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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세계 지성과의 대화’ - 바버라 에런라이크:
“저임금은 스스로를 천민으로 느끼게 해 일상의 문화에서 가난한 노동자는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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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의 ‘세계 지성과의 대화’ - 바버라 에런라이크
·보살핌의경제로
불평등에 대해 처음 쓴 이후
30년 동안 격차가 계속 벌어져
중류층도 주택 시장서 쫓겨나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다고 한국은행이 밝혔다. 나는 내 소득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20여년 전 서울 마포구의 철거촌에서 만났던 한 여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녀의 소득은 1만달러 고지를 앞두고 온 나라가 벅차오르던 1994년, 월 10만원이 채 안됐다. 나는 그때 스물세 살이었고, 이웃돕기 라디오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동갑내기인 그녀의 방에 앉아 있었다. 어슴푸레 햇빛이 들어오는 창 아래엔 복수가 차서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남편이 누워 있었다. 그들의 세 살배기 딸은 마이크를 피해 멀찍이 달아났다. 철거반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공간이었다. 빈곤의 위기에서 허우적거리는 여느 가족처럼 그녀의 목소리 또한 녹음기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려도 잡기 어렵게 주눅들어 있었다. 재차 물어 들은 첫 대답은 부서질 집 걱정도, 까맣게 타들어 가는 남편의 몸도 아니었다. 그날 내가 입고 있던 감색 남방이 바로 자기가 재봉질한 옷이라는 설명이었다. 노동하던 지난여름의 자존감을 드러낸 것이다. 어려운 이웃들을 일 때문에 만나던 그 시절, 나는 가난의 재생산을 막을 방법은 교육이라 생각했다. 그녀와 나의 가장 큰 차이는 교육이었고, 그 교육을 가능하게 만든 양육 조건이었기에. 하지만 이제 교육마저도 사다리 기능을 잃고 지위와 계층을 세습하는 견고한 틀이 되었다. 25년이 지난 그녀의 삶은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만큼 나아졌을까? 작년 하위 10%의 연평균 소득이 240만원이라고 한다. 부산과 대전에 사는 인구를 합친 만큼 여전히 누군가는 신산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번 회에는 빈곤과 빈곤 문화를 천착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와 대화를 나눈다. 〈긍정의 배신〉 〈노동의 배신〉 등 그녀의 저작들은 21세기 자본주의 속 불평등에 대한 밀도 높은 고찰을 이끌어왔다. 지난 7일 미국 워싱턴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안희경(이하 안) = 여기 오기 전에 친구에게 물었어요. 가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친구는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하더군요. 강 건너 다운타운에 들어가자마자 게슴츠레한 눈동자로 어슬렁거리는 이들을 마주할 때면 가난을 본다고요. 왜들 그렇게 술에, 마약에 취해 있는지 혐오스러워했습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이하 에런라이크) = 가난은 낙인이에요. 우리는 자기가 가난하다고 시인하는 것을 창피해하죠. 사람들이 우리의 인생을 싸잡아 억측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되니까. 당신 친구는 아마 홈리스들을 본 걸 말하는 것일 텐데요. 그들의 다수는 술주정뱅이죠.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고요.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일종의 낙인이에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만약 홈리스라면 그 거리에서 술병을 찾고, 정신적으로 병드는 데 채 2시간이 안 걸릴 거라고요. 상상해봐요. 길바닥에 서 있어야 해요. 앉을 수도 없고, 누울 수도 없어요. 더러워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입니다. 화장실도 갈 수가 없죠. 미쳐 돌아버리기까지 2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모두 실용적인 목적 때문에 미국의 도시들은 홈리스의 행동을 불법으로 만들었습니다. 보통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들을 이해해요.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나갈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에겐 집이 없고
거리의 집에는 사람이 없다면
빈 공간에 그들을 머물게 해야
안 = 스스로 선택한 삶 아닌가요?
에런라이크 = 정확히는 아니죠. 아주 많은 홈리스들은 실직자입니다. 아마도 좋은 사무직, 하이테크 일터에서 일했을지도 몰라요. 뭐가 됐든 집 대출금을 더는 내지 못하게 되면 홈리스가 됩니다. 저는 홈리스를 유발하는 다른 문제들을 생각해요. 이 번듯한 나라에서 살 집을 놓고 벌어지는 현상을 봅니다. 당신네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여기보다 훨씬 나은가요?
