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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시장주의 교육 정책

김대중의 시장주의 교육 정책

강철구

수능시험을 치른 지난 11월 7일, ‘이해찬 1세대’인 고3 수험생들은 정부의 겉만 번지르르한 교육개혁에 냉소와 분노를 퍼부었다. 울음바다가 된 고3 교실의 모습은 정부의 오락가락 교육 정책에 대한 대중적 공분을 자아냈다.

“청소년들을 과외로부터 해방하고, 지식과 인격과 체력을 같이 중요시하는 지·체·덕의 전인교육을 실현시키겠다.” 김대중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약속을 지키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공교육을 황폐화시킨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처지에 놓여 있다. 김대중은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에게 경쟁을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그 동안 밀어붙였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은 그러한 교육 개혁이 “암기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 입시 지옥, 과중한 사교육비”를 마술처럼 해결할 거라 떠들어 댔다. 그러나 이런 고질적인 병폐들은 지난 6년간 계속 악화돼 왔을 뿐이다. “학교 붕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다.

7차 교육과정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의 취지에 따른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7차 교육과정안으로 제시됐다.(7차 교육과정에 대한 자세한 비판은 이 잡지에 실린 “교사들은 왜 7차 교육과정을 반대하는가”를 보시오.) 7차 교육과정은 공교육을 시장에 내맡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전교조는 7차 교육과정 중단을 투쟁의 핵심 요구로 내놓았다.

7차 교육과정에 따르면 고1까지(1∼10학년)는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고2·고3(11∼12학년)은 선택 중심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에는 수준별 교육과정이 적용되는데, 이것은 사실상 ‘수준별 우열반’이다. 수준별 교육과정에 따라 수학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는 중학교 1학년부터 수준별 이동수업을 받게 된다. 수준별 교육과정은 한 마디로 말해 소수 학생들을 ‘빌 게이츠 같은 고급인력’으로 만들기 위해 다수 학생들을 들러리 세우는 것일 뿐이다. 교육인적자원부도 수준별 교육과정의 취지가 “하위 단계의 학습 결손이 상위 단계의 학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하기 위해서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2003∼2004년에 고2·3학년(11∼12학년)생에게 도입하는 선택 중심 교육과정(교과선택제)도 “다양화와 특성화”를 보장해 줄 수 없다. 엄연히 대학이 서열화돼 있고 그에 따른 직업과 임금의 서열이 존재하는 한, 교과선택제는 대학 입시 경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게 분명하다. 학생들은 입시에 유리한 과목으로 몰릴 것이고, 강의실과 교사 부족으로 교육의 질은 더 떨어질 것이다. 학생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창의적인 수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대입 제도가 무시험 제도로 바뀌고 대학간 서열화 자체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또, 7차 교육과정처럼 국·영·수·사회·과학을 세분화시킨 것일 뿐인 교과 내용을 대폭 줄이고, 특기·적성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는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학급당 학생수 감축

지난 7월 20일 김대중 정부는 2003년까지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으로 줄인다는 교육개선안을 발표했다. 그 동안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적 단체들은 학급당 학생수 감축을 수도 없이 요구했다. 그것은 진작부터 이뤄져야 했다. 한국의 학급당 학생수는 OECD 국가 중 제일 많다. 1995년 기준으로 학급당 학생수는 일본 31명, 프랑스 25명에 비해 한국은 37.9명이었다. 작년에 고등학교의 학급당 평균 학생수는 42.7명이었다.

그러나 학급당 학생수 감축은 충분한 준비 없이 7차 교육과정에 맞추기 위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 학생들을 수준별로 나눠 가르치고 상급 학생들에게 효율적인 학습 지도를 하기 위해서는 교실 수의 확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4년까지 1천2백8개의 학교를 신설할 계획이지만 부지가 확보된 학교는 60퍼센트뿐이다. 또, 2003년까지 1만 4천4백94개의 학급을 늘릴 계획인데, 교실은 대부분 날림 공사로 짓고 있다. 특별실, 과학실 등을 없애고 운동장을 파헤쳐서 학급을 늘리고 있다. 건물 옥상에다 교실을 짓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기존 학교에 교실을 늘리는 것은 안전사고, 소음, 분진의 문제를 낳는다. 또, 특별교실이 줄어 다양성 교육, 창의성 교육은 위축되고 가뜩이나 좁은 학교 운동장은 더 작아진다. 돈을 아낀답시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운동장 없는 학교, 도심지 소규모 학교, 기존학교 부지 내 2개 학교 건립 계획도 취소해야 한다. 기초적인 교육 환경이 보장될 수 있는 학교를 신설해야 한다.

