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추천 외부 글·영상
[좌파공동체] 퀴어문화축제조직위의 노동자연대 배제 비판
〈노동자 연대〉 구독
※ 좌파공동체가 5월 27일 발표한 이 글은 정의당 웹사이트 게시판에서 가져왔다. 퀴어문화축제조직위의 노동자연대 부스 신청 취소 건을 비판하는 이 논평을 <노동자 연대>는 뒤늦게 발견했지만, 이제라도 소개하고자 한다.
[논평] 강남역 살인사건의 정치학을 우려한다
- 퀴어문화축제조직위의 노동자연대 배제는 반민주적인 폭거
- 여성혐오인가 팩트인가, 세 가지 페미니즘의 세 가지 입장
1,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노동자연대의 기사가 나가자,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노동자연대 부스 선정을 취소하는 일이 26일 발생했다. 노동자연대가 기사에서 이번 사건을 여성계의 이른바 '여성혐오 살해'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간 운동진영에서 각기 다른 스펙트럼의 페미니즘에도 불구하고 연대해온 사실에 비춰볼 때 이렇다 할 토론 한번 없이 노동자연대를 일거에 배제한 이번 조치는 반민주적인 폭거이므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2.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의 실체를 알아본다. 지난 5월 17일 강남구 서초동 상가 건물 공용 화장실에서 한 여성(20대)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피의자 김모(34)씨에 대해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가 두 차례 심리면담을 진행한 결과 “김씨가 오랫동안 앓아 온 조현병(정신분열증)과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이 살인의 배경이 됐다”며 “전형적인 정신질환 범죄 유형에 부합한다”는 것이 22일 밝혀졌다.
심리분석 결과 △김씨의 피해망상 증세(환청, 기물파괴)는 2003년 무렵 시작됐고 △2008년부터 1년 이상 몸을 씻지 않거나 노숙을 하는 등 자기관리 능력을 상실했고 △그로 인해 올해 초까지 6차례에 걸쳐 병원 입원치료를 받았고 △피해망상 대상이 여성으로 변화한 건 2년 전으로 2014년 한 교회가 개설한 신학원에 다녔는데 ‘특정 그룹에서 추진력 있게 일을 하려 해도 여성들이 견제한다’는 생각을 품게 됐고 △가출 후 서빙 업무를 하던 김씨가 이달 5일 ‘위생이 불결하다’는 지적을 받고 다른 식당 주방보조로 옮기게 되자 이 일을 불특정 여성의 음해 때문으로 여겨 범행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씨는 프로파일러와의 면담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여성혐오 때문이 아니라 실제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범행을 했다. 일반 여성에 대한 반감은 전혀 없다”
3.
사건 직후 여성계에서는 한국여성단체연합(상임대표 김금옥)과 여성문화이론연구소(대표 손자희)가 각기 입장을, 좌파 쪽에서는 노동자연대에서 논평기사를 내보냈다. 우리는 이 세 단체가 어떤 시각으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가에 특별히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차이점과 공통점들을 분명하게 드러낼 때만이 향후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생각은 극도의 위기감을 강조한 19일자 입장 “우연히 살아남은, 나는 ‘여성’입니다.”라는 제목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22일 당국의 ‘정신질환 범죄’라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26일 서울시청에서 〈강남 '여성 살해'사건 관련 긴급 집담회 -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를 개최했으니,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에 의한 살인으로 상정한 지난 생각은 이후에도 변함없는 듯하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또한 20일자 ‘여성을 살해한 당신에게’ 제목의 입장에서 피의자를 가르켜 “당신의 공격성을 ‘그냥’ 여성에게 폭력적으로 휘두르는 순간, 당신의 행위는 단순히 정신질환자의 우발적인 사고가 아닌,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사건이 됩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차이가 있다면 “실업률의 증가와 무한대로 치닫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앞에서 당신은 좌절했을 겁니다.”라며 피의자의 열악한 형편에 온정을 보내고 있는 점이다.
