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성폭력 개념의 확장과 성폭력 사건의 운동적 해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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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내가 기고한 독자편지에 대한 몇 가지 의견들을 잘 들었다. 서로 간에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하여 무척 반갑게 생각하며 재답변의 글을 보낸다. 어떤 분은 내가
1. 성폭력 개념의 확장
먼저 나는 여성주의와 반성폭력 운동에 있어 성폭력 개념의 확장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왜곡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성폭력 개념의 확장이 진행되면서 봉착한 문제점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한 사람이다.
성폭력 개념의 확장은 여성운동의 확장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성폭력 개념의 확장을 마치 동심원이 점점 더 넓어지는 과정과 같이 생각해 본다면 그 중심에는 강간이라는 범죄가 있다는 것에 거의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도 강간은 사회적으로 매우 흉악한 범죄로 취급되는 중대한 성폭력이었다. 물론 근대와는 달라서 여성의 인권이라거나 성적 자기결정권 같은 개념은 전혀 없었고 아버지나 남편의 여성에 대한 소유권에 대한 침해로 여겨졌으며 젊은 여성을 강간해 놓고 그녀와 혼인을 하면 그것이 그 여성을
강간에서 출발하여 성과 연관된 범죄로까지 성폭력에 대한 개념 확장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하나의 계기는 양차 세계대전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과 전쟁 등과 같은 극단적인 비극적 상황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성적 폭력에 대한 인식과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인의 여성에 대한 강간 뿐 아니라, 특정 인종이나 종족에 대한 혐오, 그리고 그 인종을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는 근대로 이행되면서 여성이 대규모로 노동시장에 편입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성폭력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남성 상급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여성 부하 직원에게 신체접촉이나 성관계를 요구하는 행위이었고 이러한 유형의 성희롱과 성폭력은 지금도 신문과 방송을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여성주의자들은 이러한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맞서 투쟁을 벌여왔고, 직장, 학교, 군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을 매개로 여성에게 행해지는 다양한 유형의 인권침해를 성폭력이라는 강력한 언어로 규정하여 그것을 비판하고 그러한 행위가 여성에게 벌어지지 않도록 싸워왔다.
여성주의자에게는 지금 현재 무엇이 성폭력이고 무엇이 아닌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지금 당장은 대중에 의해 성폭력이라고 인식되지 않고 있지만, 지속적이고 강력한 운동을 통해 성을 매개로 한 가해행위들을 성폭력으로 인식하게끔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운동을 전개해 온 것이고 이것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왔다.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이 바로 과거의 성폭력 개념과 지금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남자 아이의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여성운동은
2. 문제점
그런데 성폭력 개념의 확장에 대해 나는 그것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동시에, 오랫동안 한 가지 우려 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매우 명확하고 단순한 의문인데 즉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사단이 난 경우를 살펴보자. 먼저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속칭 서울대 담배녀 사건이다. 나는 이 문제를 제기한 여성이 세간의 비웃음 사고,
두 번째 사건은 바로 노동자연대 동영상 사건이다. 이 사건에 있어 하나의 논쟁은 여성에게 포르노를 보여주거나 그러한 행위를 방조한 것이 성폭력에 포함되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논쟁은 그 성격상 도저히 결론이 날 수가 없는 종류의 논쟁이다. 왜냐하면 성폭력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책위측은 자신들이 여성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그러한 행위가 성폭력 개념에 포함되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설령 우리 사회의 인식에 있어 현재 그것이 성폭력에 포함되지 않는다하더라도 앞으로라도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고 그러한 방향으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운동을 전개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며 노동자연대 회원들이
남성들은 무슨 이상한 심리적 성적 욕망에서인지 여성에게 포르노를 보여주고 쾌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비단 이 사건에서 뿐 아니라 포르노가 합법인 나라들에서는 특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그래서 원치 않는 사람에게 포르노를 보여주는 것이 범죄라는 경고 문구는 모든 포르노물에 명기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포르노가 불법이지만 일명 야동이라 불리며 인터넷 상에서 널리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과 관련하여 성폭력 개념 논쟁을 바라보며 나로서는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나는 성폭력 개념의 확장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생각하다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본적이 있다. 나 개인의 부족한 의견이지만 설득력이 있는지 논의해 주기를 바라며 제안하는 것은
또한 노동자 연대 측에서 이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의 새로운 개념을 정의하고 성추행, 성희롱 등 관련된 개념을 정립하는 작업을 하는 것도 나는 매우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개념 정립이 소수의 견해라 하여 무시될 이유는 전혀 없으며 사회주의자로서 우리사회의 여성 인권과 성폭력에 대한 반대 있어서 매우 뜻 깊은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3. 성폭력 사건의 운동적 해결에 대하여
나는 노동자 연대 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소위
내가 말하는
먼저 중범죄라고는 할 수 없는 성희롱 내지 성폭력 사건이 어느 운동 단체나 조직의 일반 구성원들 사이에 의해 발생한다.
