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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용 씨와 좌파노동자회의 진정한 정치적 견해

이 글은 민주노총 7기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노동자연대가 발표한 입장 설명서의 일부를 편집해 재게재하는 것이다. 이갑용 씨와 좌파노동자회의 정치가 분열을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밝히고자 이번에 다시 게재한다. 모든 강조는 노동자연대의 것이다.

이갑용 씨는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의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고, 1998~99년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울산 동구청장을 지내다 공무원노조 조합원을 징계하라는 중앙 정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해 직무정지를 당했다.

좌파노동자회는 새노추(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의 후신이고, 사회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2기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본다. 좌파노동자회 허영구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김순자 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었다.

이갑용-좌파노동자회는 투쟁을 강조하는 등 국민파-중앙파-전국회의 측보다 좌파적이긴 하다. 그러나 현재 노동운동과 정치세력화에 대한 진단과 비전이 꽤 부적절하고, 무엇보다 초좌파주의(말은 급진적·좌파적으로 하면서 실천은 종파적으로 하는 경향)로 운동을 분열시킬 위험이 적잖이 있다.

이갑용 씨는 4기 5대 이수호 집행부부터 6기 9대 김영훈 집행부까지 한 정파가 다 차지했다며 이 세력과 명확히 단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정파란 “통진당 지지 세력”을 가리킨다. 그는 “그들과 조직이 달라도 권력을 나누며 함께해 온 세력들과도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갑용 씨의 주장을 살펴보면, 박근혜 정권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보다 “통진당 지지 세력”과의 단절에 더 열을 올리는 듯하다. 실제로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 입후보 출사표에서 “권력과 재벌의 탄압도 문제이지만, 노동자들 내에서 노동자들의 피를 빠는 세력과의 단절이 먼저”라며, “분명한 적들보다 내부의 적들과의 단절이 나의 이번 선거의 목표”라고 했다.

이갑용 씨의 핵심 논지는 대강 이렇다. ‘박근혜 정권은 욕도 하기 싫다. 민주당(새정치연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당과 야권연대를 한 세력들도 똑같다.’ 그래서 실제로 그는 “권력의 맛을 본 민주당, 새로운 권력이 된 통진당, 민주노총 내에서 이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모두 “우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좌파”라며 이들이 활개 치는 민주노총을 만들겠다고 한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가 단순화시킨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다. 투쟁하는 노동자들 가운데 박근혜 막아 보자고 민주당에 표 던진 사람들이 별로 없을까? 최강서 열사가 느꼈던 절망을 피해 보고자 했던 사람들 말이다. 또, 투쟁하는 전국학비노조 조합원들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를 명예조합원으로 위촉한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요컨대 이갑용 씨의 태도로는 노동조합을 통한 폭넓은 단결 투쟁이 저해될 수 있다. 노동조합의 근본 기능은 노동자들이 일자리·임금·노동조건을 지키고 개선하고자 사용자에 맞서 되도록 폭넓게 단결해 투쟁하는 것이다. 여기서 큰 힘을 발휘하려면 노동조합은 같은 산업, 같은 작업장의 모든 노동자들을 그들의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질이 나쁘고 노골적인 우익이 때로 배제될 수 있다) 최대한 광범하게 포괄하려 애써야 한다. 또, 노동조합 내 정치 세력들은 (구체적 이슈들을 둘러싸고) 단결해서 투쟁할 줄 알아야 한다.

이와 반대로 이갑용 씨의 구상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분화를 노동조합 조직 자체로 끌고 들어와 장차 노동조합마저 분열케 할 위험을 제기한다. (사실, 좌파노동자회와 그 전신인 새노추는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통합하기 전부터 민주노동당과 연합하기를 거부해 왔다.)

좌파노총?

좌파노동자회가 내세우고 있는 “좌파노총” 구상에 이런 분열주의의 위험이 담겨 있다. 좌파노동자회는 민주노총으로부터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논리적 방향은 그것을 향하고 있다.

좌파노동자회는 “민주노총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고, “자본에 포섭”됐고, “어용의 길로 돌아섰다”고 본다. 그래서 “민주노총 혁신으로 [좌파노총이] 건설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민주노총이 문제가 많지만 고쳐서 가 보자는 식으로는 변화하는 정세에 부응하는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새로운 시대의 총연맹, 좌파노총》)

이런 초좌파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전망은 민주노총이 좌파노총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촉구하다가, 그것이 안 되면 새 노총을 만드는 것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좌파노동자회에게 이번 선거는 그 결과에 따라 새 노총을 향해 나아가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이갑용 씨와 좌파노동자회의 인식은 개혁주의(특히 노동조합 관료의)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결핍됐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지난 15년간 민주노총 지도부가 우경화, 노사협조주의, 타협주의로 기울어 온 이유를 주로 특정 정치 경향의 문제로 연결한다. 그래서 “통진당 지지 세력”을 “몰아내”면 민주노총이 환골탈태해 “세상을 변혁할 틀”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암시한다.

