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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쟁저지연합' 간사 겸 카이로 국제반전회의 부의장 존리즈 방한 강연:
반전 운동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

지난 토요일[전쟁 반대 국제 공동 행동의 날이었던 2월 15일]은 정말로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런던의 거리에는 2백만 명이, 로마에서는 3백만 명이, 그리고 스페인에서만 55개 도시에서 1∼2백만 명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이미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뛰어넘는 규모와 깊이를 지닌 국제 운동이 존재합니다.

물론 우리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저지해야 할 전쟁이 있고 굴복시켜야 할 호전적인 정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 정세를 살펴보면서 선진 자본주의 세계의 좌파들이 20년 동안의 후퇴를 마침내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이러한 운동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고, 왜 규모가 그토록 커졌으며, 그리고 어째서 이 운동이 탄생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근본적인 급진성과 정치적 깊이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반전 운동의 배경

먼저 말씀드릴 것은, 1999년에 시애틀에서 시작된 반세계화 운동이 없었다면 반전 운동이 결코 오늘날의 규모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반세계화 운동에서는 대기업들의 거대한 권력, 증대하는 빈부격차, 신자유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정책 일반의 실패,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불만이 시애틀 시위를 계기로 프라하·니스·제노바 등지의 점점 더 큰 시위들로 분출하면서 세계 곳곳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지배가 21세기의 대세일 것이라는 지배자들의 믿음을 위협했습니다.

그 운동은 자본주의의 중심부와 주변부를 막론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품어 온 뿌리 깊은 불만을 배경으로 탄생했습니다. 레이건과 대처 시절부터 20년 동안 사람들은 사회민주주의 복지 제도와 노동조합 등이 공격받고, 빈부격차가 증대하며, 의료 혜택과 자녀들의 교육 여건이 열악해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환멸과 정치 체제로부터의 소외감, 이 모든 것들이 시애틀 시위를 계기로 갑작스럽게 표면으로 분출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로 영국의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영국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영국 인구의 4분의 1이 집세를 제외하고 주당 59파운드[약 11만 원]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 가는 빈곤층입니다. 이들은 결코 소수가 아닙니다. 전체 인구의 25퍼센트라지만 노동계급 인구 내의 비율로 환산하면 매우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에 허덕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과 함께, 자기 주변에서 학교와 병원과 대중 교통 등의 질이 하락하는 것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은 비록 시위에 참가해 본 적은 없어도 반세계화 운동에 마음 속 깊이 공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9월 11일에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 공격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반세계화 운동에 의해 사회 분위기가 왼쪽으로 이동한 상태였고, 영국과 유럽 사람들은 9-11 테러에 대한 부시의 대응도 최소한 9-11 테러만큼이나 끔찍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했습니다.

물론 테러 공격의 피해를 직접 입은 미국에서는 사정이 조금 달랐습니다. 미국의 반세계화 운동은 9-11 이후 몇 개월 동안 궁지에 몰렸고 최근에야 가까스로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유럽 전역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는 저 자신과 반세계화 운동 단체인 ‘저항의 세계화’의 크리스 나인햄, 그리고 월간 〈사회주의 평론〉 편집자 린지 저먼, 이렇게 세 사람이 9-11 사건이 터진 지 열흘 뒤에 런던 중심지에서 가장 큰 강의실을 빌려 “전쟁을 저지하자”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1천4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에 2천 명의 청중이 모였습니다. 이것은 10년 만에 최대 규모의 토론회였습니다. 연사들은 강의실에 들어오지 못해 밖에 앉아 있던 4백여 명까지 들을 수 있도록 말을 세 번씩 반복해야 했습니다.

