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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폭력

경총은 6월 2일 경총 건물에 화염병과 계란을 던졌다며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비난했다. 경총은 집회 직후 "폭력 시위 주동자 전원 점거", "불법필계"라며 광분했다. 경총은 자기네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경찰 폭력을 연일 촉구했다.

김대중 정부는 재빠르게 민주노총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단병호 위원장의 수배령까지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경찰은 "시위 상황을 정밀채증을 해서 관련자를 전원 검거"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계란 몇 개 던지고 월드컵 홍보탑이 불탄 것을 놓고 정부와 경총은 마치 시위자들이 방화범이나 폭도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떤다. 도대체 계란과 화염병 몇 개 던진 게 무슨 무시무시한 테러라도 되는가.

자본주의의 제도화된 폭력이나, 착취와 가난이 낳는 죽음과 절망이라는 폭력에 비하면 화염병과 계란 몇 개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당장 산업재해에 대한 정부와 기업주들의 대응만 봐도 "폭력" 운운하는 경총의 히스테리는 메스꺼운 위선이다.

산업재해로만 하루에 185명의 노동자가 산재 사고를 당한다. 그 중 하루에 평균 9명이 목숨을 잃는다. 과로사로만 하루에 평균 두 명이 죽는다. 매일 다섯 명이 직업병에 걸리고 66명이 갑작스럽게 장애인이 된다.

그러나 경총과 근로복지공단은 "IMF 체제 극복을 위한 고통 분담 대책" 운운하며 '산재보험급여 거품 제거 대책'을 만들어 재해 노동자에 대한 치료비 가운데 532억 원을 끊었다. 그 결과 김대중 정권과 기업주 들의 이윤지상주의·시장만능주의에 힘 입어 서울대 병원을 비롯한 여섯 개 대형 병원은 산재 병원 지정을 거부했다.

폭력이라는 말은 산재 노동자들을 끔찍한 평생의 고통으로 밀어넣은 바로 이런 작자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가난과 빈곤이라는 이름의 폭력

가난과 빈곤만큼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사회적 폭력도 없다. 가난과 빈곤이 자아내는 야만은 해마다 정도를 더해 간다. 최저생계비조차 벌지 못하는 빈민 수는 해마다 늘어 1996년 760만 명에서 1999년에는 1천만 명에 달했다. 이렇게 늘어만 가는 가난 때문에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에 따르면 해마다 두 배씩 늘어나는 자살의 주된 이유는 해고와 퇴직이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전국 1천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저소득층 가계의 재정 상태는 1년 전에 비해 크게 악화됐다(〈세계일보〉 2001년 5월 14일치).

그러나 경총은 극심해지는 빈부격차에 대해 단순히 오불관언이다.

실업자들이 넘쳐나서 실직 가정은 "폭력의 오두막"으로 변해 가고 있다. 빈곤층 가정의 가정 폭력과 이혼율이 급증하고, 노인 가출이 해마다 30퍼센트 이상 늘고, 자녀 부양 포기로 부모 잃은 어린이들이 늘어 간다.

실업의 고통이 이렇게 평범한 대중의 삶을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는데도 경총과 전경련은 고용 안정 요구를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난한다.

심지어 경총은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인상 주장에 맞서 "시간당 임금을 2천 원 이하로 억제"하자는 내부 지침을 만들기까지 했다.

한켠에서는 실업자가 늘고만 있는데도 취업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묶여 있다. 정말이지 이윤 불리기를 위해 삶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이윤 제일주의야말로 폭력이고 야만이다.

그러나 경총과 전경련은 노동시간 단축에 "시기 상조"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정부도 작년에 연내 법 개정을 약속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비정규직이 60퍼센트에 육박하는데도 경총은 구역질나게 "70퍼센트면 어떻고 80퍼센트면 어떻냐"(MBC 100분 토론회에서 경총 상무 김영배)며 이죽거린다.

그들에게 최상위 법은 이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장애인 2퍼센트 고용 의무제도는 가뿐히 무시한다.

모르쇠

정작 가난을 외면하고 심지어 조장하는 부자들은 탐욕의 대가로 온갖 부와 윤택한 삶을 독차지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 나라 인구의 1.6퍼센트 고소득층이 국민 총소비의 25퍼센트를 차지한다. 그 1.6퍼센트에서 가장 꼭대기에 전경련과 경총이 있다.

강남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서는 경제 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부자들에게 수백만 원짜리 악어 지갑과 구두, 액세서리, 보석류 등이 여전히 불티나듯 팔리고 있다. 하나에 100만 원 이상씩 하는 슈펠가베(독일), 브리오(스웨덴), 키코(이탈리아) 등의 장난감과 문구류 들은 부유층 사이에서 날개 돋힌 듯 팔린다. 그러나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점심을 굶는 어린이들의 수는 늘어만 가고 있다. 1998년 1월에 1만 명이었던 결식 아동의 수는 2000년 1월에 15.3배나 더 늘었다.

집이 없어 비닐 하우스에서 사는 사람들이 해마다 화재 사고로 죽고 있다. 문정동 화훼 마을의 비닐 하우스, 세곡동 율암 마을의 비닐 하우스 등에서 화재 사고로 일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우리는 흔히 듣고 있다. 그러나 부자들은 주택 재테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반면 월세값·전세값 폭등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수많은 도시 빈민들은 철거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자들에게만 세금을 깎아 주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 KDI 원장 강봉균은 한국 경영자들의 평균 보수가 일반 직원들의 월급에 비해 11배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며 "적절한 보상"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도대체 총보다 더 확실히 사람들을 죽이는 가난을 경총과 정부가 조장·외면하는 것이 폭력인가, 아니면 이들의 진정한 폭력에 저항하는 조그만 몸부림이 폭력인가.

제도화된 폭력

무엇보다 검찰, 경찰, 법원, 군대 등을 비롯한 국가 기관들 전체가 자본가 계급의 제도화된 폭력이다. 그들은 비폭력적인 언론·출판·결사를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고 비폭력적인 집회와 시위와 파업을 탄압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경찰 폭력을 사용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기는 인터넷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자그마치 1만 6천 개의 사이트를 접속 금지해 놓기까지 했다. 그 목록을 공개하는 것까지 거부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국가는 살상 무기 구매를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낭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는 공격용 헬기(AH-X), 지대공 미사일, 이지스 구축함(KDX-Ⅲ) 등의 최신형 살상 무기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방부는 여기에 자그마치 총 10조 원대의 무기 도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레미콘 노동자들의 사용자측 부당 노동 행위 처벌 요구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국가가 노동자들의 파업에는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게 대응했다. 김대중 정권 들어서 10여 곳이 넘는 작업장에 경찰력이 투입됐다. 사복경찰, 특공대, 전투경찰 들이 총망라됐다. 가뭄과 홍수 등의 자연 재해에는 연인원 6만 5천여 명이 동원됐지만, 파업 분쇄와 집회 강제해산에는 자그마치 324만 명의 경찰력이 투입됐다.('1999년 재해 재난 활동', 경찰청.)

군대나 경찰 같은 무장 기구는 폭력적으로 운영된다. 최근 수원 남부경찰서 의경들이 시위 진압 출동 직전 얼차려와 구타에 시달렸음을 폭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윤 보호를 위해,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켜야 하는 체제 자체가 폭력적이다. 이 체제에 화염병 몇 개로 분노를 표시하고 울분을 토한 행동은 변호돼야 마땅하다.

폭력적인 체제에 맞서 싸우는 데 비폭력주의는 무기력하기 이를 데 없다. 이윤을 위해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는 데 사용하는 폭력에 맞선 다수의 폭력은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