안 = 하루 500달러를 벌어야 방 두 칸 월세를 낼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나 맨해튼처럼은 아니지만, 대도시들의 주거 사정은 엇비슷하다고 봅니다. 정책이 어떻게 나오든지 중산층 이상의 자산 소유자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죠.
에런라이크 = 집값과 한 달 집세가 아주 많이 올랐어요. 경찰관, 소방관, 교사 가족들이 방 두 칸 아파트 월세를 더는 버텨낼 수 없는 처지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택지개발업자들이 새로 짓는 집들을 흔하게 봅니다. 그 새집들은 훨씬 비싼 값에 나오죠. 그 집들이 팔리면 동네는 비싸지고, 있던 세입자들은 밀려납니다. 중류층이 점점 주택시장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이제 아주 가난한 사람들만의 상황이 아니죠. 갑자기 들이닥치는 추락의 순간이 있어요. 경찰이 당신네 현관을 두드립니다. 그 옆에는 이삿짐 트럭이 서 있고, 이사회사들은 당신 물건을 꺼내 집 앞에 쌓기 시작합니다. 정말 볼썽사납죠. 그래도 그 순간까지는 당신이 실내에서 먹고 자는 삶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안 = 당신은 30년 동안 불평등에 대해 글을 써왔는데요. 과거와 비교해 어떤 차이를 발견합니까.
에런라이크 = 그 격차가 정말 더 벌어지고 있어요. 제가 처음 불평등에 대해 썼던 때가 1980년대 중반 뉴욕타임스에 짧은 글을 기고할 때였어요. 당시 저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난받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시각을 가질 수 있냐고요. 미국 사회 전체가 ‘당신이 뭐라도 열심히만 한다면 삶은 곧 나아질 것이다’라고 철석같이 믿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지금은 형편없이 나빠졌어요. 모든 가격이 솟구쳤습니다. 저는 집값과 의료비를 강조합니다. 이 둘은 한 가족을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는 뇌관이에요. 1980년대에 막 나타나기 시작한 경향이 불평등인데요. 부와 소득으로 보면 1970년대까지 미국은 훨씬 평등한 사회였어요. 지금은 아무도 이를 부정하지 않아요. 좌파든지 우파든지 고개만 돌리면 모든 곳에서 심각한 불평등을 볼 수 있으니까요. 맨해튼을 보세요. 제가 참 좋아하던 곳인데, 이제는 넌더리가 납니다. 도시를 가득 메운 아파트는 하늘을 뚫고 솟구치고, 억만장자들이 소유합니다. 중국 사람이든 러시아 사람이든 누구든 아주 부자들이 꼭대기를 차지해요. 그들은 햇볕을 한껏 쬐죠. 아래 길거리를 걷는 당신은 그늘 속에 있어야 합니다. 더 큰 비극은 부자들이 그 꼭대기 층에조차 머물지 않는다는 거예요. 만약 당신이 세계 곳곳에 대여섯 채 집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그중 한 곳에 머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렇죠? 그래서 저는 그 빈 공간에 홈리스들이 머물게 하자고 말합니다. 집주인들이 자기네 다른 집에 가 있는 바쁜 시간에 말이죠.
안 = 좀 허황된데요.
에런라이크 = 그래도 확실한 해결책이에요. 거리에 사는 사람들에겐 집이 없고, 그 거리의 집들 속에는 사람이 없잖아요. LA는 홈리스에게 무조건으로 집을 줬어요. ‘집 먼저(The Housing First)’ 정책입니다. ‘자, 이제 정신이상과 알코올중독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자! 이들을 집 안으로 들여보낼 이야기부터 하자!’ 그랬더니 급격한 변화가 일었습니다. 그들이 직업도 구하고 방을 얻어 나가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행정적으로 하자면 알코올중독과 마약 치료에 대해 집중하는 일이 훨씬 쉽죠. 만약에 당신에게 돌아가 쉴 방이 있다면 거리로 가겠습니까? 자연스레 내일을 꿈꾸게 됩니다.
안 = 솔직히 말해서, 제 일상 반경 속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학교에서도요. 그리고 거리에서는 겉만 보고 누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없습니다.
