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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지금의 노자간 계급 세력 관계

민주노총의 올 상반기 투쟁이 지지부진하자 그 기회를 포착한 김대중이 노동자 운동의 지도자와 좌파 투사 들을 마녀사냥하고 있다.

김대중은 '불법' 집회나 '폭력' 시위를 했다는 빌미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핵심 간부들을 구속하거나 수배했다. 또, 민주노동당 학생 그룹, 전학협, 청년진보당, 서울민주노동자회 등의 좌파 활동가들을 솎아내 지배자들의 재단에 헌상했다.

이러한 마녀사냥은 위기감을 느낀 김대중의 계급적 본능에 따른 행동이다. 김대중이 지금 노동자 운동을 공격하여 기세를 꺾어 놓지 않는다면 하반기에 벌어질 민영화를 둘러싼 판돈 큰 계급 투쟁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김대중은 노동자 투쟁과 집권 여당의 실수 그리고 지배계급 내의 갈등 등으로 숨돌릴 여유조차 없을 정도였다.

대우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난히 수습하는 듯한 와중에 4월 10일 폭행 사태가 벌어졌다. 건강 보험 재정이 고갈되고 개혁 입법들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했다. 김대중의 집권 초기 지지 세력이었던 시민단체들조차 개혁 법안의 실종과 새만금 간척 사업 강행 때문에 김대중에게 등을 돌렸다. 민주노총은 김대중 정부 퇴진을 천명하면서 올 상반기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동수 법무장관 경질 사태가 가리키듯, 김대중은 지배계급에게도 확신을 주지 못했다. (김대중의 정치 위기에 대해서는 〈다함께〉 2호의 '심화되는 정치 위기'를 보시오.)

호화 골프 내기는 집권 여당의 지지율을 더욱 낮춘 한 사례였을 뿐이다. 김대중 정부의 실정은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로 이어졌다.

지배계급은 경제 상황이 호전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고, 경제가 위기에 빠져들 경우 벌어질 계급 투쟁으로 김대중이 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날 수도 있다는 점에 전율했다. 이런 점 때문에 경제 상황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율

지금 무역수지 흑자가 내리 4개월째 지속되고 있는데도 지배계급은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역수지 흑자가 수출 증대보다는 수입 감소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수입 감소는 국내 소비와 투자의 위축 때문인데, 이것은 경기 후퇴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징표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은 반도체와 전자 산업의 불황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한국 제1의 기업인 삼성전자의 2분기 반도체 부문 수익성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한국이 깊게 연관맺고 있는 일본과 미국 경제가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 불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추세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5.2퍼센트에서 3.8퍼센트로 하향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윤율의 위기가 근본에 도사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7백97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1분기 기업경영 분석' 자료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대출금에 대한 이자)도 못 갚는 기업들이 전체 제조업체들의 38.2퍼센트에 이르렀다. 또, 올해 1분기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은 3.3퍼센트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4퍼센트 하락했다. 더욱이 이 기간 중 제조업체들의 부채비율도 다시 상승했다. 수익성의 하락은 외국 자본의 한국 주식 팔기와 주식시장 폭락, 원화 인상으로 이어졌다.

지배계급 내에서 다시 IMF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노동자 투쟁이 벌어질 조짐이 있자 지배계급은 안간힘을 다해 막으려 했다. 올해 상반기 민주노총 투쟁에 대해 김대중과 사장들이 그토록 위기감을 느끼며 광분하여 탄압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현대차처럼 일부 기업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기업의 수익성 하락으로 사장들은 양보의 여지가 작년보다 올해 더 줄어들었다. 작년 상반기에는 경제가 부분적으로 회복되고 있었기 때문에 사장들에게는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부분적으로 양보할 여지가 있었다. 작년 상반기처럼 경제가 제한적이나마 회복하는 상황에서 사장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협상하는 노조 지도부가 기동할 여지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 사장들은 경제 위기가 심화될 거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전망 때문에 전경련은 지난 5월 30일 신속한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강조했고,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고 못박았다. 모성보호법은 처음 법안이 만들어졌을 때의 내용에서 후퇴해 겉껍데기만 통과됐다. 올 상반기 임단협 진행 과정이 작년에 비해 늦어지고 임금 인상률 또한 작년부터 계속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1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실질임금 상승률은 7.9퍼센트, 6.9퍼센트, 7.5퍼센트, 2.6퍼센트, 6.7퍼센트다.

