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전ㆍ반자본주의 운동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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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씀드릴 것은, 시애틀 시위 이후 등장한 운동의 성과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영국에는 간혹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행진에 행진을 거듭했지만 결국 얻은 것이 없지 않은가?”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키지 않겠지만 다음 번에 부시와 블레어가 TV에 나오거든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라. 그들은 결코 승리감에 도취한 제국의 용사들 같지 않다. 오히려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들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다지 과학적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의 궤적을 잠깐 살펴봐야 합니다.
2000년 이래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정부를 물러나게 만든 반란이 여섯 차례 일어났습니다. 지난해 볼리비아에서는 주류 정당들이 수도인 라파스에서 회의를 열지 못하는 사태가 있었습니다. 라파스가 민중 권력 하에 넘어갔기 때문이었죠.
라틴아메리카가 이 운동의 최선두에 있기는 하지만, 주요 반자본주의 시위들에 뒤이어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 정책들과 사유화·복지삭감에 반대하는 대규모 운동들이 벌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 가운데 많은 운동은 한국의 한미FTA 반대 투쟁과 마찬가지로 조직 노동자들이 참가했습니다. 몇 차례 중요한 승리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자본가들의 주된 사유화 프로젝트였던 유럽연합 헌법이 좌초됐습니다. 이는 유럽 전역에서 헌법 반대 운동을 펼친 수십만 명이, 특히 프랑스 대중 운동이 일궈낸 성과입니다.
반면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노동계급 투쟁은 산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나타난 것과 같은 연쇄작용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자본주의 운동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려는 전 세계 지배자들에 맞서 이데올로기적 판세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운동은 근본적인 사회 변혁이 가능하다는 사상에 다시 한 번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 “이윤보다 인간이 먼저다” 같은 구호들은 수백만 명의 구호가 됐습니다.
그 다음에 나타난 것은 반전 운동입니다. 반전 운동은 제국주의에 맞선 사상 최대 규모의 전 세계적 행동을 낳았습니다. 언론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심지어 일부 좌파들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이 운동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사실, 반전 운동이 이미 많은 것을 바꿔 놓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이라크 전쟁 자체를 우리가 막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반전 운동이 없었다면 부시는 벌써 이란을 폭격했을 것입니다. 이라크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입니다. 또한 부시와 블레어가 자국에서 오늘날처럼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반전 운동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 안에는 몇 가지 문제와 논쟁들이 있는데, 저는 이것들을 간략히 개괄하려 합니다.
먼저, 이 운동이 시애틀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 축제를 벌였을 때 이 운동은 정치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부분적으로 이는 모든 신생 운동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것은 당시에 세계 곳곳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시장 논리에 자신들의 영혼을 이미 팔아넘겼고, 옛 소련 붕괴 이후 전 세계 좌파들이 심각한 사기저하와 혼란을 겪고 있던 상황의 반영이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이러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많은 경우 NGO들과 개량주의 정당들, 자율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 등 정치 토론을 폄하하고 정치조직을 배제하는 데서 이해관계가 일치한 세력들이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사회포럼 운동이 이 점을 확연히 보여 줍니다. 사회포럼은 정당을 배제할 뿐 아니라 표결에도 반대합니다. 의사결정 구조가 없기 때문에 사회포럼은 종종 더 광범한 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현실 운동과 유리된 잡담 장소로 전락할 수도 있는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정치에 대한 이러한 혐오는 사회포럼 외부의 운동에도 해악을 초래했습니다. 예컨대 2001년 말 아르헨티나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포함한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 봉기에 가까운 상황들이 연출됐습니다. 좌우파 모두 그 상황을 혁명 직전의 상황으로 규정했습니다. 지역에 기초한 주민 위원회들이 생겨났고, 날마다 대규모 대중 시위들이 벌어졌습니다. 한 시위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한복판에 있는 대통령궁으로 쳐들어가 건물을 점령했고, 또 다른 시위대는 의회 건물을 점령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세계의 가능성에 대해, 사회를 운영하는 새로운 방식의 가능성에 대해 눈뜨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기회는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자율성과 지역 중심성을 강조하는 운동 내의 경향 때문이었습니다. 운동을 중앙집중적이고 전략적으로 조직하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운동은 가혹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운동이 그토록 강력했음에도 아르헨티나 정부는 운동 내의 일부 세력을 매수하고 다른 일부는 탄압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분열시킬 수 있었고, 결국에는 신임 대통령이 ‘자본주의의 정상 상태’라고 부른 질서가 회복된 것입니다.