졸속적 교원 수급 정책

김대중 정부의 교원 수급 정책도 그야말로 오락가락, 땜질 처방 투성이이다. 백년대계는커녕 한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처방으로 초등학교 교원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은 1999년에 교원의 정년 단축을 오만방자하게 밀어붙였다. 나이 많은 교사 한 명당 젊은 신임 교사 2.8명을 채용하겠다는 뻔뻔한 거짓말도 잊지 않았다. 이해찬은 명예퇴직 분위기를 조성했다. 평생 교육을 위해 헌신한 나이 많은 평교사들은 교육을 망친 퇴물 취급을 받았다. 여론몰이와 공무원 연금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명예퇴직 바람이 교단을 흽쓸었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정년 단축과 명예퇴직으로 무려 3만 12명의 교사들이 학교를 떠났다. 정년 단축을 추진할 때만 해도 교단이 젊어져야 한다고 침을 튀겨 가며 설파했던 정부가 교사가 부족하자 나이든 교사들을 기간제 교사로 다시 불러들이는 웃지 못할 코미디를 벌였다. 또, 당장 경북, 전남, 강원 등지에서 심각한 초등 교원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열악한 근무 조건은 그대로 놔 둔 채 기간제 임용이라는 임시방편에만 의존하고 있다. 1999년까지 5천 명 수준이던 기간제 교사는 지난해에 전년도의 거의 3배로 증가한 1만4천9백45명에 달하고 있다. 2003년까지 학급당 학생 수를 35명으로 감축하면 초등학교 교원이 대규모로 부족하게 될 것이 뻔한데도 정부는 그 동안 어떠한 대책도 세워 놓지 않았다. 7차 교육과정을 1996년부터 준비했으면서도 이에 필요한 교원 수급 방안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 3천9백45명을 교대에서 1년 만에 70학점을 이수하게 해 2003년에 초등학교에 임용하는 교대학점제 방안을 발표했다가 교대생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정부는 한발 물러서 2천5백 명의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교대로 특별 편입시킨 뒤, 2년간 70학점을 이수하게 한 후 2004년에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낸다는 ‘교대편입제’로 후퇴했다. 2천5백명은 교대 3학년생 전체의 50퍼센트가 넘는다. 교대생들은 학급당 학생 수를 35명으로 축소한다면서 교대의 강의실은 학생수가 80명에 육박하는 ‘콩나물 교실’로 만든다며 정부를 비웃었다. 정부는 2003년까지 부족한 초등교원 1만 1천4백51명은 기간제 교사와 교과전담강사로 메울 계획이다. 교대생들은 단호하게 싸워 정부로부터 양보를 얻어 냈지만 몇 가지 아쉬움도 남겼다. 교대생들은 특별편입생들을 거부하기보다는 그들과 연대해 강의실과 교수의 충원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 바람직했다. “초등교육의 전문성 사수”라는 협소하고 다소 배타적인 구호보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해 싸웠다면 연대를 건설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20대 80의 교육

김대중 정부가 교육을 사고 파는 상품으로 만들려는 이유는 교육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하면서도 고급 노동력을 집중 육성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이다.

교육 개혁에 대한 그럴듯한 미사여구 속에는 자본의 냉철한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1974년부터 시행된 고교평준화 정책과 그에 따른 중등 공교육의 확대는 “획일적 교육을 통해 산업 사회가 요구하는 균질의 노동력을 갖춘 인적 자원을 배출하는 것으로 학교의 사회적 기능을 충분히 완수할 수 있었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료집, 2001)

5·31 교육개혁안은 한국 자본주의를 고도기술 산업 중심으로 개편해야 할 필요성에서 제기됐다. 1990년대 초부터 국가 관료와 기업주들은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급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뼛속 깊이 절감하고 있었다. 김대중은 “지식기반 사회에 걸맞는 신지식인의 육성”이라는 말로 이런 열망을 표현했다.

