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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본주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중국 자본주의는 어디로 갈 것인가?

강철구

지난 11월 10일 중국이 WTO에 가입하자 언론과 경제 비평가들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 경제가 “세계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노선을 추구하기 시작한 1978년 이래 중국 경제는 괄목한 만한 성장을 했다. 중국 경제는 과거 20년 간 연평균 9.8퍼센트의 고도 성장을 했다. 2000년 기준으로 중국의 국내 총생산은 1조 달러가 넘어 세계 7위, 무역 규모는 세계 8위, 외환보유고는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중국의 대도시와 동부 해안의 경제 특구는 생산물의 판로를 끝없이 넓히려는 국제 자본들을 거대한 자석처럼 끌어들이고 있다. 세계 5백대 기업 중 3백 개가 넘는 기업들이 떠오르는 신흥 시장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작년에 아시아 개도국에 몰려든 총투자의 74퍼센트가 중국과 홍콩으로 집중됐다. 중국의 “용틀임”에 대한 찬사가 유행처럼 번지는 가운데 성급한 논평가들은 중국 자본주의를 세계가 본받아야 할 “시장의 승리”라며 추켜세우고 있다.

불균등한 발전

중국 자본주의 발전이 중국 대중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거대한 빈곤층이 존재하는 나라다. 1999년에 중국 정부는 적어도 3억 명 가량의 중국인들이 공식적으로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고 인정했다. 세계은행이 최근에 발간한 ‘세계발전보고서 2002년’에 따르면 중국에서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53.7퍼센트에 이른다. “현대화”는 매우 불균등하게 진행됐다.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대도시나 동부 해안 지역의 경제 특구에는 최첨단 기술과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광활한 내륙 지역에는 산업화의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인구의 70퍼센트인 8억 명 가량이 후진적인 농촌 지역에 살고 있다. 발전된 도시 지역에서 불평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베이징 호텔의 ‘황제 스위트 룸’의 하루 숙박비는 1천만 원이 넘는다. 중국 봉급 생활자 평균 수입의 32년치를 합한 것보다 비싼 혼다 자동차 에코드가 올해에만 5만 대 이상 팔렸다. 한편 경제 특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숨막히게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저임금을 강요받고 있고, 대도시에는 거대한 빈민촌이 곳곳에 늘어서 있다. 중국이 WTO에 가입했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 경제에 깊숙히 통합됐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시장의 변덕에 자신의 미래를 더욱 내맡긴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 경제는 1997년에 “아시아의 호랑이들”을 꼬꾸라뜨린 경제 위기의 여파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15억 장의 남자 셔츠, 3억 켤레의 가죽 신발, 2천만 대의 자전거 등 재고량이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제조업 공장 가동률이 50퍼센트대로 하락했고, 2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중국의 야심찬 수출 경제는 세계 시장에 의존한다. 중국의 대외무역 의존도는 44퍼센트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중국의 수출 증가율은 6.1퍼센트에 그쳤는데, 이것은 작년 같은 기간의 27.8퍼센트를 크게 밑도는 것이다. 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 부부장 쑨전위는 “내년 수출 증가율은 올해 수준보다도 낮은 3~4퍼센트에 머물 것”이라며 우려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올 1/4분기 8.1퍼센트에서 3/4분기에는 7퍼센트로 하락했다. 중국 국무원 부총리 우방리는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빠져들더라도 중국 경제는 앞으로 당분간 지속적으로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할 것이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중국에는 거대한 소비 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3억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2억 5천만 중산층”이라는 신화는 무척 과장된 것이다. 더군다나 소비 수준은 경제 상황에 달려있다. 경기가 급작스럽게 후퇴할 때 소비 심리도 얼어붙는다. 또, 수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정리 해고되고, 최소한의 사회 복지마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구매력을 감소시키는 요인이다.

