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배자들은 야만적이다... 그러나 취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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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배자들은 야만적이다... 그러나 취약하다
아룬다티 로이
1988 년 7월 3일, 페르시아만에 정박중이던 미국 순양함 빈센스 호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이란 여객기 한 대를 격추시켜 승객 290명을 살해했습니다. 당시 한창 대통령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던 조지 부시 1세는 그 사건에 대한 논평을 요청받고 이렇게 꽤나 미묘한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미국을 대신해 사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사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 이 말은 새로운 미국 제국에게 딱 들어맞는 격언입니다. 그 말을 약간 바꾸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사실이라는 것은 우리[미국]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고 말입니다.
미국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거짓과 속임수의 중층 구조 위에 구축된 것이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런 거짓과 속임수를 조율했고, 상업 언론은 이를 충실하게 부풀렸습니다.
이라크와 알카에다가 연계됐다는 거짓말 외에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광기 어린 조작도 있었습니다. 조지 부시 2세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는 것은 “자살 행위”일 것이라고 말하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의도가 있는 광기였습니다. 부시는 새로운 병에 담긴 낡은 독트린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습니다. 그것은 선제 공격 독트린, 즉 미국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며 그것이 곧 공식이라는 독트린입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이겼지만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기 전에 먼저 숨겨 놓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더 골치 아픈 문제는, 자기 나라가 침공당했는데도 사담 후세인이 그런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라크에 화학무기나 핵무기가 없었다면? 알카에다와 연관이 없다면?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만큼이나 사담 후세인도 미워한다면? 부시 2세는 사담 후세인이 “살인마 독재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라크는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는 논리였습니다.
40년 전 존 F 케네디 정부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바그다드의 정권 교체에 일조했다는 사실 따위는 잊어버리라는 거죠.
1963년에 이라크에서는 쿠데타가 성공한 뒤 바트당이 집권했습니다. 새로운 바트당 정권은 CIA가 건네준 명단을 이용해 좌파로 알려진 의사·교사·변호사·정치인 수백 명을 체계적으로 살해했습니다.
1979년 바트당 내의 분파 투쟁 뒤에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대통령이 됐습니다. 1980년 4월 후세인이 시아파를 학살하고 있을 때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과 이라크의 이익이 근본적으로 상충하는 것은 전혀 없다” 하고 말했습니다.
워싱턴과 런던은 공개적으로 또는 비밀리에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습니다. 그들은 후세인에게 돈과 장비를 대주고 그를 무장시켰으며 그에게 민군 겸용 물질을 제공해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은 후세인이 이란과 8년 동안 전쟁을 벌이도록 지원했으며 1988년 할라브자 마을에서 쿠르드족을 독가스로 살해했을 때도 이를 지원했습니다. 이런 범죄들은 14년 뒤에 다시 부각돼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용됐습니다.
요점은, 사담 후세인이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공개적인 암살 시도(“충격과 공포” 작전의 서막)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악마였다면 그를 지원한 자들 역시 전쟁 범죄로 처벌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왜 악명 높은 남녀 현상수배범 카드에 미국과 영국 정부 관리들의 얼굴은 없습니까? 그것은 제국에 관한 문제라면 사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일이다.” 하고 말합니다. 사담 후세인은 지금 당장 처단해야 할 괴물이며 오직 미국만이 그를 처단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아주 유용한 책략입니다. 현재의 절박한 도덕성을 이용해 과거의 극악한 범죄와 미래의 사악한 음모를 얼버무리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파나마, 니카라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그 명단은 끝이 없습니다. 장차 야만적인 정권이 될 후보들은 지금도 많습니다. 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 터키,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공화국들.
제국은 활동중이고, 민주주의는 교활하고 새로운 전쟁의 구실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데이지 커터[전술 핵무기에 버금가는 대형 폭탄]가 민주주의를 여러분 집 현관 문 앞까지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이 신제품을 시험하는 특권을 위해 치러야 할 조그만 대가일 뿐입니다. 그 신제품은 제국과 민주주의가 혼합된 인스턴트 식품입니다.(요리법은 먼저 끓인 다음 석유를 넣고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점령한 것이 전 세계에 TV로 생방송됐습니다. 7천 년 전의 고대 문명이 폐허가 됐습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재건·인도 지원처는 보호해야 할 주요 유적 16개의 목록을 국방부에 전달했습니다. [이라크] 국립 박물관은 그 목록에서 두번째였습니다. 그러나 국립 박물관은 약탈당했을 뿐 아니라 더럽혀졌습니다.
