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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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만드는 언론》 노엄 촘스키, 두레출판사, 2004년
이 책의 원제는 “필요한 환상(Necessary Illusions)”이다. 이 말은 원래 라인홀드 니버가 사용한 말인데, 국가와 기업의 지배 엘리트들이 대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 내야 하는 환상이라는 의미다.
촘스키는 ‘자유민주주의’의 본질과 기업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 준다. “민주사회에서는 원칙상으로는 국민이 통치한다. 그러나 생활의 중심적 부분에 관한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은 일부 사람들에게 있[다.]” 그리고 이 일부 사람들은 “국가-기업 연합체”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다.
그래서 지배 엘리트들은 노동조합·환경단체·인권단체 등을 가리키는 “특수이해집단”이 정책 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간주한다.
촘스키는 대중의 사고와 비판을 허용할 수 있는 테두리에 가두고, 국가-기업 지배에 대한 대중의 도전의 방향이 빗나가도록 하기 위해 미디어 같은 “이데올로기적 기관”들이 핵심적인 구실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책은 미국의 추악한 제국주의 개입의 역사와 이를 다루는 미디어의 더러운 위선을 아주 상세히 폭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폭력은 크게 보도되지만,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무자비한 국가 테러는 무시된다. 미국의 ‘공식적 적’이 저지르는 범죄는 대대적으로 보도되지만,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이 지원하거나 조직한 범죄에 대해선 침묵한다.
촘스키는 사회 정의를 위한 대중 운동이 지배자들의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해 왔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촘스키는 미디어가 이 사회의 지배자들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기 때문에 미디어의 개혁은 사회 전반의 변혁 과정과 함께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상권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 입시지옥과 학벌 사회를 넘어 책세상, 정진상
작년엔 오답시비로, 올해는 수능부정으로 세상이 시끌벅적 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수능을 본 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에게 점수를 매겨 성적순으로 한 줄로 세우는 현행 입시제도 하에서는, 모든 학생들은 ‘부정행위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정진상 교수의 《국립대 통합네크워크》는 매우 시기 적절한 책이다.
저자는 “전국의 대학들이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서열체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중등학교에서 학생들의 궁극적 목표는 대학서열 체제에서 한 계단이라도 높은 곳에 위치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등학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무한 입시 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며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있다.
물론 이 책 외에도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서열 체제를 비판한 책은 여러 권 있다. 대표적으로 강준만 교수가 1996년에 쓴 《서울대의 나라》는 학벌사회의 폐해와 서울대 패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최초의 저서이다.
그는 “서울대 출신이 죽을 때까지 내내 누리는 특혜는 기회 균등과 공정 경쟁 원칙을 망가뜨린 것”이라며 학벌문제가 서울대의 문제임을 지적했다.
최근에 나온 김덕영 씨의 《위장된 학교》도 독일을 비롯한 외국의 교육현실을 거울로 삼아 학벌주의와 연고주의에 기반한 한국 교육의 현실을 잘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의 나라》와 《위장된 학교》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화의 현실에 대해서는 잘 폭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정진상 교수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저자는 대안으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제시한다.
저자의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안은 “수능을 폐지하고 자격고사화해서 대학의 문을 확대함과 동시에 기존의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해 입학생을 공동으로 선발하자”는 주장이다. 사실상의 서울대 폐지를 전제로 한 국립대 평준화 방안이다.
저자는 시장경쟁의 논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시점에서 공공성을 확대하고 평준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안은 상당히 급진적이다.
저자는 “학벌주의를 재생산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범국민적 교육개혁 운동이 필요하며 … 교육과 관련된 대중조직과 시민운동 단체들의 힘을 결집할 수 있는 연대기구와, 교육개혁을 주요 의제로 삼아 활동하는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아주 옳게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1968년 투쟁을 통해서 소르본 대학이 13개 대학으로 해체되고 국립대학인 파리 대학으로 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김현옥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창비
김동춘 교수가 쓴 〈미국의 엔진, 시장과 전쟁〉은 비판적 미국 이해의 종합판이라 할 만 하다. 저자의 출발점은 이라크 전쟁이다. 저자는 이 전쟁의 동기가 석유와 이스라엘, 그리고 다른 불량국가들에 대한 경고였다고 주장한다.
또,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에 대한 개입은 미국 역사책의 감춰진 부록 같은 것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미국이 전 세계에 군사·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세계시장을 안정적으로 장악하려는 것이고, 미국에게 전쟁 수행은 어느새 벗어버릴 수 없는 습관이 돼버렸다.
부시행정부 들어 시장과 전쟁이라는 미국의 두 엔진은 더욱 긴밀히 융합됐다. 부시, 럼스펠드, 체니, 라이스 등 미국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 거의 전부가 이러저러한 기업의 요직을 거쳤거나 여전히 겸직하면서 시장과 전쟁을 매개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
기업 이익이 정치를 통제하는 동안, 평범한 미국 사람들의 삶은 형편없이 추락했다. 주식배당금이나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 같은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금은 엄청나게 줄어든 반면,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도소매 세금은 더 올라갔다.
당연히 불평등이 증대됐다. 현재 상위 1퍼센트의 집단이 미국 전체 부의 47퍼센트를 독점하고 있고, 2003년 한해에만 1백70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저자는 현재 이 제국이 처한 위기를 옳게 지적한다. 첫째, 미국의 도덕적·이데올로기적 지도력이 위기에 빠졌다. 이라크 전쟁에서 극에 달한 일방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다. 둘째, 미국식 시장경제 모델이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식 시장경제가 부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은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셋째, 미국은 군사적으로도 더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미국이 어지간한 두 나라와 동시에 전쟁을 벌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자의 논지 가운데 일부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이나 시장주의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종종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미국의 대외 정책과 시장지상주의에 사실상 공모했다거나 함께 이익을 보고 있다고 싸잡아 비난한다.
비록 미국 노동계급의 의식이 세계적 수준에 비춰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수적 가치들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이 책임을 미국 노동계급 자체로부터 찾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보다는 미국 노동계급이 처한 역사적·구체적 조건과 좌파의 대응이라는 주관적 요소를 함께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편이 현명하다. 그래야만 비관적 전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이라크 전쟁 이후 벌어진 거대한 반전 시위와 급진화를 옳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