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본주의 운동의 대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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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 운동의 대승리
찰리 킴버 - 유럽사회포럼 참가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열린 유럽사회포럼은 가장 낙관적인 예측조차 크게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를 과시했다. 그것은 단순히 성공한 정도가 아니라 정치적인 대승리였다. 반전 시위가 벌어지기 전 3일 동안 연 집회에 약 6만 명이 참가했다. 5대양 6대륙의 1백5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학생, 노조원, 실업자, 연금생활자, 활동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집결했다.
유럽사회포럼은 1천 명에 이르는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진행됐고 많은 집회에서 발언 내용이 5개 언어로 동시 통역됐다. 우익들이 두려움을 느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이탈리아 정부는 사회포럼을 무산시키려고 애썼다. 사회포럼을 불법화하겠다는 협박도 했고, 무뢰한과 아나키스트들이 피렌체에 불을 지르려고 한다는 무서운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이런 겁주기는 다 허사였다. 베를루스코니는 사회포럼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와 노동조합의 후원 때문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 피렌체 시민들은 사회포럼 개최를 열렬히 환영했다. 토요일에 반전 시위가 벌어지자 주민들은 길가에 늘어서서 시위대를 향해 박수를 치고, 사회주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구호를 따라 외쳤으며, 음식과 와인과 물을 시위자들에게 건네 줬다.
사회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30개의 시위성 집회가 열렸고, 그보다 약간 작은 토론 집회가 1백60개, 그리고 80개의 워크샵이 열렸다. 이러한 집회들은 중요한 주제들을 모두 다뤘다. 세계화와 그 대안, 식량 생산, 유럽에서 극우파의 등장,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방어하는 운동, 언론과 문화에 대한 통제권 되찾기 운동 등 여러 쟁점을 토론하는 대규모 집회들 ― 참가자 수가 5백 명에서 5천 명에 이르렀다 ― 을 한 나절 사이에 두루 참가할 수 있었다.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이 우리에게 가하는 위협을 다룬 토론회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나머지 같은 집회를 두 차례로 나눠 진행해야 했고 그러고도 여전히 듣고 싶어하는 청중들이 더 있어 결국 한 번 더 열어야 했다. 금요일 저녁에는 각종 집회에 모두 1만 5천 명이 참가했다. 대부분의 집회에서는 청중들도 발언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집회는 비판받았고 주최측은 이후의 계획을 급하게 수정해야 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발언 내용에 동의하지는 않았고 발언 내용이 모두 같은 것도 아니었다. 현재의 체제를 내부에서 개혁하는 것이 가능한지 아니면 체제를 분쇄해야 하는지에 관해 뜨거운 논쟁들이 벌어졌다.
거대한 일보 전진
반자본주의 운동과 정당의 관계에 관한 논쟁도 있었다. 운동에서 지도가 필요한지, 지도는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전체 분위기는 일체감으로 충만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분위기는 더 급진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러한 집회들이 사회포럼의 전부는 아니었다. 집회가 열리는 동안 줄곧 다른 한 편에서는 사람들이 간행물을 판매했고, 비공식적인 소규모 토론회를 열거나 영상물을 상영했다. 한 거대한 강당에서는 수백 개의 노조, 정당, 운동단체들이 만든 2층 칸막이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유럽사회포럼 대의원들에게 싼값에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 명단을 구할 수 있었고, 사회포럼 배지를 달고 그런 식당에 가면 어김없이 종업원들이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사회포럼은 하루 12시간의 항의 집회였고, 대중적 대학이었으며, 토론과 친교의 자리였다. 그것은 예술의 장이었고 온갖 문제에 관해 몇 시간씩 얘기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첫날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둘째날은 거의 두 배나 더 많았다. 수만 명의 청년들이 몰려왔다. 피렌체 지역의 많은 대학에서 강의실들이 텅텅 비었다. 일부 대학은 휴교해야 할 정도였다. 사회포럼은 변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석 같았다. 그것은 전쟁 몰이를 혐오하고 불평등과 빈곤에 분노하며 “다른 유럽은 가능하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사회포럼의 구호에 공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초점을 제공했다.
유럽사회포럼은 1999년 말에 시애틀의 WTO 반대 시위에서 출발해 2001년 6월 제노바를 거쳐 발전한 반자본주의 운동의 거대한 일보 전진이었다.
변화의 속도와 범위가 워낙 엄청나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피렌체 사회포럼이 끝난 뒤부터 새로운 운동에 관해, 여러 해 동안 없었던 가능성을 제시하는 유럽의 새로운 좌파에 관해 얘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럽사회포럼은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세계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공포에 맞선 분노의 외침이자 그러한 공포를 끝장내기 위한 전투의 방향을 제시해 준 사건이기도 했다.
