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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와 취업의 자유를 보장하라

이주와 취업의 자유를 보장하라

김어진

최근 재외동포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논란이 되고 있다. 기존의 재외동포법은 자유로운 출입국을 보장해 주는 대상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외국으로 나간 동포’로 제한했다. 그 바람에 전체 재외동포 5백60만 명 가운데 2백50만 명을 차지하는 중국과 구 소련 거주자들의 출입국이 막혀 왔다. 중국 거주 한인들은 “재외동포법이 아니라 재외동포차별법”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장을 지냈던 중국동포교회 김해성 목사는 적절하게도 “자유왕래를 허용하면 거금을 들이거나 목숨을 건 밀입국과 위장 입국이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중국과 러시아 한인들은 재외동포법 적용 대상에서 자신들이 빠진 것에 항의해 왔다. 헌재 판결이 발표되자 법 개정 여부를 놓고 찬반이 갈렸다. 하지만 찬반 주장 모두 출입국은 허용해도 취업까지 무차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 동의한다. 먼저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예로 들자. 그들은 “2년 전 재외동포법을 만들면서 조선족과 고려인을 재외동포에서 제외시켜 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며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그들이 언제부터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에 그토록 관심을 보였던가.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고용허가제에 대해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자들 아닌가. 그러나 곧 〈조선일보〉는 보수 우익 신문답게 “노동시장 교란 위험에 대한 대책은 강구돼야 한다”며 본색을 드러냈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대책도 “취업 자유 엄격 제한”이다. 일자리를 위해 출입국하려는 사람들의 취업을 제한한다면 ‘출입국 규제를 푸는 것’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한편 법무부는 중국과 러시아 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정부 들은 조선족에 이중 국적을 허용하게 되면 소수 민족 단속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이유로 재외동포법 개정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중국의 조선족 인구는 중국의 57개 소수 민족 가운데 14번째로 많다. 중국 정부는 이런 조선족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한국 국적을 얻게 되면 다른 소수 민족들이 중국의 소수 민족에 대한 통제 정책에 반발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금 중국 정부는 동북 3성 조선족에 대한 통제를 어떤 식으로든 더욱 강화할 궁리를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헌재 판결에 난감해 하는 것은 단지 중국 정부 때문만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는 조선족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면 어떻게 그들을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투다. 여러 안들이 난무하지만 법무부는 설사 법이 개정돼도 취업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부는 “손쉬운 잠입 통로가 열려 심각한 안보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며 재외동포법 개정 때문에 탈북 난민들이 몰려 올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 모두 값싼 노동력이 대거 들어오면 실업이 더 늘어날 거라 입을 모은다. 중국의 한인 노동자들 추방에 반대해온 서경석 목사조차 취업 규제는 불가피하다는 태도다.

한마디로 중국과 러시아의 한인들이 한국에 몰려 들어오면 한국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고마운 존재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 역사는 ‘노동시장 교란’ 즉 노동력 이동의 역사였다. 한 나라의 경제는 순수한 자국 노동력만으로 결코 운영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세계를 무대로 상품을 만들고 판다. 기업주들은 한 나라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기업과 은행 그리고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한테 의존한다. 기업주들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동력은 전세계 어디로든 동원된다. 국제노동사무국(BIT)의 1990년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50명 당 한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이주 노동자로 살아간다. 프랑스 인구의 7퍼센트, 벨기에의 9.8퍼센트, 스위스의 18퍼센트, 발칸 3국 인구의 5퍼센트가 이주민이다. 수많은 한국인들도 이주 노동자가 됐다. 해방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2백여 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해외에서 일자리를 구했다.(《외국인 노동자, 환영받지 못한 자》, 분도 출판사.) 자본주의 경제는 수많은 노동력이 이동하면서 계속 팽창해 왔다. 19세기 중엽 노예노동이 없었다면 유럽 자본주의는 그 토대를 놓을 수 없었다.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에 고용된 이주 노동자가 없었다면 ‘신경제’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 가운데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한인 노동자들 또한 한국 중소기업의 부족한 인력난을 덜어 주었다. “1997년 현재 이주 노동자의 고용으로 추정되는 잉여의 연간 규모는 자그마치 1조 2천억 원에 달한다.”(《이주 노동자, 환영받지 못한 자》, 분도 출판사, 103쪽.) 이들은 한국의 일자리를 뺏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고마운 존재들이다.

