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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촛불시위 평가와 전망

6월 10일, 서울 청계광장에 1만 5천여 명이 모였다. 행진다운 행진도 오랫만에 재현됐다. 부산, 대구, 대전 등 주요 도시에서도 촛불시위가 열렸다.

6·10 집중 촛불집회 지금의 촛불시위는 2008년 춧불운동과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제2의 촛불’이 되려면 요구를 확대하고 운동을 심화·발전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서울 도심 한복판을 휩쓸며 흥분된 얼굴로 그동안 쌓인 정권에 대한 울분을 터뜨렸다. 행진에서는 ‘반값 등록금’ 요구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명박 OUT’ 구호도 터져 나왔다.

이 시위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은 아니다. 등록금에 대한 높은 불만은 이미 올해 초부터 행동으로 표현됐다. 여러 대학에서 수년 만에 학생총회가 성사됐고, 점거농성 같은 더 진전된 투쟁방식을 채택한 곳도 있었다.

여기에다 재보선에서 참패한 한나라당이 온갖 조건이 달린 기만적인 ‘반값 등록금’을 꺼내든 것이 되레 정권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때마침 서울대 학생들이 법인화에 반대해 점거농성에 돌입한 것도 시너지 효과를 냈다.

사람들이 ‘등록금 촛불’에서 단지 등록금 문제만을 보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반값 등록금’ 시위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 고물가, 전월세 대란 속에서 그동안 팽배해 있던 반이명박 정서를 자극했다. 비록 초기에 등록금 시위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많이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08년 촛불과 지금의 촛불

많은 사람들이 ‘반값 등록금’ 운동을 보며 ‘제2의 촛불’을 떠올린다. 그러나 2008년 촛불운동과 지금의 운동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크다.

2008년에는 우파 집권으로 개혁주의 지도부의 사기가 떨어졌지만, 대중의 자발성은 충만했다. 찌그러진 민주당에 대한 기대도 별로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은 자발적으로 분출했고, 개혁주의자들은 자발성을 무비판적으로 찬양하다가 나중에는 문제를 거리가 아니라 의회로 가져가야 한다며 투쟁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반면, 지금의 촛불시위는 처음부터 개혁주의 지도부가 위로부터 면밀히 주도·통제하고 있다. 대중파업론에 유비하자면, 2008년 촛불시위는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아래로부터 분출한 자발적 대중파업과 유사한 특징이 있는 반면, 지금의 촛불시위는 위로부터 조직된 ‘관료적 대중파업’과 비슷한 점이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혁명가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도 다르다. 2008년에는 지도의 문제가 매우 중요했다면, 이번에는 아래로부터 투쟁이 활성화되도록 이끄는 게 중요하다.

또, 2008년 촛불운동은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불씨가 되긴 했지만 초기부터 이명박 탄핵을 요구하는 일반화된 정치운동으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요구가 등록금 문제에만 한정돼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이 아닌 사람들이 이 운동을 응원하는 것을 넘어 행동에 나서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위기감의 차이도 있다. 2008년에는 우파 정부의 질주를 저지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높았지만, 지금은 ‘어차피 이명박 정부는 이제 끝물’이고, 선거에서 심판하자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자신감은 있지만 수동적 자신감인 것이다.

물론, 2008년에 견줘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나은 점이다.

진정 '제2의 촛불'이 되려면

따라서 이 운동을 진정 ‘제2의 촛불’로 발전시키려면 몇 가지 과제들을 수행해 이 운동을 심화시켜야 한다. 먼저 운동의 요구를 확대해야 한다. 쥐꼬리만 한 최저임금, 물가 폭등, 공공요금 인상, 야간노동, 서울대 법인화 등 이명박 정부 하에서 불거지고 있는 여러 요구와 투쟁들을 연결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시위에 동참하게끔 해야 한다.

반이명박 투표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아래로부터 투쟁이 변화의 동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기를 회복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동참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유성기업 파업이 자동차 산업을 마비시켰듯이, 노동자들은 파업 같은 고유의 무기를 사용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 운동을 주도하는 한대련 지도부는 이런 과제들을 외면하고 있다. 6월 7일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다함께의 이런 제안은 안건에 오르지도 못했다. 최근 열린 등록금넷 회의에서도 몇몇 단체들은 요구 확대를 지지했지만, 한대련과 진보연대, 민주노총 지도부는 그것을 반대했다.

