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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혁신은 다원주의 방향이어야 한다

심상정 비대위 대표가 비대위 자문단장에 임명한 장상환 교수는 평소 당 활동을 자주파와 함께 하지 못하겠다며 공공연히 분당을 주장해 온 사람이다. 또, 심 비대위 대표의 오른팔 구실을 하고 있는 정종권 집행위원장은 자신이 주요 회원으로 있는 ‘전진’이 신당파와 다름없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도대체 심 비대위 대표의 진의가 뭔지 헤아려 보려 애쓰는 당원들이 많다.

심상정 의원은 당의 결속을 바라는 수많은 당원들의 염원에 의해 비대위 대표에 추대됐지만, 원래 비대위 대표를 맡기 전부터 기본적으로 평등파에 친화적이었다. 북한 핵실험과 일심회 사건 언급 때 미국의 제국주의적 위협과 남한의 마녀사냥적 국가보안법 반대에 강조점을 두지 않는 것하며 그의 “종북[친북] 청산”론 자체가 자주파의 중핵인 강경 주체주의자 동지들과 당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함축한다.

그는 비대위 대표 수락 전 〈프레시안〉 등 여러 언론매체들을 통해 분당을 위협한 적이 있다. “향후 정치적 선택이 주목받고 있는 심상정 의원은 당권파의 북한 추종 노선 등 편협하고 폐쇄적인 당 체질이 끝내 개선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진보정당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며 분당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12월 31일 밤 9시 MBC 뉴스데스크)
그리고 그는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당”이어서는 안 된다며 당의 사회적 기반 자체에 대해 못마땅하게 말한다. 민주노총에 의해 당이 창립됐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듯도 하다. 또, “운동권”이 만든 당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부인하고 싶어한다.

줄타기

그러므로 우리는 당이 딛고 있는 발판을 걷어차버릴 수도 있다고 위협하고, 당의 뿌리를 부정하기를 원하고, 그런 일들이 안 되면 당을 깰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을 지도자로 앉힌 셈이다. 물론 분당파들의 분당 위협에 못 이겨 결속을 위해 하는 수 없이 양보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민주노총 중앙파 지도자들과 ‘전진’ 소수파 등 평등파들이 대부분 아직은 신당 참여에 주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당에 대한 심 비대위 대표의 전망은 모순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 지도자이면서도 민주노동당이 아닌 신당론자들을 달래려다 보니 그는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럴수록 신당론자들은 더 자신감이 생겨 당의 분열 양상은 더 악화할 것이다.

이처럼 민주노동당 대다수 평당원의 당 결속 염원과 심 비대위 대표의 정치적 기반 사이에 격차가 있다. 신당론자들은 이를 이용해, 심 비대위에 자신들의 의지를 강요하면서 자주파와 자신들 사이에 양극화를 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원들에게 줄세우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다함께도!) 자주파라는 식으로 말이다.

자주파와 다함께를 제외한 나머지 당원들 사이에서 최대한 무리짓기를 해 이것이 심 비대위 대표에게 충분한 압력(또는 매력?)이 되면 신당론자들로서는 심 비대위 대표 자신이 신당 건설에 앞장설 수도 있다는 계산을 해봄직도 하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 비대위 대표인 심 의원이 신당과 명확히 선을 긋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당 분열과 심 비대위 대표 자신에 대한 당원들의 불신은 더 악화할 것이다.

이러한 책략 난무는 근본적으로 자주파나 평등파가 모두 민주노동당을 공동전선, 즉 다원적이고 느슨한 연합체로 규정하기보다는 ‘당’이라는 모델에 집착해 거의 모든 쟁점에서 동맹자에게 의견일치를 강요하고 동맹자들의 정치적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조직 모델과 관계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자주파는 다수파이므로 다수결만을 고집하면 거의 언제나 승리하게 돼 있다. 당연히 평등파는 이를 패권주의라며 반발할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반발이다. 하지만 소수파가 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규율조차 무시하고 행동 통일을 파괴한다면, 아니 심지어 조직 파괴마저 자행하곤 한다면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져 마침내 돌이킬 수 없을만큼 악화할 것이다. 이런 때는 주요 리더들 가운데 누군가가 분당을 감행할 태세라면 실제로 분당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분당

평등파들도 ‘당’ 모델을 고집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해결 또는 완화되지 않고 더 악화된다. 만약 그들이 지금보다 비할 데 없이 더 큰 인내심을 갖고 자주파 세력과 불가피한 타협을 해 나아가면서 조직한다면 적당한 시기엔 그들이 당 내에서, 또는 당 밖에서도,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지도권을 행사하게 될 때가 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보다는 오히려 평등파들도 스스로 새로운 패권주의 세력이 되려 애쓰고 있는 듯이 보인다. 더구나 좌경 색조를 어슴푸레 띤 자유주의적 매체들과 심지어 극우 매체의 지원을 기꺼이 받아가며 그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심 비대위 대표는 “정파 담합 구조”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자신도 기꺼이 단일 정치 경향에 의한 일방주의를 구현할 것처럼 말하고 있어 도무지 갈등이 치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노자의 순수 개량주의 정당론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공동전선 ― 정치 원칙과 강령을 달리하는 상이한 정파들의 느슨한 연합으로, 포괄적(단일쟁점을 둘러싼 게 아니라는 뜻에서)이고 상시적인(한시적이 아니라는 뜻에서) 신형 공동전선 ― 이 아니라 당이어야 한다는 박노자 교수(이하 존칭 생략)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말한다.