정치적 긴장

중국 지배자들에게 가장 큰 두통거리 중 하나는 전체 경제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국영 기업 처리 문제다. 국가 관료와 정책 입안자 들은 부실 덩어리인 국영 기업을 하루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의 상호 연관성 때문에 국영 기업의 파산은 다른 부문을 물귀신처럼 끌어내릴 수 있다. 국영 기업의 심각한 부실은 금융 부실로 이어졌다. 허약한 지방 은행들은 파산했고, 국영 기업 대출금의 70퍼센트를 담당하는 중국의 4대 상업 은행들은 막대한 부실 채권을 떠안았다. 금융권의 부실 채권은 국민총생산(GNP)의 20퍼센트인 2천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한편, 국영 기업의 사기업화 시도는 국영 기업한테서 뇌물을 받거나 이리저리 연관 맺고 있는 분파의 반발을 초래해 지배 계급 내부의 치열한 쟁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분열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고무시킬 수 있다. 사기업화는 무엇보다 국영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심각한 저항을 낳는다. 중국의 국영 기업은 전체 노동자들 중 70퍼센트를 고용하고 있다. 중국 지배자들은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지난 3년 동안 2천만 명의 노동자들을 쫓아냈음에도 앞으로 3천만 명이 더 해고돼야 ‘비효율’을 없앨 수 있다고 잔인하게 말한다. 국영 기업 노동자들에게 제공됐던 식량 보조와 주택과 연금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최소한의 복지 서비스를 산산조각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중국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길 실업자 문제는 농촌 지역에서 도시로 몰려들어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 거대한 도시빈민층의 존재와 맞물려 정치적 긴장을 자아낼 수 있다.

불안정한 미래

중국 지배자들은 1989년에 수천만 명이 참여한 천안문 항쟁을 탱크를 동원해 유혈 낭자하게 짓밟았다. 그러나 운동의 씨앗을 제거할 수는 없었다. 공안 기구의 잦은 단속과 폭력은 정권의 취약성을 반영한다. 중국 지배자들은 한편으로는 단순한 협박과 공포 분위기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에 대한 호소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차단하고 싶어한다.

정부의 집요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와 복지 축소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99년에 약 10만 건의 시위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올해 3월 관영 신문인 〈차이나 데일리〉는 최근 3년 간 상하이에서 노동 쟁의가 매년 40퍼센트씩 증가하고 있다고 썼다. 만연한 부패와 갈수록 커져가는 빈부 격차, 경제적·문화적 개방에 따른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생활 수준을 방어하기 위한 중국 노동자들의 싸움을 재촉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저항 분위기에 고무받아 작년 베이징 대학에서는 3천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는데, 이것은 1989년 천안문 항쟁 이후 최대 규모였다. 중국 노동자들은 1989년 항쟁의 경험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여겨졌던 지배자들을 혼란과 공포로 빠뜨릴 힘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독립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제2의 천안문 항쟁이 언제, 어떤 계기로 등장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정치·경제적 위기의 국면에 고무될 반란은 1989년의 그림을 단순하게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항은 초기부터 노동자들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생산 현장에서 발휘하는 집단적 힘은 저항 운동의 힘과 저변을 강화하고, 운동을 이끌 전국적 연결망과 구심점을 건설하는 데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1989년 천안문 항쟁은 도시에 국한된 투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골 곳곳에서 농민들의 반란이 전개되고 있다. 대도시에 고도로 집중돼 있는 노동 계급은, 국가 권력에 도전하여 자신보다 훨씬 큰 규모의 농민 대중을 억압과 착취를 제거할 수 있는 투쟁에 끌어들일 수 있다. 거대한 대륙을 뒤흔들 노동자와 농민 들의 저항은 중국 자본주의의 신화에 대한 가장 확실한 반증이 될 것이다. 중국 자본주의의 미래는 체제의 모순을 극복한 채 쉼없이 발전하는 “새로운 모델”이기는커녕 광란의 투자 열풍이 공황이라는 유령에 자리를 내주고, 주기적인 경제 위기가 정치적 불안정과 노동 계급의 저항을 낳는 익숙한 그림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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