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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개방화 방안을 지지하며

최근 일부 서울대 교수들이 제안한 '국립대 개방화 방안'은 신선한 논쟁 거리를 제공하는 참신한 주장이다.

'국립대 개방화' 방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초 학문 붕괴에 대한 대안 창출이 필요하다. 서울대는 재벌처럼, 공룡 기업처럼 돼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는 돈이 많이 들고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기초 학문 분야를 담당하자. 자연스럽게 실용 학문들을 다른 사립대학이 집중 육성할 기회를 부여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 대학들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렇게 해서 대학간 서열화를 완화시키자.

서울대가 학부생을 10년 동안 뽑지 않는 대신 다른 국·공립대의 학부생들을 위탁 교육하자. 그렇게 해서 지방 국·공립대의 우수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자. 이것은 저소득층 우수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계획을 위해서는 교육 환경이 대폭 개선돼야 한다. 국내총생산의 1퍼센트를 투입한다는 내용의 교육정상화 특별법을 만들자.

국립대 개방화 방안이 제기되기 이전에도 서울대 폐해에 관한 많은 지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가 그것이다.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가 단지 한국만의 현상인 것은 아니다. 영국의 "옥스브리지 마피아"(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 엘리트들), 일본의 동경대, 프랑스의 교원대학교와 국립행정학교 등은 수많은 엘리트를 배출해 왔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가 특히 기승을 부린다. "서울대는 성골이고 그 밑의 연고대는 진골이요, 그 밑의 상위권 대학들은 육두품"이란 말에는 쓰디쓴 현실이 표현돼 있다. "대학 카스트"라는 신종 용어까지 등장했다.

대학 서열화는 수많은 청소년들을 분노·절망·소외감으로 밀어넣고 있다. 열쇠 모양의 서울대 마크는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주술적 힘을 가진 것처럼 숭배되고 수많은 청소년들이 서울대로 상징되는 학벌주의의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 입시 과열 현상은 "서울대 광기", "서울대 집단 최면"으로 표현되고 있다.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 때문에 상상력과 창의력을 꽃피워야 할 시기에 수많은 청소년들은 가슴 속에 '일류가 될 수 없다'는 상처와 소외감을 안고 살아간다.

'서울대 구조'로 표현되는 대학 서열화는 사교육비 증가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지불하는 총 사교육비는 과외로 악명 높은 일본의 3∼4배에 달한다(김동훈,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책세상, 64쪽). 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1년 국가 예산이 100조 원 규모인 우리 나라에서 사교육비는 자그마치 30조 원에 달한다.

부분적으로 서울대는 엘리트를 길러 내는 양성소였다. 3공에서 6공까지 대통령, 국무총리, 부총리, 장관을 지냈던 150명 중 80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판·검사 가운데 80퍼센트가, 언론사 간부의 60퍼센트 이상이, 상장 기업 기업주의 40퍼센트가 서울대 출신이다.

엘리트의 다수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사실은 서울대가 사회의 불평등에 다소간 기여해 왔음을 보여 준다.

서울대의 '독식'?

그러나 일각의 '서울대 해체론'은 일면적이다.

서울대가 대학의 구실을 제대로 해 내지 못하는 이유를 '엘리트주의나 서울대의 패권주의', 정부의 지원 '독식'에서 찾는 것은 일면적이다. 특히 이런 주장의 결론은 종종 '서울대가 민영화돼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현실을 보자. 정부 지원을 '독식한' 서울대의 교육 환경도 무척이나 형편 없다.

학생수, 교수수를 따져 서울대와 비슷한 규모의 대학이 보통 13억 달러를 해마다 투자한다. 그러나 서울대의 전체 교육비는 3억 달러에 불과하다.

BK 21 사업 지원을 받는 경우에조차 지원 액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오병환 교수(지구환경시스템공학)는 “학비 지원 차원에 머무를 뿐 부족한 연구 시설이나 기자재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2000년 12월 4일)

최근 〈한겨레〉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서울대 도서관 수준은 미국 내 111개 주요 대학 가운데 101위인 최하위권이다.