올해 전국적 초점을 이룬 주요한 투쟁들은 불황기에 나타나는 투쟁 패턴을 보여 준다. 또, 캐리어 하청 노동자, 한통 비정규직, 레미콘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계급투쟁이 필요하다는 점도 올해 상반기 투쟁들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경제 위기와 이로 인해 형성된 객관적 조건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설사 불황기라 할지라도 노동자들이 강력한 투쟁을 벌인다면 사장들은 양보를 안 할 경우 양보할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여겨 물러설 수 있다.

주관적 요소

민주노총은 올해 초 김대중 정권 퇴진을 천명했다. 이것은 IMF 이래로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가 드높아지고 계급 투쟁이 계속 고양돼 온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아쉽게도, 노조 지도자들은 김대중 정부의 정치 위기와 지배계급의 분열을 적절히 활용하고 노동자들의 분노를 잘 조직하지 못했다. 특히 4월 10일 대우차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 만행이 벌어지고 노동자들의 분노가 전국으로 번진 뒤 약 두 달 동안은 우리편에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올 상반기 투쟁을 준비하면서 총파업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총력 투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불안감을 드러냈다. 더욱이 단병호 위원장을 포함한 노조 지도자 어느 누구도 김대중 퇴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았던 까닭에, 민주노총의 한 간부의 말대로, 김대중 정권 퇴진조차 "단순한 구호"(〈시사저널〉 7월 12일치)로 전락했다. 대우차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조차 연대 파업을 조직하기는커녕 소수 학생들의 물리적 투쟁에 기대어 대우차 투쟁을 회피하지 않았다는 생색내기에 바빴다.

4월 10일 이후 민주노총이 김대중 정권 퇴진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 즉 대중파업을 조직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올해 상반기 투쟁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올바른 목표와 부적절한 수단 사이의 간극 때문에, 올 메이데이에 3만 명이나 모였을 정도로 불만에 찬 노동자들은 답답함을 느꼈다.

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가 드높고 투쟁 의지가 있을 때 연대 파업에 돌입하지 못하고 그 시기를 처음에는 6월 초순으로, 그 다음에는 7월 초로 미룬 데에는 민주노총 지도부와 민주노총 산하 대형 작업장 노조 지도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이 지도자들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적한 대로, 노동자들의 투쟁은 필요할 때 꺼내 사용하는 주머니칼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상급 단체와 대형 작업장 노조 지도자들은 한편에서는 투쟁하지 않고도 양보를 얻고자 했다. 5월 30일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만섭 국회의장을 만나 민생·개혁 법안을 신속히 처리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6월 1일에는 민주노총과 여야 원내총무가 만나 민생·개혁 법안을 처리할 일정에 관해 논의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불황기에 투쟁을 회피하고 싶어했다. 이러한 점은 노조 지도자가 그들의 의지나 생각과는 무관하게 노동력 판매의 중개인으로서 가지게 되는 자연스런 생각이다.

더욱이 김대중 정부가 연대 파업을 강경하게 탄압할 것임을 밝히자 노조 지도자들은 투쟁을 적극 조직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지배자들은 민주노총의 1차 연대파업을 앞두고 더욱 불안감을 느꼈다. 사장들의 단체인 전경련은 파업을 벌이고 있는 여천 NCC와 울산 효성 공장에 경찰 병력을 투입하라고 연일 김대중에게 촉구했다.