공동 전선 ― 넓은 외연, 깊은 내포

우리는 그 날 저녁 제러미 코빈 같은 노동당 좌파 소속 의원들, 조지 몽비오처럼 반세계화 운동에 몸담고 있는 저술가들, 그리고 전통적인 핵무장 해제 운동 지도자들과 각종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연사로 초청했습니다. 덕분에 반전 운동은 처음부터 광범한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슬람 공동체와 모스크의 대표들도 합류했습니다. 그들도 ‘테러와의 전쟁’이 이슬람교 신자들에 대한 인종 차별적 공격을 부르리라는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9-11 이후 몇 주 동안 그들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반전 운동에 합류하고부터 우리가 조직한 모든 대중 동원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한 주 뒤에 우리는 조직자 회의를 열었습니다. 한 1백 명쯤 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5백 명이 모였습니다. 우리가 그 해 10월에 최초로 주최한 시위에는 5만 명이 참가했습니다. 11월에 열린 아프가니스탄 전쟁 반대 시위에는 10만 명이 참가했습니다. 다음 해 3월에 팔레스타인의 예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반대하는 행진이 열렸을 때는 또다시 10만 명이, 한 달 뒤에는 2만 명이,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9월 28일 행진에는 40만 명이 모였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이는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행진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저지연합의 세 가지 기본 원칙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운동에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그 세 가지 원칙이란 ‘테러와의 전쟁’ 저지, 시민적 권리 수호, 인종 차별 반대입니다. 우리는 “간단한 것이 더 많은 것이다”라는 영국 격언처럼 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기 위해 운동의 요구를 단순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운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우리가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 내려 애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운동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다른 하나의 요인은, 바로 이 운동이 광범한 동시에 급진적인 성격을 띨 수 있다는 것을 사회주의자들, 특히 혁명적 좌파가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미 반자본주의 운동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 반전 운동이 단지 광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우 급진적이기도 한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방어하자는 얘기를 해도 사람들이 달아나지 않으리라고 믿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슬람주의[이슬람 원리주의]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슬람교 신자들을 환영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도 대열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조직 노동자들이 운동에 참가해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것이 운동의 저변을 좁히기는커녕 오히려 더 넓힐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저지연합이 자신을 반제국주의 단체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줄곧 이에 반대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반제국주의의 관점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도덕적인 이유에서나 비폭력 평화주의 관점에서 또는 종교적인 이유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전쟁저지연합은 이들도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운동 내부에서 좌파들이 반제국주의 관점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게끔 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반전 운동이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게 해 줬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본주의 경제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호 관계를 사람들에게 설명했고, 이제는 우리의 주장이 운동 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전제 조건이 아니라 설득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반제국주의 관점을 운동 참여의 전제 조건으로서 강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운동 속에서 그러한 관점을 명쾌하고 간단한 언어로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제가 지난 1년 남짓 동안 1백 개 가량의 모임에서 줄기차게 주장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뿐 아니라 조지 갤러웨이 같은 노동당 좌파 소속 의원들이나 이슬람교 지도자들도 똑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그 주장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것은 단지 조지 부시가 얼간이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조지 부시는 정말로 얼간이입니다.[폭소에 이어서 박수] 미국이 수입하는 상품이 대부분 외국 상품이라고 말하는 자는 분명 언어 감각이 심각하게 결여된 자겠죠. 자살 폭탄 테러범들을 재판에 회부하겠다는 것도 이성적이지 못한 말입니다. 이미 자살한 사람들을 무슨 수로 회부한다는 말입니까?[웃음 바다]

그러나 미국이 전쟁을 준비하는 이유는 단지 부시가 바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바로 부시 정부 자체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석유 자본가들의 정권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부시 집안부터가 텍사스 석유 자본가 가문이고, 럼스펠드는 악명 높은 엔론 회사의 이사이고, 딕 체니는 할리 버튼 석유 공급 회사의 이사이며, 콘돌리자 라이스는 과거에 셰브론 석유 회사에 너무나 훌륭하게 봉사한 나머지 셰브론은 유조선 한 척의 이름을 “S S 콘돌리자 라이스”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들도 좀 쪽팔렸던지 몇 달 전에는 다시 그 유조선 이름을 “보이저”로 바꿨습니다.[한바탕 웃음]

우리는 모든 집회와 거리 행진과 유인물 지면에서 이런 주장을 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런던 시장이 여론 조사를 한 결과 런던 시민의 33퍼센트인 2백30만 명이 전쟁의 목적이 석유에 있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이 캠페인은 전쟁에 대한 영국인들의 태도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보겠습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영국 여론은 2차 UN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전쟁을 지지하겠다는 입장과 그래도 반대하겠다는 입장이 대략 40퍼센트씩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2월 15일 시위 이후에는 UN의 승인이 있든 없든 전쟁에 무조건 반대하겠다는 입장이 10퍼센트 상승해 52퍼센트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이런 입장은 운동 내에서 좌파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이 부도덕하고 야만적인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이라크인 수십만 명이 희생당한다면 UN이 전쟁을 승인하기 하루 전이든 하루 뒤든 전쟁의 야만성에는 변함이 없으며, 따라서 UN의 승인은 결코 전쟁의 명분이 못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몇 주, 몇 달에 걸쳐 캠페인을 한 결과 우리는 마침내 대다수 영국인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운동을 건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반전 운동의 역동성

지금 영국의 정치 무대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타블로이드 일간지인 〈데일리 미러〉는 하루에 3∼4백만 부가 팔리는 영국 제2위의 신문이며 노동당을 지지하는 신문입니다. 〈데일리 미러〉 역시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9월 28일 집회 이후 그들에게 전화해서 서로 협력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데일리 미러〉는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 토요일[2월 15일] 집회 때 하이드 파크에서 사용한 대형 스크린을 구입하는 데 1만 파운드[약 1천9백만 원]의 자금을 후원했습니다.

