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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영화평 〈어쩔수가없다〉:
과실나무 아래는 거름이 묻힌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출처 CJ ENM

당신의 태양은 무엇인가요?

25년간 ‘태양제지’에 몸을 바친 만수는 25분 만에 해고된다. 노조를 안 만드는 대신 평생직장을 약속했던 회사는 해고자 명단을 만들어 그들에게 장어를 선물하고 ‘모가지를 자’른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 두 마리 개까지, ‘다 이뤘다’고 생각하던 그는 별안간 실업자가 된다. 만수는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고 주문을 외우며 ‘레드페퍼페이퍼’의 면접을 빌미로 일을 도모한다. 만수는 다시 숭배할 태양을 찾아야 한다. 자신에게 빛과 소금을 내려 줄 직장을 구해야 한다.

가족을 찾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총을 겨누라고요?’ 말하던 만수는 없다. 자신이 이룬 것을 모두 빼앗길 위기에 처한 그는 ‘가장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구직 활동을 하지만 어려움이 따른다. 그는 가짜회사를 세운다. 그럴싸한 구인광고를 만들어 지원서를 받아보고 자신의 경쟁자들을 없애기로 결심한다.

면접과 경쟁. 취업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거대한 시스템을 축소해 면밀히 들여다보면 만수가 벌이는 일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레드페퍼페이퍼’는 이런 사람을 뽑는다. ‘기계의 톱니바퀴가 아니라 (…) 가족을 찾습니다. (…) 우리가 종이를 안 쓰면 누가 쓸까요? (…)’ 그러나 이 허울 좋은 말들은 애초에 경쟁을 통해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진실이 아니다. 제지를 만들면서 벌목하는 것이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제지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이 세계는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는 만수라는 허술한 인물을 통해 거대해 보이는 진실들을 굴러 떨어트린다.

‘레드페퍼페이퍼’의 지원서를 통해 손에 들어온 경쟁자들을 만수가 처리하는 동안, 그는 가족과 멀어지고 있는 줄도 모른다. 만수는 아들이 연행되어 서에 갈 때, 월남전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준다. 먼저 쏘지 않으면 적이 자신을 쏜다는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남자들만의 의리를 다지기 위한 이 거짓된 진리는 월남전 이후 불안정해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다.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인 삶이란 그래야 한다. 하지만 만수의 행보가 그렇지 않은 것을 통해 영화는 ‘어쩔 수가 없다’는 현대 사회의 주문을 꼬집고 있다. 인간성이 박탈당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며 손놓고 있을 것인가?

가장의 무게(?)

식물을 사랑하는 만수가 제지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분재에 소질이 있는데 직장을 고수하는 것도 안정된 삶을 위한 모순이다. 직장을 구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손가락질 당하고 자기 비하적이 된다.

남성 간의 연대, 의리라는 것이 거짓임은 만수와 선출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빼앗기 위해 잠시 함께할 뿐이다. 두 사람은 함께 직장 욕을 하고 시스템의 문제도 들춰내지만 선출은 자신이 다니는 직장의 환경을 개선할 생각이 없다.

만수가 폭탄주를 먹고 몽키스패너로 충치가 있는 어금니를 빼는 장면을 선출은 동경하듯 바라본다. 만수는 선출에게 잠시 좋은 감정을 느끼지만 그와 함께할 수 없다. 절대적으로 우선되어야 할 인간의 목숨이 ‘어쩔 수 없’는 만수의 논리에 의해 전락한다. 현 사회의 우선순위는 완전히 뒤엉켜 있다.

올라가 줘 내려가지 말고

만수는 숫자를 거꾸로 세는 것에도 불안을 느낀다. 만수는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추락의 불안을 느낀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을 제지공장이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협력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현실과는 딴판이다.

취직한 제지공장의 기계들 사이에서 귀마개를 끼고 혼자 소등을 마친 만수의 세리머니는 조커를 떠올리게 한다. 조커는 단순히 유년시절의 불우한 경험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치밀하게 범벅된 사회에서 자신 또한 거짓말쟁이가 되라고 강요하는 체제 아래 탄생한다. 더욱이 주목할 점은 만수를 포함한 면접자 셋 모두 가난한 삶을 보내던 인물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체제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헌신하는 자들이다. 이 영화는 ‘어쩔 수가 없다’는 그들을 지목한다.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이들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 말하는 영화다.

존스미스와 포카혼타스의 복장을 하고 댄스파티에 참여한 만수와 미리의 상징은 미국의 식민지 신화와 관련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둘의 이야기는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영국 군인의 사랑으로 식민지를 정당화하고 아름답게 포장했다. 포카혼타스 미리는 아이들의 순수함이 물들지 않도록, 정서발달과 안정에 도움 되는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만수의 만행을 알고도 침묵한다.

이 상징은 경쟁을 부추기는 제국주의 사회와도 맞닿아 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쌍둥이 같은 존재이며 그 체제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의 자리를 박탈당할지도 모르는 위협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전쟁을 통해서든 경쟁을 통해서든 말이다.

혼자서 책임지려고 하지 마

해답은 미리의 걱정에 담겨 있다. 또한 나무 아래 묻힌 것이 무엇인지 파내는 미리의 행동에 달려 있다. 함께였다면 다른 방식으로 어려움을 풀어 나갔을 것이다. 경제적 곤경은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일자리가 동등하고 임금의 격차가 없었더라면 만수와 미리는 서로를 의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체제를 감당하고 극복하고 이겨 낸다는 것은 그 아래 많은 이들을 밟아 올라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번듯한 자리가 있다는 것은 꽤나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또한 살아야 한다. 미래가 있고 노후가 있고 불안이 존재한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이중 압박에 놓인다. 자본주의 사회가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치우친 풍요 아래엔 어떤 거름이 묻혀 있는지 파내 보아야 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가장 적합하다는 논리는 마치 이 체제가 완전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대안적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멸망으로 가지 않을 거라면 우리는 체제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정말로 역사의 마지막 단계가 될지도 모른다.

어디에나 모순은 있다. 봉건제 사회의 모순을 느낀 자들이 봉건제를 타도했고 자본주의가 확립되었다. 모순이 거대하게 다가오고 그것이 인간에게 불편을 초래할 때 생산 방식에 변동을 주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 또한 다른 체제로 변혁할 수 있다.

담배를 끊고 술을 끊는 등 만수의 개인적 실천에는 한계가 있었다. 거대한 것을 바꾸려면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노동계급의 힘이다. 이들의 파업은 사회에 마비를 불러온다. 노동자는 스스로를 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할 때 체제에 맞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 자리를 꿰차기 위해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고 연봉 다툼을 할 것이 아니라 연대하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에게 남은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 체제에 저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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