에런라이크 = 당신 말 속에서 미국이 지형적으로 얼마나 계급에 의해 갈라져 있는지 드러납니다. 만약 중산층이라면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려고 할 거예요. 동네 공원에서 일요일을 보낼 시간도 없겠죠. 더 고급스럽고 비싼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을 테니까요. 그들 옆에는 가벼이 수다 떨 근로계층에 속한 친구도 가난한 사람들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거품 속에서 사는 거예요. 제가 전에 쓰고 싶은 글이 있어 꽤 유명한 진보 잡지의 편집장과 접촉한 적이 있어요. 제 기획은 노동계급 남성들과 함께 작업해야 하는 내용인데, 편집장이 듣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묻더군요. “그 사람들이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나요?” 그녀에겐 그 범주에 있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죠. 명백하게도 그녀는 택배 배달 남성이건 누가 되었건 자분자분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안 = 당신의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잠입 취재했던 〈노동의 배신〉에 대해서요.
에런라이크 = 저는 비밀업무를 수행하는 언더커버가 아니었어요. 제 진짜 이름을 사용했고, 최저임금 일자리를 구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 실제 이력서를 사용하지는 않았죠. 이력서에는 언제나 ‘어떤 대학(some college)’이라고 써넣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냥 ‘어떤 대학’이라고 기입합니다. 단 한 학기만 다녔어도요. 회사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심지어 사무실 일자리는 한번도 와서 면접 보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제게 열린 일자리는 방문 즉시 배치되는 일자리들이었죠. 제 규칙은 가능한 한 많이 주는 곳에서 일한다는 것이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웨이트리스나 집 청소, 호텔 청소, 월마트, 요양보호소 보조 일을 해야 했어요. 중년 여성인 제가 노동시장에서 들어가게 되는 직종이죠. 저는 저널리스트였기 때문에 심지어 청소조차 유경험자가 아니잖아요. 글 쓰던 제가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전문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겠어요, 바텐더를 할 수 있겠어요.
최저임금 받으며 잠입 취재
온종일 고된 노동 시달리고도
싸구려 방값조차 못 벌어 항복
가난이란 낙인 찍힌 사람들은
어디에도 초대 받지 못한다
안 = 최저임금으로 사는 생활은 어땠나요? 2000년도나 지금이나 최저임금은 시간당 7달러 수준이고, 대신 집세와 물가는 낮았는데요.
에런라이크 = 늘 포기하고 싶었어요. 결정적으로 손을 들고 나온 계기는 내가 번 돈과 내가 몸만 눕힐 수 있던 싸구려 모텔의 방값이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그때 월마트에서 일했어요. 온종일 손님들이 들췄다 내던진 옷을 정리하고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받은 최저임금으로는 차 기름값도, 먹을 음식값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투잡을 찾아 뛸 기운도 의지도 바닥난 상태였고요. 그래서 항복하고 최저임금의 굴레에서 빠져나왔죠. 더불어 알아서 천민이 되어야 한다는 강요로부터도 빠져나왔습니다. 저임금 노동을 하는 것 자체가 노동자 스스로를 천민처럼 느끼게 만들어요. 어디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계급으로요. 가난한 사람들은 이 사회의 문화 전반에서 사라졌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시간당 15달러 혹은 그 이상 버는 사람들이죠. 뉴스 앵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주요 인물로 나오는 디자이너, 교사, 변호사, 엔지니어 소위 이 사회에서 존재 가치가 있다고 등장하는 인물들요. 일상의 문화에서도 정치적인 회합이나 강연, 토론회, 북클럽 역시 가난한 노동자는 소외되고 있습니다.
정치는 교수나 CEO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점원·지게차 기사 이야기 들어야 ‘할 일’ 보여
안 =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면요.