2월 15일 시위 이틀 전에 〈데일리 미러〉는 4면짜리 호외를 인쇄했습니다. 호외는 시위 당일 행진 코스가 표시된 지도와 함께 시위 참가를 호소하는 15 가지 주장―제가 쓴 글입니다―을 실었습니다.

또한 〈데일리 미러〉는 시위에 사용할 팻말 2만 개를 제작했고 지금 보시는 이 포스터[포스터를 들어 보이며], 전쟁저지연합 로고와 〈데일리 미러〉 로고가 함께 그려져 있는 이 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데일리 미러〉처럼 대중적으로 보급되는 타블로이드 신문이, 그것도 노동당을 지지하는 신문이 우리 같은 단체와 협력해서 정부에 맞서 싸운 것은 유사 이래 처음입니다.[박수 갈채]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Stop the War” 티셔츠를 입고 계시는데, 그건 런던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캐서린 햄릿이 우리에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제가 영국을 떠날 때 영국에서 패션 주간 행사가 한창이었는데, 다음 날 모든 신문의 1면에는 그 티셔츠를 입고 있는 패션 모델들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물론 패션 모델보다는 여러분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토요일 시위가 열리기 한 주 전에는 영국에서 가장 큰 축에 드는 일부 노동조합들의 다섯 지도자들이 하원 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TUC[영국의 전국적 노조 연맹체] 헌장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TUC는 노동쟁의 돌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TUC 총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규정한 조항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그들은 그 규정에 따라 TUC 총회를 소집하려 애쓰고 있습니다.[박수 갈채]

지난 토요일의 시위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1건의 시위가 아니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런던에서는 두 건의 시위가 열렸습니다. 런던 경찰이 사상 처음으로 두 곳―템즈 강변과 런던 북부의 중심가―에서 동시에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허가를 내 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개의 시위 대열이 피카딜리 거리에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경찰과 협상했습니다. 그러자 런던 경찰청장은 “두 대열이 만나면 상상을 초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겠느냐”고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토요일에 일어난 엄청난 일이 이것만은 아닙니다. 〈가디언〉 지는 영국의 모든 골목에서 적어도 한 명씩은 그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제 평범한 영국인들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쟁점 못지 않게 중요한 한 가지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국민의 압도 다수가 반대하는 일을 정부가 계속 하려 들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영국 정부는 국민의 대다수를 상대로 한 논쟁에서 패배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 전쟁저지연합은 새로운 발의를 했습니다.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중앙 회관을 3월 12일에 빌리기로 예약했습니다. 3천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중앙 회관은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국회 의사당으로부터 불과 2백 미터 거리에 있고 의사당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국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도시, 노동조합 지부, 이슬람교 사원 등에서 대중 집회를 조직하고 있고, 각 단위에서 대표를 선출해 3월 12일에 웨스트민스터 중앙 회관으로 보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웨스트민스터의 전국 대표 모임을 민중 의회라고 부를 것입니다[환호, 박수].

우리는 노동조합들의 파업과 거리에서의 직접 행동, 그리고 민중 의회의 성사를 위해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지난 토요일에 우리가 하이드 파크에서 했던 말로 발제를 끝맺겠습니다. 전쟁저지연합이 토니 블레어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전쟁을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너를 끌어내리겠다.[환호와 박수]

