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공산주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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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공산주의 선언〉?
“17세기 이후의 지성사를 요약한 방대한 작업으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에 버금가는 역작”, “정치경제학·문화학·철학·정치학·역사학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점차 혼란에 빠져들고 있는 21세기에 대한 종합적인 비전. ” 이 문구는 세계화, 세계 체제, 민중의 저항을 다룬 한 신간 서적에 대한 논평들이다.
이 신간 서적은 바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쓴 《제국》(이학사)이다. 미국 듀크대 교수인 하트는 최근에 〈업저버〉에 많은 기고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노바 항의 시위를 다룬 TV 프로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네그리는 정치 철학자이자 행동가로서, 1970년대 이탈리아 테러리스트 좌파와의 연계 혐의로 가택 연금 상태에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제노바 항의 시위에 대한 글을 〈뉴욕 타임스〉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기고한 바도 있다.
이탈리아 제노바 시위에서 줄리아니 청년이 죽던 날 이들은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의 시위 그 자체는 세계적 운동이 됐으며, 항의 운동의 가장 분명한 목표 중 하나는 세계화 과정의 민주화다. 그래서 이 항의 운동을 반세계화 운동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 이것은 대안적인 세계화 운동이며, 부자와 빈자 사이의 불평등,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 사이의 불평등을 제거하고 자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대하는 운동이다. 우리가 제노바에서 터져나온 수많은 목소리에서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현실주의적 행동 노선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 즉 완전히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분명히 네그리와 하트는 더 나은 세계를 바라며,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과 일체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 《제국》에서는 실제로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제국》은 제국과 제국주의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장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 책은 매우 두껍고 또 많은 부분이 철학적이거나 역사적이며, 여러 모호한 사상가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읽기도 힘들다. 그래서 이 책은 자본주의와 세계 체제에 대해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택할 만한 책이 결코 아니다. 《제국》의 핵심 내용은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조에는 두 가지 잘못된 사상이 스며들어 있다.
신세계질서
첫째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또 책 내용에서 중심적으로 등장하는 “제국”이라는 개념에 관한 것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국민 국가가 무력해진, 경제적 세계화라는 새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널리 퍼져 있는 그릇된 견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네그리와 하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제국”이라는 새 시대는 제국주의나 국민 국가들 사이의 갈등을 뛰어넘는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세계는 비인간적인 경제·정치 권력 구조의 지배를 받는데, 이 권력은 중심이 없을 뿐 아니라 특정 국가, 예를 들어 미국과 같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중심이 없는 자본의 보편적 지배” 시대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전지구적 시장 및 전지구적 생산 회로와 더불어 전지구적 질서, 새로운 지배 논리와 지배 구조 ─ 간단히 말해서 새로운 주권 형태 ─ 가 등장해 왔다. 제국은 이러한 전지구적 교환들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정치적 주체, 즉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 권력이다.”(15쪽)이 책의 저자들은 이 세계를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오늘날의 세계가 위기에 빠지는 메카니즘과 그 속에서 제국주의 열강이 보이는 갈등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없다.
더욱이 지은이들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갈등이 현대 자본주의의 주요한 특징이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책에는 세계 경제나 다국적 기업 또는 WTO 같은 조직 또는 국민국가의 작동에 대한 분석도 없다. 《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 같은 국민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매우 심각한 갈등과 경쟁을 완전히 무시한다. 조지 W 부시의 “스타워스 후속판”이 왜 “제국주의를 뛰어넘는” 것인지 설명하지도 않는다.
이 책에 있는 모든 주장들이 매우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누가 지배하고 어떻게 지배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없다.
“대중”
《제국》의 둘째 중심 사상은 대중, 즉 사회의 근저에 있는 “민중”에 관한 것이다. 많고 많은 무정형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대중은 모든 지점에서 제국에 저항한다. 이 대중은 노동자 계급과는 다른 것이다. 네그리는 조직 노동자 계급에 적대적이다. 다른 곳에서 그는 노동조합원들을 “쿨락” ― 빈농에 기생해 살아 가는 부농을 일컫는 러시아 말 ― 이라고 말했다.
《제국》에서 네그리와 하트는 “프롤레타리아의 구성이 변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오늘날 산업 노동자 계급은 “시야에서 거의 사라졌다.” “산업 노동자 계급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특권적인 지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구성에서의 패권적인 지위를 잃어버렸다.”(92쪽)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노동자 계급은 유일하게 성장하는 세력일 뿐 아니라 이 체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세력이다. 오늘날 미국의 자동차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1979년보다 2만 개나 더 많다. 세계화 때문에 방글라데시에서는 주로 여성인 의류 노동자가 1백만 명이나 늘어났는데, 이들은 투쟁하면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사기업화에 반대해 싸우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은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네그리와 하트는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 로스엔젤레스에서 일어난 1992년 반란,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의 사파티스타 봉기, 그리고 프랑스나 한국 노동자들의 파업 같은 일들이 서로 연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건들 가운데 어떤 것도 투쟁 주기를 고무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표현한 욕망과 욕구는 다른 맥락으로 번역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93쪽)이것은 웃기는 말이다. 사파티스타는 자신들과 비슷한 봉기를 유발하지는 않았지만, 국제적으로 많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국제 연대를 고무한 것은 분명했다.
적은 누구인가?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을 “중심 없는 자본의 보편적 지배”로 정의하고는 단 하나의 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본가 계급, 고용주, 국가의 무장 집단이 더는 적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네그리와 하트는 정치 전략의 개념도 포기한다. 그들은 세 가지 일반적 요구를 제시하고 있다.
■ 전 지구적 시민권(전 세계 민중의 자유 이동)
■ 사회적 임금권(그리고 실업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소득 보장)
■ 재전유권(언어, 통신, 생산에 대한 통제)이 책에서는 “급진 공화주의자”가 돼야 한다는 공허한 호소도 있으며, 다른 곳에서는 “혁명적 정치 투사”를 언급하기도 하고 “공산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들이 제시하고 있는 유일한 지침은 “권력의 비참함에 대항해서 존재의 기쁨을 제시하는 것”이다.(520~521쪽) 《제국》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투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프란체스코수도회의 창시자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기업화, 일자리 삭감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일상 투쟁을 건설할 뿐 아니라, 이 투쟁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과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이 투쟁을 G8(주요 8개국)이나 IMF 같은 기구의 회담장 밖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시위와도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하트와 네그리가 더 나은 세계를 바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오늘날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세계를 쟁취하기 위한 행동 지침은 더더욱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