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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하철 파업 대오는 늘고 있다
안전 인력 확충, 2인 승무 도입 등을 요구하는 인천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이 나흘을 넘기고 있다.
언론의 악선전과는 달리 파업 대오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다. 450명 정도로 시작된 파업 대열은 지금 650명으로 늘어 났다.
파업 대열에 합류하는 노동자들이 늘수록 열기도 높아지고 있다. 26일 합류한 한 노동자는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해서 두려웠으나 싸우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게 더 두려웠다”고 말했다.
주말에 결혼식이 예정돼 있는데도 파업 농성에 참가하고 있는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사비를 털어 6백여 명의 파업 참여자 전체에게 피로 회복제를 돌리는 노동자도 있다.
파업은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다 같이 모일 수나 있었나. 교대 근무라 체육대회도 한번 못했는데. 파업 하니까 서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노동자들은 대구, 부산 지하철 타결 소식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시작한 싸움인데 이대로 접을 수 있나. 이대로 1주일 정도만 더 버티면 완전히 이기지 않겠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열차운행에 차질이 생기면 사측도 별 수 있겠나.”
파업 첫날 100퍼센트 가까웠던 열차 운행률은 75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운행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게 노동자들의 지적이다. “대체 기관사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한다. 쉬는 시간도 없이 소변도 열차 안에서 해결하고 있으니, 아마 지쳤을 거다. 드디어 파업의 효과가 나오고 있다.”
인천지하철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싸우자, 공사측은 파업 가담자를 전원 징계처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6일 오전에는 지도부 4명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경찰력 투입도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끝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노동자들은 “평조합원 뿐만 아니라 지도부에게 손 끝 하나 대지 못하도록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천지하철 노동자들의 투쟁이 철도 파업과 만난다면, 시민 안전을 위한 궤도노동자들의 투쟁은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박설
에바다
1997년 김대중은 ‘국민과의 대화’ 때 에바다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에바다 사태는 완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비리의 원흉인 옛 재단의 최성창은 농아원생들에게 1년 동안 사용해야 하는 1백억 원을 검은 돈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돈은 최성창 일가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됐고 평택의 토착 권력들을 비롯해 평택 시청, 경찰, 검찰 등 관계 공무원과 정치인에게 비리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흘러들어 갔다.
농아원생들은 봉재공장에서 한 달에 돈 몇만 원을 받으며 강제 노역을 해야 했다. 나이 어린 농아원생들은 배고픔을 못 이겨 개밥을 훔쳐먹는 지경이었다. 의문사 사건도 7건이나 벌어졌다. 근처 하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한 여성 농아원생은 임신한 상태였다.
7년이라는 긴 투쟁 덕분에 민주 이사가 다수가 되면서 지난 6월 5일에는 에바다 완전 정상화를 위한 문화제가 치러졌다. 그러나 최성창의 측근들은 문화제를 방해했고, 농아원생들은 감시 때문에 기숙사방에서 창문 너머로 문화제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 우리와 함께하지 못했다.
최성창은 에바다를 다시금 자기 손에 넣기 위해 용역 깡패 40여 명을 쇠파이프로 무장시켜 6월 7일 새벽에 에바다 농아원을 침탈했다. 이 사실을 안 지역 노동자와 학생들이 저항했고, 이 과정에서 2명이 다쳤다.
경찰에 연행된 용역 깡패는 불법을 저지른 장본인인데도 불구속으로 풀려났다. 도경이 평택 경찰의 비리를 인정하고 지휘권을 박탈했는데도 평택 경찰은 아직까지 최성창의 만행을 엄호하고 있다. 최성창 일당들은 여전히 기습 침탈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농아원생들을 제대로 된 환경에서 교육하기 위한 민주 이사들과 농아원 교사들의 노력은 실로 눈물겹다. 마지막 요새를 지키는 용사들처럼 낮에는 공사를 하고 밤에는 조를 짜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장애인 시설은 장애인들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수단이 되고 있고, 자본가들의 이윤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 에바다 투쟁에 화물노동자, 기아, 쌍용, 노동자와 학생, 농민 등이 결합하고 있다. 에바다 투쟁을 완전 승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연대가 중요하다. 에바다 완전 정상화를 위해, 450만 장애인들의 인권 쟁취를 위해 공장 벽을 넘어선 투쟁을 전개하자.
