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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에세이:
연속혁명론 발표 1백 주년

트로츠키의 사상은 우리 나라에서도 이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이 정식화된 〈평가와 전망〉책갈피)이 출간된 지 1백 돌을 맞는 오늘날 트로츠키를 빼놓고 사회주의나 마르크스주의를 논의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사상 지형의 변화이다. 지난 198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 나라에서 트로츠키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단으로, 심한 경우 미 제국주의의 고용 간첩으로 매도됐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최근 이론 정세를 보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모든 종류의 비난이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적대감으로 집중되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자칭 꼬뮨주의자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가 1850년 이후 포기한 연속혁명의 사상을 트로츠키가 1906년 되살리고 이것을 1917년 레닌이 10월 혁명에 적용한 것에서 20세기의 '극단의 시대'가 비롯됐기 때문에 '원흉'은 마르크스나 레닌 또는 스탈린이 아니라 바로 트로츠키라고 주장한다.

이는 아마도 트로츠키주의만이 21세기 오늘날 유일하게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전통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이지, 지난 '극단의 세기'동안 온갖 탄압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스탈린주의·사회민주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 각종 사이비 진보에 맞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방어하여 21세기 오늘까지 계승해 온 것은 트로츠키주의뿐이었다.

하지만 트로츠키의 기여를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수호한 것으로만 축소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트로츠키는 레닌과 함께 1917년 10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고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국가 건설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1917년 이전 시기 〈평가와 전망〉의 연속혁명론, 10월 혁명 이후 1929년 국외 추방까지 〈좌익반대파 강령〉으로 집약되는 노동자국가 건설론, 1940년 스탈린에 의해 살해되기까지 〈배반당한 혁명〉으로 대표되는 스탈린주의 비판은 모두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대한 트로츠키의 독창적인 이론적 기여였다.

필자는 이 중에서도 청년 트로츠키가 1906년 〈평가와 전망〉에서 체계화한 연속혁명 전략 및 이를 이론적으로 근거지운 불균등결합발전론이야말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대한 트로츠키의 진정으로 독창적인 불멸의 기여라고 생각한다.

물론 연속혁명론의 맹아는 1848년 혁명 직후 마르크스가 제시한 바 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식화하고 불균등결합발전론으로 기초지운 것은 트로츠키이다.

불균등결합발전

트로츠키는 연속혁명론에 기초하여 러시아에서 일어날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일 것임을 예견했으며, 이는 1917년 혁명에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입증됐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이 될 것이라는 점은 1906년 당시 레닌도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레닌은 1917년 〈4월 테제〉발표 즈음에야 이와 같은 생각에 비로소 도달했다.

실제로 레닌은 1917년 〈4월 테제〉이전까지는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교의였던 2단계 혁명론의 전통과 결별하지 못했다. 예컨대 레닌은 1906년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에서 러시아의 혁명은 '노동자와 농민의 민주주의적 독재'를 수립하는 부르주아 혁명 이후에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하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만약 혁명이 이처럼 민주주의 단계에 머문다면, 노동자 대중이 정치권력을 장악했음에도 생산 현장에서는 자본가의 착취와 억압을 감수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 초래될 수밖에 없으며, 이와 같은 상황은 결코 지속적일 수 없다고 보았다. 즉, 혁명의 동학은 결코 혁명이 민주 변혁 단계를 완수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으로 집약되는 레닌의 〈4월 테제〉는 레닌이 2단계 혁명론을 폐기하고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을 수용했음을 보여 준다. 1917년 10월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밀의 하나는 다름 아닌 연속혁명 전략의 적용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스탈린은 1924년 이른바 일국사회주의론으로 연속혁명론을 대체한 다음, 다시 2단계 혁명론을 NL[민족해방] 혹은 PD[민중민주주의]의 형태로 공식화하여 각국 공산당들에게 강요했다.

스탈린주의의 2단계 혁명론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사회주의 단계들로 단절될 수 없는 혁명을 단계에 따라 진행시키려 하는 자기제한적 전략으로서, 지난 20세기 혁명의 역사에서 보듯이, 최악의 경우 투쟁하는 민중에 대한 대량 살육이나 파시즘 같은 대재앙으로 귀결됐으며, 최선의 경우에도 사회민주주의나 민족개량주의로 수렴됐다.

그렇다면 20세기 '극단의 시대'는 가라타니 고진이 강변하듯이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 때문에 초래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그것이 스탈린에 의한 10월 혁명의 압살과 함께 조기에 폐기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사상의 획기적인 세계사적 의의를 감안한다면, 트로츠키에 고유한 이론은 없으며 트로츠키는 "서기장이 되지 못한 스탈린"일 뿐이라는 알튀세르나, 여기에서 한 술 더 떠 트로츠키를 아예 스탈린과 한통속의 반혁명 세력으로 모는 평의회공산주의나 좌익 공산주의 (예컨대 얼마 전 '빛나는 전망'출판사가 발간한 〈트로츠키주의 비판〉이 그런 경우다) 자율주의, 꼬뮨주의자 들이 트로츠키 사상의 정수인 연속혁명론을 애써 외면하고, 1920년대나 1930년대 극도의 고립과 박해 속의 트로츠키의 일부 언설만을 표적으로 삼아, 그것도 맥락을 무시한 채 거두절미식으로 난도질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평가와 전망〉1백 주년을 맞이해 출판된 〈연속혁명 1백 주년〉플루토)에서 보듯이 마이클 로이, 다이엘 벤사이드, 로젠버그, 라디스, 본드, 데이빗슨 등 세계 주요 학자들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과 불균등결합발전 이론이 마르크스주의 세계경제론 및 국제관계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이를 오늘날 중국이나 남아공과 같은 구체적 정세 분석에 적용하고 있다.

실제로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더욱 격화되고 있는 불균등결합발전은 세계 도처에 연속혁명의 약한 고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은 1백 년의 세월을 넘은 오늘도 세계 진보 진영의 화두인 "21세기 사회주의"에 유용한 시사를 제공하는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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