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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위대한 전환》(제리 맨더, 에드워드 골드스미스 편저, 동아일보사)

“다시 세계화에서 지역화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야생의 자연과 삶의 질 보존을 위해 1892년에 만들어진 “시에라 클럽”이 1996년에 발간한 교육용 백서다. 전 세계 반세계화 운동의 저명한 필자들이 쓴 43편의 소논문을 묶어 무려 6백61페이지의 책을 펴냈다. 필자들 가운데는 랠프 네이더, 반다나 시바, 월든 벨로, 제러미 리프킨,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같은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띈다. 이 책에 담긴 주장들은 필자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데 편집자들은 이를 오히려 장점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 책에는 현재 반자본주의 운동 내의 한 조류인 환경[생태]주의에 관한 거의 모든 정치적 쟁점이 망라돼 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다소 전문적이고 세세한 쟁점까지 포괄하다보니 일반 독자에게는 장황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반자본주의와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활동가에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책이 폴 먹가의 《녹색은 적색이다》(북막스)에서 언급한 콜린 하인스의 《지역화: 세계 선언》인데, 아직 우리나라에서 번역은 안 된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처음엔 동아일보사가 이 책을 낸 것에 대해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이 책의 1, 2, 3부를 구성하고 있는 32편의 소논문들은 이런저런 주제로 현 체제를 비판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1부는 세계화가 가져온 충격을 다룬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글은 역시 반세계화 운동 내에서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로 유명한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글이다. 이 글은 제3세계의 한 농촌 마을이 세계화로 인해 겪게 된 공동체적 삶의 양식의 붕괴를 다루고 있다. 세계화가 한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천박한 물질만능주의와 미국식 문화가 만연한 삭막함이 넘치는 곳으로 바꿨으며 공동체의 농업도 파괴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제3세계가 겪는 빈곤과 수탈, 캐나다의 교육 시장 개방이 가져올 교육의 미국화를 다룬 글, 세계 문화의 획일화, 재앙적인 환경 파괴, 상품 작물의 모노컬쳐[단일경작]가 가져오는 기아 문제, 지적재산권과 특허 문제, 생물 다양성의 문제, 신종 질병과 바이러스의 등장과 확산 등 각자의 분야에서 상당한 전문적인 경력을 쌓아 온 활동가들이 구체적 사례와 통계로 현체제를 고발하고 있다. 이 중 특허가 다국적 기업들의 도둑질과 다름없음을 폭로한 인도 물리학자 반다나 시바의 글과 ‘신종 질병과 부활하는 질병에 대한 하버드 연구 그룹’이 쓴 “세계화, 개발, 그리고 질병의 확산”은 반자본주의 운동에 좋은 폭로 거리를 제공해준다.

이 책 2부는 자유 무역에 대한 도전이다. 비교우위 이론의 허구성과 멕시코, 칠레를 비롯한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체를 잘 폭로하고 있다. 여기에는 “환경경제학(자)”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자연 수용력의 한계 내에서 경제 발전을 평가하는 것이다.

3부는 세계화를 추진하는 가장 강력한 엔진인 다국적 기업의 행동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특히 다국적 기업의 몰염치와 탐욕을 다룬 이 부분은 특히 마르크스의 어조와 비슷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기에 백과사전처럼 많은 주제와 사실이 담긴 이 책은 주제 수만큼이나 많은 논쟁점이 존재한다.

하나의 대표적 문제는 개발을 보는 시각이다. 필자들은 공업화(개발 또는 과학 기술)를 죄악시한다. 이것이 환경 파괴, 인간성 파괴, 실업, 빈곤, 기아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표적을 잘못 정한 것이다. 필자들의 주장대로 자본주의 산업화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산업화가 낳은 공포에 대해서도 주목하지만 그것이 가져온 놀라운 생산력 발전과 대안 사회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세력 ― 노동계급 ― 의 잠재력에 주목한다.

