는 일방적으로 지침을 강요하고 있다.
노동자 징계와 구조조정, 전보 등에 대한 노조의 사전 동의를 금지하는 등 기본적인 노동조합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내용들도 포함됐다.
정부의 이런 독촉으로 38개 중점관리기관들은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정상화 대책 이행계획”(이하 이행계획)을 제출했다. 이행계획의 내용은 그동안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우려했던 ‘정상화 대책’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민영화, 공공서비스 축소, 노동자 임금 공격하기
부채 중점관리대상 기관들은 부채를 40조 원가량 추가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사업 조정과 자산 매각이 주된 방식으로 제시됐다.
LH, 한국전력 등 부채 감축 계획 규모가 큰 곳들은 임대주택이나 발전 시설 건설 등을 축소하거나 늦추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핵심 공공재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공공기관들에 대한 부채 감축 압박은 공공서비스의 축소를 낳을 것이다. 사업 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동반될 수 있다.
공공기관들은 “사업 조정”의 주된 방식으로 민간 자본 유치 계획을 내놨는데,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공동 사업을 벌이는 것은 향후 민영화로 직결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민영화 시도가 계속됐던 전력·가스 부문에서 민간 자본 유치를 사업 재조정 계획으로 제출한 것은 우려스럽다.
자산 매각도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철도공사는 적자선을 매각하고 인천공항철도도 민간자본에 되팔려는 계획을 내놨다.
이번에 제출된 자산 매각 계획의 상당 부분은 공공기관 부지와 사옥 매각이다.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공공기관들이 서울에 가지고 있는 땅을 급히 팔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쏟아지게 될 부동산 매물만 7조 원가량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일제히 부동산 자산 매각에 나설 경우 제값 받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부지를 노리고 있는 재벌들만 알짜 공공재산을 싼값에 가져가는 특혜를 누릴 것이다. 가령,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 매각은 삼성을 위한 특혜라는 의혹이 있고, 가스공사 등의 해외 자원 개발 지분 매각도 결국 SK나 LG 같은 에너지 대기업들에 혜택을 주게 될 것이다.
‘정상화 계획’은 수익 극대화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요금 인상을 낳을 것이다.
이행계획에 따르면, 38개 중점관리기관 노동자의 1인당 복리후생비는 지난해에 비해 1백44만 원 줄어든다. 특히, ‘방만경영기관’으로 꼽힌 20개 기관의 1인당 복리후생비는 2백88만 원이나 줄어든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공공기관 부채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과도”하다고 지적된 복리후생비를 다 모아 봤자 총 1천6백억 원가량으로, 중점관리기관의 총 부채 4백11조 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 약 0.036퍼센트밖에 안 된다!
이것은 ‘공공기관 노동자가 방만해서 부채가 늘어났다’며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비정상’의 원흉으로 몰아가는 박근혜 정부의 공격이 엉뚱한 책임 전가이며, 순전한 거짓말임을 보여 준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그동안 정부의 빡빡한 총액인건비 통제 때문에 임금 인상을 제대로 못 해 왔는데, 복리후생비마저 뺏긴다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공동 대응
정부의 파상 공세에 맞서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공동 대응 논의를 시작했다.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38개 중점관리노조는 특별대책위까지 결성했다.
38개 중점관리대상 노동조합들은 각 공공기관별 ‘정상화 대책’ 추진에 참여하지 않고 일체의 개별 교섭을 거부하기로 했고, ‘정상화’ 추진 실적에 따라 공공기관들을 줄 세울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무력화하겠다고 공동 결의했다.
임금 교섭 돌입 시기를 집중해서 쟁의행위에 함께 돌입하겠다는 계획도 내놓고 있다. 특히, 정부가 ‘정상화 대책’ 완료 시점으로 잡고 있는 하반기에 총파업, 총력투쟁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공공부문 노조 활동가들은 이명박의 ‘공공부문 선진화’ 당시 노동운동의 대응을 돌아보며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당시 한국노총은 정부와의 정책 연대로 발목이 묶였고, 민주노총도 작업장별로 각개 대응하는 데 그쳐 ‘선진화’를 잘 막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정부가 임단협 개악을 시도하고 경영평가를 시작하는 상반기부터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이때부터 조직적으로 잘 대응해야 하반기 파업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노조 대표자들의 목소리도 있다.
물론 작업장별로 조직력이나 투쟁 경험의 불균등이 있으므로 투쟁 경험이 있고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선구적으로 이끄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이간질에 맞서야
‘정상화 계획’은 민영화, 요금 인상, 공공서비스 축소, 재벌 특혜 등을 낳을 것이므로 단지 공공기관 노동자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노동계급의 다른 부분과 전체 진보진영이 이 투쟁에 적극 연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를 ‘철밥통의 이기주의’인 양 취급하며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을 비난하는 지배자들의 이간질에도 잘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리후생을 방어하는 것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리후생이 줄어드는 것은 다른 부문 노동자들에게 하등 도움이 안 된다. 공공부문 공격이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 후퇴를 강요하기 위한 첫 출발이기 때문에,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지켜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때도, 공공부문에서부터 퇴직금누진제 등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복리후생 제도들이 무너지자 민간기업에서도 이 추세가 확대됐다. 정부는 국민연금 개악을 앞두고 공무원연금부터 개악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공공부문 긴축 계획을 저지할 핵심 동력은 공공부문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이므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경제적 요구와 불만을 잘 방어하며 싸울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한다. 철도 노동자들이 민영화로 인한 신분 불안정과 노동조건 후퇴를 막기 위해 적극 파업에 나선 것은 노동계급 전체에게 이익이 됐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를 터부시하지 말고, 이 요구를 공공서비스 방어 문제와 연결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