이에 비해 노동자연대는 23일자 논평기사(이현주 기자)에서 “강남역 살인은 정신질환과 자본주의, 국가의 자산 소유자 이익 보호가 낳은 기괴한 산물”이라는 제목으로 전날 프로파일러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정신질환이 발생하게 된 사회구조적인 요인을 지적한다. 아울러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여성문화이론연구소가 여성들에게만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하는 강력범죄(살인 등)에 대해서는 대검찰청 자료(2015범죄분석)를 인용 “성폭력의 비중이 높다 보니, 피해자 다수가 여성이라고 보고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살인의 경우에는 남성 피해자가 여성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다.
4.
이러한 입장 차이는 각기 문건을 통해 밝혔듯 자신들이 지닌 고유한 페미니즘의 지형에서 비롯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정치적으로는 (더)민주당과 오랜 기간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면서 이른바 진보진영에 속한 여성단체들을 총괄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성 억압을 가부장제에서 원인을 찾는 〈근본주의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 지금도 영향력이 여전한 여성 원로들의 상당수가 기독교 출신이기에 - 종교성 〈도덕적 페미니즘〉이 공존한다. 또한 요즘 근본주의 페미니즘은 이성애를 평등 관계로 변화시키자는 경향과 이성애 자체를 거부하고 '레즈비언 여성주의'로 이행하자는 급진적 경향이 각축 중이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는 지난 제7회 맑스코뮤날레의 캐치 프레이즈인 ‘적·녹·보라’에서 ‘보라’를 제출한 연구 단체이다. 입장에서 ‘신자유주의’를 원인의 한 축으로 시사했듯 이들의 성향에서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경향이 엿보인다. 기본적으로는 근본주의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여성 억압이 가부장제라는 재생산 양식에 기인한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맞서 노동계급이 해방되더라도 여성 억압은 계속될 것이라는 견해를 중심으로 여성들의 강고한 결속을 강조하기에 여기서도 ‘레즈비언 여성주의’와 자연스레 조우한다.
노동자연대는 여성 차별에 반대하고 그에 맞선 저항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여타 페미니즘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자본주의적 사회구조에서 찾으면서 여성의 궁극적 해방을 계급해방과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경향을 보이는 까닭에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에 가까운 듯하다. 여기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대한 책임을 남성 일반 대중에게 돌리는 것을 철저하게 경계한다. 대신에 특정 성을 넘어 모든 노동자가 사회적 억압을 낳는 실체인 경제적 권력을 상대로 함께 투쟁할 것을 주문한다.
5.
한편, 19일 추모현장을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더 이상 혐오범죄.. 가 없도록 이 병든 세상을 치유해 가겠습니다. 현장과 기억보존 조치도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는데 이는 공인으로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 혹여 프로파일러의 ‘정신질환 범죄’ 판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혐오가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기억보존 조치를 취할 것인가. 책임 있는 공인이라면 즉흥적인 인기성 발언보다는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대안 모색에 몰두해야 한다.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정신병원을 거쳐 지방자치단체에 신청해 '행정입원' 조치하도록 하겠다."는 당국자의 발언이 논란이다.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공권력의 권한 확대를 우려하는 당연한 목소리다. 중요한 것은 피해를 예방하면서 환자의 인권을 최대한 보호하고 치료할 수 있는 대안 아닌가. 그렇다면 신뢰할 수 있는 심리상담소의 충원 등 예방제도 같은 것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사건에서 김씨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른 범인임에는 분명하나,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조현병(정신분열증)이 개인적인 병질 못지않게 극빈 상태와 같은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한 여성이 당한 어처구니없는 살인사건 앞에서 구조적인 원인을 간과한 채 간단히 여성혐오로 몰아가 ‘성 적대’를 부추기며 노동자민중을 갈라치기하려는 일각의 움직임은 즉각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2016.5.27
좌 파 공 동 체
(전국좌파연대회의, 공동체가치실현모임)
원문 제목: [논평] 강남역 살인사건의 정치학을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