5월 30일 경총은 주요 기업 인사노무 담당 임원 회의에서 "최근 대우자동차 조합원에 대한 폭력 사태 이후 원칙적인 법 집행의 의지가 정부에게 있는지 의문에 들 정도로 노조 파업에 대한 대응이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기업 임원들의 지적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두 노조의 경우처럼 공장 점거를 통해 단호하게 싸우는 것을 사장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방증이었다. 더욱이 당시에 정부가 대우차를 GM에 매각하기 위한 실무 협상을 진행중인 터라 김대중은 파업을 포함한 노동자 투쟁에 단호한 모습을 해외 자본들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6월 5일 김대중은 효성 공장에 경찰 병력을 투입하는 모험수를 뒀다. 그리고 6월 2일의 서울역 집회 뒤 경찰청 앞 월드컵 홍보탑을 불태우고 경총 회관 앞에서 화염병을 던졌다는 구실로 신언직 조직쟁의실장 등 민주노총 간부 4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신현훈 대외협력실장 등 2명에게 출석 요구서를 보냈다.

6월 4일 재계는 '현 시국에 대한 경제계 성명문'을 발표하고 노동자들의 불법 투쟁이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린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5월 말을 계기로 김대중과 사장들이 투쟁하려는 노동자들을 한목소리로 비난하고 반격에 들어갔다.

김대중의 반격은 6월 내내 이어졌다. 6월 5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는 "불법파업에 엄정 대처"한다는 방침이 재확인됐다. 6월 12일에는 김대중이 "이 정권 들어 합법화한 노조가 비합법적인 투쟁을 하면서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민주노총을 비난했다.

그런데 김대중의 반격을 초기에 제압할 수 있는 기회가 민주노총에 존재했다. 6월 5일 효성에 경찰 병력을 투입한 것에 대한 항의 시위가 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되면서 전국적 초점이 됐다. 더욱이 현대차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결합하면서 투쟁이 확산될 기미가 보였다.

안타깝게도, 현대차 노조 지도부는 자신들의 임금인상 협상에 영향을 미칠까 봐 그나마 미온적인 연대 투쟁을 서둘러 종결지었다. 현대차 노조 지도부는 자동차 시장의 경기 회복에 기초해 양보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효성 침탈에 대한 진정한 연대 투쟁을 조직하지 않았다. 현대차는 지난해에 흑자를 봤다며 조합원들에게 1인당 1백만 원씩 지급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지난해 성과에 보답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조합원들과 같이 열심히 일한 대가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대차 등 대기업 노조의 부문주의 때문에 효성 침탈에 항의하는 투쟁이 김대중의 공격을 제대로 좌절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1차 연대파업의 주된 동력이 되지도 못했다.

민주노총이 호기였던 4∼5월을 보내고 비록 때늦게 1차 연대 파업을 조직했지만 그래도 보건의료·공공·금속 등의 일부 노동자 5만여 명이 파업에 참가했다. 연대 파업에 들어간 파업 참가 노동자 숫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약속한 제날짜에 파업에 들어간 숫자치고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6월 12일 1차 연대파업이 시기집중 파업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임단협이 마무리되면 연대 파업 대열에서 떨어져나갈 위험도 존재했다. 그리고 현대차처럼 자기 사업장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부문주의적 압력도 있었다.

물리적·이데올로기 공격

민주노총이 6월 12일 5만 5천여 명이 연대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히자 김대중 정부는 경찰력을 통해 노동자 투쟁을 공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노동자 투쟁에 대한 정부 탄압은 인천과 창원에서 노조 간부를 잇따라 연행했던 5월 말부터 시작됐다.

1차 연대파업이 진행중일 때 김대중은 경찰력을 동원해 1차 파업 초점 작업장인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농성중이던 중앙대를 에워싸고 타결을 종용했다. 여천 NCC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을 풀었던 주된 이유도 경찰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점이었다.

