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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 자본주의의 만성 고질병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에 이어 이용호 게이트가 신문과 TV를 도배하다시피 하더니 또 다시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었다. 이 세 사건 모두에서 김대중의 친·인척과 한화갑, 권노갑 같은 민주당 실세들이 거론됐다. 이용호 게이트는 김대중 정부의 부패 완결판이었다. 이용호가 관리한 리스트는 무려 1,819명이나 됐고 검찰·국정원·금융감독원·국세청·산업은행·경찰 등 거의 모든 정부기관과 여당 실세·김대중 처조카·전 검찰청창 김태정 같은 김대중 주변 인물들이 메두사의 머리카락처럼 얽혀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 조폭 출신 기업가가 로비를 하려다 실패한 사건으로 서둘러 마무리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사는 동안 정권 실세들과 정부 고위 관료들은 이용호와 언론인, 증권사와 거대한 커넥션을 짜고 각종 주가 조작과 언론 조작을 통해 수백 억에 이르는 거액의 시세 차익을 남기고 있었다. 부패 스캔들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올 해 필리핀 대통령 에스트라다는 슬롯머신 업자에게 뇌물을 받다가 대중의 거센 반발로 쫓겨났다. 페루의 후지모리도 부패 스캔들로 쫓겨났다.

1930년대 공황기에 미국의 유명한 갱 두목이었던 알 카포네는 자본주의란 “지배 계급이 저지르는 합법적인 사기”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기업이 관료들에게 갖다 바치는 돈이 총 사업비의 5분의 1가량이 된다. 독일은 1년에 약 3조 달러를 해외 수주 계약의 리베이트로 쓴다고 추정한다.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사업인 무기 기업의 경우, 거래액의 10퍼센트가 뇌물이다. 무기 거래액의 약 40%가 리베이트라는 통계도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부정부패 사건은 끊이질 않는 걸까? 부패는 인간의 본성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패가 썩어 빠진 개인의 도덕성 때문이라고 여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부패가 정실 자본주의 국가들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패는 개발도상국만의 특징이 아니다. 독일 언론은 헬무트 콜 독일 수상의 정치자금 스캔들을 폭로하며 그를 “돈 콜레오네”라고 불렀다.

합법적인 로비야말로 잘 조직된 부패이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로비스트만 4만명에 이르고 지난 미국 대선에서 부시와 딕 체니는 에너지 기업들에게 4천7백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받았다. 부시 행정부의 내무장관 게일 노튼은 로비스트 출신이다.

미국은 IMF 자금지원을 받는 나라들에 대해 부패방지협약에 가입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그러나 이건 순전히 미국의 기업들이 뇌물을 갖다 바치는 외국 기업들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해마다 국가별 부패지수를 발표하는 국제투명성기구는 제네럴 일렉트릭 같은 회사로부터 운영비를 지원 받는다.

국가와 자본의 밀착 정도가 심한 개발도상국들에서 부패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한국처럼 미국이 지원했던 개발도상국 독재 체제들은 유난히 부패 문제가 심각하다. 사실 미국의 원조 자체가 국제적 뇌물이다. 삼성과 현대와 같은 지금의 재벌들은 이승만 치하에서 미국의 원조를 받아 성장했다. 정주영의 현대건설은 미8군기지 건설을 독점하면서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큰 정부”가 부패의 원인이라며 “작은 정부”가 되면 부패가 줄어들 거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말도 거짓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중국의 민영화 과정은 그것 자체가 부패의 향연이었다. “1980년대초 개혁이 시작된 이래 중국 공산당의 강도 귀족들은 부패와 횡령, 뇌물, 리베이트, 부정이득, 밀수, 통화 조작, 청탁, 국가 재산을 훔쳐 개인 재산 축적하기, 국가 화폐와 국영기업의 민영화 등등 문자 그대로 축제의 도가니에 빠져 들었다. 이러한 공직자들의 부패야말로 1989년 천안문 광장 시위의 주요 원인이었다.”신자유주의가 기세를 부리던 1990년대에 부패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 타임스〉에 ‘부패’라는 단어를 언급한 기사의 수가 1982년부터 87년까지 평균 229개에서 1995년에는 1,246개로 폭증했다. 부패는 자본주의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의 산물이다. 자본주의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체제이다.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국가와 좋은 관계를 맺어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경쟁업체를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합법이나 비합법을 넘나들며 자본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을 확장시켜 나간다. 경쟁과 시장이 바로 부패의 근본 원인이다.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정경유착과 부패가 자본주의의 원시적 축적을 돕기도 했지만 자본주의가 경쟁 체제라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부패는 체제에 독이 되기도 한다. 한 자본가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서 이득을 얻으면 다른 자본가는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심각한 경제 위기 시기에는 부패 문제가 체제에 대한 심각한 반감을 불러 일으킨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를 몰아낸 것은 수하르토 일가의 부패에 대한 엄청난 반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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