이우상(기아자동차 노조원)
6월 20일에 부산지하철 노조는 5년 만에 파업에 들어갔다.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가기 전인 6월12일 파업 결의 대회에서 “우리도 화물연대처럼 뽄대나게 해야제” 하며 투지를 보여 주었다. 파업 전야제에는 9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는 열의 있게 파업을 조직하지 않았다. 파업 전야제에서도 투쟁 전술을 논의하고 노동자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것이 아니라, 영화 2편만 틀어 주고 알아서 있으라는 식이었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지도부가 도대체 파업을 하려는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지도부가 노조원들을 배신한 기억은 노동자들에게 불안감으로 다가 왔다. 9백여 명의 노동자들은 여기저기 흩어졌다.
이런 지도부의 안일함은 노조 지도부 내에서 노골적으로 투쟁 회피주의 입장을 취하던 측이 득세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새벽 2시가 넘어 노조 위원장이 교섭 결렬을 보고하고 파업을 선포하려 하는 순간 승무지부장과 지회장, 그리고 분회장들은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조직적으로 2백여 명의 승무 조합원들을 선동해 나가 버렸다.
이런 파업 파괴 행위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단상에 올라가 다른 승무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려고 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들은 단상에 올라 간 노동자의 마이크를 뺏고 오히려 분노한 노동자들을 막기에 급급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이 때부터 급격하게 동요했다. 이탈자가 속출했다. 노조 지도부는 그 날 오후 8시에 협상에 들어간 지 30분 만에 잠정합의안(‘총액대비 5퍼센트 임금인상, 노조·공단·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지하철안전위원회, 민형사상 처벌의 최소화’)을 통과시키고 파업을 끝냈다.
7월 2일에 합의안 찬반 투표가 있다. 적지 않은 노조 대의원들이 지금 부결을 선동하고 있다. 이들은 ‘불법파업이라 해도 파업은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수원
6월 15일 오후 2시, 전북 군산시 새만금 방조제 종점 초소 앞에서 3백여 명의 현지 주민들과 환경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인 가운데 방조제 공사 중단을 위한 집회가 있었다.
노무현은 “농지 조성과 식량 안보”라는 새만금 간척 사업의 초기 목적이 타당성을 상실한 게 분명해졌는데도 6월 10일 물막이 공사를 강행했다.
‘삼보일배’가 불러 온 관심과 반향을 통해 새로운 대안 형성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돼야 할 지금, 국민의 60%가 반대하는 여론 등 뒤에서 이뤄진 물막이 공사는 노무현 정부의 이중성을 유감없이 보여 줬다.
이미 우리는 시화호의 실패에서 ‘고인 물은 썩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처절하게 배운 바 있다. 시화호의 담수호 계획 포기는 사실상 간척 사업이 완전한 실패로 끝났음을 시인한 것이었다.
주류 언론에서는 전북 주민 전체가 새만금 간척 사업을 찬성하고 있는 양 이 싸움을 오로지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의 대결로 몰아가고 있지만, 이것은 완전한 거짓이다.
당일 집회에는 1백여 명이 넘는 지역 주민들이 참가했으며, 연단에 선 한 주민은 격앙된 목소리로 “정부는 우리를 사기로 매수했다. 나는 속았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새만금 간척 사업이 완공되기까지는 아무리 짧게 봐도 앞으로 15년 이상이 소요된다. 정부가 이 사업의 강행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지난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뻘이 죽어 살길이 막힌 지역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몇몇 거대 건설회사의 잇속차림을 위해 차별받는 주민들의 소외와 분노를 새만금 간척이라는 터무니 없는 사업 강행에 악용하고 있는 정부는 이제 솔직해져야 한다.
전현정(녹색연합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