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첫 개각:
개혁의 청신호가 아니라 개혁 배신의 적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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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첫 개각을 단행했다. 이번 개각으로 장관 5명(여성가족부, 사회부총리·교육부, 고용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 국방부)이 교체됐다.
최근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는 문재인은 친기업적 우경화를 확실히 추진하려는 듯하다. 시장 지향적 경제 정책을 강조해 온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자리를 지킨 반면에, 진보 교육감 출신인 김상곤과 여성단체 기반이 있는 정현백 장관은 교체됐다. 노동부 최초로 노조 간부 출신이자 여성 장관으로 주목받은 김영주 장관도 경질됐다. 이들(특히 김상곤, 정현백)은 문재인 정부에게 개혁 이미지를 제공해 진보 염원층의 기대를 임기 초에 모으는 구실을 톡톡히 했다.
그런데 이제 문재인은 이들을 토사구팽(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물론 이들은 청와대 코드에만 맞췄고 개혁을 바란 대중의 기대에는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이들이 팽 당한 것을 두고 개혁 후퇴라고 반발하는 분위기가 없는 것도 그래서다.
한편, 문재인은 노동과 기업 성장 문제를 다루는 노동부와 산업부 장관 후보자에 보수적인 정통 관료 출신을 지명했다.
노동부 장관 후보자 이재갑은 이명박·박근혜 우파 정부 하에서 고용노동부 차관과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 언론들은 이재갑을 “고용 전문가”라며 추켜세운다. 그러나 이 “고용 전문가”가 노동부 차관을 하던 시절 노동부는 한국GM 부평공장의 사내하도급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했다. 한국GM 사측은 이 해석을 근거로 창원공장 비정규직 직접고용 명령을 거부했다.
민주당이 우파 야당들과 합의해 정의당 이정미 의원을 국회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에서 배제할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노동 개악을 하려고 저러나’ 하고 우려했다. 민주노총도 이번 인사가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이재갑은 노무현 정부의 사람입국일자리위원회 기획운영차장일 때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 경직성”을 일자리 부족의 원인으로 꼽았다.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개악법을 옹호하고, 성과급 임금 체계 확산 등을 주장했다. 이재갑은 ‘덴마크 모델’을 긍정적으로 보는데, 이유는 ‘고용의 유연안정성’ 때문이었다. 이는 경제부총리 김동연이 최근 내놓은 ‘혁신형 고용안정 모델’과 유사하다.
한편, 〈중앙일보〉는 쌍수를 들어 산업부 장관 교체를 환영했다. “‘탈원전 미신’의 신도이자 영국 원전 수출을 말아먹은 [전 산업부 장관] 백운규를 쫓아낸 건 잘했다. 빈사 상태에 빠진 산업계에 한 줄기 희망을 줬다. ... 인간 이성에 반하는 소리도 더 이상 하지 마시길.”
백운규가 결코 진보적 인물이 아니었는데도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기업주 언론들은 문재인 정부에 더욱 ‘기업 프렌들리’ 질주를 촉구하는 것이다.
신임 산업부 장관 후보자 성윤모도 이재갑 신임 노동부 장관 후보처럼 주로 기업 정책을 다루는 관료답게 정권을 가리지 않고 승진해 왔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을,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에서 관료 생활을 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서 미주협력과, 일본 경제산업성 파견근무를 했다.
국방부 장관 교체도 진보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육군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개혁이나 진보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가. 국방 ‘개혁’이라며 내놓은 기무사 ‘해편’은 이 정부의 ‘개혁’이 평범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개혁과 다름을 보여 준다(관련 기사 : ‘기무사 ‘해편’이 개혁? 보안 경찰다운 위장술에 불과’, 김문성). 기무사는 이름만 바뀔 뿐 민간인 사찰의 명분이었던 군 관련 정보 수집 항목은 그대로이고 조건을 달아 민간인 사찰도 유지하며 대공수사권도 그대로다.