장서 및 구독 학술지, 도서 구입비 모두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학술지 숫자는 하버드대의 9.1퍼센트에 불과하다.

교육 환경 순위의 결정적 지표는 교수 1인당 지원비나 교수 1인당 학생수 등에 좌우되는데 서울대의 교수 1인당 학생수(21.5명)는 독일(12.2)이나 호주 대학(9.9)의 평균치의 두 배에 육박한다. 서울대의 각종 교육 환경 지표 순위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태국에 비해도 훨씬 낮다. 세계 8백 위권 밖이라는 통계도 있다.

서울대 교수들의 급여는 국립대 중에 가장 적다.

서울대의 교육 환경도 이런데 다른 학교는 오죽하겠는가?

따라서 '서울대 독식'을 탓하기보다는 정부 지원을 '독식'하는 서울대의 교육 환경조차 열악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이런 한심한 환경에 비한다면 학문 연구 수준은 나은 편이라고까지 볼 수 있다.

서울대가 대학 구실을 잘 못 하는 진짜 이유

국립대 개방화 방안을 제기한 교수들은 대학을 기업처럼 운영해서 기초 학문에 대한 투자를 무시하는 것이 바로 대학 서열화의 중심적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여기에 메스를 댄다면 대학 서열화를 적어도 완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맞다. 서울대가 대학 구실을 잘 못 하는 것은 근본으로 정부가 교육과 학문 연구를 자본주의 기업 운영의 원리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서울대가 정부한테서 많은 지원을 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초 학문에 대한 투자가 빈약한 게 문제다. 그래서 최근 서울대 내의 인문대·사회대·자연과학대 교수들은 기초 학문에 대한 투자 확대를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작년에 발표한 국립대학발전계획도 "경쟁의 논리에 의해 대학을 기업 체제로 바꾸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금 "세계 일류의 종합연구대학"이라는 서울대의 표어는 "얼마나 대기업의 프로젝트를 많이 따오는가, 얼마나 돈이 되는 사업과 직결된 연구를 하고 있는가?"를 뜻하는 말이 돼 버렸다.

서울대는 "부가가치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기업형 대학을 지향하고 있다. 국립대학이 벤처를 허용하고 리서치 파크(research park)를 대학 캠퍼스 안에 건설한다."(강명구, 언론정보학과, 2001년 3월 30일 국립대 개방화 방안 집담회에서 자료로 배포.) 학교 안에 벤처 기업들이 진을 친 지 오래다. 정부와 서울대측은 이것을 아예 권장하고 장려하고 있다. 공대뿐 아니라 자연대 내에도 벤처 기업들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 지원은 단기적인 생산성과 효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이 내세우는 "생산성과 효율"은 장기적인 연구 활동을 기형화시킨다. 학문에 대한 투자는 기업의 투자와 같을 수 없다. 회사는 장기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은 그래야만 한다. 대학에 대한 투자는 적어도 30년에서 50년을 내다봐야 한다.

"대학의 연구력 향상 도모"를 목표로 내걸었던 BK 21이 유명무실화된 것도 기초 학문 분야를 더욱 배제하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결과다.

BK 21 계획은 1995년부터 2005년에 걸쳐 총 1조 4천억 원(매년 2천억 원)을 주요 대학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 계획을 통해 실용 학문 분야에 단기적인 생산성과 효율성을 주문했다.

그러나 기초 과학의 발전 없는 실용 과학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시작됐을 때 그 이론은 전혀 돈과 기술을 염두해 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이론은 반도체, 유전공학, 레이저 등과 관계가 있다.

어떻게 해야 서열화를 완화시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서울대를 어떻게 바꿔야 대학 서열화를 막을 수 있을까?