“우리는 피렌체에서 매우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운동의 진면모를 세계에 보여 줬습니다. 우리는 민주적이고 다양하며 평화적입니다. 미래는 우리편입니다.”
월든 벨로, 필리핀 활동가
“저는 9.11 테러 피해자 단체의 창립 회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이 전쟁[이라크 전쟁]이 저희들의 이름으로 치러져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 날 제 동생을 잃었기 때문에 여기 왔습니다. 우리는 전쟁에 반대해 더 자주 행진해야 합니다.”
컬린 켈리, 9.11 희생자 가족
“이 행사는 저에게 큰 영감을 줬습니다. 온갖 배경을 가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알고 그에 맞서 싸우는 방법을 배우려는 결의로 뭉쳤습니다. 저는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콜롬비아, 브라질, 심지어 미국에서 온 사람들까지 만났습니다. 저는 신자유주의, 전쟁, 민영화, 여성, 사실상 모든 문제를 다루는 대규모 포럼에 참가했습니다.”
세레나 살렐리아, 피렌체 시민
헤이즐 크로프트 - 유럽사회포럼 참가자
피렌체에서 벌어진 토론과 논쟁의 많은 부분은 이라크 전쟁 반대에 관한 것들이었다. 수천 명이 토론회나 워크샵에 몰려들어 단결되고 강력하며 대중적인 반전 운동을 건설하자고 결의했다. 압도 다수는 내년 2월 15일에 유럽 전역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자는 제안에 찬성했다. 그 시위의 목표는 대규모 반전 시위로 유럽의 모든 수도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반세계화 운동의 최고 유명인사 중 한 명인 수전 조지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초강대국이 세계 전략을 변경한 새로운 역사적 순간”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전 조지는 부시 행정부의 전략이 “훨씬 더 공격적입니다. 그것은 전 세계에 새로운 군사 기지들을 만들어 제국을 건설하려는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 세계 여러 곳에 주둔하려 할 것입니다. 미국은 경제 지배에 기초한 세계 제국을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반자본주의 운동을 전쟁과 제국주의에도 반대하는 운동으로 발전시키려는 결의가 넘쳐났다. 미국에서 온 마이클 앨버트가 다음과 같은 말로 그러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세계화의 군사적 날개를 펼치려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면 여러분은 기업 세계화에도 반대하는 것입니다. 기업 세계화에 반대한다면 자본주의에도 반대하는 것입니다.”
유럽사회포럼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1백50만 명이 반전 시위를 벌인 것과 9월 28일 런던에서 40만 명이 반전 시위를 벌인 것에 크게 고무됐다. 그것을 보여준 한 예는 영국의 전쟁저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 사무총장 린지 저먼이 2천 명의 청중 앞에서 연설할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린지 저먼은 최근 미국에서 열린 20만 명 규모의 반전 집회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경고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 더 힘든 과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지 W 부시가 미국 중간 선거에서 승리했으니 미국이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는 영국의 반전 운동이 그토록 강력한 이유는 “제국주의 문제에 대한 태도가 분명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 전쟁이 석유와 미국의 패권을 위한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미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탈레반과 사담 후세인도 동등한 적이라는 견해를 거부했습니다. 미국이야말로 대량 살상 무기를 독점하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전쟁에 관한 토론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베트남 참전 군인이었던 데이브 배일럭은 1960년대 말 미군들이 반전 운동에 참여했으며 이것은 미국 제국주의에 일격을 가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노련한 평화 운동가 리디아 메나파체는 미군 기지 철수를 위한 전투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호응을 얻었다. 그리스에서 온 마리아 스틸루는 이에 동의하면서 “그리스·터키·키프로스에도 중요한 군사 기지들이 있는데, 우리는 전쟁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호는 ‘기지를 폐쇄하라. 국경을 개방하라’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주장했다. “피렌체 유럽사회포럼 이후 반전 운동은 노동자 운동과 연관 맺어야 합니다. 그리스 정부는 전쟁 비용 때문에 연금과 임금 인상을 억제하면서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폭탄을 만드는 데 돈을 쓰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그 돈을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써야 합니다. 우리는 공장, 중·고등학교, 대학에 들어가 연계를 맺고 온 힘을 다해 조직해야 하며, 전쟁을 저지하고 우리의 세계를 되찾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반전 운동을 건설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전쟁 절대 반대’(No war at any price)의 아사드 레만은 영국의 전쟁저지연합이 개방적이기 때문에 그토록 크게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 반전 운동이 북아프리카인이나 무슬림 단체들과 연관 맺지 못한 점을 비판했다. 그는 “우파뿐 아니라 좌파에게도 이슬람 혐오증의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UN의 역할에 관해서도 약간 논쟁이 있었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프랑스 단체들의 연합에서 활동하는 아리엘 드니는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이 “미국에게 더 큰 힘을 실어 줄 것인가 아니면 UN에 더 큰 힘을 실어 줄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금융 투기 반대 운동 단체인 ATTAC의 스웨덴 지부 소속 한스 아브람손은 우리가 “새로운 전장”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UN 같은 기구를 무시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그 안에서 “도전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UN이나 유럽 지도자들이 부시에 반대할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더 많은 박수를 받았다. 독일 반전 운동가 토비아스 플루거는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같은 인물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슈뢰더는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전쟁 반대 입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만이 그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슈뢰더는 사실상 전쟁을 반대하지 않으며 부시에게도 반기를 들지 않을 것입니다.”
