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73호를 읽고
〈노동자 연대〉 구독
□ 1면 - 비정규직 개안악 저지!
비정규직 개악안을 제목으로 뽑은 것이 좋았다. 젊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나도 비정규직인데, 어떻게 되는 거죠?”라고 물어보면서 서명하고 신문을 사갔을 때는 〈다함께〉 신문이 이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 같아 뿌듯했다.
- 전주현
□ 감옥보다 못한 ‘외국인 보호 시설’
‘산유화’의 작가를 물어보는 문제가 국적 취득 자격시험에 나오는 나라, 3천만 원의 재산이 있어야 귀화신청이 가능한 나라. 이 나라에서 ‘불법’으로 낙인찍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각종 형벌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 이용건
□ FIFA - 추악한 협잡꾼들의 사교장
주변에서 월드컵 얘기를 할 때 유용한 내용이라 이런 폭로 기사들이 도움이 된다. 같은 이유로 발렌타인데이를 맞아서 〈오마이뉴스〉가 다룬 ‘코코아 농장의 아동 노동 착취’ 같은 기사는 〈다함께〉에서도 다룰 만한 쟁점이라 생각한다.
- 이상수
□ 민주노총 선거
선거 연기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신문이 2주 간격인 게 너무 아쉽다. 주류 언론은 민주노총의 비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비판하기만 하는데, 정치적 맥락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 한지혜
□ 노수석 열사 타살 항의 투쟁 10주년
노수석 사건은 정치에는 관심 없는 ‘X 세대’라 불렸던 나와 내 친구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던 투쟁이었다.
등록금이 없어 자살했던 같은 학교 원광식 군은 방학 내내 일용직 건설 노동으로 등록금을 마련했으나, 아버지의 교통사고 때문에 돈을 병원비로 써야 했다.
원광식 군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학생회관 창 밖으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다음날 아침 학생회관 앞에서 본 선명한 붉은 핏자국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대학 건물마다 설치된 노수석 열사의 분향소 앞에서, 원광식 군의 죽음 앞에서 많은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고 거리로 나섰다.
- 전주현
대학 간 공동행동이라는 것이 추상적으로만 다가왔는데, 1996년에 큰 규모의 대정부 공동 투쟁이 있었던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기사 내용이 구체적으로 와 닿았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뛰었다.
- 김태은
눈물이 났다. 아, 정말 이런 시기가 있었구나. 사람들의 분노가 뭉쳐 투쟁이 되는 시기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경험에서 좋은 교훈을 얻게 됐다.
- 박조은미
10년 전 직접 참가했던 집회의 기사를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든다. 경험은 없지만 열정은 넘쳤던 내가 10년이 지난 지금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서글픈 삶에 몸과 정신이 얽매여 수동적인 인생을 보내지 않고, 자본주의의 비민주성과 대중 기만에 대해 저항하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
- 성향아
□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
건국대 총학생회장 인터뷰는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에 당면한 많은 학생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좋은 기사였다.
- 신성연이
한총련은 전국 총집중 투쟁을 4월 말로 주장한다고 하는데, 학생들의 관심이 가장 높은 시기인 학기 초에 하는 것이 등록금 투쟁 자체에도 효과가 있고 그 투쟁 후에 새로운 활동가들과 함께 2006 지방선거 투쟁을 같이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 성향아
학생운동 조직좌파들은 ‘점거’를 대중적으로 조직하기보다 대표단 중심의 상징적이고 제한적인 점거 전술을 사용해 대열을 힘 빠지게 하다가 비민주적으로 점거 철회를 결정하고 운동을 후퇴시킨 적이 많았다. 이에 비해 우리가 제시하는 대중적 점거 전술은 어떻게 다른지 등록금 투쟁을 조직할 때 주장할 필요가 있다.
- 전주현
□ 감세 논쟁
제목을 통해 지배자들의 세금 정책이 노동계급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한 독자는 일간지를 볼 때는 노무현과 한나라당 간에 무슨 차이점이 있는지 선명하지 않았는데, 분명히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최영준
□ 팔레스타인 하마스
하마스를 단순한 폭력집단,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주류 언론의 보도와 완전히 다른 분석이었다. 하마스가 왜 광범한 지지를 받고 다수 의석을 획득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 조은영
예루살렘 정착촌에 대한 공격 결의를 공표한 이스라엘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하마스가 말했다고 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기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관계를 너무 한 면(투쟁하는 쪽)만 보여 주는 것 아닐까?
- 준효
□ 무하마드 풍자만화 사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풍자만평을 싣는 신문들이 우파나 나치와 연결돼 있다는 폭로는 매우 훌륭했다! 추상적 도덕으로서 ‘언론의 자유’는 누구나 끌어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왜 부시 정부는 이란을 위협하는가?
이란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중국, 러시아, 이란 동맹의 가능성은 미국 패권이 위기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 같다.
- 선영
□ 뉴레프트
〈시민의 신문〉에서는 새로운 시도라고 하면서 긍정적 평가를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기사는 뉴레프트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나오고 진행됐는지를 이야기해 많은 도움이 됐다.
- 박조은미
□ GM의 위기가 노동자 탓인가
〈조선일보〉가 연일 도요타와 GM을 비교하며 남한의 노동운동을 비난할 때마다 속이 거북했는데, 위기 자체가 자본주의의 속성이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언제나 노동자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에 매우 공감이 갔다.
- 조명훈
□ 한미 FTA와 스크린쿼터
스타급 배우, 일부 감독은 스스로가 제작자이기도 한데, 이들이 주도하는 운동은 자기 밥그릇 지키기 정도가 되고 있다. 스크린 쿼터가 시행되는 동안 오히려 영화산업의 독점 현상이 나타났다. 두 개의 제작·보급사가 독점하고 있다.
- 정건
나는 아주 구체적인 생존권의 문제 때문에 FTA를 반대한다. 그런데, “생존권 대책 중심의 실효성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왜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 FTA를 반대하는 입장이 실천적인 운동과 구호로 드러난 것이 ‘스크린쿼터’ 아닌가?
- 김세란
스크린쿼터가 문화적 다양성을 온전히 보장해 주지는 않지만, 할리우드 영화산업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최소한의 조건은 된다고 생각한다.
- 김석진
박중훈이 영화산업 내 스탭, 비정규직의 불평등에 대해서, “그 문제는 자본주의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스크린쿼터가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 김태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는 민족주의’라는 식으로 서술된 것 같다. 스크린쿼터 축소·폐지 방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또, 스크린쿼터에 대한 계급적인 시각이 서술돼 있기는 하나 분명하지 않다.
영화산업 이윤의 상당 부분을 의무적으로 가난한 영화인들을 위해 사용하고, 영화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와 이 요구들은 분리될 수 없는 요구이며, 이런 계급적 시각을 담보하지 않는 스크린쿼터 사수론에 대해서는 강도높게 비판해야 한다.
백철
※ 편집자 : 73호 독자편지에 있는 PcBs를 PCBs로 정정합니다. Poly-Chlorinated Biphenyls의 약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