게다가 한대련 지도부는 이 운동이 자신들의 통제력을 벗어나지 않도록 폐쇄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6월 10일 집회가 “야4당과 등록금넷, 한대련 공동주최”라고 했지만, 정작 등록금넷 소속 단체들조차 집회 기획 과정에서 배제됐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연대를 호소하는 발언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 이것은 민주당을 추켜세우고 발언 기회를 넉넉히 보장해 준 것과 대조적이었다.

한대련 지도부는 집회 종료 후 공식적으로 거리 행진을 호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함께 등이 구호를 선창하며 행진을 호소한 것이 사람들의 자신감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했다.

무엇보다, 한대련을 비롯한 개혁주의 지도부들은 민주당을 통한 국회 협상에 의존하고 선거심판론을 강조하면서 대중의 수동성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한대련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실질적인 문제 해결은 정치권과 정부의 몫”이라고 했다.

6월 10일 이후 한대련 지도부는 매주 금요일에 집중 촛불시위를 하겠다고 했다. 전교조가 촛불시위에 조직적 참가를 약속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앞으로 이 운동을 심화·발전시키려면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연행 전술’이 효과적이다?

일부 한대련 활동가들은 ‘연행 전술’이 언론의 주목을 끌 수 있어 효과적이고, 심지어 그것이 현재의 운동을 만들어 냈다고까지 주장한다.

한대련이 촛불시위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마치 ‘연행 전술’이 운동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고 보는 것은 매우 협소하고 일면적인 시각이다.

오히려, 올해 초부터 벌어진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아래로부터 자발적 대중행동들이 이 투쟁의 기반이 됐다. 여러 대학에서 수년 만에 수천 명이 모이는 학생총회가 성사됐다. 이렇게 표출된 자발성을 점거농성 등으로 발전시키려는 좌파 활동가들의 노력도 중요했다(그러나 당시 한대련 활동가들은 ‘대정부 투쟁이 중요하다’면서, 주요 대학 등록금 투쟁을 점거농성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반대했다).

일면적인

연행 전술이 늘 대중의 관심을 받고 공분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고립돼 오히려 참가자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번에는 광범한 반정부 정서가 사회 저변에 흐르고 대중이 학생들의 요구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정세였기에, 연행을 감수하겠다는 학생들이 많았던 것이고 대중의 주목을 받는 데도 성공한 것이다.

대중 행동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대중적 지지에 기반을 둔 소수의 행동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투쟁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충분하고 대중행동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굳이 소수가 경찰에 잡혀가는 전술을 쓸 필요가 없다.

특히, 6·10집회에서는 청계광장에 모인 1만여 명을 놔두고 굳이 연행 전술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거리행진에 동참하도록 이끄는 것이 필요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중이 소수의 행동에 박수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은 가능하다

여론이 들끓자, 한나라당도 학점 제한을 없애고 등록금을 인하하는 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안은 우리의 요구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포퓰리즘’, ‘퍼주기’라며 ‘반값 등록금’ 용어 자체를 폐기했다. 이명박도 “천천히” 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4대강과 부자감세, 첨단무기 도입에 드는 돈의 일부만 투자해도 반값 등록금을 위해 필요한 6조 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민주당은 “단계적”인 등록금 지원을 말했다가 촛불집회에서 야유와 항의를 들은 후부터는 태도를 바꿔 등록금을 절반으로 인하하는 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필요한 돈을 누구에게서, 어떻게 걷을 것인지가 문제다. 다른 복지 후퇴 없이 반값 등록금을 시행하려면 사학재단을 통제하고 부자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하는데, 민주당은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한편,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등록금 지원 부담을 줄이려면 대학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을 너무 많이 가는 게 문제’고, ‘부실대학’ 학생들은 등록금 혜택을 받을 자격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을 많이 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권리고, 원하는 사람 누구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등록금만 챙기고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 대학들과 무책임한 정부가 문제지, 그런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아무 잘못도 책임도 없다.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대학은 정부 재정을 투입해 국공립화하고 대학 운영을 정상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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