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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섹스북》, 귄터 아멘트, 박영률출판사:
제대로 된 성교육 지침서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중·고등학교 때 성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거나 받더라도 실제 자신이 궁금한 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답변이 없는 지루한 성교육 시간을 보낸다. 판에 박힌 얘기들―‘여자는 순결해야 한다’, ‘고추 함부로 놀리면 패가망신한다’―이 주종을 이루는 경우도 많다. 그런 성교육은 성은 뭔가 부끄럽고 감추어야 하는 것, 알아서는 안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주입시킨다. 여성들은 성관계나 하다못해 이성친구와의 교제조차도 ‘자칫 잘못하면 하면 인생망치는 것’이라는 위협을 듣고 자라난다. 결혼 후의 성관계만이 고결한 것, 결혼으로 귀결되는 교제만이 문란하지 않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섹스북》에는 카이-우베라는 성년을 앞둔 청년과 정확한 나이는 밝혀져 있지만 삼십대 중반 또는 사십대 초반쯤 되었을 듯한 올리케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얘기하기도 하고, 어떤 주제를 놓고 이 책의 저자인 아멘트 박사와 토론을 벌인다. 토론 주제는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에서 시작해 우리 몸의 기능·피임법·에이즈·사랑·결혼·질투·가정·나이가 드는 일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흥미 진진한 다양한 얘기들은 우리를 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성에 대한 아주 광범위한 금기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금기를 정당화하는 왜곡된 성지식들이 동원된다. ‘자위행위를 하면 머리가 나빠진다.(또는 건강이 나빠진다)’, ‘여성은 피학적인 성관계를 원한다.’, ‘청소년은 … 하기엔 너무 어리다’, ‘남성의 성기크기가 정력을 좌우한다.’… 《섹스북》은 성적 금기와 왜곡된 성지식들을 한하나 깨뜨린다.

1951년 유명한 킨제이 보고서에 의하면 15세부터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이 가장 많고 이 때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자위행위를 한다. 1990년 독일의 한 주간지 슈테른에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18세, 즉 법적으로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남성의 85.1%, 여성의 90.7%가 성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16세 청소년들 중 삼분의 일이 이미 성교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성에 대한 무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초래하는 결과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많은 청소년들은 ‘성’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물음을 갖고 있지만(이러한 물음은 자연스럽고 이해할만한 것이다) 해소 방법은 도색 인터넷 사이트나 도색 잡지밖에 없다. 이런 매체는 대체로 여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성 관계를 가질 때에는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든지,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선 피임을 안전하게 해야 한다든지 등등실제로 성관계를 하는 데 필요한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다.

피임법이 발달하면서 섹스가 단지 출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의 수단으로 변하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피임법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매년 약 5천만 명의 여성이 낙태를 하고 이중 절반이 무허가 낙태 시술을 받는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높은 낙태율에 대해서 ‘여성들이 부주의해서 생기는 문제’라며 여성들을 비난하지만 이것은 많은 여성들이 피임에 대해 그 정도로 무지하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실제로 독일의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10대 소녀들의 60%가 잘못되었거나 불충분한 성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영양과 환경의 변화로 소녀들의 임신 가능 연령이 크게 앞당겨졌다. 성 교육 연령은 더욱 앞당겨져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결혼’을 성관계를 가져도 좋은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다. 《섹스북》의 저자 아멘트 박사는 이 기준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한다. 사실 몇 세부터 성 관계를 가져도 좋은지를 무 자르듯 판가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멘트 박사의 말대로 “충분한 예비지식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두려움 없이 성행위를 하는 것이 몇 살때부터 가능할지 아무도 정답을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서른살이 되어서도 풍부하고 제대로 된 성 지식을 모른 채 살고 있다.

그 밖에도 《섹스북》에는 성의 보수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된 근거인 ‘가정의 울타리보호’에 대한 비판, 성에 대해서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낳는 부정적인 결과들에 대한 내용, 여성문제, 낙태문제, 동성애자 문제 등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의 사실들은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고 하이틴 로맨스에도 포르노에도 나오지 않는 것들이다. 사람들을 진정으로 불행하게 하는 것은 성에 대해서 가감없이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을 금기시하고 은밀한 것으로 여기는 것임을 《섹스북》은 잘 가르쳐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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