소득 주도 성장이 아니라 국방 주도 성장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는 내년 국방예산을 늘렸다. 대표적 군비 증강 사업인 F-35 도입, 한국형 전투기 사업(KFX) 등이 바로 국방부 장관 후보자 정경두의 주 전공이다. 군비 증강 코드 인사가 아닌가 싶다. 정경두는 지난해 합참의장 후보자로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가서 대북 관계 개선을 위한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강경 발언을 한 바 있다.
연결 고리
교육부와 여성부 장관 후보 지명은 이번 개각의 우경적 본색을 가리려는 카드로 보인다. 지난 1년 동안 여성들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말뿐인 개혁에 반발하며 싸웠다. 이들과 가까워 보이는 인사들을 해당 부서의 장으로 지목한 것을 보면, 오히려 문재인이 여성차별 해소나 학교 비정규직 조건 개선에서 더 소극적이 될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친밀한 듯한 얼굴들을 내세워 돈 들어가지 않는 개혁(말 잔치)을 하겠다는 계산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여성부 장관 후보로 진선미 의원을 발탁한 데는 새로운 여성운동과의 관계를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불법촬영 항의 시위, 낙태죄 폐지 시위 등 최근 폭발한 새로운 여성운동을 단속해 주길 바랄 것이다. 진선미 의원은 운동권 출신은 아니지만 호주제 폐지 운동 참여, 민변 여성인권위원장 등을 지내며, 여성운동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특히 성범죄 게시물 등이 유통되던 웹사이트 소라넷의 서버 폐쇄 약속을 얻어 내면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지지를 얻었는데, 메갈리아 회원들은 그에게 정치후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정현백 전 장관이 문재인 정부를 정면 비판한 불법촬영 항의 시위에 공감을 표현하고 주최측과 만났다가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지만, 막상 이 시위 주도자들로부터는 (주류 여성 운동의 지도자 출신인 탓에) 그다지 신뢰를 얻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새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 유은혜 의원은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반대했었고, 2016년에는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와 “진짜 정규직화” 등을 약속하는 정책협약식도 맺었다. 그해 말 유 의원은 교육공무직법을 대표 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염원을 반영한 것으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핵심 요구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당시 유 의원은 우파의 반발에 굴복해 발의 20일 만에 법안을 철회했다. 청문회를 앞두고도 유은혜 후보자는 ‘교육공무직법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철회했고 비정규직 문제는 해소되고 있어 그 법안을 발의할 필요는 없다’며 “걱정할 것 없다”고 답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반기 투쟁을 예고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청문회 때 답하겠다며 기존 입장에서 물러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임명되기도 전에 노동자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의 대입제도 개편안이 교육 개혁 열망을 저버렸음에도 “대입제도는 이미 발표됐다”며 재론 필요성을 부정했다.
이처럼 장관 후보자들인 진선미, 유은혜 의원은 문재인의 ‘정책 방향’에 충실한 인물들이다. 둘 다 문재인 대선 캠프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개각에 개혁 포장지를 덧씌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가리키는 ‘개혁’이 천대받는 대중이 원하는 개혁과 다르다는 것이 이번 개각으로 다시 한 번 분명해졌다.
문재인 정부가 자유주의자들답게, 자본가들이 마음껏 이윤 추구 활동을 하도록 판을 깔아 주면서도 포퓰리스트들답게 노동운동과 천대받는 대중의 호감을 산 유은혜·진선미 같은 인사들을 내세우는 이유는 자명하다. 개혁의 청신호가 아니라 개혁 배신에 따른 대중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카드인 것이다. 환영할 인사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경계해야 할 인사들이다. 여당 및 정부와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 대거 투쟁할 때 개혁을 이룰 수 있다.
9월 4일 발표된 기사 ‘문재인 정부 첫 개각 — 우선회 속도 높이기 위한 도움닫기’를 최신 상황을 반영해 수정·보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