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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연대체 논의의 문제들

민중연대는 내년 초쯤에 새로운 상설연대체를 띄울 것 같다. 이 상설연대체에 대해 지금까지 '자주계열'이하 NL로 줄임) 이론가들로부터 나온 주장들을 토대로 이미 '다함께'의 김하영 동지가 몇 가지 물음을 던진 바 있다. (1) 계급 연합 문제, (2) 느슨할 필요성 문제, (3) 상설연대체와 사안별 연대체의 관계 문제, (4) 민주노동당의 우경화 수반 여부 문제 등이 그것이다.

각각의 문제에 대해 NL 주요 논자들의 주장이 서로 다르고 한 논자의 논조도 그 동안 다소 변해, 전체로서의 NL 진영의 제안 자체는 모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면 제약상 (4)번 문제를 제외하고 하나씩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계급 연합 프로젝트?

어떤 NL 논자들은 자본가 계급의 일부와도 연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논자들은 '중간층'과의 연합만을 얘기한다. 후자의 경우, '중간층'이라는 말 자체를 매우 모호하게 사용하고 있다. 중소 자본가 계급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중간계급을 뜻하는 것인지, 후자의 경우 중간계급 전체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하층들만을 뜻하는 것인지 도무지 분명하지 않다.

중소 자본가 계급과 상층 중간계급은 근본적으로 대자본가 계급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들 중 일부 개인들은 노동운동이 강력하면 좌파 진영에 가담한다. 그리고 이 경우 좌파는 이들을 환영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추수(실용주의적 영합)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체제가 이들에게 가하는 압력은 이들이 원칙 있고 규율 있는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입신양명의 길을 찾도록 유혹하기가 쉽다.

개인 거취 문제가 아니라 계급 동역학 문제로 말하자면, 이들 친자본주의적 이해관계가 있는 계급들과의 연합(1934년 이래로 '인민[민중]전선'이라는 용어로 불렸다)은 반동세력이 발호할 때 노동운동의 발목을 붙잡고 마비시킨다는 위험이 있다.

사실, NL 이론 자체는 계급 연합을 기피할 아무런 이유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남한 사회를 '미국에 예속된)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보고, 당면 변혁의 성격을 민주주의 변혁의 일환인 민족해방으로 보고, 변혁을 통해 세울 정권의 성격을 '자주적 민주정부'로 보고, 집권을 위한 핵심 전략을 민족민주전선으로 본다면, 중간계급은 물론 심지어 지배계급의 일부와도 연합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러므로, '다함께'의 김하영 동지가 상설연대체를 계급 연합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정대연 민중연대 정책위원장의 비판은 김하영 동지의 통찰과 일리 있는 우려를 애써 부인하는 것이다.

정 위원장의 부인은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과 민족통일과 화해·협력적 남북관계를 위한 운동이 서로 분리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문제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라면 몰라도 NL 사상 체계에서는 두 영역이 결코 분리되지 않을 뿐 아니라, 둘 가운데 민족통일이 최종 해결책으로, 따라서 더 근본적인 것으로 돼 있다는 점이다.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NL 사상에서) 민족통일이 자본가 계급을 굳이 배제해야 하는 일이 아닐진대 상설연대체가 부르주아지의 일부와 연합을 굳이 배격할 까닭이 없다.

따라서 상설연대체가 계급 연합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금으로선 그렇다는 단서와 함께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느슨할 필요성

전에는 그렇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상설연대체가 조직 구조 면에서 느슨할 필요성에 대체로 합의가 이뤄져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전에 NL 논자들이 거의 다 조직이 단단할 필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 여파로 경남진보연합은 최근 조직상의 집중성을 강화하고 있다.(바로 이 때문에 그다지 번창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 수준에서든 한국 수준에서든 1990년대 후반 이후 정치적 급진화가 진행돼 온 결과, 단일 쟁점을 넘어 복수의 쟁점을 둘러싸고도 공동 활동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게다가 주류 개량주의 정당들이 실망과 환멸을 안겨주는 정치적 경험을 거듭한 결과, 급진 좌파 정치단체가 개량주의자들의 왼쪽에 생겨난 공백을 시급히 메울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각 단체가 강조하고 주력하는 쟁점이 여전히 다르고 쟁점을 다루는 방식도 서로 달라 상설연대체는 조직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매우 느슨할 필요가 있다.

조직 문제에서는 아무도 집중제 같은 엄격한 조직을 고집하지 않는 한편, 일부 비(非)NL 단체들은 더 나아가 대의 제도(특히 대의원대회)를 아예 두지 말자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다함께'는 연방제가 알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면 제약상 이 자리에서 조직 문제를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정치적 느슨함이 훨씬 더 중요한 사항이다. 이 문제의 핵심을 NL 동지들은 아쉽게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정치적 느슨함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 각 단체의 정치적 독립성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상설연대체 각 구성 성분의 독자적 행동권이 완전히 보장돼야 하고 서로 비판이 자유로워야 한다.

또한 각 경향이 자기네 고유의 이데올로기를 지나치게 고집하지 않아야 한다. 타협이 불가피하다.(이는 레닌의 《'좌파적'공산주의 ― 어린이 같은 혼란》에서 가장 강조되는 주제다.) 그렇지 않고, 예컨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민족 자주'사상을 받아들일 것처럼 가정하고 다른 동맹들에게 강요하려 한다면 반드시 갈등을 빚고야 말 것이다. 단지 국제주의자들뿐 아니라 적잖은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심지어 적잖은 자유주의자들도 민족주의적 언사에 불편함을 느낀다.

사실, 상설연대체의 미래는 NL 동지들이 얼마나 자신의 정치문화와 활동 방식을 바꾸는 데, 심지어 말투도 바꾸는 데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상설연대체의 건설을 "민중연대와 통일연대의 통합"이 핵심인 문제로 인식한다면, 실제로 거기서 그치는, 즉 전국연합의 재판에 불과한 걸로 끝나는 성과만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사안별 연대체에 대한 태도

아무리 급진화가 진행됐어도 운동 참가자들 의식의 발전은 불균등한 법이다. 투쟁 경험과 생활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반대해도 신자유주의에는 반대하지 않을 수 있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또, 이 둘에 모두 반대해도 노동자 투쟁은 마뜩치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운동이 광범해지려면 NGO들이 동참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흔한데, NGO들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전통상 상설적인 연대체를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안별 연대체는 여전히 중요하다. 아쉽게도, 대다수 NL 활동가들은 사안별 연대체가 상설연대체보다 저급한 조직 형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의 유용성과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논자는 불행히도 별로 없는 듯하다.

NL 동지들이 사안별 연대체보다 상설연대체가 더 우월하고 더 진보한 형태의 조직으로 보는 경향이 계속되는 한은 불필요한 마찰이 일어날 것이다.

애당초 '다함께'는 고전적 공동전선으로서 각종 사안별 연대체, 신형 공동전선, 즉 상설연대체로서 민주노동당, 단일 정치조직으로서 '다함께'라는 세 가지 조직적 틀을 모두 강화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여기에 또 하나의 상설연대체가 생기는 것이 꼭 필수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상설연대체 건설의 목적이 혹시라도 그것을 제안하고 있는 특정 경향의 내부적 이유, 즉 전진하고 있다는 느낌을 성원들에게 제공하고 실제의 후퇴를 은폐하는 것이라면, '다함께'는 명목상의 참가에서 더 나아가 실질적 헌신을 할 동기를 부여를 받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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