스페인에서 온 마누엘라는 “우리의 구호는 ‘UN이 지지하든 안 하든 전쟁을 결사 반대한다’여야 합니다. 옳지 못한 전쟁은 [UN이 지지하든 안 하든] 항상 옳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전쟁뿐 아니라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이탈리아 반전 운동가 삐에로 마에스트리는 이에 동의했다. “우리는 전쟁에 반대합니다. 거기에 조건이나 가정이 붙을 수는 없습니다. 이 전쟁은 부도덕하며 우리는 모든 전선에서 이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는 또 이렇게 강조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다함께 행동해 유럽 전역에서 반전 운동을 건설할 수 있는 기가 막힌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내년 2월 15일에 단결해야 합니다.”
찰리 킴버 - 유럽사회포럼 참가자
‘우리는 미래를 만들고 있다.’
운동에서 정당이 하는 역할을 둘러싸고 진정한 논쟁이 벌어졌다.
150야드(약 135미터) 길이의 거대한 창고 같은 방에 6천 명이 빼곡이 모여서 정당과 운동의 관계에 대해 토론했다. 금융 투기에 반대하는 운동인 금융거래과세 시민연합(이하 ATTAC)의 베르나르 까쌍은 ATTAC이 “사람들이 원하는 생태·사회 정책들을 실행하지 못한 기존 정당과 노동조합에 대한 환멸감에서 생겨났”다고 말했다.
“ATTAC은 하나의 정당도 아니고 이런저런 정당들의 도구도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우리 회원들 중에는 여러 정당 소속들이 많습니다. 만약 하나의 정당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회원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독일 녹색당 국회의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사회 운동이야말로 사회 변화의 진정한 원동력입니다. 어떤 사회 운동도 정부 안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기성 체제의 일부가 됩니다. 독일 녹색당이 발칸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지했던 것은 완전히 잘못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대통령 후보로 1백만 표 이상을 얻은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 운동가, 노동조합원, 특히 젊은이들은 모두 정당을 믿을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누가 여기에 책임이 있을까요? 전통적인 정당들은 사회 운동과 노동조합을 자기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작은 장난감이나 기껏해야 샌드백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 노동조합원들이 집권한 자기 정당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 것은 위대한 일보 전진이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반자본주의적 좌파를 모두 끌어들여 생태주의·혁명주의·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자유주의 전통에 개방적인 좌파의 좌파[진짜 좌파 ― 옮긴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영국의 반자본주의 운동 단체 연합체인 ‘저항의 세계화’(Globalise Resistance) 간사인 크리스 나인햄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운동과 정당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영국의 전쟁저지연합은 환경주의자들·반자본주의자들·사회주의자들·노동조합원들·많은 무슬림들·평화주의자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 조직의 단 한 가지 목표는 전쟁을 저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있는 자들에게 도전할수록 그들은 우리를 방해하려 할 것입니다. 유럽사회포럼에서 토론되는 모든 쟁점들은 서로 연관돼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분리된 여러 운동들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체제 전체에 맞서고 있습니다. 여기서 정당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급진적인 언사로 표를 얻은 다음 권력자들과 타협하는 그런 정당들은 안 됩니다. 제가 원하는 정당은 체제 전체에 맞서기 위해 여러 투쟁들을 연결시키려 하는 혁명적인 정당입니다.”
찰리 킴버 - 유럽사회포럼 참가자
피렌체의 많은 토론과 논쟁을 지배한 것은 이라크 전쟁 반대였다. 각종 모임과 포럼에 수천 명이 몰려들어 단결되고 강력한 대규모 반전 운동을 건설하기로 결의했다. 내년 2월 15일 시위를 유럽 전역의 단결된 시위로 벌이자는 데 압도 다수가 동의했다.
