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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만에 위기에 빠진 부시 행정부

6개월 만에 위기에 빠진 부시 행정부

 김어진

 7월 20일로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째다. 부정 선거로 백악관을 훔친 부시의 지지율은 단 몇 개월 만에 급속하게 추락했다.

 "출범 6개월 만에 레임덕"이라는 머리 기사가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지를 장식하고 있다. 과연 부시가 임기를 제대로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공화당 내에서 부시에 반기를 드는 의원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부시 행정부를 "난파된 배"에 비유하는 지적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부시 행정부는 가장 취약한 미국 행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왜 부시는 6개월 만에 이렇게 추락했을까?

경제 추락 ― 위기의 진원지

 부시는 최근 "경제 기초는 튼튼하다."고 말했지만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경제는 이미 불황에 돌입했다."고 단언했다.

 부시가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것은 바로 감세 법안 통과였다. 부시는 감세 법안 통과가 투자 심리를 자극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부시가 취임 직후 세금을 감면한 액수는 자그마치 1조 3천5백억 달러였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올초부터 여섯 차례나 금리를 인하했다. 금리 인하 역시 투자 심리 자극이 목표였다. 그러나 두 정책은 투자 진작이라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소비도 이미 둔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추세는 더욱 급격해지고 있다. 그 동안 미국 경제를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던 "소비 지출 증가"는 계속 줄어 소비 지출 증가율은 지난 1997년 2분기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소비와 투자라는 경제의 두 축이 흔들리고 있는 근본 이유는 작년 중반 이후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이윤율 때문이다.

 2001년 2분기 기업 수익은 지난 10년 동안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기업의 신용 등급을 매기는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에 따르면, "기업 수익이 2분기 연속 떨어진 것은 지난 1991년 이후 처음"이었다.

 미국 5백대 기업은 2분기에 수익이 18퍼센트나 하락했다. 이 수익 하락 정도는 "지난 번 미국 경제가 90년대 초 침체에 빠졌을 때와 비슷하다."

 한 마디로 〈파이낸셜 타임스〉가 미국 경제 추락 가능성을 놓고 "거시경제적 시한폭탄이 재깍이고 있다."고 말한 바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는 미국 정부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미 경상수지 적자는 지난해 4분기에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에 달했다.

 미국 경제 호황의 주된 원인이었던 착취율 증대가 한계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노동생산성이 6년 만에 하락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달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춘〉 지는 미국 경제를 머리를 자르면 또 하나의 머리가 튀어 나오는 신화 속 괴물인 히드라에 비유했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미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두 축인 소비와 투자 중 어느 하나가 나아질 만하면 다른 하나가 나빠질 것이다."

 지금 부시는 두 마리 토끼 중 어느 하나도 잡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경제가 급격하게 둔화될 때 부시는 다음과 같은 정책들에 더욱 의존하려 할 것이다.

가난과 불평등을 확대시킬 세금과 교육 정책

 부시는 취임 연설에서 "정의와 기회가 숨쉬는 통합된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정의와 기회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몇 달 안에 분명하게 드러났다.

 부시는 감세안이 통과되자마자 "오늘 미국민들, 미국의 가정과 기업들이 승리를 거뒀다."고 의기양양했다. 부시 행정부는 상속세와 증여세를 2011년에는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부시가 고소득 납세자들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펴 부자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는 동안 평범한 미국인들은 더 많은 빈곤을 강요받았다. 〈뉴욕 타임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부시 정책이 중산층이나 빈곤층에 유리하다는 응답은 각각 8퍼센트와 2퍼센트뿐이었다.

 전형적으로 부시는 보험회사들의 횡포에 항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환자의 권리 법안' 통과를 결사적으로 막으려 했다. 이것은 부시의 인기가 추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환자들의 권익 옹호 활동을 펴는 민간 기구에 따르면, 보험회사들이 진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진료를 제한하는 바람에 미국에서는 1.7초당 한 명의 환자가 보험회사의 개입으로 진료를 거부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부시는 상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 것이 거의 분명한 상황이었는데도 끝까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몽니를 부렸다. 법안 통과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빗발치는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안은 통과됐고 부시의 위신은 지배계급 내에서 추락했다.

