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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계획 철회하라

파병 계획 철회하라

파병 강행하려는 노무현

지난 11월 17일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 정부는 “3천 명 규모의 재건 지원 부대” 추가 파병안을 미국측에 제시했다. 이에 대해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5천 명 규모의 전투 부대 지원을 요구했던 그는 한국 정부의 제안에 확답을 피한 채 돌아갔다.

그 뒤 한국군 추가 파병 규모와 성격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한미동맹

11월 20일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 리처드 롤리스는 한나라당 대표 최병렬을 만나 “공병 위주 재건부대는…미국에 오히려 부담이 될 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천명 파병 방침은 이미 한미 간에 정리됐다고 봐야 한다.” 하고 언론에 말했다.

그러나 추가 파병 규모와 성격이 어떻게 결정되든, 분명한 사실은 노무현 정부가 추가 파병을 추진할 태세라는 것이다. 이는 11월 21일 외교통상부 장관 윤영관이 터키 주재 영국 영사관 테러 사태 등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파병하겠다는 정부의 결정과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한 데서도 드러난다.

미군을 도와 이라크를 점령중인 영국의 해외 영사관이 테러를 당했다. 자위대 파병을 추진중인 일본도 바그다드 주재 대사관이 공격을 받았다. 이라크 현지 조사를 위해 바그다드 팔레스타인 호텔(바그다드 시내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로 손꼽혀 온)에 묵고 있던 한국 국회조사단 일행도 로켓포탄 공격을 받았다.

지금 이라크 주재 한국 대사관은 이라크인들의 공격을 피해 여기저기 떠돌고 있고, 한국무역협회 바그다드 무역관 직원들도 피난길에 오른 상태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무현 정부가 추가 파병을 강행하려는 것은 한국 지배계급 일반이 공유하는 ‘신주단지’, 바로 (정치·경제·군사적) 한미동맹 때문이다.

해방 후 남한 지배계급은 아래로부터 분출하는 노동자·농민의 반란을 진압하고 북한 지배계급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미국의 정치·경제·군사 지원에 의존해 왔다.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적극 편승함으로써 한국은 중류 공업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이것은 한국 지배계급의 국내 정치 기반 강화에 도움이 됐다. 그들에게 미국은 자신들의 생존과 번영을 보증하는 ‘태양’과 같은 존재였다.

물론 이렇게 전반적인 ‘전략적’ 유착 관계에서도 특정한 ‘전술적’ 차이에 따른 불협화음은 발생할 수 있다. 추가 파병의 규모와 성격을 둘러싼 논란이나 반도체·철강 등 무역 분쟁 같은 것이 그런 예다.

한국 지배계급이 맹주로 떠받드는 미국이 그 동안 중동의 질서를 관리해 왔고 이제 미국 뜻대로 재편하려 한다. 그런데 이라크와 아랍의 민중이 이에 저항하고 있다. 이를 진압하고 “안정”을 회복하는 것은 미국 지배계급뿐 아니라 그들을 추종하는 한국 지배계급에게도 아주 중요한 과제다. 그래서 한국 기업인들의 71.4퍼센트가 이라크 파병에 찬성했던 것이다(10월 26일 대한상공회의소 발표).

노무현 정부는 한국 지배계급 일반의 이익을 좀더 잘 관리하라는 위임을 받은, 그래서 그 이해관계가 결코 다르지 않은 지배계급의 정부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은 단지 미국의 압력에 떠밀려 추진하는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니다. 한국과 미국 지배계급 사이에 공통의 이해관계가 걸린 ‘합작 사업’이다.

노무현이 행여라도 파병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까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미 지난 10월 18일 노무현은 파병 방침 발표를 통해 그런 기대를 얼마든지 무시할 것임을 보여 주었다.

노무현 정부가 파병(계획)을 철회하도록 만들려면 한미 동맹이라는 지배계급 일반의 이익을 심각하게 위협할 만큼 거대하고 강력한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 힘과 잠재력을 가진 세력, 즉 노동 계급 대중을 운동에 끌어들이는 데 달려 있다.

이수현


"파괴 지원" 부대

정부는 한국군 추가 파병이 이라크 재건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파병이 정히 불가피하다면 재건 지원 부대를 보내는 것에는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11월 초 이라크 주둔 미군은 6개월 만에 공중 폭격을 재개했다. 미군이 이라크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는데, 한국군은 그런 미국을 도와 이라크를 재건한다?