● Q & A

Q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시위가 동시다발로 열렸는데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과연 반전 운동이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A 물론 우리는 가능하다면 전쟁을 사전에 막아 내고자 합니다. 또한, 그와 같은 우리의 바람이 현실이 된다면 그건 놀라운 성과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반전 운동은 전쟁이 일어난 뒤에 효과를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은 전쟁이 시작되고 몇 년이 흐른 다음에야 전쟁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도 그런 상황을 각오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의 조직가로서 활약했던 베테랑 활동가 타리크 알리가 말했듯이, 지난 토요일에 열린 시위들은 비교적 작은 시위조차도 베트남 전쟁 당시 열렸던 어떤 시위보다도 규모가 컸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말씀드릴 것은, 우리가 막아야 하는 전쟁이 단지 이라크 전쟁만이 아니라 더 크게는 부시가 말하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시작해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지난 주에 블레어가 하원에서 연설하고 있을 때 전쟁에 반대하는 어느 의원이 야유하는 투로 “이라크 다음은 어디냐?” 하고 소리쳤습니다. 섬뜩한 긴장이 감도는 순간 블레어가 돌아서서 “그것도 모르냐? 다음 차례는 북한이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라크 공격을 사전에 막아 낼 수 있을지 아직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을 사전에 저지하든 못 하든 간에 반전 운동을 계속 건설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전쟁광들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않는 한 오늘날의 세계에서 전쟁과 전쟁을 향한 노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Q 영국과 유럽의 반전 운동에 노동자들이 어떻게 참가하고 있는가? 반전 운동에 조직 노동자들을 연루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A 이탈리아의 반전 운동은 조직 노동계급의 참가율 면에서 단연 유럽 최고 수준입니다. 이것은 주로 제노바의 반자본주의 시위가 이탈리아 사회 전체를 급진화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두 차례의 하루 총파업이 있었고 1천7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거기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운동이 커지는 것이야말로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끌어당기는 가장 중요한 동력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물론 개별 노조 지부에 들어가 결의안을 채택하고 현장 조합원들의 참가를 호소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노조 지도자들에게도 다가가야 합니다. 영국에서 노조 지도자들의 참가는 일반 노동자들의 참가를 고무하는 등 여러 가지로 큰 힘이 됐습니다.

영국에서도 노동자들의 반전 행동이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16 명의 철도 노동자들이 전쟁 물자 운송을 거부한 것이 바로 그런 행동입니다. 고작 16 명의 노동자들이 도대체 뭘 믿고 그런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그들 뒤에 2백만 명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박수]

다시 말해, 운동을 되도록 크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토요일 시위가 열리기 전에 저는 영국의 우체국 노동조합 지도자와 얘기했는데, 그는 반전 운동의 성장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반전 운동의 인기가 아직 비틀즈 수준까지는 못 되고 오아시스 정도인 듯하다.” 하고 말했습니다. 토요일 시위가 끝나고 나서 저는 “이젠 비틀즈다.” 하고 그에게 말해 줬습니다.[웃음]

Q 민중 의회를 제안한 배경과 앞으로의 전망은 무엇인가? 민중 의회의 대표들을 어떻게 선출하고 소집하는가?

A 저도 민중 의회에 대해 자세한 것은 잘 모릅니다.[리즈가 서울로 떠나기 직전에 제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사람들은 영국 정부의 비민주성에 깊은 환멸을 품고 있고, 수십 년 동안 쌓여 온 기성 정치로부터의 소외감이 팽배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현 상황을 바꾸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제 생각에는 민중 의회가 성공을 거둘 것 같습니다.

저는 런던의 모든 집회에서, 영국 곳곳의 모임에서 발언할 때마다 언제나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가 싸운다고 해도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싸우지 않으면 반드시 진다는 보장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싸운다면 그만큼 이길 승산이 높아진다는 보장도 있습니다.

Q 토니 블레어가 지지율 하락을 무릅쓰면서까지 전쟁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토니 블레어가 국민의 반대에도 전쟁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영국 사람들이 종종 토니 블레어를 “부시의 푸들”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푸들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런 모욕을 들어야 하느냐.” 하고 대답합니다.[박장대소]

블레어의 호전적 태도에는 더 깊은 근원이 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제국을 모두 잃은 영국 지배계급은 미국과 동맹하는 것만이 새로운 국제 질서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영국 국가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처럼 초라해지지 않으려면 미국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미국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는 것이 대다수 영국인의 뜻에 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평범한 영국 노동자들과 영국 지배계급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블레어의 전쟁몰이는 제국을 잃은 영국의 세계적 지위를 지키기 위한 행동입니다. 영국은 제 부모 세대가 학교에서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다.”고 배우던 시절에 비해 많은 쇠퇴를 겪었습니다. 우리 세대는 “그건[해가 지지 않은 것은] 신(神)도 영국 사람들이 어두운 곳에서 무슨 나쁜 짓을 할지 몰라 불안해 했기 때문이다.” 하고 말하곤 했습니다.[웃음]

Q 운동이 성장할수록 국가의 탄압도 거세질 텐데 우리 운동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제노바 시위 이후에 반자본주의 운동 내에서도 비폭력 직접 행동 등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는데…?