그 곳은 고대 문화 유산의 보관소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이라크는 메소포타미아[“두 강 사이에 있는 땅”이라는 뜻]라는 강(江) 유역의 일부였습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번성한 이 문명은 세계 최초의 문자·달력·도서관·도시, 그리고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를 탄생시켰습니다.
바빌론의 함무라비 왕은 시민들의 사회 생활을 다스리는 성문법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버림받은 여성·매춘부·노예, 심지어 동물의 권리도 보장한 법전이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법치의 탄생이었을 뿐 아니라 사회 정의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불법적인 전쟁을 감행하고 정의를 기괴하게 무시하기 위해 이보다 더 부적절한 곳을 선택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재건·인도 지원처가 제시한 16개 유적 중 맨 나중 건물이 바로 [이라크] 석유부 청사였습니다. 그러나 미군의 보호를 받은 유일한 건물이 바로 석유부 청사였습니다. 점령군은 무슬림 나라에서는 명단을 읽는 순서가 위아래로 뒤바뀐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이라크 국민의 안전 따위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이라크의 문화 유산이나 몇 안 되는 사회 기반 시설의 안전 역시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유전의 안전은 그들의 관심사였습니다. 당연히 그랬습니다. 미군은 침공을 시작하기 거의 직전부터 유전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5월 2일 부시 2세는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바라면서 선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십중팔구 역사상 최단거리 비행 기록을 세운 게 분명한 군용 제트기가 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호에 착륙했습니다. AP 통신은 항공모함이 육지에서 너무 가깝게 있어서 정부 관리들이 “부시가 연설할 때 뒷 배경으로 샌디에고 해안이 아니라 바다가 나올 수 있도록 카메라 각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 큰 배의 위치를 조정했다”는 점을 시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군 복무 경험이 전혀 없는 대통령 부시는 색다른 옷차림으로, 즉 미군 전투기 조종사 복장, 전투화, 비행용 구글, 헬멧을 착용한 채 전투기 조종석에서 내려왔습니다. 환호하는 군인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한 뒤 부시는 공식적으로 이라크 전쟁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이번 승리가 “아직 끝나지 않은 … 테러와의 전쟁에서 하나의 승리일 뿐”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직설적으로 승리를 선언하지 않는 것은 중요했습니다. 제네바 협약에 따르면,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는 점령군의 법률적 의무, 즉 부시 정부가 결코 부담하고 싶어하지 않는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04년 대통령 선거가 멀지 않은 상황에서, 주저하는 유권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또 다른 승리가 필요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리아가 다음 먹잇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선거 운동과 전쟁, 민주주의와 과두제의 차이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듯합니다.
갤럽 인터내셔널의 여론 조사를 보면, 유럽의 어떤 나라에서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일방으로” 벌이는 전쟁에 대한 지지율이 11퍼센트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헝가리, 기타 동유럽 나라들의 정부는 자국 국민 다수의 견해를 무시하고 불법적인 침공을 지지한 것 때문에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합니까? 신(新) 민주주의? (영국의 신노동당처럼?)
그런 정부들이 돈에 매수되는 것과 사뭇 달리, 침공 몇 주 전인 2월 15일에 대중의 도덕성이 세계 역사상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습니다. 즉, 다섯 대륙에서 1천만 명 넘는 사람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행진을 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무시당했습니다.
현대 세계의 금과옥조인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기는 심각합니다. 온갖 종류의 불법 행위가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허한 말, 내용이나 의미가 전혀 없는 빈 껍데기나 다름없게 됐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유 세계의 매춘부입니다. 거리낌없이 옷을 입고 벗으며 온갖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매춘부, 제멋대로 이용하고 욕보일 수 있는 그런 매춘부 말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것을 파괴하는 방법을 알게 된 신자유주의 자본가들의 수중에 있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도구들, 즉 “독립적”인 사법부, “자유”로운 언론, 의회 등에 침투하고 그런 도구들을 자기네 마음대로 조종하는 기술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기업 세계화라는 프로젝트는 규범을 파괴했습니다. 자유 시장이 자유 선거, 자유 언론, 독립적 사법부를 최고 입찰자에게 팔리는 상품으로 전락시켰을 때 그런 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됐습니다.
민주주의는 제국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에둘러 표현한 말이 됐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기구는 사실상 파괴됐습니다. 정치인들, 언론 재벌들, 판사들, 강력한 기업 로비들, 정부 관리들은 복잡하고 비밀스런 구조 속에서 서로 얽히고설켜서, 의회 민주주의의 구조적 기초를 이루는 헌법·사법부·의회·정부, 그리고 아마 가장 중요하게는, 독립적 언론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를 완전히 잠식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유착은 미묘하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게 됐습니다.