에런라이크 = 가정집 청소를 할 때였어요. 네 명의 여성이 한 조가 돼 각자 부엌, 화장실, 방 등을 맡아 일했습니다. 하루에 네 집은 청소해야 하니, 차에서 내리자마자 양동이를 들고 저택 입구로 전력질주를 했습니다. 그러다 한 명이 “악” 소리를 내며 넘어졌어요. 발목이 접질렸는지, 부러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였죠. 제가 당장 병원부터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참 멍청했죠. 어리석게도 거기서 저는 한발 더 나갔습니다. 양동이를 챙겨 저택 안으로 절뚝이며 들어가는 젊은 여성을 막고 나의 정체를 고백했습니다. ‘잘 들어라. 나는 실은 아주 공부를 많이 한 박사다. 이런 일에 대해 좀 알고 있다. 당신은 당장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 정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더군요. 다친 여성조차도, 그냥 집에 가면 일당은 날아가고 남편이 길길이 날뛸 거라며 무서워서도 못 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절망적인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된 건데, 응급실 가는 데만 평균 1000달러 넘게 나오는 현실이었습니다. 그 돈을 누가 지불할까요? 확실히 청소회사 사장은 아닙니다.
안 = 회사에서 내야죠. 일하다 다친 건데요.
에런라이크 = 물론이죠. 그렇지만 회사는 지급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친 사람을 해고하죠. 재난과 상해를 대하는 미국 회사의 보편적 접근법이에요. 저와 같이 일했던 다른 한 여성은 나중에도 연락하곤 했는데, 어느 날 전화해서 사고를 당했다고 하더군요. 월마트에서 선반 위에 물건을 쌓다가 사다리 위에서 떨어졌다고요. 병원에 다녀온 다음부터 회사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자기 뒤를 쫓아다니고, 자신이 해놓은 일에 대해 늘 불만을 드러내고 지적한다고요. 그들이 자기를 지금 해고하고 싶어서 그런다고요. 일단 사고를 당하면 누구나 그런 수순에 들어갑니다. 미국에도 ‘노동자 산재 보상제도’가 있어요. 일하다가 사고를 당하면 일하지 못한 그 시간까지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각각의 사건마다 수많은 변호사들이 버티고 있죠.
미국의 노동조합, 더는 힘이 없어
기업들은 노조 저지하는 데 노련
오바마, ‘노조 독려’ 진심이었다면
해고 위협 막는 법 만들었어야
안 = 월마트에는 노동조합이 없나요?
에런라이크 = 노동조합요? 그들에게 더는 힘이 없어요. 미국의 일터에서 노조를 조직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기업들은 노조를 저지하는 데 아주 노련해요. ‘노조 피하기 프로그램’이라는 걸 갖고 있고, 컨설턴트가 와서 노동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납니다. 노조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죠. 더 보편적으로는 기업의 책임자가 노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해고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노동의 배신〉 작업을 할 때, ‘노조’라는 말조차 입에 담는 걸 조심스러워했어요. 제가 더는 못 참고 그 단어를 입에 올렸을 때는, 또 다른 상황을 마주해야 했고요. 가장 슬펐던 반응은 젊은 여성의 질문이었는데요. 가정집 청소하는 회사에서였죠. 그 여성이 묻더군요. “노조가 뭐예요?” 오! 맙소사!
안 = 오바마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미국인이여, 노조에 가입하자!’라는 연설을 했습니다.
에런라이크 = 그랬죠. 맞아요. 그렇지만 그는 아주 많은 지옥이 쉽게 만들어지도록 했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노조가 활성화되기를 바랐다면, 노조에 관심을 두는 노동자들을 해고의 위협으로부터 막는 법을 만들었어야 해요. 또 기업의 수장들과 한자리에 앉아 대통령으로서 요청했어야 합니다. “노조는 당신들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제도다. 노동자들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오바마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노조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이 나라 근로 대중을 중류계층으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줬어요. 지금 우리가 아주 당연하다고 여기는 너무나도 많은 제도와 생활은 노조원들이 싸워서 얻어낸 결과입니다. 하지만 지금 노조는 잃어버린 존재가 됐습니다.
안 = 미국 노동계급의 상징이었던 나이든 백인 남성들은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했습니다.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가 작년에 프랑스·영국·미국의 정치지형이 변화해온 경로를 추적해 논문을 발표했는데요. 불평등 확산과 함께 일어난 뚜렷한 변화가 저학력 저소득층의 보수화였습니다. 이전에는 반세기 넘게 진보를 지지해오던 진영입니다.
에런라이크 = 저는 선거 결과 속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사는 노동계급은 민주당에 의해 다 팔려가고 말았습니다.
안 = 다 팔려갔다는 것은 무슨 뜻이죠?