또, “쇠망치” 작전으로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학살하며 “치안”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바로 미군이다. 그런 미군을 지원하러 가면서 이라크의 안정과 질서 회복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라크 파병 한국군은 재건이 아니라 파괴와 학살을 자행하는 미군을 지원하러 가는 것이다. 공병이든 의무병이든, 그들을 방어하는 “경계 병력”이든, 모두 미군의 이라크 점령을 도와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라크 국민의 80퍼센트가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는 것이다(〈한겨레〉 11월 20일치). “전투병이든 비전투병이든 마찬가지로 미국을 돕는 일일 뿐”이라며 반대한 사람도 54.5퍼센트나 된다.

이라크 파병은 무엇보다 이라크 민중의 자결권에 반하는 짓이다. 이라크 민중은 지금 자유와 해방, “재건”을 비롯한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들을 짓밟고 억누르는 미군을 도와 주는 것은 결코 “재건 지원”이 아니다. 그것은 “파괴 지원”일 뿐이다.


이라크 파병 철회를 요구하며 복귀 거부 농성중인 강철민 이병

[지난 7월 입대 후] 군사 훈련받고 발령받고 있는데 언론에서 이라크 파병 얘기와 이라크 내 저항이 격화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파병이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저희가 나갈 것이고, 그러면 이라크 국민이든 우리 나라 군인이든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 보듯 뻔한 이러한 점을 군인인 제가 어떤 형태로든 얘기해야겠다, 이런 생각에서 복귀 거부 농성을 하게 됐습니다.

명백한 침략 전쟁인 이라크 전쟁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 헌법에도 위배되며 국군 본연의 임무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국회조사단 일행[이 묵던 호텔]이 공격받는 것 등을 보십시오. 비전투병이든 전투병이든 이라크에 파병된다면 이라크인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고 그리 되면 어쩔 수 없이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전투병이든 비전투병이든 일체의 파병은 안 됩니다.


환영받지 못한 럼스펠드

전쟁광 럼스펠드가 한국을 방문했다. 오만한 전쟁광은 이제 만만한 한국 정부 앞에서조차 허세를 부릴 수 없었다. 재건지원단 3천 명 파병안에 대해 “노 대통령의 추가 파병 결정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파병 자체는 각국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투병 위주의 대규모 “안정화군” 파병을 한국 정부에 계속 종용했다.

럼스펠드는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해야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인근 분쟁 지역에 주한미군을 신속하게 투입하겠다는 구상을 또다시 밝혔다.

럼스펠드는 110억 달러 상당의 주한미군 군사력 증강 계획도 밝혔다. 이러한 일련의 구상들은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드높일 것이다.

수모

그러나 전 세계 반전 운동의 주요 공격 대상으로 낙인찍히고, 이라크안정화그룹(ISG) 창설에서 보듯 백악관과 공화당의 전쟁광 동료들 사이에서조차 “왕따”가 된 럼스펠드는 아시아 순방길에서도 자존심을 구겨야 했다.

11월 15일 일본 총리 고이즈미는 럼스펠드 면전에서 “[자위대를] 연내에 파견하겠다는 당초 계획이 늦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11월 16일 오키나와를 방문한 럼스펠드에게 오키나와 주지사는 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이 날 일본 전역의 반전 활동가들이 오키나와에 모여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국에서도 럼스펠드 방한 하루 전인 15일 수천 명이 참가한 파병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16일과 17일에는 시위대가 럼스펠드의 이동 경로마다 시위를 벌였다.

이 때문에 럼스펠드는 헬기를 타고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해야 했고 17일에는 시위대를 피해 국방부 후문을 이용하는 수모를 겪었다.

노무현은 이런 럼스펠드를 극진히 대접했다. 대통령석과 나란히 좌석을 배치했고, “한국은 지속적으로 미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한미 관계 발전은 남북 평화 구조 정착에 기여할 것”이라는 미국 찬양도 잊지 않았다. 심지어 노무현은 럼스펠드를 “선 파워” 건전지에 비유하며 아부했다. 럼스펠드도 유엔 결의안 통과 직후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에게 거듭 사의를 표했다.

11월 17일 청와대 앞 시위는 ‘다함께’ 회원 6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전체 참가자 약 80명) 럼스펠드와 노무현 회담에 대한 반대를 표명했다. 김광일 동지는 블레어 방한 반대 시위가 같은 장소에서 열렸음을 상기시키면서 블레어와 마찬가지로 럼스펠드도 세계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함을 반전 운동은 입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부시도 며칠 후 런던에서 큰 반대에 부딪힐 것임을 환기시키며, 반전 운동이 전쟁광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