김대중이 파업 현장에 경찰력을 투입하거나 투입하겠다는 위협은 파업 대열이 줄어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물리적 공격은 이데올로기적 공격과 함께 진행됐다.

김대중은 1차 파업이 벌어지자 노동관계장관회의를 연 뒤에 "가뭄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현시점에 전국적인 연대파업은 자제돼야 한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가뭄이 지배자들의 환경 파괴 때문이라는 비난도 없었고, 지배자들의 말대로 전국민적 재난에 대해 정부는 가뭄 극복이 아니라 파업 파괴를 위해서 엄청난 인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을 폭로하지도 못했다.

전경련은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고액 임금"을 받고 있는데도 총액 대비 56.5퍼센트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경험이 미숙한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고액 임금' 이데올로기를 반박하기보다는 임금인상 요구를 철회해 버렸다. 이것은 투쟁의 심각성과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조선일보〉는 경제적 투쟁에 국한돼야 할 노동자 투쟁이 MD 반대, 국가보안법 철폐 등 노동조합과 무관한 정치적 요구를 내건 "명분 없는 정치파업"이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MD 반대를 내걸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노동과 세계〉 호외)거나 "이것[국가보안법 철폐 요구]이 7월 5일 파업과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은 정부 여당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7월 3일 민주노총 성명서) 하고 물러섰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주장은 6월 2일 서울역 집회에서 "[6월 12일] 총력투쟁은 임금 몇 퍼센트 올리자는 것이 아닌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이라고 주장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말과는 모순됐다. 이것은 파업 참가 노동자들에게 자신감과 결의를 높여 주어야 할 상황에서 수세적 대응을 하는 바람에 조합원들 사이에서 동요와 망설임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노총은 6월 26일 "정부의 강경 탄압과 노동계의 총파업으로 대치하고 있는 국면을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 면담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물론 언젠가는 불가피하게 협상과 타협을 해야 하겠지만 그 때까지는 단호하고 가차없이 싸워야만 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

김대중은 물리적·이데올로기적 공격 외에도 노동운동을 분열 지배하는 전략을 통해 서로 연대하지 못하도록 했다.

6월 연대 파업을 앞둔 5월 19일 김대중은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과 면담함으로써 한국노총의 '위상'을 높여 줬다. 단병호 위원장의 면담 요청을 거부한 다음 날 6월 27일에도 김대중은 한국노총 산별 대표자들을 청와대로 초대했다.

김대중은 노동운동 내에서도 김대중 정권 퇴진 구호를 지지하지 않았던 포퓰리스트들에게는 양보를 하면서 전투적 좌파에게는 탄압이라는 철퇴를 휘둘렀다.

또한 파업에 들어간 작업장 중에서도 전국적 초점이 됐던 효성, 레미콘, 여천 NCC,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서울대 병원 등에 대해서는 거의 양보하지 않거나 경찰력을 투입해 파업을 진압한 반면, 그렇지 않은 작업장에는 6∼7퍼센트의 실질적인 임금 인상 등을 양보했다.

또, 지배자들은 단위노조와 상급 단체 사이를 이간질하는 짓도 했다. 6월 파업을 앞두고 경총은 "최근 파업 사업장은 주로 고액 임금을 받는 등 근로조건이 좋은 사업장들"이라며 "이는 노동계 상급노조가 6월 총파업 계획에 이용하려는 의도에서 파업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교활하게 말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파업을 할 무렵 대한항공 사측은 "보은파업"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나 민주노총 모두 침묵했다. 지배자들이 표현한 '보은파업', 즉 연대파업이 한국 민주노조 운동의 귀중한 전통이라는 적극적인 공격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분열 지배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협상 타결 뒤 파업을 접고, 서울대 병원을 포함한 일부 작업장을 제외하고 파업이 마무리되자 1차 연대파업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6월 12일부터 시작된 1차 연대파업 참가 노동자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자 김대중은 반격의 기세를 몰아 17일 양경규 공공연맹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이성재 위원장 등 4명을 구속했다.