집회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사람은 이탈리아 재건공산당(리폰다치오네)의 파우스토 베르티노티였다. “체 게바라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정치는 지속적인 열정이다.’ 정치, 진정한 정치는 오늘날 적절한 장소, 바로 거리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운동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제노바의 국가 폭력이 이 운동을 찌그러뜨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1960년대 세대인 우리 자신의 운동들보다 더 현명했습니다. 이 운동은 폭력과 탄압의 악순환 속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운동과 연관 맺기를 원하는 정당들의 책임은 무겁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위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만 일정한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운동과 정당은 서로 다르지만 함께해야 합니다. 다른 운동 세력들이 동참하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정당이나 노조도 투쟁을 자기들의 힘만으로 치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탈리아사회포럼의 비토리오 아뇰레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럽사회포럼에서는 하나의 동맹이 만들어졌습니다.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해 단결했습니다. 저는 개량주의자가 아닙니다. 은행들·금융 기구들·다국적 기업들과는 결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IMF가 잠비아의 농민에게 굶어죽거나 아니면 유전자조작식품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상황에서 그 농민에게 투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유럽인들은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중심부에 있습니다. 우리는 작업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매운동을 통해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운동이 문제를 제기하면 정당이 해결책을 제시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최대한 광범한 단결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크리스 뱀버리와 아일랜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마니 홀보로우가 청중석에서 나와 연설하자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그들은 운동 내에서 여성 참여나 정치 권력 문제 같은 쟁점들에 대한 논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여기서 혁명적인 정당들이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찰리 킴버 - 유럽사회포럼 참가자
‘저항의 세계화’가 주최한 반자본주의 집회에서는 운동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과 운동의 목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프랑스 ATTAC의 지도자 크리스또프 아기똥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유럽사회포럼의 놀라운 성공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1960년대 같은 새로운 항의 운동 주기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9·11 이후 우리는 운동이 중단되지나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운동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전쟁을 다른 쟁점들과 연결시켰습니다. 주빌리2000 같은 운동들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도전한다는 생각도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운동은 전진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실업 문제나 노동자 투쟁 지원 같은 더 사회적인 쟁점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운동은 단순한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이 아니라 반자본주의 운동이 됐습니다.”
이탈리아 디소베디엔티(불복종) 운동의 루카 카사리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제적 투쟁의 새로운 주기는 혁명, 즉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노예제의 종식에 대한 열망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지금 끊임없는 전쟁 상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것은 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반영합니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전쟁을 이용해 시장을 지배해 왔습니다. 이제 체제는 도처에서 민간인들을 공격해 안정을 이룹니다. 우리는 전쟁을 벌이는 자들에 반대하는 능동적 불복종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우리는 똑같은 본질을 가진 두 가지 문제 ― 부시와 빈 라덴 ― 사이에서 함정에 빠져선 안됩니다. 그 둘은 근본주의자라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하나는 시장 중심주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대량 학살을 통해 증권 시장에 개입하려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앨릭스 캘리니코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집회들 덕분에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와 자주 운영 경제라는 전망을 얻었습니다. 3년 전만 해도 4만 명이 모여 세계를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바꾸기 위한 토론을 벌이는 것을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운동에서 배웁니다. 여기 핵심적인 교훈 네 가지가 있습니다. (1) 민주주의 ― 우리에게는 개방성·포괄성·자기 조직화·논쟁이 필요합니다. (2) 전쟁 ― 이것은 핵심 쟁점입니다. 왜냐하면 이 체제는 끊임없이 전쟁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쟁점은 우리 운동을 마비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몇몇 나라에서 우리는 떨쳐 일어나 대규모 반전 시위들을 조직했습니다. (3) 계급 ― 과거의 교훈을 망각한 채 기존 활동가, “대중”, 네트워크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고픈 유혹이 있습니다. 이것은 실수입니다. 시애틀·제노바·포르투 알레그레·바르셀로나 시위 같은 운동의 정점에는 반자본주의 네트워크와 조직 노동 계급이 함께 모였습니다. 운동의 미래는 이들을 끊임없이 결합시키는 데 달려 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이, “자본주의의 사슬은 그것이 만들어진 곳[생산 분야]에서만 끊어질 수 있습니다.” (4) 혁명 ― 이 말은 1980년대의 정치적 의제에서 완전히 사라진 단어입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바랄 수 있을 뿐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제 혁명이 다시 의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자기 해방과 아래로부터의 권력은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세계의 원칙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