A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으로 알려진 부시 정부의 전쟁몰이가 반세계화 운동에 더할 나위 없이 큰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그 교훈이란 국가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는 주요 기업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들의 조직된 폭력 기구이며, 따라서 노동계급의 이익과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기구입니다. 또한 국가는 국외의 적들을 상대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국내의 적들을 상대로 군사적 폭력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운동의 각 단계에서 충분히 광범하고 큰 규모로, 효율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국가의 공격에 대응할 태세가 돼 있어야 합니다. 제노바 시위 중 경찰이 카를로 줄리아니를 살해했을 때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다음 날 거리로 나올 것을 호소했습니다. 다음 날 사상 초유의 거대한 인파가 거리를 메웠고, 우리는 경찰 저지선을 힘으로 돌파해 베를루스코니 정부를 위기로 몰았습니다. 이러한 대응으로부터 거대한 총파업과 반전 운동이 탄생했습니다. 국가의 폭력에 대해 우리가 그 날 취한 대응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제 전쟁저지연합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영국 최초의 노동계급 운동인 차티스트 운동이 직면한 것과 같은 단계에 와 있습니다. 여성 투표권 운동, 미국 남부의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운 시민적 권리 획득 운동 등이 직면한 것과 같은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말콤 X가 말했듯이 우리는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싸워야 합니다. 파업과 시민 불복종까지 포함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국민의 의사를 거스르는 정부를 저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10월 31일을 시민 행동의 날로 잡았고, 그 날 하루 동안 의도적으로 1백50개의 크고 작은 도시와 지구들을 마비시켰습니다.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이라크에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할 경우 우리가 보일 대응을 미리 연습한 것입니다.

Q 비폭력 직접 행동의 하나로서 이라크 인간 방패 운동이 있는데, 전쟁저지연합은 이에 참가하고 있는지, 그런 방식의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A 인간 방패 운동 참가자들은 여러 면에서 용기 있고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수천 명의 유럽인들과 북미인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중동 사람들에게 줄 영향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전쟁은 바그다드 외곽이 아니라 워싱턴·런던·파리·로마 등의 거리에서 저지될 것입니다. 직접 총을 들고 싸우는 미군과 영국군 병사들은 이라크의 사막에 있겠지만, 그들에게 전투 명령을 내리는 자들은 워싱턴과 화이트홀[영국 정부청사 소재지]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들이 있는 곳이야말로 전쟁을 저지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장소입니다.

Q 독일과 프랑스의 정부들이 적어도 말로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왜 막상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반전 운동의 성장이 이탈리아나 스페인 또는 영국에 비해 더딘가? 스페인의 반전 운동이 특히 강력한 이유는?

A 반전 운동이 영국·이탈리아·스페인에서 가장 강력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곳에서 좌파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그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인 블레어·베를루스코니·아스나르, 이 세 사람이 미국의 전쟁을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독일의 반전 운동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독일인 가운데 75퍼센트가 전쟁에 반대하고 있고, 이 때문에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총리가 되기 위해 선거 운동을 마치 반전 운동처럼 해야 했습니다. 또한, 베를린에서는 지난 토요일에 50만 명이 행진했습니다.

다른 한편, 프랑스의 반전 운동이 약했던 이유는 프랑스 좌파가 처음에는 반전 쟁점을 회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반전 운동을 건설하기 시작했을 때조차 이슬람교 단체들을 배제하는 등 문제가 많았는데, 천만 다행이게도 최근에는 태도를 바꿨습니다. 덕분에 지난 토요일에는 프랑스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Q 2월 15일 집회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매우 인색했는데, 유럽 언론의 태도는 어땠는가?

A 제가 아까 말한 〈데일리 미러〉의 사례는 최근 들어서야 진전된 일입니다. 9월 28일에 런던에서 40만 명이 행진했을 때도 영국 언론들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좌파에게는 그것이 일상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으면 물론 좋지만,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입니다. 바로 우리가 언론의 기사거리입니다. 우리가 먼저 운동을 건설해야 언론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언론이 반전 주장을 이해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토론회를 열고 유인물을 뿌리고 노조 지부 회의에서 주장을 펼치는 등 우리만의 방식으로 강력한 반전 여론을 건설하면 결국에는 언론도 우리를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언론이 주목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으면 결코 운동을 건설할 수 없습니다.

Q 이 전쟁의 원인을 유로와 달러의 경쟁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달러의 단일 지배체제가 붕괴할 것을 우려하는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과 미국의 석유·군수 자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옳은 견해인가?

