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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협 행사냐 특별 노동자 대회냐

민화협 행사냐 특별 노동자 대회냐

  김하영

 통일연대 내에서는 그 동안 정부·민화협과 공동 사업을 하는 문제로 논란이 벌어져 왔다. 범민련 남측본부와 전국연합과 한총련 지도부는 통일연대가 정부·민화협과 함께 범국민기구(추진본부)를 설립해 '민족통일촉진운동'을 벌여야 한다며 이를 추진하고 있다.

 지금 이 문제는 8월 15일 행사를 어떻게 치를 것이냐를 둘러싸고 다시 불거지고 있다. 범민련은 올해 범민족대회를 고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여 년 동안 범민족대회는 정부와 숱한 갈등을 일으키며 민간통일운동의 대명사로 자리잡아 왔는데 말이다.

 대신에 범민련은 8월 15일에 민족공동행사 남측 추진본부(통일연대, 남측 민화협, 7개 종단)가 함께 진행하는 "8·15 광복절 축하 행사"(민족공동행사)에 참여할 것이다. 8월 14일에 통일연대의 독자 행사가 예정돼 있기는 하나 그것은 "전야제" 성격으로 축소됐다. 범민련과 전국연합과 한총련 지도부는 민화협과 함께하는 8월 15일 민족공동행사를 '본행사'로 여긴다.

다시 김대중 퇴진 문제

 반면에,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이 소속돼 있는 자통협은 정부·민화협과 공동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올바른 주장을 펴 왔다. 고영대 자통협 집행위원장은 민화협과의 연대가 낳을 위험성을 이렇게 경고했다. "국가보안법 개정 논의에서 보듯 정부 스스로 6·15 선언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정부를 견인한다는 명분과는 달리 거꾸로 통일운동 진영이 발목을 잡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통협은 8월 14∼15일 행사에 대해서도 "통일연대가 민화협과 독자적으로 행사를 치를 경우 자통협은 통일연대와 함께 행사를 치르며, 통일연대가 민화협과 함께 행사를 치를 경우 자통협은 독자적으로 행사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자통협이 "반미·반김대중 기치에 동의하는 모든 사회·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8·14 노동자 민중 자주통일 결의 한마당"을 개최하기로 한 것에 지지를 보낸다.

 그런데 민화협과 함께하는 민족공동행사가 열리는 8월 15일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김대중 퇴진을 원하는 단체와 개인들은 민화협과 함께하는 행사에 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소속된 단체가 불참을 표명했는데도 개인적으로 민화협 행사에 참여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그 다음에는? 범민련, 전국연합, 한총련이 민화협과의 공동 행사에 갈 때 반김대중 기치에 동의하는 단체와 개인들은 (8월 14일 집회를 마친 뒤) 그냥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것은 매우 소극적인 방법이다. 불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민화협과의 공동 행사에 참가하지 않는지를 드러낼 수 있는 대안적 행동을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김대중 정부에 항의하는 대규모 대중 집회(특별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존속시키는 정부, 민간통일운동가들을 연행·구속하는 정부, MD를 지지하고 군비 증강에 골몰하는 정부,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정부는 투쟁의 대상이지 연대의 대상이 아니다.

 민주노총 소속 작업장 파업에 경찰을 투입하고 민주노총 지도자들에 대한 검거령을 내린 김대중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도심 집회가 8월 15일 민족공동행사가 열리는 시간에 동시에 개최되기를 바란다. 지난해에도 민화협 행사가 광화문에서 열리는 동안 대학로에서는 롯데·사회보험 노조에 대한 경찰 투입을 규탄하는 노동자 대회가 열린 바 있다.

 이런 대안적 행동을 해야만 민화협 행사 불참의 뜻이 명백히 드러날 뿐 아니라, 범민련·전국연합·한총련 지지자들 가운데 과연 민화협 행사에 참가하는 게 옳은지 회의하고 있는 일부를 견인할 수 있다. 단체와 개인들이 마음 편하게 별 생각 없이 민화협 행사에 가도록 놔 두는 것보다 선택의 어려움과 혼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게 길게 보면 운동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대안적 행동이 분열을 조장한다며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열은 범민련·전국연합·한총련 지도부가 정부와 연대하려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며, 정부와의 연대를 분명히 반대한다면 불가피한 것이다.

김대중을 공격하는 것은 "좌편향"?