에런라이크 = 그들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극도로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민주당에 의해서 그렇게 됐죠. 노동조건이 악화됐습니다. 임금도 동결됐고요. 그 모든 결정에 민주당이 있었습니다. 민주당은 완전히 또 다른 엘리트가 됐고, 금융 엘리트들과 하나로 겹쳐졌죠. 힐러리 클린턴은 압축된 엘리트주의를 스스로 보여줬습니다. 그녀가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을 가리켜 “deplorables(개탄스러운 존재들)”이라고 따옴표를 해가며 연설할 때였어요. 이 단어는 영어에서 그리 일상적인 말은 아니에요. 형용사로 사용되는데, 그 단어를 변형해 트럼프 지지자를 힐난했던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제는 엘리트주의가 모든 기득권 세력으로 번졌구나, 당신은 지금 백인 노동계급을 당연스레 버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 트럼프가 선출되고 아직 취임하기 전, 리베카 솔닛을 만났습니다. 페미니스트인 그녀는 백인 남성 노동계급에 대해 주요하게 분석하는 미국 언론과 정치권을 비판했습니다. 백인 남성 우월주의 속에서 오로지 백인 남성 노동자의 분노만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요.
에런라이크 = 저도 페미니스트예요. 하지만 그 계급은 바로 나의 출신 계급이기도 합니다.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요. 그러니까 저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죠. 그들은 그냥 남자들입니다. 나는 그들을 알아요.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들이 느끼는 그런 판단에서입니다. 그들은 먹고살기가 어려워 화가 났습니다. 예전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진 백인 남성들이 갖던 직종은 가족을 부양할 만했어요. 지금은 더 이상 아니죠.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일자리는 매우 슬픕니다. 좌파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 만든 영화가 있는데요. 오하이오에 있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따라다니며 찍었습니다. 그중 한 남성이 이런 말을 해요. “내 딸아이가 손톱 잘라주고 매니큐어 칠해주는 일을 하는데, 1년에 4만7000달러를 번다. 50대인 나는 온종일 일해도 1년에 2만7000달러를 벌기가 어렵다.” 오늘날 백인 중년 남성들이 고용된 일자리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만한 돈을 주지 않습니다.
저학력 저소득층의 정치 보수화는
노동 조건 악화·임금 동결 등
모든 결정에 민주당 있었기 때문
안 = 그들은 어떻게 살죠?
에런라이크 = 모든 전략과 전술을 동원해 생존하죠.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거예요. 몇 년 전 저한테 돈을 빌린 친지가 있어요. 모기지회사에 주택 융자를 갚아야 해서죠. 그는 트레일러 한 동에 아들과 손주 한 명이랑 살았습니다. 저도 〈노동의 배신〉 작업을 할 때 잠시 트레일러에 살았는데요. 여름엔 전체가 달아오릅니다. 한 명이 살기도 힘든 비좁은 공간에 세 명이 사는 거죠. 집이 아닌데 그가 그냥 자기 집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엉겨 붙어 살거나 아니면 일자리를 몇 개 더 찾아 잠을 줄이며 노동하는 거죠.
안 = 현재 프랑스에서는 저항에 나선 무산자들이 입고 나온 형광 노란 조끼를 가리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보이게 만들고 목소리가 없던 이들이 함성을 내도록 만든 상징이라고 묘사합니다. 하층세력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재는 영국과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데요.
에런라이크 = 먼저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해야죠. 오바마에 대해 매우 거슬렸던 점이 그가 처음 백악관에 들어왔을 때 경제에 대해 논의한다며 회합을 했어요. 참석자 모두가 백인 남자들이었죠. 전문가들, 교수들, CEO들요. 그 자리에 지게차나 기중기 기사, 트럭 운전사도 한 명 없었고, 웨이트리스도 한 명 없었어요. 만약에 이들이 그곳에 있었다면 이런 말을 했겠죠. “우리는 시간당 15달러가 필요하다. 유급휴가를 받고 싶다. 우리도 좀 쉬어보자.” 우리는 듣고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무얼 해야 할지 떠오릅니다.