사실, 운동에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정치의 영역에서도 진공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운동이 지금 당장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개량주의 정치와 낡은 정당들은 언제든 되돌아와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운동이 가장 강력한 이탈리아에서조차, 주요 좌파 정당인 재건공산당은 지난달 사회자유주의적 총리 및 집권당과 협력을 재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다수의 활동가들을 정부 안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브라질 또한 매우 강력한 운동들이 존재하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나라인데, 이 곳의 사회자유주의 정당인 노동자당(PT)도 다가오는 대선에서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제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안을 건설하는 데서 지금처럼 좋은 기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사회 엘리트들이 공식 석상에서 하는 말과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고 말하는 것 사이에 지금처럼 커다란 괴리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따라서 좌파들은 단지 정치인들을 폭로하고 비판하고 그들의 배신을 들춰내는 것에 만족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단지 운동을 건설하는 것에 만족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운동을 건설하는 것과 동시에, 이러한 대중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으며 엘리트들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간극을 파고들 수 있는 정치 연합과 정당을 건설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청중을 한두 명, 수십 명, 심지어 수백 명으로 한정하는 낡은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좌파는 수십만 명, 때로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청중에게 다가갈 기회가 있으며 그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정치와 운동은 실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인 이스트런던[런던에서 비교적 가난한 지역]에서는 새로 탄생한 광범한 정당인 리스펙트 후보들이 지방 선거에 출마해 구의원에 당선했습니다. 특히 제가 사는 동네인 배로우에서 리스펙트는 24퍼센트를 득표했고 12명의 후보들을 구의원에 당선시켰습니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다음 날, 제가 사는 지역의 구의회에서 일하는 노조 활동가가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자신의 작업장에서 방금 파업 찬반 투표를 했는데, 5년 만에 처음으로 찬성표가 더 많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리스펙트의 득표는 단지 이스트런던뿐 아니라 영국 전역의 노조 활동가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습니다. 다시 한 번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운동 안에서 또 한 가지 쟁점이 됐던 것은 전쟁입니다. 운동 안의 많은 활동가들이 전쟁과 신자유주의를 서로 별개의 쟁점으로 취급하고 운동도 따로 따로 건설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저는 우리가 이러한 주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에피소드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2003년 2월 15일 시위가 열리기까지 반자본주의 운동 안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사회포럼 안에서 전쟁 문제를 논의하는 것조차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2·15로 가는 몇 달 동안 이 논란이 어찌나 격화했던지, 한 번은 제가 연단에서 2·15 시위를 호소하다가 전쟁 논의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붙잡혀 끌려 내려온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제국주의가 제기하는 쟁점에 우리가 대응하지 않을 때 운동이 분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동안 미국 반자본주의 운동을 짓눌렀던 위기의 본질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또, 부시와 블레어가 이슬람 혐오주의를 부추김으로써 노리는 효과도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그들은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사람들을 분열시켜서, 저항을 조직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무슬림들과 이민자들과 난민들에게 돌리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쟁점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시는 또한 스스로 일으킨 전쟁 때문에 전 세계인들에게 이 세상 모든 악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이 만든 “부시 넘버원 테러리스트” 포스터를 다들 아실 텐데, 이 포스터를 세계 어디에 가져가도 사람들의 호응이 대단합니다. 포스터를 본 사람들은 웃고 환호하며 가판에 다가와서 포스터 한 장 가져가도 되냐고 묻곤 합니다. 이는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혁명적 정서입니다.
여기서 핵심 쟁점은 중동 문제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이 그토록 끔찍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세계 곳곳에서 국지적 갈등을 초래한다는 것인데, 인도-파키스탄 갈등과 최근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고조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그러한 예입니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핵심은 중동입니다. 네오콘들이 화력을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곳이 바로 중동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중동을 세계 무대의 정중앙에 올려놓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 신문들이 레바논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1면에 싣지 않은 것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레바논 공격은 중동에서 위험천만한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레바논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이 처한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연대를 보여 주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합니다. 영국에서 우리는 이번 토요일[7월 22일]에 이스라엘의 공격에 항의하는 시위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제국주의가 배후에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사냥개 구실을 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새 총리가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레바논 남부를 폭격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북부까지 폭격할 수 있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테러와의 전쟁에 수반되는 이슬람 혐오주의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계 반전 운동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철군 요구를 여전히 핵심 슬로건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야말로 제국주의자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어떤 점에서는 그들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2003년 2월 15일에 우리가 전쟁 자체를 막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시와 블레어는 정말이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인들의 저항에 부딪혀 그들이 패배하고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변명거리가 바닥난 탓이기도 합니다. 누구 하나 그들의 변명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들 자신조차 과연 자기 말을 믿을지 의문입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그들이 내놓은 변명은 식민주의자들의 해묵은 논리, 즉 이라크인들을 그들 자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남겨 두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는 순전한 억지입니다. 외국군의 주둔이야말로 이라크에서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라크에서 종파간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모든 사업을 기획하는 것이 바로 부시 정부의 정책이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지역과 전국 수준의 행정 단위에서 수니파와 시아파를 분리하려고 애썼습니다. 만약 이라크에서 실제로 내전이 일어난다면 그 책임은 1백 퍼센트 미국 정부가 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폭력이 증가함에 따라, ‘이라크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남겨 두어야 한다’는 주장조차 설득력을 잃고 있습니다. 이제 이라크를 베트남에 비유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습니다. 철군에 관한 논의가 더는 운동 진영 안에 머물지 않고 주류 사회의 담론이 됐습니다. 영국에서는 주류 신문 지면에서 철군이 논의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전·현직 장성들이 철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사람들의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제 대다수가 전쟁에 반대할 뿐 아니라, 영국의 경우 수백 명의 군인 가족들이 전쟁을 반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에서 최근에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라크 주둔 미군의 대다수도 전쟁에 반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가오는 9월 24일, 한국보다 몇 시간 앞서 영국 노동당 전당대회장 앞에서 열릴 반전 시위에 군인 가족들과 현역 병사들이 준비한 평화 캠프를 차릴 예정입니다. 영국 전역에서 수만 명이 몰려와 전당대회장을 에워쌀 계획입니다. 그리고 만약 시위 규모가 충분히 크다면 토니 블레어가 전당대회 직후 사임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처럼 전쟁과 제국주의 문제가 서방 세계의 권력 구조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에 했던 얘기로 되돌아가, 약간 다른 각도의 이야기를 하면서 발제를 마치겠습니다.
저 는 발제 첫 부분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이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고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은 미완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 각지에서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고 정치적 조직화에 착수해야 하는 것도 이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미완의 과제란 바로 반자본주의 운동의 시야와 전투성과 급진주의를 조직 노동계급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 “미국은 이라크를 떠나라”,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다” 같은 구호들이 노동자 대열에서, 노동자들의 파업 시위에서 등장할 때 가장 신이 납니다. 우리가 반자본주의 운동의 급진주의를 노동계급과 연결시킨다면, 다른 세계가 정말로 가능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