예컨대,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의 주요 신문·잡지·TV 방송국·출판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클리어 채널 월드와이드 주식회사가 미국 라디오 방송국의 최대 소유주입니다. 그 회사는 1천2백 개가 넘는 채널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수십만 달러를 부시의 선거 자금으로 기부했습니다.
그 회사는 전쟁에 찬성하는 “나라 사랑 집회”를 미국 전역에서 조직했고 특파원들을 파견해 그런 집회들이 마치 뉴스 속보라도 되는 양 보도하게 했습니다.
조작된 동의의 시대가 조작된 뉴스의 시대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머지않아 언론사 뉴스 편집실은 가면을 내던지고 언론인들 대신 영화 감독들을 고용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미국의 연예·오락이 점점 더 폭력적·호전적으로 돼 가고 미국의 전쟁이 점점 더 오락처럼 돼 가듯이, 몇 가지 재미있는 영역 침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군 중부사령관 토미 프랭크스가 “충격과 공포” 작전에 대한 뉴스 브리핑을 진행했던 25만 달러(약 3천만 원)짜리 방송 세트를 카타르에 건축한 설계자는 디즈니, 엠지엠(MGM)[미국의 메이저 영화사], 굿 모닝 아메리카[ABC의 아침 뉴스 정보 프로그램]의 세트들도 건축했습니다.
언론 자유라는 이상을 가장 열렬하게, 목청 높여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리고 (최근까지) 언론 자유를 보호하는 가장 정교한 법률을 갖고 있던 미국이 바로 그 자유가 표현될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한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입니다.
이상하게 뒤틀린 방식으로, 미국에서는 언론 자유를 법적·개념적으로 옹호하는 목소리와 분노가, 그 자유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급속히 약화시키는 과정을 은폐하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미 국의 언론 제국은 극소수의 패거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국무장관 콜린 파월의 아들이자 연방통신위원회 의장인 마이클 파월은 통신 산업에 대한 규제를 훨씬 더 완화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 되면 통신 회사의 지배력은 훨씬 더 강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정당하게 선출되지 않은 한 사람이 이끄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입니다. 미국의 대법원이 그에게 대통령직을 선사했습니다. 이 그럴싸한 가짜 대통령직을 위해 미국 국민들이 치른 대가는 무엇입니까?
조지 부시 2세의 임기 3년 동안 미국에서는 2백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터무니없는 군비 지출, 기업 복지[기업에 대한 보조금과 각종 세금 혜택], 부자들에 대한 세금 감면은 미국 교육 제도의 재정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미국 주(州) 의회 회의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02년에 미국의 각 주는 공공 서비스·보건의료·복지수당·교육비를 4백90억 달러(약 58조 원) 삭감했습니다.
그들은 올해 또다시 2백57억 달러(약 30조 원)를 삭감할 계획입니다. 둘을 합치면 약 7백50억 달러나 됩니다. 처음에 부시가 이라크 전쟁 비용으로 의회에 요구한 예산은 8백억 달러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전쟁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겁니까? 미국의 빈민들입니다. [곧,] 미국의 학생들, 실업자들, 편모들, 병원과 자택에서 치료받는 환자들, 교사들, 보건의료 노동자들입니다.
그리고 누가 실제로 전쟁터에서 싸웁니까? 이 또한 미국의 빈민들입니다. 이라크의 사막에서 뜨거운 햇볕에 시달리는 병사들은 부잣집 자녀들이 아닙니다.
자식을 이라크 전쟁터에 보낸 국회의원은 상하 양원을 통틀어 오직 한 명뿐이었습니다. “자원병”으로 이루어진 미국 군대는 사실 돈벌이와 교육 기회를 찾고 있는 가난한 백인·흑인·라티노·아시아인에 대한 빈곤층 모집제에 달려 있습니다.