A 먼저 미국이 1945년에 그랬듯이 세계를 경제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당시에 미국의 제조업 생산량은 세계 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반면, 지금은 미국의 생산량이 25퍼센트만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 다음으로 군사력이 큰 9개 국가의 군사력을 모두 합친 것과 같은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군사력을 이용해서 리처드 펄, 폴 월포위츠, 도널드 럼스펠드 등 부시 정부 사람들이 “유라시아 대륙”이라고 부르는 대상을 확보하려 합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서쪽의 발칸 반도에서부터 동쪽의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매우 중요한 중동 지역과 카스피 해 연안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제2의 아프리카[사실은 중앙아시아] 쟁탈전”을 주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 쟁탈전에 기꺼이 뛰어들고 싶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는 이미 이라크에 자신들의 이권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전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독일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재편에 굳이 참여할 마음이 없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UN 내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있고, NATO도 지난 주에 터키 문제를 놓고 분열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21세기에도 주도권을 갖기 위한 중대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들의 분열이 우리에게는 기회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Q 부시 정부의 중동 전략은 무엇인가?

A 중동에서 석유가 발견되고 서방이 석유에 의존하게 되고부터 서방 국가들에게 중동 전략은 결정적으로 중요해졌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연합군 최대의 전리품은 아랍의 석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의 중동 전략은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소속 공화국들과 발칸 반도까지 포함하는 더 광범한 지역에 대한 전략의 일부입니다. NATO는 냉전이 끝난 후 이 지역 안쪽으로 몇 천 킬로미터나 더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폴 월포위츠와 럼스펠드 같은 자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에 이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려고 워싱턴에서 10년 동안 수많은 정책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베를린 장벽 붕괴에 따른 충격파의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는 과정입니다. 주은래가 “프랑스 혁명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느냐”는 질문에 “지금 대답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대답했듯이, 베를린 장벽 붕괴에 따른 장기적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세계의 양대 제국 가운데 하나가 붕괴했고, 미국은 이처럼 커다란 제국의 영역을 새로운 질서에 편입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Q 반전 운동이 워낙 대중적이다 보니 그 안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이 운동이 전쟁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심지어 근본적 사회 변혁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능할까? 그 안에서 좌파는 어떤 구실을 해야 하는가?

A 물론입니다. 제가 처음에 설명했던 그 모든 이유 때문에 현재 반전 운동은 다양한 사회·경제 쟁점들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신자유주의의 본질,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 등등 다양한 쟁점들이 반전 운동을 통해 표출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쟁점들을 함께 다룬다는 사실이야말로 반전 운동에 정치적 급진성과 깊이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나의 특정한 쟁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역량을 이 쟁점 하나에, 이 전장에 결집시키고 있습니다. 그들 정부의 운명이, 21세기의 경제 정책과 군사 전략에 관한 그들의 구상 전부가 이 전장에서 판가름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여기에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합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모두 단지 전쟁을 저지하기 위해서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서도 지금 이 싸움이 결정적 전투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지금 이 싸움이 결정적 전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시민적 권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지금 이 싸움이 결정적인 전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지금 이 싸움이야말로 결정적 전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여기서, 바로 지금 그들을 굴복시킨다면 다른 모든 전선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싸움이든 이런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미국 남북전쟁 중에 벌어진 게티스버그 전투에 관한 영화를 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영화 초반에 보면 북부 연합군의 기병대 지휘관이 게티스버그의 지형을 살펴보더니 “여기 지형은 하루 종일 본 것들 중 최고로 유리한 지형이군. 여기서 이기면 전쟁의 승패를 역전시킬 수 있겠다.” 하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지형은 제가 20년 동안 본 것 중 최고로 유리한 지형입니다. 우리에겐 20년 만에 탄생한 가장 큰 대중 운동이 있는 한편, 저들은 분열해 있고 동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싸움에 임한다면 적들의 전선을 깨뜨릴 수 있으며 좌파가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좌파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정세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전투가 어디서 벌어지고 있고,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투쟁에서 이길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과 수단을 제시하며, 결전의 자리에 힘을 결집시켜서 승리하는 것입니다.[우레와 같은 박수]

여러분이 사회주의 조직으로서, 노동계급 운동의 일부로서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에 겪어 온 눈부신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 순간들을 지켜보면서 여러분의 용감한 투쟁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다가올 몇 주 동안 저희가 그 때 여러분께 진 빚을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박수 갈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