그 이후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지하는 조력자는 가해자가 속한 단체에게 찾아가 요구하기를 해당 사건을 법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하지 않고 대승적 차원에서
이러한 방식의 해결은 다음과 같은 가정 내지 명분 위에 있다. 사건을 개인 간의 사건이 아니라 운동 조직의 차원에서 바라봄으로써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계기로 활용하여 그 조직 내에서 성폭력을 뿌리 뽑고 전체 구성원들이 성폭력 문제에 대해 인식을 고양할 기회를 만든다. 피해자는 운동 사회 내의 구성원이자 활동가이므로 운동 사회가 그 피해자의 도덕성과 정직성을 의심하는 것은 옳지 못하므로 그 피해 호소의 내용은 모두 진실한 것으로 신뢰하여야 한다. 지배자들과 권력자들은 권력 기관 내지 단체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이를 은폐하고 축소하기에 급급한 반면, 운동 단체는 적극적으로 사건에 대한 사과를 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차별성을 드러내고 도덕성을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그리고 피해자 측에서 조직에 이런 요구를 하면 그 조직이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당연히 난색을 표할 것이다. 단체의 주요 인사가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이 명백하다면 직위 해제나 제명 등의 징계를 하고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사과문 정도는 발표할 수 있겠지만, 일반 회원 간의 문제에 대해서 조직 전체 차원에서 그러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첫째, 피해자의 요구에 의해 반성폭력 규약을 만든다거나 회원들에게 성폭력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은 민주적인 조직이라면 할 수 없는 내용이다. 즉, 회원들의 자발적 요청이나 문제제기에 의해 조직 내에서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회원들 다수가 찬성을 하는 경우, 즉, 그 조직이 가지고 있는 조직 내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에 의해서 가결이 되는 것이면 몰라도 피해자가 요구하여 조직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다.
둘째, 대체 어느 조직이 대승적인 운동적 해결이라는 명분을 앞세운다 하더라도 조직의 일개 회원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그것도
셋째, 이렇게 소위 운동적 해결을 주장하는 측은 단체가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음에 따라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해당 단체를 압박하여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려고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갈등은 더욱더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에 따라 더더욱 그 요구들이 수용될 가능성은 희박해질 것이고 그러한 방식으로 해결을 추구하는 활동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넷째, 피해자가 운동 단체의 구성원이라 하여 피해자의 말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거짓말을 한다고 몰아세우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은 아무리 정직하게 말하려고 해도 자신의 입장에서 기억과 경험을 재구성하여 설명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또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즉, 입장의 차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직의 입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조직의 구성원이라면 그 중 누구의 입장도 지지하기가 난감하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라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측의 주장을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조직에게 판단에 있어서의 객관성조차 없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인데, 어느 조직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법적인 개념을 운동 단체가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운동 단체가 법률을 그토록 좋아하는 것이냐고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조야한 비판이다. 새로운 사회를 달성하려고 운동을 하는 것은 기존의 지배질서 속에서 이루어진 모든 성과나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섯째, 운동 단체는 범죄 사실을 수사하고 진상 조사를 하여 사건을 판단하는 전문 기관이 아니며 그러한 전문성을 가지기도 힘들다. 만약 단체가 사건을 조사해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하였다고 해 보자. 운동 단체가 할 수 있는 처벌이라고 해 봐야 경고 아니면 최대한의 처벌은 제명이다. 즉, 피해자가 원하는 수준의 처벌은 하기가 힘들며, 어느 정도 처벌을 해 봐야, 피해자 측은 틀림없이 조직 보위를 위해 가해자를 감싼다는 비판을 하며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단체가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했다고 해 보자. 강력하게 처벌한다고 해 봐야 제명이겠지만, 공식적으로 성폭력범으로 선언하고 공개 사과문 게시를 요구하는 등의 처벌을 했다고 해 보자. 내가 그 가해자라면, 억울해서라도 법원에 갈 것이다. 차라리 법적으로 판단을 받아서 벌금을 내면 될 일이지
노동자 연대라는 단체의 회원들이 성폭력에 대해 교육을 이수한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또 반성폭력 규약이 제정되어 성폭력이 근절된 단체를 만드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노동자 연대가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성폭력을 옹호하는 단체라고 규정하고, 노동자 연대와 연대하는 단체도 성폭력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네트워크를 통하여 강력하게 압박하는 방식으로 이것을 달성하려 하는 것은 성과가 없을 뿐 아니라 방식 자체도 정의롭지 못하다. 나는 이것이 이 사건에서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