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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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는 합법화 직후 조합원 가입이 급속히 늘었다. 합법화 이전에 전교조는 조합원 7천 명과 조합 가입이 어려운 교사 8천 명을 후원 회원으로 조직하고 있었다. 1999년 1월 합법화 이후 현재 7만 명의 조합원이 전교조에 가입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법적으로 인정되었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본 게임은 지금부터다.
무시·시늉·외면
조직 확대와 더불어 조합원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 노동조합 활동 등을 명시하는 것이 바로 단체교섭을 통한 단체협약 체결이다. 신노동법 29조에 따르면 “단체교섭의 당사자는 단체교섭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자로서, 단체교섭을 스스로의 이름으로 수행하고 단체협약의 당사자로서 그 성과인 권리와 의무를 부담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교육부는 전교조의 교섭 요구를 계속 무시하다가 합법화 8개월 뒤인 9월 8일야 교섭하는 시늉을 했다.
교육부가 올해 5월 2일 처음 통보한 교섭 검토안을 보면 점입가경이다. 총 75개 의제 중 수용 불가가 2건, 논의 유보 2건, 나머지 43건은 “시도 교육감에게 권장한다”, “하도록 노력한다”로 처리돼 있다. 전교조의 단체교섭안 중에 1백 퍼센트 수용한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교육부 검토안의 가장 큰 특징은 돈이 들어가는 요구를 대부분 수용 불가로 처리한다는 점이다. 교육자들의 실질적 처우 개선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노동조합 인정의 잣대가 되는 노조 활동은 근무시간 중에는 허용되지 않으며 근무시간 외에 학교 내의 조합 활동은 “학교장에게 서면으로 신청하여 승인”된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과외 합법화 이후 대중적 항의에 직면하자 김대중 정부는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교원의 임금을 중견기업체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지만 교육부 검토안 내용은 김대중의 말과 정반대다.
정당한 요구와 정당한 투쟁
전교조가 집중하고 있는 쟁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교육정책협의회 구성 문제이다. “교육부와 노조가 동수 참여해서 교육 현안과 교육 정책을 협의하는 교육정책협의회를 구성해 월 1회 개최하자”는 전교조의 요구를 교육부는 전면으로 거부하고 있다. “이는 전교조를 단순 이익 집단으로 취급하여 참교육운동을 펼쳐 국민의 지지를 받고 아래로부터의 교육 개혁을 주도해온 전교조의 역사성과 교육운동 단체로서의 위상을 전면 부정하려는 것”이다.
둘째는 조합활동 보장, 임금 인상, 주 5일 수업제 등이다. 교육부는 수업과 학사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교과 연구 및 학급 경영에 관한 토론 등 분회 단위의 교육 활동을 일체 부정하고 있고,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도 없이 무조건 임금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국민들의 압력에 떠밀려 전교조를 합법화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교조를 무시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김대중 정부는 5월 16일 불성실 교섭에 항의하는 전교조 중앙집행위원들이 탄 봉고 3대를 몽둥이로 두들겨 엉망으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교사들을 전원 연행했다. 교사들은 거세게 항의해 모두 풀려났지만 전교조는 성실 교섭과 공개 사과를 요구하며 2차 중집위원 상경 집회와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5월 28일에는 1만여 명의 교사들이 모여 전국교사대회를 열었다.
교육의 미래는 교사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의 개선 없이는 사상누각이다. 50대 초반 교원의 보수는 대기업 사무관리직을 기준으로 할 때 73.8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20년 경력의 대기업 이사급의 연봉은 6천∼7천만 원인데 반해 30년 근무한 교사는 3천 3백만 원에 불과하다(〈동아일보〉 1999년 5월 24일치). 더욱이 교원 임금의 기본급은 아주 적다. 수당이 기본급보다 많을 정도다. 전교조의 주요 수당을 기본급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당하다. 교사들이 박봉으로 시달려서는 안심하고 교육에 전념할 수 없다. 교사들의 표준수업 시간 수는 정해져 있지도 않고 초과 수업에 대해서는 수당도 없다. 무보수 초과수업과 잡무에 시달리느라 교과 연구도 못한다면 어떻게 교사들이 질 좋은 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전교조가 민주노총의 주 5일 근무제 요구에 맞춰 주 5일 수업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것과 연결돼 있다.
해직 교사들의 원상회복 문제도 남아 있다. 해직 기간 동안의 경력 인정도, 임금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전교조는 정기국회에서 ‘해직 교사와 임용 제외 교사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해고자들의 원직복직과 보상은 노동조합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 원직 복직이 쟁취되면 노동자들은 더욱 자신감 있게 조합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선봉 역할을 한 사립학교 투쟁
정부는 1998년 IMF 경제 위기를 이유로 학교별 지원금을 40퍼센트 삭감했다. 학교운영위는 학부모들의 기부금 창구로 변질돼 학부모들의 교육부담만 늘렸다. 사립대학에서도 재단의 재정비리가 많듯이 초·중·고 재단은 운영권을 갖고 이윤을 남기고 땅 투기하는 투기꾼들의 소굴이 됐다. 이는 상문고, 동양공전 등 사립학교 교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에서 잘 드러났다.
많은 학생들이 실업계에서 인문계로 바꾸자 교사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사립학교 교사들은 10박 10일의 교육청 점거농성에 참여한 45명 전원 연행, 불구속 기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요구안을 모두 따냈다. 서울 사립학교의 승리와 전투성은 지방 사립학교 교사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현재 충남 정의여중고 교사들은 91일째 투쟁하고 있고, 철야농성을 31일째 진행하고 있다. 5월 15일부터 학생들도 비리 재단 퇴진 주장에 동조해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 학부형은 도교육청 항의방문 및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투쟁이 전교조 상반기 투쟁의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7만 전국교직원노동자들의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투쟁은 본격화되고 있다. 전교조 노동자들의 투쟁 승리는 GDP 6퍼센트 교육재정 마련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