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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장악방지법 제정 요구:
정권 맞춤 방송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박근혜 끄고 공영방송 켜자.” 언론 노동자들이 정권 퇴진 운동에서 외치는 요구다.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가 계속되면서 정부 입맛에 맞는 보도는 늘어나고 언론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억눌렸다.

박근혜는 지난 대선에서 언론을 장악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했지만 이 자의 말이 늘 그렇듯이 완전히 거짓말이었다.

‘이명박근혜’ 우파 정부에서 보도 독립성 등을 요구하며 싸우다 해직된 언론인은 20여 명이다. YTN 노조 노종면 전 위원장 등은 벌써 해고된 지 3천 일이 넘었다. 정권과 사장에게 밉보인 언론인 다수는 좌천됐다. 2016년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한국 언론지수는 1백80개 나라 중 70위다.

퇴진 운동의 많은 참가자들이 “언론도 공범, 부역자”라며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언론장악 금지를 긴급 현안 6대 과제에 포함했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공영방송사들에게 대중적 불만이 높다는 것은 지배자들의 정치적 위기가 심각해졌음을 뜻하기도 한다.

비선실세의 존재는 3년 전 〈세계일보〉의 정윤회와 십상시 보도로 실체가 힐끗 드러났다. 하지만 많은 언론 노동자들이 박근혜 정부의 통제와 언론의 침묵 속에 오랫동안 진실이 파묻혀 있었다고 비판한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철저히 정부 편에 섰던 MBC는 촛불 시위 참가자들에게 지탄 받아, 기자들이 촛불 시위 현장에서 MBC 로고를 떼고 취재·보도해야 했다.

박근혜의 언론 장악 시도를 가장 극명히 드러낸 것은 세월호 참사 보도 통제였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은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를 통제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홍보수석의 일상적 업무라고 대응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참사 한 달 만에 KBS로 항의 방문을 간 것은 “기레기” 언론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전 보도국장 김시곤은 청와대의 방송 개입이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이뤄졌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낙하산 사장

언론 노동자들은 공영방송 사장을 정부가 낙하산으로 앉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공영방송 통제의 핵심 수단이라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이 바뀌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역대 정권들은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언론을 통제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휘두르려 해 왔기 때문이다. KBS 초대 사장이 박정희 정권 문공부 차관 출신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전두환 시절에는 ‘땡전뉴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영방송사들은 노골적으로 정권의 나팔수 구실을 했다. 노무현 정부도 2003년 대선 캠프 언론특보였던 서동구를 KBS 사장으로 앉혔다가 노조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서동구는 임명 한 달 만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MBC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청와대 대변인 출신, 5·16장학회(현 정수장학회) 출신 등이 사장직을 꿰찼다.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청와대로 입성한 인물들도 있다.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KBS 사장은 이사회가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법적으로는방송통신위원회(대통령이 위원장 임명)가 이사진을 구성하도록 돼 있는데, 관행적으로 여당이 7명, 야당이 4명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사회가 구성된다. 사실상 정부 비위를 맞추게 되기 매우 쉽다. 이런 구조 덕분에 동성애 혐오 발언을 내뱉는 조우석 같은 자가 KBS 이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MBC 사장과 이사도 선임도 방송문화진흥회가 추천해 방통위가 임명하는데 방통위원 9명을 관행적으로 여당이 6명, 야당이 3명을 추천해 구성하고 있다. MBC는 방문진이 지분의 70퍼센트를, 박근혜가 실질 소유주라 할 수 있는 정수장학회가 30퍼센트를 갖고 있다.

방통위와 방문진 구성이 쟁점인 것이다. 그래서 지난 수년 동안 언론노조는 이를 견제할 일명 언론장악방지법의 제정을 요구해 왔다. 이 패키지 법안은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으로 이뤄져 있다.

방송사마다 다른 이사 수를 여야 7대6으로 통일하고 사장 선임시 이사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것, 사업자와 종사자 대표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 등을 골자로 한다.(이에 대해 국회가 이사회를 추천하는 방식이 정치적 독립성을 헤친다는 우려도 있다.)

언론노조는 의결구조와 편성 등에서 아래로부터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1월 14일 광화문 집회에서 해직 언론인들이 연단에 올라 언론장악방지법 제정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언론장악방지법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완강한 반대가 가장 핵심적 이유였다. 20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간사 박대출(새누리당)은 온갖 핑계를 대며 상임위에서 이 법안을 다루는 것을 방해해 왔다. 미방위는 20대 국회 출범 이후 상임위 중 유일하게 법안심사소위를 1회도 개최하지 못했다.

세력 관계

민주당은 임시 국회에서 꼭 처리해야 할 법안으로 언론장악방지법을 꼽고 있다.(올 대선에서의 공정성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언론장악 방지법이 제정되면 부칙에 따라 3개월 뒤 사장과 이사회를 새로이 선출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언론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믿음직한 수행자가 될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차기 정권에 근접해 있어 언론 개혁의 동기도 떨어질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이미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공영방송에 대한 정권의 입김 문제가 발생한 바 있다.

따라서 언론 개혁에서도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중요하다. 이미 KBS 규약에 제작과 편성에서 사측의 통제를 막고, 언론 노동자들이 양심에 따라 통제를 거부할 권리가 명시돼 있지만 사측은 이를 곧잘 무시해 왔다. MBC 사측은 법원 판결로 징계와 해직의 부당함이 입증됐는데도 막무가내다.

보도의 독립성 쟁취는 제도적 뒷받침만이 아니라 현실의 세력관계가 중요하다. 전두환의 공보수석비서관 출신인 MBC 사장 황선필이 1988년 노조의 파업으로, 2014년 KBS의 양대 노조 공동 파업으로 세월호 보도 참사 책임자인 KBS 사장 길환영이 물러났다.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무하고 사회적 연대를 건설하려 해야 한다. 제도적 개혁은 필요하지만, 투쟁의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주류 언론은 수익 상당 부분을 기업 광고에 의존하고, 그들 스스로 자본주의 수호를 표방한다. 그래서 보도 논조에 기업주의 영향력이 크고, 언론이 기업들 편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는 구실을 하는 이유다.

대중 파업이나 대중 시위 등 기성체제에 적대적인 투쟁이 벌어질 때 이런 일들은 빈번하게 벌어진다. 이럴 때 언론은 관찰자가 아니라 한편에 속한 행위자다. 이재용 구속영장을 청구한 특검을 주류 언론들이 무리수라고 비아냥대거나 반대로 영장 청구를 기각한 판사 조의연을 두고 “원칙주의자”라고 칭송했다.

따라서 지금의 언론 개혁 요구를 지지하고 연대하더라도 그 효과가 부분적, 한시적일 뿐임도 알아야 한다. 근본에서 자본주의 환경에서 언론이 민중의 목소리를 올곧게 대변하려면 정부와 기업주들로부터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모종의 독립을 표방해야 한다.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노력을 지지한다.

대중은 종종 주류 언론의 왜곡에 대해 투쟁의 경험을 통해 깨닫고 환멸을 느낀다. 언론은 진정한 사회적 · 정치적 · 경제적 조건을 들춰내서 대중이 세계를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바로 그 투쟁을 위해 개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중 자신이 세계에 맞선 투쟁에 나설 수 있는 자신감을 고무해야 한다. 재정부터 정치, 보도까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언론이 필수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