또, 16일 민중대회에서 동대문 경찰서장을 "넘어뜨린" 혐의로 박하순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을 구속시켰다. 6월 18일에는 파업 농성을 하던 안산 동아공업 작업장에 경찰력을 투입했으며, 그 다음 날에는 해머와 망치로 차량 유리창을 깨부수며 여의도에서 농성중이던 레미콘 노동자들을 모두 연행해 갔다.

23일에는 행자부가 전공련 차봉천 위원장 등 지도부 5명을 파면 또는 해임했고, 5월 9일 있었던 공무원 결의대회의 위법성을 들먹이며 공무원 노조 공대위를 검찰에 고발했다. 26일에는 서울민주노동자회 소속 회원 9명을 이적단체 구성 혐의로 연행했다.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운동 지도자들에 대한 공격이 거세어지자 민주노총은 7월 5일 2차 파업을 결의했다.

그러나, 1차 파업이 사그라들자 자신감을 회복한 김대중은 교활하게도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선일보〉를 포함한 보수 언론에 대한 공격에 들어갔다. 보수 언론들에 대한 세무조사와 과징금 징수는 김대중 이후 누가 정치 권력을 장악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지배계급 내 투쟁이었다.

김대중은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을 한 뒤 곧장 〈조선일보〉를 포함한 보수 우파를 공격하여 일부 시민단체를 포함한 대부분의 포퓰리스트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냈다. 김대중은 〈조선일보〉를 포함한 보수 언론들의 여론 조작에 환멸을 느낀 많은 사람들의 언론 개혁 열망을 적절히 이용한 셈이었다.

김대중과 〈조선일보〉를 앞세운 보수 우익 사이의 첨예한 투쟁이 전개되자 노동운동 지도부는 김대중에 반대할 때는 한나라당과 함께하고 〈조선일보〉에 반대할 때는 김대중과 함께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므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김대중의 노동운동 탄압에 저항하는 2차 파업을 강력하게 조직할 수 없었던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7월 5일의 2차 하루 파업에는 대기업 노조들이 동참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등은 배신적이게도 정치 파업에 동참할 수 없다고 밝혀 맥빠진 2차 파업이 됐다. 현대자동차 노조 김봉길 기획실장은 "내달 시작하는 임금·단체협약 협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 부문을 뛰어 넘는 노동자들의 연대와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방어 투쟁에 등을 돌렸다.

고무적이게도 서울에서는 투쟁 집회에 8천여 명이 모였지만 투쟁을 확산하거나 운동을 건설할 진정한 지도는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7월 5일 하루 파업이 끝나자 〈조선일보〉는 현대중공업 사측의 "노조원들은 임금과 근로조건 같은 실익이 걸린 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노조 지도부의 정치투쟁식 파업에는 크게 공감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보도하며 민주노총을 조롱했다. 〈조선일보〉나 노동부 또는 현대중공업 사측의 이런 주장은 노동조합이 부문주의와 경제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려는 흑색선전일 뿐이다. 게다가 민주노총이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일 때조차 〈조선일보〉를 포함한 사장들의 언론과 지배자들은 민주노총의 투쟁을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비난하고 경찰력으로 위협했다는 점에서 이 말은 순전한 위선일 뿐이다.

경제 위기가 더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김대중은 노동자들을 계속 공격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은 올 하반기에 공공부문 민영화를 적극 추진할 의지를 내비쳤다. 이러한 사실은 투쟁이 올해 상반기에서 끝난 게 아니라 하반기에도 민영화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두고 또 계급 투쟁이 벌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올 상반기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은 김대중의 탄압과 노조 지도자들의 소심함과 우유부단, 그리고 노조의 부문주의 때문에 더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김대중의 탄압에도 노동자들이 움추러들지 않고 소심한 지도부를 강제해 싸우게 하려면 투쟁 결의뿐 아니라 부문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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