“ … ‘김빠’들[주체주의자들]이 걸러진 뒤에 ‘정파’들은 혁파돼야 합니다. 우리가 ‘사민주의자와 조합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느슨한 연합체’가 아닌, 진정한 계급 정당을 만들자면 정파 소속보다 당 소속이 우선돼야 되지요. 당에서 정파적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들은 부끄러운 행위가 돼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컨대 ‘다함께’ 회원이면서도 당적을 보유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일단 당에서 투표할 때에 ‘다함께’의 의견보다 당의 이익과 전망, 그리고 넓게는 한국과 세계노동계급의 이익을 먼저 의식하고 소신 투표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규율주의로 나가면 안 되지만 규율이 없는 당은 지금처럼 되게 돼 있어요. 정파 ‘보스’들의 입김을 조금 억제하고 당의 공적 성격을 높일 수 있다면 사람들이 이 당을 다른 눈으로 볼 것입니다.”(〈만감〉 12월 29일)

우선, 박노자는 도대체 다함께가 언제 국제 노동계급과 한국 노동계급의 이익과 민주노동당의 이익과 전망보다 우리의 “정파적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했고 우리 회원들이 “소신 없이 투표”했는지 구체적 사례를 들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밑도 끝도 없이 매도하는 것은 토론의 기본 자세가 아니다.

그리고 박노자는 민주집중적 조직 원리에 따라 활동하는 단체의 평회원들을 ‘보스’의 지시에 맹종하는 자율성 없는 꼭두각시로 보는 모종의 자율주의적 경향이 있는데, 자신 같은 준자율주의 또는 자율주의자만이 자율적이고 영혼이 있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의 발로 아닐까? (물론 박노자의 자율주의적 이의 제기에 대한 반론은 지금 논지에서 벗어나므로 박노자가 다음 호 〈맞불〉에 구체적으로 논쟁을 제기하면 기꺼이 응답하겠다.)

박노자의 제안대로 돌아가는 당은 반자본주의 변혁운동가들인 다함께에도 흔히 문제를 안겨줄 것이다. 가령 노조 지도자들이 배신하는 종류의 노동쟁의에 다함께로서가 아니라 민주노동당으로서만 개입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비판할 수 없다. 2001년 초 경기후퇴 시점에서 일어난 대우차 노동쟁의를 지지하러 부평에 간 민주노동당 학생그룹은 황광우 씨 등 당 간부들의 저지로 공장점거 파업의 필요성과 대우차의 공기업화를 주장할 수 없었다. 이거야말로 “소신”을 억제받는 것 아닌가?

엘리트주의

그리고 그런 당 안에서 주로 사회민주주의자와 “조합주의자”(도대체 박노자가 구체적으로 누구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 모르겠다)로 이뤄진 지도부는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패권주의적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사회민주주의자든, 스탈린주의자든, 심지어 박노자가 일체감을 느끼는 아나키스트든 모두 당이 계급(또는 운동)의 단지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당은 계급을 표현[대표]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계급(또는 운동)이 사기 저하해 있으면 기회주의로 빠지기 십상이고, 운동이 활성화되는 국면에서는 운동을 지배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당 바깥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모두 계급의식 부재의 표현으로 여기는 종파적 태도를 갖게 된다. 우리는 한국진보연대 간부들이 전체 민중운동을 대표하는 양 착각하고 말하는 것을 보곤 하는 것 못지않게, 민주노동당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던 시절의 평등파가 당에 입당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당 밖 세력”, “종파”라고 부르는 일을 경험했다. 국제적으로도 우파 사회민주당들은 대부분 당내 급진파들을 검열하고 통제하려 해 왔다. 박노자의 제안은 이런 의미의 “규율”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분당파들이 당의 대선운동이 한창이던 때 분당에 대해 토론이나 하고 있던 것이 박노자가 제안하는 “규율” 있는 자세인가? 이것이야말로 “국제 노동계급이나 남한 노동계급의 이익에 어긋나는 일이고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한” 일 아닌가?

박노자의 제안대로 ‘정파’가 “혁파”되는 당에는 우리 같은 근본적 사회변혁 운동가들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박노자는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조합주의자들”)로만 이뤄진 확실한 개량주의 정당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빅토르 세르쥬를 찬양하기에 혁명가인 줄 알았던 다함께 지도부는 저으기 실망했다. 〈만감〉에서 정세를 보는 눈이 비관적이 되더니 그 결과가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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