국립대 개방화 안을 내놓은 교수들은 우리 나라의 197개 대학들이 저마다의 전문성과 특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하게 발전해 나간다면 대학 서열화 현상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기초 학문 분야는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가, 실용 학문 분야는 사립대학이 전문적으로 발전시킨다면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화는 적어도 조금이라도 완화될 수는 있을 것이다. 법대·경영대·의대·사범대는 전문 직업 대학원으로 따로 분리시키는 게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에는 공학 분야가 없다. 많은 나라의 사례를 보면 특정 학과나 분야가 전문화된 다양한 대학이 공존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 현실은 어떤가. 108개 학과가 모두 전국에서 가장 높은 연구 수준을 갖췄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모든 학과는 전국 1위로 포장돼 있다. 실제로 대학교육협의회가 매년 실시하는 학문분야별 평가를 보면 정보통신과 재료공학 분야에서 포항공대와 한양대가 각각 수위를 차지했다. 서울대는 그 두 분야에서 모두 5위권 안팎으로 밀려났다.

국립대 개방화 방안을 지지하는 서울대 교수들은 패쇄적인 학과 편제가 되레 대학을 퇴보시킨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공룡화된 대학 구조는 패쇄적이기까지 하다. 교수 노조 추진위원장인 서울대 최갑수 교수는 이것을 "백화점식 학문 편제"라고 부르고 있다. "모든 학문 분야가 벽을 쌓고 다 한 방씩 차지하고 있고 그리고는 방들끼리는 소통이 없고 본부하고만 소통이 되는 그런 아주 폐쇄적으로 분할구조적인 학문 편제가 만들어진 것이다."(계간 《사회비평》, 2001년 봄호, '좌담 ― 서울대 문제, 대안의 모색', 94쪽.)

대학은 전문화와 특성화를 통해 다양하게 발전해야 한다.

독일 대학을 예로 들어 보자. 독일 대학은 취업을 목표로 하는 전문 직업 학교, 각 분야를 전문적으로 육성한 대학 들이 골고루 발전해 왔다. 예를 들어 독일의 괴팅엔 대학은 사회학 연구와 강의에 중점을 두는 대학이다. 경험적 연구에 바탕을 둔 산업사회학 강의와 연구는 독일 대학생들에게 정평이 나 있다.

독일 유학 경험이 있는 한 교육학 연구자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이 "독일의 최고 명문 대학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이다."고 단언해서 독일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곤 한다. 어떤 교수진이 포진하고 있는가, 그 학과가 어떤 주제 연구와 강의의 중점을 두고 있느냐가 대학 평가의 주된 잣대가 돼야 한다(격월간 〈교육비평〉 2000년 5·6월호, '외국의 교육에 대하여 ― 독일의 경우', 김덕영). 이것이 바로 국립대 개방화 방안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민영화 반대

그러나 서울대 민영화는 되레 이런 열악한 환경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서울대를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부 내에서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1999년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립대 민영화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 방안의 핵심 내용은 서울대에 대한 국고 지원을 줄인다는 것이다. 2000년 12월 '국립대학발전계획'은 "자율과 책무에 기반한 대학운영 시스템으로 개선하자."는 현란한 문구와 함께 발표됐다. 그러나 그 계획의 핵심 내용도 이른바 특별회계제도로서 2년 전 KDI의 "정부 지원 예산 줄이기"로 요약된다.

사실, 정부의 민영화 논리는 '돈을 벌지 못하는 학문이나 학자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관점에 서 있다. 한 서울대 교수는 이런 입장을 “반지성주의와 뭐가 다른가” 하고 반문한다. 실용 학문만이 가치 있다는 관점은 중장기적으로 실용 학문조차 위태롭게 만들 게 분명하다. 정부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모델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 나라는 미국식 교육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이다. 미국에서도 사실상 주립대가 사립대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을 포괄하고 있다.

위선적이게도 정부는 마치 서울대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형평성 원리에서 어긋난다는 식으로 서울대 민영화 논리에 포퓰리즘적 언사를 종종 덧붙이곤 한다.