 '6·15 남북공동선언의 일주체라 해서 김대중에 대한 투쟁을 회피해서야 되겠느냐?'는 비판에 범민련·전국연합 지도부는 펄쩍 뛴다. "김대중 정부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는 이유로 투쟁에 소극적인 것은 명백한 우편향"이라는 것이다.1)

  어떤 단체가 대정부 투쟁에 소극적이라면 그것은 경험 없는 활동가들이 전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문제라고 보는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범민련 민경우 사무처장은 "정부 당국과 무원칙하게 단결하려는 경향과 태도"가 "특히 학생운동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경향은 시정돼야 한다"고 말한다.2)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김대중 정부와 선을 긋고 적극 투쟁해야 한다고 말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김대중 정부를 미국, 반통일수구세력과 아무 차별성이 없는 반통일세력으로 규정하여 한편에 두고 싸잡아 공격하는 것은 명백한 좌편향"3) 이라는 것이다. 정부 당국과 무원칙하게 단결하려는 학생 운동 일각을 꾸짖는 범민련도 지난 3월 중앙위원회에서 "6·15 선언을 지지하는 세력이라면 정부, 정당, 사회단체를 구별하지 않고 통크게 연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반김대중 투쟁에 소극적인 것은 우편향이요 적극적인 것은 좌편향이라면 좌편향과 우편향 사이에 어떤 실천이 있을 수 있는가? 무원칙한 단결은 하지 말되 통큰 연대를 하라면 그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김대중 정부와 싸우라는 얘긴가 말라는 얘긴가? 정대연 전국연합 정책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변혁운동의 견지에서 투쟁의 대상, 타도의 대상이 되는 세력도 통일운동의 견지에서는 연대연합의 대상이 될 수 있다."4)

  그렇다면 우리는 변혁운동의 견지에 서야 하는가, 통일운동의 견지에 서야 하는가? 이 물음에 '이분법적으로 사고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오겠지만, 그렇다면 연대의 대상을 타도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들 주장의 모순에 질문을 던지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런 기계적이고 기괴한 논리는 김대중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팽배한 요즘, 인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 바로 그 정부와 통큰 연대를 해야 하는 군색한 처지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미로에 빠지지 않는 길은 그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는 것이다. 우편향에 대한 경계는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사전 봉쇄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실제로 그들은 "우편향"을 실천하고 있다.

 범민련·전국연합·한총련의 구체적인 실천과 사업 계획을 살펴보면, 투쟁 대상을 미국과 반통일수구세력에 한정하며 대정부 투쟁에는 소극적이다. 미국, 이회창과 한나라당, 김영삼, 조선일보 ― 이것이 그들의 주적이다. 이들은 미국·반통일수구세력과 김대중 사이의 공통점보다 차이점을 배타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과 김대중과의 차이에 비하면 미국·반통일수구세력과 김대중과의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김대중과 한나라당·조선일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싸우지만 노동자 투쟁을 탄압해야 할 때는 '형제'가 된다.

 반통일수구세력과 김대중의 차이점을 강조하다 보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김대중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 두 가지 사례만 들어 보자. 이천재 전국연합 의장은 《말》 지와의 인터뷰에서 "[김대중이] 한미회담에서 나름대로 부시 대통령을 일깨우고자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가."5) 하고 반문했다.

 사실인즉,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중은 부시에게 마구 밀렸다. 평화선언 계획도 후퇴했고, ABM 조약 지지에 관한 한-러 성명 발표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미국의 한 관리는 부시가 "김대중의 뺨을 후려친 격"이라고 당시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총평했다. 김대중 정부의 공식 발표 빼고는 누구도 '부시를 일깨우고자 한 김대중의 노력'에 대해 칭찬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지금 북한을 빌미로 한 MD 강행을 지지하고 있으며, MD 구축을 대비한 미국산 첨단 무기 10조 원어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런 김대중에 대해 "민족문제에서 최소한의 신의와 성실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다"고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한총련 대의원들을 잡아들이는 정부에 대한 한총련 지도부의 태도다. 7월 초순경 김대중 정부의 검찰과 경찰은 9기 한총련 대의원들에 대해 출두요구서를 발부했고, 7월 20일을 전후해 수배 조처하겠다고 협박했다. 우리는 정부 탄압으로부터 한총련을 방어하며, 한총련 9기를 "이적단체"로 규정한 김대중 정부의 위선을 규탄한다.

 그런데 9기 한총련 중앙집행위원회는 한총련에 대한 탄압을 "궁지에 몰린 반통일보수우익세력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규정했다. 한총련 중앙집행위원회가 한총련 산하 각급 단위 학생회에 보낸 '공안당국의 9기 한총련 대의원 출두 요구에 관한 지침'에는 김대중 정부를 규탄하는 내용이 단 한줄도 없었다.