한 필자는 19세기 초 러다이트 운동이 세간에서 억울한 평가를 받았다고 말하는데 필자들이 러다이트 운동에 공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신기술과 기계의 도입 때문에 직장을 잃고 굶주리게 된 노동자들이 절망적으로 기계를 깨부순 이 운동은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한 분노의 표출이었지만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한편, 필자들은 세계화를 거부하기 위해 지역화와 보호무역주의로 나아간다. 일차로 지역의 천연 자원에 기반한 자급자족적 지역 경제를 만들고 자본의 이동을 규제해야 지금의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편집자인 에드워드 골드스미스는 제일 마지막 논문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경제의 세계화가 아니라 그 반대인 경제의 지역화이다.” 하고 말한다. 이것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는 필자의 단서에도 명백히 과거지향적이다.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다소 목가적이고 과거에 대한 향수로 가득 차 있지만, 재생가능한 대체 에너지 개발이나 기업과 자본의 힘을 제약하는 것 같은 좋은 제안들도 많다. 이런 것들을 누구의 힘으로 이룰 것인가? 대부분의 필자들은 이 점에서 모호하다. 대체로는 좋은 뜻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 정도로 압축되는 것 같다. 체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노동계급의 잠재적 힘에 주목하고 있는 필자는 아무도 없다. 필자들에게 노동자들은 실업과 과로로 고통받는 민중의 일부일 뿐이다. 심지어 제러미 리프킨의 글에 의하면 “노동자는 없다.”한편, ‘생태 마을 건설’이나 ‘공동체의 지원을 받는 농업’ 같은 것도 대안으로 제시한다. ‘공동체의 지원을 받는 농업’은 경실련, 참여연대 같은 단체가 운영하는 유기농산물협동조합직판매장과 유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 대안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필자도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이 농산물을 사먹을 수 있는 주된 계층은 미국의 “백인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주로 4장에서 제시한 이들의 대안에 대한 글이 도시보다 농촌에 훨씬 더 집중돼 있으며 전통적인 공동체에 대한 예찬으로 일관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농촌 사람을 경멸하고 농촌 생활과 농촌을 무시한다는 점에서는 공산주의자나 자본주의자나 똑같”으며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환경에 해를 끼쳐도 된다고 항변한 점에서도 이 둘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다크에 대해 얘기하며 “나는 개발과 세계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산업화 전의 라다크를 그리워한다. 저넷 암스트롱은 인디언 공동체인 “오카나간 공동체”를 대안으로 삼는다.

데이빗 코튼은 농업이 지금의 기업농 형태에서 예전의 소농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며 “녹색혁명의 정체는 미국 화학업계의 시장 확대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다.” 고만 말한다. 심지어 자본주의적 농업이 정착되기 전 자급자족 사회가 훨씬 풍족한 사회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지금 식량 부족이 전세계 식량을 소수가 통제하고 세계 민중의 필요에 따라 분배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녹색 혁명은 농업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고, 이것은 세계적 기아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주었다.

사티쉬 쿠마르의 인도판 수입대체 생산 모델인 간디의 스와데시에 대한 글은 영국 침략 전 인도를 지나치게 좋게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마찬가지로 지역에 기반한 자기충족적 생산 체제가 전 세계의 기아와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정도로 생산량을 보장해 줄지 의심스럽다. 전자본주의적 생산 형태인 이들 자급자족적 소농 중심 농업은 사람들을 충분히 먹이지 못했다. 한편 다국적 기업에 맞서 지역에 기반한 기업을 육성하다보니 ‘우리 지역 제품 사기’ 같은 대안이나 지역 중소기업 육성책 같은 노동자 계급의 독립성을 해치는 대안도 나온다. 한편 이들은 전통적으로 우익이 중시하는 가치인 “가정”과 “공동체”와 “전통 사회”를 반세계화 운동 진영이 가져와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런 주장은 위험하다. 예컨대, 현재의 유전공학이 일부 대기업의 독점적 이윤을 보장받기 위해 사용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옳다. 그러나 마크 리치는 “인간과 동물이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 신의 창조물이라고 믿는” 종교계 지도자들이 유전자 복제와 변형에 반대하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종교계 지도자들은 낙태의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 역겨운 보수 우익들이다. 이 책 4부 대안에 관한 장에서 이들과 함께 전통적인 좌우파 구분을 넘어 쟁점별로 새로운 연대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보호무역 쟁점에서는 팻 뷰캐넌과 함께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한편, 몇몇 “환경경제학자”들 일부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일부 수용하는 것 같다. 이들은 “도시화”가 인구 폭발을 낳았고, 이것이 제3세계 기아의 한 요인인 것처럼 말한다. 좀 덜 치명적인 약점들은 “지역 화폐”나 “(노동)시간 화폐”를 대신 사용하는 것 같은 다소 유토피아적인 대안을 상정하는 것이다.

필자들은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중앙집권화에 반대한다. 그러다 보니 실천도 “풀뿌리 공동체 운동” 같은 탈중심적·분권적이다. “공동체주의 당”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을 일종의 아나키스트로 생각한다. 그러나 중앙집권화한 현재 권력과 질서에 효과적으로 맞서 싸우기 위해선 우리들의 조직도 그런 효율적 체계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자본의 세계화의 맞선 대안은 지역화가 아니라 저항의 세계화, 노동자 국제주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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