그런데 위험하게도 '학벌 사회에 반대하는 모임'의 운영위원이자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대학 카스트》의 저자 김동훈 교수(국민대 법학과) 등도 민영화론을 찬성하고 있다. "민영화 조치로 서울대가 국립대학이라는 타이틀만을 벗음으로써도 이미 대학서열화의 완화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본다." 김동훈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정부의 서울대 지원을 줄이자.' '서울대생의 등록금과 서울대 출신자들이 낸 재원으로 학교를 운영하자.' '서울대에 지원하는 돈의 일부를 사립대에 지원하라.' 김동훈 교수는 "사교육을 '말살'하고 구축해 놓은 독일의 국가주의적 공교육 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많은 비판이 있다."며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이 어느 나라보다 많은 독일식 대학 체제를 깎아 내리기도 한다. 강준만 교수도 "서울대의 장학금이 너무 많다."며 볼멘 소리를 한다.

사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천만 번 옳다. 그러나 국립대에 대한 지원을 줄여서 그렇게 하라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우리는 모든 대학에 정부 지원을 확대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대학은 진정한 공공성에 바탕해야

앞서 지적했던 서울대의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국립대 개방화 방안은 지지할 만한 급진 개혁안이다.

그러나 이조차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몽상이 아니다. 실제로 1968년 직후 소르본 대학은 13개 대학으로 해체된 바 있다.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을 통과하기만 하면 수많은 고등학생들은 거주지별로,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단과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 전체 젊은이들의 약 30∼40퍼센트가 고등교육 받기를 희망하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바로 일반 국립대학인 파리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 대도시에서는 대학은 번호로 구분될 정도로 서열화돼 있지 않다. 전문적 특성을 가진 여러 대학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파리 4대학은 문학 예술, 인문과학, 체육학 계열 학과 중심의 대학이다. 파리 6대학은 이공계열·의학 계열의 학과가 개설돼 있다.

그러나 국립대 개방화 방안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많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는 중앙 정부한테서 대학 재정의 60퍼센트를 지원받고 있다. 미국처럼 사립 대학이 많은 나라도 정부가 사립 대학에 46퍼센트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낸다. 유럽은 거의 평균 90퍼센트에 육박한다.

프랑스 고등교육 기관은 일부의 사립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국립기관이며 학교 운영비를 국가가 부담한다. 학교 등록금은 1년 기준으로 20만 원 미만이다.(〈대학교육〉, 2000년 1·2월호, 김성룡 대학교육협의회 연구원.)

아예 모든 대학을 국립대화하고 학비도 국가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 누구라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와 조건을 누려야 한다. 자유롭게 토론하고 탐구할 수 있고 질 좋은 교육 환경을 무상으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교수와 학생 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 커리큘럼, 민주적 학사운영, 넓은 강의실, 다양한 학습 공간, 이 모든 것들이 제대로 구비돼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공성이다. 돈이 되는 학문, 돈이 되는 학생들만을 떠받드는 자본주의적 교육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기업처럼 대학을 운영하려는 시도에 맞서야 한다.

1990년대 말부터 유럽 정부들은 교육에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려다 대중적 항의에 부딪힌 바 있다. 1997년 말 독일 콜 정부는 없던 등록금 제도를 도입하려 하다가 학생들의 격렬한 점거 운동에 직면했다.

1998년 프랑스 고교생들은 성적 등급 발표에 항의하여 50만의 거리 행진을 조직한 바 있다. 프랑스 교육부는 전국 4천여 개 고등학교의 성적 등급표를 발표했다가 1998년 61개 고등학교의 교사와 학생 들의 동맹 휴업을 포함한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애초 방침을 철회해야 했다.

학교를 이윤을 만드는 기업처럼 운영하는 수많은 사립재단들에 대한 학생들의 투쟁,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투쟁이 급속하게 확대될 수도 있다.

그리고 1968년 때처럼 거대한 격변의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투쟁은 국립대 개방화 방안 같은 급진 개혁안을 당장의 일정으로 떠오르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이 세우고(경성제국대학) 미군정이 국립대학으로 개교시킨 서울대의 역사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