위계적 권력 구조

 백보 양보해서 모든 악행을 (김대중이 아니고) 한줌밖에 안 되는 반통일보수우익세력들이 저질렀다고 치자. 심지어는 최근에 잇달아 벌어졌던 효성, 레미콘 등 파업 농성장의 경찰 투입도 다 반통일보수세력의 짓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범민련·전국연합·한총련 지도부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우리가 맞서 싸우려는 세력은 한줌밖에 안 되는 자본가 계급의 단지 일부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본가 계급의 다른 분파인 김대중 정부 등과 동맹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범민련·전국연합·한총련 지도부가 주장하는 "민족대통일전선"이다. 범청학련은 "올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정부, 정당, 사회단체의 연합을 통한 민족대통일전선을 형성해 내야 한다."6)

 하지만 반통일보수우익세력을 제거하는 게 곰보빵에서 곰보 떼내는 것만큼 쉬울까? 반통일보수우익세력은 공중에 붕 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이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맨 꼭대기에 있다면 그 밑에 하위 착취자, 그 밑에 그보다 더 하위 착취자들이 위계적으로 조직돼 있다. 반통일보수우익세력을 제거하려면 이 착취 구조 자체를 뒤흔들지 않으면 안 된다.

 김대중이 반통일보수우익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대중을 기만하는 일이다. 김대중은 반통일보수우익세력과 마찬가지로 이 체제의 유지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김대중은 1997년 12월, 노동자 운동과 피억압 사회 집단들을 이럭저럭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지배계급의 다른 성원들로부터 인정받아 대통령이 된 자다. 비록 지금은 이 능력이 날로 떨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이것(김대중이 체제 유지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민족대통일전선"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반통일보수우익세력을 제거하려면, 반통일보수우익세력에 맞서는 전민족적 투쟁(민족대통일전선)이 아니라 지배계급 전체에 맞서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있어야 한다.

 이천재 전국연합 의장은 "이 정부가 본성적으로 제국주의의 첨병 노릇을 한다거나 아니면 자본유치에만 매달리는 신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은 본질에만 매몰돼 있는 비정치적 태도"7) 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는 미국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김대중에 맞서 싸우는 것을 회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정치적인 태도다. 노동계급에게는 본질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정치적인 태도다.

견인 ― 하는가, 당하는가

 범민련·전국연합·한총련 지도부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먼저 민족의 자주적 통일(자본주의를 극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이루고 그 다음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는 것이다. 《민》 지 편집인 박세길 씨는 "먼 훗날 사회주의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 다음 세대에게 맡겨두는 것이 좋다"8) 고 한다.

 현 단계에서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되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9) 기 때문에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6·15 남북 합의정신에 입각해 전략적 공통 분모"10) 가 있다는 것이다. 계급과 사상을 뛰어 넘어 전략적 공통 분모가 뭉치면(민족대통일전선) "대중적 지평이 넓어지"11) 고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범민련·전국연합·한총련 지도부의 생각이다.

 이 주장은 산술 논리로 따지자면 아주 그럴 듯해 보인다(정부+정당+민화협+7개 종단+통일연대+...=각각의 힘의 총합). 하지만 각 동맹 세력들이 각자 자기 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면 힘은 강화되기보다는 도리어 약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박세길 씨는 자주적 민주정부가 국가기간산업과 독점대기업의 국유화 등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런 일은 한 다발의 선거 강령으로 이룩되지 않는다. 칠레 아옌데 정부의 등장(1970년)이 보여 주듯이 이런 일은 어마어마한 노동계급 투쟁의 결과로 이뤄진다.

 그런데 민화협에 속해 있는 전경련은 이런 일을 원할까? 이천재 전국연합 의장은 "자유총연맹이 변하는 걸 봐라"12) 며 뿌듯해 하지만 과연 자유총연맹은 이런 일을 원할까? 동맹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참아야 한다. 자주적 민주정부를 이룰 수 있는 힘은 노동자 투쟁에 있는데 노동자 투쟁은 민족대통일전선 속에 손발이 묶이게 되는 것이다.

 정대연 전국연합 정책위원장은 이런 식의 주장에 대해 "지극히 협소하고 비주체적인 생각"이라고 말한다. "상대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주체의 주동적인 노력에 의해 이를 바꾸어 가는 것이 통일전선사업의 주체적 관점"13)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견인론이다.

 하지만 민화협과 공동추진본부를 결성한 뒤 첫 행사였던 '금강산 민족통일대토론회'에서 통일연대가 보여 준 태도는 미래의 더 큰 불행을 힐끗 드러내는 듯해 매우 우려스럽다. 좀 길지만 '금강산 민족통일대토론회 자통협 평가(안)'을 인용해 보자.