피라미드 구조의 꼭대기에는 부유한 자녀들만 들어갈 수 있는 소수의 자립형 사립학교가, 피라미드를 떠받치고 있는 넓은 바닥층은 대부분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이 다니는 다수의 싸구려 학교가 차지할 것이다. 정부의 투자는 “경쟁력 있는 명문” 학교에 주로 집중될 것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약속과는 달리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와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7차 교육 과정이 시행된 후 초등학교 학생들의 과외비 지출은 전년에 비해 15퍼센트나 늘었다. 강남 지역의 부유한 자녀들은 초등학교 5∼6학년 때 방학을 이용해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가난한 자녀들은 소외감과 좌절감을 키워 갈 뿐이다. 현재 17조 원으로 추정되는 사교육비는 더욱 늘어나 가뜩이나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서민의 가계에 더 큰 부담과 어려움을 자아낸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중·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들은 한 해 평균 9만여 명이다. 한국청소년 선도회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매년 경찰에 가출 신고되는 중·고등학생들은 12만 명이다. 이들의 으뜸가는 가출 이유는 “학교 가기 싫어서”이다.

김대중의 교육 정책은 수많은 학생들을 가출과 자살과 정신병원으로 내몰고 있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한 투쟁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공교육을 황폐화시키고 교사들을 열악한 처지로 내몰았다. 한국교총이 전국 초·중·고 교사 1천2백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들의 잡무 처리를 위한 시간은 1998년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7차 교육과정 실시로 인해 교사들의 노동 강도는 늘어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커졌다. 한편, 점점 악화되는 대학 교수들의 처지는 교수노조의 출범을 낳았다. 교사들의 불만과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그래서 전교조는 지난 1999년 합법화된 이래로 꾸준히 성장해 현재 조합원이 9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 10월 27∼28일의 연가 투쟁에 무려 1만 5천여 명의 교사들이 모여 교육 시장화 저지와 공교육 정상화에 대한 높은 투쟁 열기를 보여 줬다. 교사 노동자들은 “교육재정 확충”, “자립형 사립고 철회”, “사립학교법 개정”도 소리 높여 외쳤다. 전교조가 조직한 성과상여금 반대 투쟁은 8만여 명의 교사들이 참여해 3백50억 원 가량이 전교조로 반납됐다. 한국교총 소속 교사들도 2만여 명이나 여의도 집회에 참가했다. 교총이 한나라당에 의존해 요구사항을 관철하려 하는 것은 비판해야 하지만, 교원정년 연장이나 교원의 정치활동 보장과 같은 요구들은 지지해야 한다. 전교조가 이런 요구를 충분히 지지하는 것은 전교조의 확대와 교사들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와 기성 언론은 전교조의 투쟁을 학습권 침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공교육을 망친 정부가 학습권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다. 전교조의 투쟁이야말로 모든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다. 이수호 전교조 위원장은 11월 13일 한 인터뷰에서 “섣불리 실력행사에 나서지는 않겠다. 전교조는 현행법상 단체행동을 할 수 없다. 설령 단체행동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전교조 스스로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지난 번 조퇴·연가 투쟁 때도 최대한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지 않으려 했고, 앞으로의 투쟁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 대다수는 노동 계급이다. 부유한 학부모들이야 전교조의 투쟁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겠지만, 노동 계급의 학부모들은 교육 시장화 정책의 희생자들로서 전교조가 설득하고 연대해야 하는 대상이다.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는 게 국민 대다수의 정서이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 위기와 연이은 부패 스캔들로 민심을 잃고 심각한 위기에 빠져 비틀거리고 있다. 김대중의 위기와 집권당의 분열은 노동 운동에 기회다. 전교조 지도부가 한나라당의 득세를 우려해 김대중과의 투쟁을 자제한다면 뒤통수를 얻어맞게 될 것이다. 공교육에 시장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김대중의 한결같은 신조다. 전교조는 1999년에 파업에 들어가 정부로부터 양보를 얻어 낸 프랑스 교사들처럼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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