 부시가 내놓은 교육개혁안도 그의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부시는 공립학교 대신 사립학교나 종교 재단 학교에 보내는 부모에게 상당한 교육비 지원을 약속했다. 비싼 수업료의 사립학교를 감안하면 미국에서 이런 계획은 부자들에게만 질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다.

 부시의 정책은 이런 빈부 격차를 더욱 크게 늘려 놓을 것이다.

 이미 1억 7천만 명의 미국 인구 가운데 4천5백만 명이 의료보험 없이 지낸다. 1992년보다 7백50만 명이 더 늘었다. 여덟 명 가운데 한 명은 빈곤선 아래서 생활한다. 1979년 이래 미국의 가구 가운데 상위 5퍼센트의 소득은 64퍼센트 증가했지만 하위 60퍼센트의 소득은 정체해 왔으며 하위 20퍼센트의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부자들의 세금 감면 혜택을 사회 보장비에 쓰라는 요구가 빗발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환경주의 정책들

 부시의 반환경 정책도 부시 행정부 위기의 중요한 원인이다.

 부시는 화력·원자력 사용 확대, 석유 채굴 장려, 대기오염 규제 완화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알래스카 동물보호 지역에서도 석유 발굴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부시는 휘발유 가격 인상, 캘리포니아 지역의 전력 비상 사태에 대해 아무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지 않으면서, 에너지 산업 관련 기업들에게는 무한정의 이윤 획득 기회를 주고 있다.

 그는 전력 산업 공영화에 일관되게 반대하고 있다. 사기업의 이윤 획득에 조금의 피해도 주지 않으려 안간힘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캘리포니아의 밤은 암흑으로 변해 가고 있다. 부시는 평양의 밤이 암흑이라고 비웃을 자격이 없다.

 한편, 미국인들의 대다수는 부시의 반환경 정책이 에너지 산업 기업가들과의 유착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부시와 딕 체니 부통령이 에너지 산업과 너무 유착돼 있다는 응답이 3분의 2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부시는 돈 많은 이익 집단의 노예이자 인질이란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에너지 정책 팀을 총지휘한 딕 체니 부통령이 에너지 정책팀이 접촉한 업계 인사 명단 제출을 계속 꺼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시 자신이 텍사스 석유 기업주이며 그의 측근들도 석유업계와 핵 관련 업계 등 에너지 관련 산업 요직 출신들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 부시와 공화당의 가장 큰 정치 자금줄은 거대 석유 그룹 엔론의 회장 케네스 레이였다.

 부시의 이런 전력 때문에 부시의 환경 파괴 전력은 텍사스 주지사 시절부터 악명 높다. 희귀 동물에 대해 멸종 위기종 보호법을 적용하려 했을 때 부시는 반대했다. 연어 보호를 위해 텍사스 주 스네이크 강 하류에 댐 건설을 중지해야 한다는 환경 단체 요구들도 묵살했다.

 부시의 '교토 의정서' 거부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닌 셈이다.

 이런 반환경 정책들에 대한 저항과 성토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끊이지 않고 있다. 교토 의정서 폐기에 반대하는 시위는 미국 국내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첫번째 유럽 방문국이었던 스페인에서 부시는 교토 의정서 폐기 반대를 외치는 수천 명의 시위대와 맞닥뜨려야만 했다.

 미국의 통합 노총인 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는 전기료 인상과 발전소 증설이 가져올 환경 파괴에 반대하는 소비자 환경 단체연합에 가세하고 있다.

 샌디에고에서는 안전성 검증 없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반대하는 1천여 명 이상 규모의 시위가 줄을 잇고 있다.