 

 자통협은 '6·15 공동선언과 민족 자주'라는 제목의 토론문을 준비해 갔지만 토론회장에서 이를 발표하지 못하였다. 자통협은 그 대신 전국연합에서 준비한 "6·15 공동선언과 조국통일의 기치 아래 온 겨레가 하나로 단결하자"라고 하는 제목의 글을 읽게 되었다. 이는 대승적 차원에서 토론회가 원만히 치러지도록 하기 위한 자통협의 고뇌의 결단이었다.

 그러나 자통협의 토론문이 반김대중 기조를 담고 있다고 해서 그 발표가 허용되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문제이다. 자통협 토론문은 민간통일운동이 수행해야 할 반미, 반김대중 투쟁 과제들과 6·15 공동선언을 관철하기 위한 그간의 민간통일운동의 실천 투쟁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

 남측 추진본부가 남측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입장 이외에는 다른 입장의 자유로운 발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6·15 공동선언 이행에 대한 전민족적인 의지를 모아내고자 한 이번 토론회의 의의가 크게 훼손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통일연대 집행일꾼들이 자통협의 토론문이 반김대중 기조라고 해서 발표를 반대한 것은 민간통일운동의 정체성을 스스로 거스른 과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이로써 통일연대는 민화협과 연대하는 것이 민화협을 견인하기 위해서라는 애초의 주장과 달리 민화협과의 연대 목적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 결과를 가져 왔다.

 

 이런 일들의 최대 수혜자는 의문의 여지 없이 김대중이다. 범민련·전국연합 지도부는 정부·민화협과의 동맹을 성사시키기 위해 민간 통일 운동의 분열이라는 대가를 마다하지 않았고,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편의 입을 막는 구실을 자임했다.

 이것이 김대중 정부가 민화협을 통해 통일연대에 손을 내밀었을 때 내심 바라던 결과가 아니었을까? 사실, 아슬아슬한 정권의 위기 상황에서 남한 운동의 최대 세력이 정권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 주고 있다는 것은 김대중에게 얼마나 커다란 행운인가?

 이천재 전국연합 의장은 "6·15에서 8·15 기간 동안에는 모두가 통일운동을 같이" 하고 "8·15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반대"에 모두가 같이 하자고 한다. 하지만 노동자 투쟁의 불씨가 사그라든다면 그것은 꺼진 담배 불 붙이듯 원하는 때 언제든 다시 붙일 수는 없다. 6·15부터 8·15는 매년 노동자 투쟁에도 매우 중요한 시기다.

노동계급의 독자성

 범민련·전국연합·한총련 지도부는 사회가 지도자들 간의 협상을 통해 변할 것처럼 가정한다. 늘 "대중"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북미간·남북간·좌우익간 협상이 이뤄질 때는 대중이 그것에 기대를 걸고 조용히 지켜봐 주길 바란다. 투쟁은 이것이 결렬됐을 때 협상 성사를 위해 (단순한 압력 수단으로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회 변화는 이렇게 이룩되지 않았다. 아주 하찮은 듯한 변화일지라도 그것은 투쟁 없이 쟁취되지 않았다. 1987년 이래 남한에서 민주주의를 확대한 원동력은 노동자 투쟁이었다. 분단을 빌미로 한 억압의 완화도, 분단과 직결돼 있는 반미 투쟁도 모두 노동계급 운동을 통해 일보 전진해 왔다.

 노동자 운동이 반제와 통일 문제 등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지만, 계급의 이해를 민족 속으로 용해시켜서도 안 된다. 노동계급의 이익을 내세우는 게 결코 편협한 것이 아니다. 민족의 대다수인 노동계급의 이익을 강조하는 게 민족 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은 민화협과의 행사에 참여하지 말고 반정부 집회를 개최해 노동계급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 정부와 손잡는 것은 민족의 '대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대다수인 노동계급을 희생시키는 것이요 민족의 극소수인 지배자들과 김대중을 살리는 길이다.

 

 

 1 《민》, 2001년 6월호, 39쪽.

 2 민경우, '미리 가보는 8·15대회'

 3 《민》, 2001년 6월호, 40쪽.

 4 같은 글, 43쪽.

 5 《말》, 2001년 7월호, 85쪽.

6 '범청학련 남측본부 사업계획서(보강안)'고 강조한다.

 7 《말》, 2001년 7월호, 86쪽.

 8 《민》, 2001년 6월호, 19쪽.

 9 같은 글, 18쪽.

 10 《말》, 2001년 7월호, 86쪽.

 11 《민》, 2001년 6월호, 42쪽.

 12 《말》, 2001년 7월호, 85쪽.

 13 《민》, 2001년 6월호, 40, 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