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상설연대체를 계급연합 추진의 부속물로 만들려 하는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명박 정권의 총체적 역주행과 탄압에 맞서 진보민중진영의 광범위한 단결”이 필요하다며 제안했던 상설연대체 건설 논의가 막바지로 치닿고 있다.

한동안 지지부진하다가 지난해 10월부터 재개된 상설연대체 건설 논의는 2차례 대표자회의와 12차례 집행책임자 회의를 거치며 참가 단체들 사이에 첨예한 논쟁을 불러 왔다.

두 달 동안 논쟁의 핵심 쟁점은 첫째, ‘6.15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상설연대체의 주요 과제로 넣을 것인가’, 둘째, ‘상설연대체가 민주당과 연대, 연합할 수 있는가’였다.

노동자의 요구를 외면하는 민주당에 항의하기 위해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항의 단식을 하고 있는 전북 버스 노동자들

이처럼 쟁점은 두가지였지만 사실상 핵심은 민주당과 계급연합 문제였다. 다함께를 비롯해 계급연합에 반대하는 선명 좌파들은 자주계열의 핵심과제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내용적 측면을 반대하기보단 선언의 당사자인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대표되는)민주당 세력과의 계급연합을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광범한 단결을 통해 대중 투쟁을 만들어내겠다는 상설연대체가 자본가 계급에 기반한 민주당과 계급연합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대중 투쟁의 전진을 가로막는 구실을 할 수 있다는게 선명 좌파들의 문제의식이었다. 이미 그동안에도 자주계열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민주당과 계급연합을 위해 우리 편의 요구 수준을 낮추고 투쟁을 통제해서 결정적 시점에 운동의 김을 빼곤 했다.

지난해 연말에 벌어진 KEC 점거 파업과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 파업 때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민주당과 손 잡고 중재자 구실을 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점거 파업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넣어서 투쟁을 망치는 구실을 했다.

따라서 민주당과 계급연합 문제는 상설연대체가 진보진영의 단결과 투쟁을 도모할 수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단결과 투쟁을 가로막는 구실을 할지 가늠하는 척도와 같다.

이런 이유로 다함께를 비롯해 일부 선명 좌파들이 계급연합에 반대하자, 그동안 자주계열은 “상설연대체가 강제하거나 논의할 사항이 아니”라며 쟁점을 회피해왔다.

그러다가 2011년 1월 안으로 새로운 상설연대체 준비위를 출범시킨다는 목표로 정치적 이견을 좁히는 과정에서 자주계열은 태도 변화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진보연대 윤용배 조직위원장이 “어차피 현재의 상설연대체로는 야권 연대 등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함께가 이 문제(계급연합)와 관련해 줄곧 문제제기를 했으니만큼 문구를 성안해 제출해 달라. ‘상설연대체는 계급연합을 추진하지 않는다’라고 해도 상관없다”며 타협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노골적

그래서 다함께는 고심 끝에 “상설연대체는 불가피한 특정 사안을 제외하고는 민주당과 연대, 연합하지 않는다. 특정 사안을 두고 불가피하게 연대하는 경우에도 민주당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된다”라는 문안을 제시했다.

즉, 민주당과 전략적인 계급연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되, 불가피한 특정 사안을 두고 전술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 타협안이었다.

노동전선, 사회진보연대, 진보신당, 사회당 등 9개 진보 단체들도 “상설연대체는 민주당 및 신자유주의 세력과 연대 연합하지 않는다. 불가피한 경우, 노동자 민중 운동의 중심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제휴할 수 있으며 이 때에도 민주당 및 신자유주의 세력 비판을 삼가지 않는다”라는 문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타협 가능성을 비치던 자주계열의 태도는 갑자기 돌변했다. 12차 집행책임자회의에서 민주노총 지도부와 한국진보연대 지도부는 민주당과 상시적으로 연대·연합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타협 가능성을 닫아 버렸다. 이 회의에서 자주계열은 한사코 “민주당과 연대·연합하지 않는다”라는 문구의 삭제를 요구했다.

심지어 상설연대체가 민주당이 참가하는 상설적 연대 기구(가령, ‘MB/한나라당 심판! 정당시민사회연석회의’)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양태조 대협실장은 “상설연대체는 앞으로 민주당을 포함해 야5당이 함께 꾸리는 ‘반MB 범국민운동본부’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주계열이 추진하고 있는 ‘반MB 범국민운동본부’는 민주당과 연대하려는 상설적 계급연합 기구이다.

상설연대체를 만드는 목적이 노동 계급의 더 큰 단결과 투쟁에 있는 게 아니라 민주당과의 계급연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근 민주당이 ‘무상의료’, ‘한미FTA 전면 폐기’, ‘민생예산 날치기 무효’ 등 진보 시늉을 하며 상층 계급연합 기구(‘MB/한나라당 심판! 정당시민사회연석회의’)에 참가하려는 태도를 보이자 자주계열도 자신들의 본래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상설연대체를 계급연합이 잘 될 수 있도록 떠받치는 기구로 전락시키려는 의도 말이다. 그러니 ‘민주당과 연대, 연합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장애물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의 진보 시늉은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어 보자는 기만적 술책일 뿐이다. 민주당의 계급적 성격과 본질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최근 전북 지역의 사실상 집권당인 민주당이 전북 버스 노동자들의 파업을 탄압하고 있는 것을 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 지도부와 자주계열이 계급연합 의도를 굽히지 않고 계속 추진한다면 새로운 상설연대체는 결코 노동자 단결과 투쟁의 구심 구실을 하는 기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