세계 체제의 불안정을 심화시킬 대외 정책

 국내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고 통치 위기에 적신호가 울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명한 군사 전략가였던 클라우제비츠는 이렇게 말했다. "대외 정책은 대내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더욱이 대내 정책과 대외 정책의 연관성은 국내 정치가 위기에 허덕일 때 전쟁이 지배자들의 구원 투수 역할을 했던 미국 현대사에서 분명히 입증된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한 태평양 전쟁과 제2차세계대전은 1929년 이래의 대공황과 경제 위기에 처했던 민주당 정권을 구출했다. 제2차세계대전 종결이 낳은 탈전시 경기·경제 위축·군비 축소 위협은 한반도 전쟁 발발로 구제받았다. 1960년∼1975년 사이의 미국의 베트남 전쟁도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클린턴은 성추문 사건으로 의회의 탄핵 국면에 몰렸던 정치적 위기를 제2차 대이라크 공격으로 '극복'했다."(리영희, 《반세기의 신화》, 삼인)

 부시도 국내 정책의 실패를 대외 정책으로 벌충하려 들 것이다. 부시가 미사일 방어(MD) 체계에 더욱 열을 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미사일 방어 체계는 발표 시작부터 그 실현성 여부 자체에 의문을 제기받아 왔다. "제대로 작동할지도 모르는 체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미친 일"이라는 지적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양당 모두에서 제기된 터였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부시 대통령의 현재 임기 미사일 방위 체제가 배치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까지 말한다.

 지난해 있었던 세 차례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드러났는데도 부시는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과학자들이 "미친 짓"이라고 말한 미사일 방어 체계에 매달리고 있다. 그것은 근본으로는 군비 증강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해 세계 패권을 누리려는 목적 때문이다. 미국 군사비가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비 합계의 약 세 배에 이르는데도 말이다.

 6월 12일부터 시작된 부시의 유럽 방문은 바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럽 지배자들을 설득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유럽 지배자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세계 지배의 패권을 한 손에 쥐려는 미국에 유럽 지배자들이 고분고분 따르지만은 않을 태세였다. 부시가 확인한 것은 나토 소속 국가 19개국 중 13개국의 싸늘한 반응이었다. 교토 협약 폐기도 유럽 지도자들의 불만을 샀다. 더욱이 부시는 회담장 주변에서 수천 명의 반미 시위대와 마주쳐야 했다.

 시간이 지나도 유럽 지배자들을 설득하는 게 녹녹치 않고 러시아·중국 등의 견제 때문에 MD 추진이 순조롭지 않게 될 때 부시가 내놓을 카드는 무엇일까? 부시는 바로 그 때 북한·리비아·이라크·이란 같은 '깡패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 협상뿐 아니라 '주먹'도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하려 할 것이다. 《다함께》 7월호가 지적했듯이 최근의 북미 회담 재개는 "북한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MD가 필요하다고 말할 명분 쌓"기용이다. 북한에 재래식 무기 감축에 동의하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협상안을 내세웠던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어느 나라가 부시 통치 위기의 희생양이 될지는 모른다.

 부시 행정부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체제의 불안정과 야만에 의존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부시의 정책에 반대하는 다양한 저항들이 샘솟고 있다.

 부시는 취임식 당일부터 그의 보수 우익적 정책에 반대하는 2만여 명의 시위대와 맞닥뜨려야 했다. 'I-20'이라는 코드명의 이 시위에는 다양하고도 평범한 사람들이 속해 있었다.

 더욱이 1997년 UPS 파업 전후로 부활하고 있는 미국 노동자 운동은 그 저력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시애틀의 반자본주의 시위에서 이미 미국 노동자들은 강력한 세력임을 입증했다.

 얼마 전 노스웨스트 항공 노동자들은 통쾌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부시는 7월 초 그들한테서 영향받은 아메리칸 항공 노동자들의 파업을 막기 위해 대통령령을 발동해야만 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반자본주의 운동, 부시의 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 의료 보장 제도를 요구하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집회, 미국의 노조 파업, 이 모두가 한국에서 벌어지는 반미 운동의 이익과 결부돼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반제 투쟁이 이윤 지상주의에 반대하는 투쟁과 결합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