연방 통계를 보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흑인]이 전체 군 병력의 21퍼센트, 육군의 29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 전체 인구의 1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군대와 감옥에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수가 불비례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마 우리는 긍정적인 견해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효과적인 차별 철폐 조치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올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탄생 74주년 기념일에 대통령 부시는 미시간 대학교에서 차별 철폐 조치 프로그램이 흑인들과 라티노들에게 유리하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차별 철폐 조치가 “분열적”이고 “불공정”하며 “위헌”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지 부시를 당선시키기 위해 플로리다 주 유권자 명부에서 흑인들을 배제하려는 성공적인 노력은 [그에게] 당연히 불공정하지도 않았고 위헌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예일 대학교 출신 백인 학생들[부시는 예일 대학을 졸업했다]을 우대하는 것이 차별 철폐 조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가 전쟁 비용을 치르는지 알고 있습니다. 누가 전쟁터에서 싸우는지 압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득을 보게 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1천억 달러(약 11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이라크] 재건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미국의 빈민과 실업자와 환자들이 그럴 수 있을까요? 미국의 편모들이 그럴 수 있을까요? 아니면 미국의 흑인과 라티노 소수 인종들이 그럴까요?
조지 부시는 우리에게 “이라크 자유” 작전이 이라크의 석유를 이라크 국민들에게 되돌려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라크의 석유를 다국적 기업들의 손을 거쳐서 이라크 국민들에게 되돌려 주겠다는 말입니다. 벡텔·셰브런·핼리버튼 같은 다국적 기업들 말입니다.
또다시, 기업·군대·정부의 지도자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것은 소수의 폐쇄적 서클입니다. 그들이 얽히고설킨 것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국방정책위원회는 국방부에 조언하라고 정부가 임명한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워싱턴에 본부가 있는 공적 신뢰도센터는 국방정책위원 30명 중 아홉 명이 2001년과 2002년 사이에 7백60억 달러(약 90조 원) 상당의 군수 계약을 체결한 회사들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인 잭 시헌은 예비역 해병대 장성인데 거대 다국적 건설회사인 벡텔의 수석 부사장이기도 합니다. 그 회사의 사장 라일리 벡텔은 대통령 직속 수출위원회 위원입니다.
벡텔 그룹의 이사인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는 이라크해방위원회의 고문단 의장입니다.
〈뉴욕 타임스〉가 슐츠에게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벡텔이 그로부터 특히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벡텔은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회사의 전형입니다.”
벡텔은 6억 8천만 달러(약 8천억 원)어치의 이라크 재건 사업 계약을 따냈습니다. 응답정치센터에 따르면, 벡텔은 공화당 선거 운동 자금으로 수십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엄청난 증오심 때문에 하찮게 보이는 이런 사기·협잡을 은폐하는 것이 바로 미국의 반(反)테러 입법입니다.
2001년 10월에 통과된 미국의 애국법은 전 세계 여러 나라의 비슷한 반테러 법안들의 청사진이 됐습니다.
그 법은 하원에서 찬성 337 대 반대 79로 통과됐습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그 법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법안을 낭독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의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애국법은 체계적인 자동 감시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 줍니다. 그것은 시민 불복종 행위를 법률 위반으로 해석할 여지를 만들어 언론과 범죄 행위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비합법 전투원”으로 무기한 감금된 사람들이 수백 명이나 됩니다.(인도에서는 그 수가 수천 명에 이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지금 팔레스타인인 5천 명이 감금돼 있습니다.)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은 당연히 어떤 권리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그들은 워싱턴의 오랜 우방 피노체트 장군 집권 당시 칠레 국민들처럼 그저 “사라질” 뿐입니다.
1천 명 넘는 사람들―그 중 다수는 중동 출신 무슬림이었습니다―이 감금됐고, 일부는 변호사를 접견할 수도 없었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전쟁의 실제 비용을 치르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자유를 얻기 위한 이런 “해방” 전쟁들의 비용 또한 치르고 있습니다. 평범한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들의 “신(新) 민주주의”를 위해 치르는 대가는 자국 내 진정한 민주주의의 사망입니다.
한편, 이라크는 “해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아니면 그들은 처음부터 “자유주의화”를 의미했던 것일까요?)
〈월 스트리트 저널〉은 “부시 정부가 미국을 거울 삼아 이라크 경제를 재건하려는 포괄적인 계획을 마련했다.” 하고 보도했습니다.
이라크의 헌법이 다시 정초되고 있습니다. 미국식 자본주의에 적합하게 이라크의 통상법·세법·지적재산권법이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국제개발청은 이라크의 도로 건설·상하수도·교과서 배포·이동통신망 등 다양한 재건 사업 계약 입찰에 미국 기업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부시 2세가 미국 농부들이 전 세계를 먹여 살리기를 바란다고 말한 직후에, 세계 최대의 곡물 수출업체 카길의 전직 고위 임원이었던 댄 앰스터츠가 이라크 농업 재건 책임자로 임명됐습니다.