그러나 1997~99년 경제 공황 이후 노동조합 운동의 경험을 공정하게 돌아보면, 노동자들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동요하고 후퇴하고 심지어 투쟁을 배신한 것은 특정 정치 경향의 지도자만이 아니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체로 그런 경향을 보였다. 특히 경제 위기가 심각해질 때마다 그들은 자본과 국가를 도와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이에 이럭저럭 부응했다.

이것은 개인적 결함이나 정치적 성향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 사이의 중재자라는 그들의 사회적 구실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노동조합 관료 내의 좌우 구분보다 노동조합 관료와 현장 조합원의 구분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근본적이다. 물론 노동과 자본의 대립 다음으로 말이다.

이런 경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노조를 만든다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좌파 활동가들은 노조 지도자들과 상근간부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이 동요하거나 배신할 때는 독자적으로 투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배신할 때 그들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현장조합원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 중심

이와 달리 이갑용 씨는 노동조합 조직 구조 문제에 골몰한다. 그가 직선제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데서 보듯이 말이다. 물론 원칙적으로 직선제가 간선제보다 좀더 낫지만, 아래로부터 현장 노동자들 자신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비할 바 없이 더 중요하다.

조직 구조 문제에 집착하는 맥락에서 이갑용 씨는 민주노총의 구조를 산별이 아니라 지역 본부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직 구조 변화가 좌파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갑용 씨는 산별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여 총파업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던 1998~99년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을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갑용 씨는 당시 자신이 드러냈던 한계를 이번에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놔야 마땅하다. 그러나 “연맹을 제치고” 가면 된다는 것은 전혀 해결책으로 보이지 않는다. 금속, 공공 같은 산별노조를 제쳐 버리고 조직 노동자들의 힘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

이갑용 씨와 좌파노동자회는 산별노조를 우회해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할 곳으로서 지역을 강조하는 듯하다. 여기에 덧붙인 근거들을 살펴봐야 한다. 제7기 위원장 선거 당시 이갑용 선본 김홍규 정책실장은 “현재의 산별구조는 포디즘 체제 〈대량생산, 대공장, 정규직〉의 운동”으로, “이런 구조는 절대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할 수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 편향의 주장을 한다.

그러나 공공운수노조의 서경지부가 청소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고, 이런 예는 다른 산별노조에서도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그는 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 한국GM 비정규직 투쟁도 지역의 동지들이 책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도 일면적인 주장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효과를 내려면 대체인력 거부가 필요한데, 이런 투쟁에서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가 사활적이다.

초좌파가 아닌 진정한 좌파라면 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산별 또는 같은 작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연대하라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 일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마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서 그런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선을 긋는 것은 사용자측의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전술에 말려들어 노동자 투쟁을 오히려 약화시킬 뿐이다.

금융수탈체제

이것은 이갑용 씨와 좌파노동자회의 좀더 일반적인 전망과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갑용 씨와 좌파노동자회는 ‘비정규불안정노동사회’의 철폐를 주장하면서, 오늘의 “신자유주의 금융수탈체제”가 “노동자 전체를 비정규불안정노동자로 만들고 있다”고 과장한다.

이것은 좌파노동자회가 비정규불안정노동자를 운동의 중심에 두는 노동조합 운동 재구성을 주장해 온 것의 연장선 상에 있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정규직노동자들이 자본주의적 소비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였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동자 운동”으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을 중시하는 것은 지당하다. 그러나 “안정된 직장에서 강고한 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가 아닌 불안정한 처지의 비정규노동자를 주체로 세”워야 한다며,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를 특권적 노동귀족처럼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불안정 노동인구의 증가로 혜택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지가 악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윤 체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략할 잠재력이 있다.

좌파노동자회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실업자, 알바, 장애인, 노점상, 철거민, 영세 소농 등을 비정규불안정노동자로 한데 묶는다. 여기에 금융 피해자를 포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좌익 포퓰리즘적 주장은 노동자 계급을 그저 ‘민중’을 이루는 여러 사회집단의 하나로만 보며, 이윤이 심장인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투쟁에서 발휘될 수 있는 노동자 계급 고유의 잠재력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낳는다.

이갑용 씨와 좌파노동자회가 이런 분석에 기초해서는 경제 위기 시대에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려는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에 맞서 효과적인 투쟁을 이끌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 노동자 계급 정치조직들의 공동전선을 통해 박근혜 정부에 맞서기 같은 중요한 과제에 대해 적절히 응답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