지배자들의 위선

그런데도 정부와 기업주들이 중국과 러시아의 한인 출입국과 취업을 규제하려는 이유는 뭘까? 첫째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일손이 딸릴 때 노동력을, 그것도 값싼 가격에 대거 들여올 수 있고 반대로 노동력 규모를 줄여야 할 때 맘대로 노동자들을 쫓아낼 수 있다면? 기업주들이 이주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모든 국가는 국경선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는 것을 막는다. 노동력 이동은 ‘출입국 관리법’이나 ‘이민규제법’ 같은 국가의 통제를 받는다.

우리 나라를 예로 들자. 한국에서 ‘외국 노동력 수입’ 정책은 1989년∼1990년에 가장 활발했다. 당시 노태우는 ‘북방정책’을 밀어 붙였다. 중국 거주 한인 노동자들의 수입도 급격히 늘어났다. 1991년 서울 버스운송사업조합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그리고 대한상공회의소 등 사장들의 단체는 “임금 상승, 국내 노동자의 3D 업종 기피로 기업 활동에 대한 막대한 지장이 생겨 외국인 노동자 수입을 허용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하루에 수십 개가 넘게 부도나는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사장들은 ‘산업 재해’, ‘저임금’, ‘임금 체불‘, ‘장시간 노동’을 손쉽게 강요할 수 있는 이주 노동자를 원했다.

1993년 김영삼 집권 후 이주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욱 나빠졌다. 1993년 2월 정부는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외국인 보호소‘를 서울 휘경동에 설립해 불법 체류 이주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들였다. 1994년에는 ‘출입국 관리법’을 개악해 이주 노동자들에게 부과하던 벌금을 상향 조정했다.

김대중 집권 후 더욱 늘어난 이주 노동자, 특히 중국과 러시아에서 온 한인 노동자들에 대한 출입국 규제는 더욱 악랄해졌다. 그러는 가운데 이미 1994년부터 있었던 산업연수생들 가운데 30∼40퍼센트가 불법체류자가 됐다. 한국 정부는 재중 동포가 한국에 올 수 있는 기회를 점점 줄여 나갔다. 현재 조선족이 한국에 올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은 국내 기업의 산업기술연수, 친척 초청 방문, 유학, 국제결혼밖에 없다. 1999년 재외동포법이 개정된 배경도 중국과 러시아 한인 노동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통에 법무부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 갇혀 있다가 중국으로 추방된 조선족 노동자들은 부지기수다. 출입국 규제를 피해 입국하려다 사기를 당하거나 낮은 임금과 산업 재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조선족 노동자들이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는가. “한국은 지옥입니다”, “한국이 슬프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거나 분신한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중국동포의 집’의 한 노동자에 따르면 “잘린 팔과 손이 몇 십 가마니가 될 정도다.”호황일 때는 이주 노동자들을 들이다가 불황일 때에는 여지없이 내쫓는 게 바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주들의 태도다. 재외동포법 개정으로 조선족 노동자들이 유입돼 한국 노동자들이 불리해질 거라는 말은 완전한 위선이다.

국제 연대의 출발점

둘째, 이주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들면 지배자들은 항상 사회적 약자들을 먼저 건드린다. 지배자들에게 이주 노동자들은 더없이 좋은 공격 대상이다. 지배자들은 이주 노동자들을 희생양 삼아 내국인 노동자들의 불만을 이주 노동자들에게 돌리려 한다. “이주 노동자들의 대량 유입이 경제 침체와 실업을 가져 온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퍼뜨리는 것이다.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그들은 ‘출입국 관리법’이나 ‘이민법’ 같이 이주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법을 도입하기도 하고 개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듯 노동자들도 자유롭게 국경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웬만한 정치가들이나 재벌, 언론사주들 모두 북한을 자기 집 드나들 듯 자유롭게 오가는데 왜 노동자들의 발목만 묶여야 하는가? 많은 중국과 러시아의 한인들이 그 곳에 가 정착촌을 꾸리게 됐던 때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이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본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만주나 러시아로 보냈기 때문이다. 1931년 조선총독부는 만주 침략과 조선의 파산 농민을 ‘처리’하기 위해 조선 농민을 만주로 이주시켰다.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된 그들이 고향에 돌아오는 걸 왜 막아야 하는가? 세계화 운운하면서 이주 노동자를 내쫓는 것은 위선이고 모순이다. 우리는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 국적과 피부색과 언어의 차이를 뛰어 넘는 저항의 세계화를 추구한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먼저 나서서 중국과 러시아 한인 노동자들의 취업 허가를 주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지배자들의 위선에 맞선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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