정치는 회의실에서만 떠드는
늙은 남자들의 생각이 돼선 안돼
주변 사람들과 일상을 나눠야
안 =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에런라이크 = 우리는 가능한 한 모두와 함께하고자 둘러봐야 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옆에 사는 사람들, 일하는 건물에 오가는 사람들과 일상을 나누는 거예요. 어떻게 지내냐고 묻고, 듣고, 영향을 주고받는 겁니다. 지금 저는 보기 드물게 ‘긍정주의, 희망의 순간’을 맞고 있어요. 한 무리의 새로운 하원의원들을 맞았기 때문이죠. 그들은 제가 말하는 것과 같은 말을 합니다. “모든 시민에게 의료보험을, 최저임금을 올리고, 이민세관단속국(ICE)을 폐지하자!” 대단하죠? 가장 놀라운 것은 이들의 언어가 정치적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스물아홉 살 연방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비디오를 보세요. 옥상에서 춤을 춥니다. 나는 열다섯 번이나 봤어요. 왜냐하면 저를 기쁨과 희망으로 채워주니까요. 앞으로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정치는 더 이상 회의실에서 인상 긁고 떠드는 늙은 남자들의 생각이 돼서는 안돼요. 정치는 사람들의 춤사위로 나와야 합니다. 집단의 기쁨으로 하늘 아래 옥상에 올라 희망에 겨워 춤추는 역사로 이어져야 합니다.
2014년 장 지글러와 절대빈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내 머릿속에 구체화한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은 아프리카에 사는 맨살을 내놓은 농부들이었다. 이런 내 속을 꿰뚫었는지, 지글러는 매일 2달러 이하로 연명해야 하는 절대빈곤자가 가장 많은 대륙은 아시아라고 지적했다. 그 순간 나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오래된 국가들로 이뤄져 있고, 지독한 가뭄이 해를 넘겨 작물을 태운 것도 아니고, 전쟁이 지속돼 폐허를 이루지도 않은 아시아. 세계의 공장으로 밤낮없이 돌아가는 노동자들의 대륙이며, 나의 사람들이 속한 아시아에 절대빈곤 대다수가 산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21세기 오늘의 가난도 우리의 통념을 뒤흔든다. 가난은 모르는 사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옆에서 점점 더 뭉크러져 가는데, 우리는 애써 눈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일자리가 없어 가난으로 곤두박질친다. 일을 해도 가난에 허덕인다. 이런 다수의 삶에 ‘조금만 더 열심히! 제발 희망을 안고 숨 고르며 내달리자!’라고 응원할 수 있을까? 다수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당위를 내세워 사다리 아래 계층의 이익을 외면한 채 달려가는 21세기 민주정치의 문화를 돌려세우고 싶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저널리스트·사회운동가 사회 불평등 문제에 천착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77)는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다. 50여년 동안 사회 곳곳의 불평등 문제를 위트 넘치는 비판으로 파헤쳐왔다. 뉴요커지는 그를 ‘베테랑 부패 고발자’라고 부른다. 록펠러대학에서 세포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도시 빈민의 건강권을 옹호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다가 전업 작가로 나섰다. 2001년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을 잠입 취재해 〈노동의 배신(Nickel and Dimed)〉을 썼고, 초베스트셀러로 주목받으며 미국의 생활임금 논쟁에 불을 붙였다. 2011년에는 자기계발서와 동기유발 산업, 초대형 교회, 긍정심리학 등 사회 곳곳에 만연한 긍정주의의 폐해를 낱낱이 파헤친 〈긍정의 배신〉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여권의 책을 썼으며, 최근작으로 2018년 발표한 〈자연적 원인(NaturalCauses)〉이 있다. 현재도 뉴욕타임스, 타임, 가디언, 네이션 등 영어권 주요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며, 노동자와 여성·소수자 등을 위한 사회활동을 활발히 펼친다. 그는 21세기 들어 거대 미디어 복합체들에 의해 통합되면서 더욱 상업주의로 빠진 언론환경을 바꾸고자 2011년 ‘이코노믹 하드십 리포팅 프로젝트(Economic Hardship Reporting Project) 재단’을 설립했다.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그들의 글과 영상을 통해 생산되도록 교육과 재정지원 및 가디언과 같은 주요 언론과 연결해주는 적극적인 지원을 한다. 그의 재단에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같이 불평등 문제에 목소리를 내오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도 함께한다.
안희경은
재미 저널리스트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 서구의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레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놈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등의 저서와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원문 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저임금은 스스로를 천민으로 느끼게 해 일상의 문화에서 가난한 노동자는 소외” [세계 지성과의 대화 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