신(新) 민주주의?
옥스퍼드 기근구조위원회 정책국장 케빈 왓킨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댄 앰스터츠를 이라크 농업 재건 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사담 후세인을 인권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라크의 석유 관리 업무 책임자 후보 명단에 오른 두 사람은 전에 셸·브리티시 피트롤리엄·플루어[이라크 수주 분야에서 벡텔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미국의 플랜트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플루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노동자들이 제기한 법정 소송에 휘말려 있습니다. 그들은 플루어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자신들을 착취하고 잔인하게 탄압했다며 제소한 것입니다. 물론 셸은 나이지리아의 오고니 부족 토지를 황폐하게 만든 회사로 유명합니다.
톰 브로코(미국의 유명한 TV 앵커 중 한 명인)는 그 과정을 은연중에 분명히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 중 하나는 이라크의 기반 시설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몇 일 뒤에 우리가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점령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라크는 신(新) 민주주의를 위한 준비가 다 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레닌이 곧잘 물었던 것처럼,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미국의 전쟁 기구에 성공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재래식 군사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테러 공격은 미국 정부가 그 지배력을 더한층 강화하기 위해 갈망해 온 기회를 제공할 뿐입니다.
[테러] 공격이 벌어지면 며칠 내로 애국법 2탄이 통과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군사 공격에 반대하면서 그것이 테러 공격의 가능성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토끼 브레어를 가시덤불 속에 던져버리겠다며 위협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가 작성한 문서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테러] 공격 가능성에 대한 정보 기관의 경고가 무시당했음을 밝혀 낸 상원의 9·11 관련 보고서를 정부가 은폐하는 것도 테러리스트들과 부시 정권이 하나의 팀을 이뤄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물론 그들은 짐짓 아닌 체하지만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집단적 유죄와 집단적 처벌이라는 교의를 신봉합니다. 그들의 행위는 서로 상대방에게 커다란 이득을 가져다 줍니다.
미국 정부는 이미 편집증적 공격 가능성의 범위와 정도를 확실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인간 심리에서 편집증적 공격은 보통 신경 불안정의 지표입니다. 국가들의 심리도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국이 편집증적인 이유는 말랑말랑한 급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본토”는 국경 순찰과 핵무기로 방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경제는 전 세계와 연결돼 있습니다. 제국의 경제적 전초기지들은 노출돼 있고 취약합니다.
우리의 전략은 제국의 작동 부분들을 고립시키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고장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표적도 결코 작지 않으며 어떤 승리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제국과 그 동맹국들이 가난한 나라들에 강요한 경제 제재라는 생각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와 전 세계의 활동가들이 아파르트헤이트 기구들을 표적으로 삼았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는 전후 이라크 재건 사업 계약을 따낸 모든 기업들에게 민중의 제재라는 체제를 강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업들을 모두 거명해야 하고 폭로해야 하며 그 제품은 사지 말아야 합니다. 업계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충격과 공포” 작전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또 다른 긴급한 도전은 상업 언론의 편집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안 정보의 세계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한 전투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정부도 우리에게 거저 자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자유는 우리가 정부를 쥐어짜서 따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단 우리의 자유를 넘겨주고 나면 그것을 되찾기 위한 전투는 혁명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대륙 모든 나라에서 전개해야 하는 전투입니다. 그 전투에서는 국경선을 인정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성공하려면 우선 여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바로 이 곳 미국에서 말입니다.
미국 정부보다 더 강력한 기구는 미국의 시민사회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우리 모두는 종속국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결코 무기력하지 않지만 여러분은 근접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국의 궁전과 황제의 방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제국의 정복은 여러분의 이름으로 자행되며 여러분은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격납고에서 부두까지 미사일 운반을 거부하십시오. 국기 흔들기를 거부하십시오. 전승 기념 행진을 거부하십시오.
고립 혹은 친구
여러분 수십만 명은 여러분에게 복종을 강요한 무자비한 선전 공세를 이겨 냈으며 여러분 자신의 정부에 맞서 적극적으로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을 휩쓴 애국주의의 광기 속에서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팔레스타인에서 자신의 조국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만큼이나 용감한 행위였습니다.
여러분이 이 전투에 참가한다면, 수십만 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나머지 전 세계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야만적이지 않고 신사적인 것이, 겁에 질리지 않고 안전한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고립되지 말고 친구가 되십시오. 미움받지 말고 사랑받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대통령과 견해가 다른 게 싫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위대한 국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위대한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