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개정 ‘강사법’(고등교육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겸임·초빙교원을 공채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대학 측의 요구가 시행령에 반영되지 않아 강사단체들은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는 반응이다.
강사단체들과 학생들이 요구한 내용도 일부 포함됐다. 대학들이 강사와 강의를 줄이면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 등에서 불이익을 준다고 한다. 강사, 박사 후 연구원 등에 대한 고용안정성을 BK 21 후속사업 평가에 반영한다고도 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 시행령을 환영하고 기대감을 나타내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올 1학기 강사 대량해고와 강좌 대폭 축소 사태에 거의 손 놓고 있었다. 이 정도의 내용이라도 시행령에 담긴 것은 해고 강사들을 포함한 대학 시간강사들, 대학원생, 학부생이 분노를 표출하고 연대해 함께 투쟁한 덕분이다.
그러나 많은 대학 시간강사들은 이번 강사법 시행령에 여전히 공허감을 느끼고 있다. 강사 해고와 고용 안정 대책은 여전히 실질적이지 못하다.
이번 학기에만 시간강사가 2만 명가량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정부 발표로는 1만 4천 명이지만 조사하지 않은 대학도 많다). 하지만 교육부는 해고 강사 대책으로 고작 2천 명에게 1년간 1천4백만 원의 연구비를 제공하는 계획만을 내놨을 뿐이다.
턱없이 부족하다. 해고된 강사들끼리 또 경쟁을 해야만 한다.
강사 고용 관련 지표와 연계시킨다는 1조 4천억 원 정부재정지원 사업은 사실상 기존에 있던 여러 예산들을 모은 것이다. 이 예산을 강사 인건비 지급에 사용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서 허용했으나, 이것이 강사 고용 안정에 얼마나 실질적일지는 미지수다.
해고 강사에게 강의 기회(지역사회 평생학습 프로그램, 고교학점제 프로그램) 부여도 언급했으나 ‘검토’ 약속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 넘는 동안 ‘검토’는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희망고문과 동의어였다. 대선 공약 어긴 게 수두룩하다. 강사들에게 또다시 참고 기다리게 할 미끼를 던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립대 강사료 문제는커녕 퇴직급여공제제도 도입, 직장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 등에 관해서도 일절 언급이 없다. 방학 중 임금을 2주로 계산해 예산을 책정하겠다는 내용도 턱없다. 방학은 2주가 아니라 두 달이 넘는다.
결론적으로 시행령은 화려한 포장 문구로 치장했지만 지속가능한 강의 및 연구 환경에 대한 실질적 개선책을 찾기 힘들다.
이것은 애초에 통과된 개정 강사법의 문제점과 관련 있다. 강사 처우 개선이 강사 해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충분한 예산 지원이 법령에 명시되지 않았다.
강사법 적용을 피하고자 강사를 해고하거나 꼼수 계약을 강요하는 대학들을 규제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기지 않았다. 대형 사립대학들은 “처벌 조항 없지 않냐?”며 간단히 법을 무시하려는 행태를 보여 왔다.
강사 공채를 공지하는 대학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분노의 강사들’은 교육부가 공개채용을 앞둔 대학 시간강사들의 극심한 불안감을 과연 알고나 있는지 묻고 싶다.
공개 채용 내용을 공지한 대학들은 ‘교육부가 뭐라 해도 우리는 갈 길을 간다’고 방향을 잡은 듯하다. 겸임·초빙교원을 총장 특채로 뽑는 대학들도 적지 않다.
한 국립대는 강의 수요 조사 결과 시간강사들의 강좌가 수백 개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열 명이 넘는 시간강사들이 강의해 온 특정 과에서 “3~4명의 강사 정도만 쓰겠다”는 계획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온다. 시간강사를 공개채용하는 규모가 얼마나 될지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다.
전임교수를 채용할 학과의 경우 시간강사를 채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임교원을 확보하는 것은 박수칠 일이나 전임교원이 많은 강의 시수를 감당하며 시간강사를 구조조정하는 계기가 돼서는 곤란하다.
‘분노의 강사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전임교수 강의시수 전수 조사와 시수 제한이 필요한 까닭이다.
공개채용 기준도 문제다. 전임교원을 뽑는 수준의 채용 기준에 벌써부터 대학 시간강사들은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
감사 결과 서울의 많은 사립대들이 부패 비리의 천국임이 새삼 확인되고 있다. 부패와 전횡을 벌이는 대학들은 교육을 위해 당연히 져야 할 강사 처우 개선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대학 시간강사들의 고용은 지금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다. 교육부 시행령을 보면서 한 해고 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교육부 시행령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 수영 잘 해서 여기까지 오실 분들을 위해 어느 정도 업그레이된 구명조끼 준비해 놓았으니 여기까지 헤엄쳐 오시면 됩니다!”
“어차피 대학 갈 아이들 수는 줄고 대학들도 정리될 판이라 강사 해고는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니, 이 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알아서 빨리 일자리 구하라는 신호로 들린다.”
‘분노의 강사들’은 강사 해고 문제와 전국의 대학 시간강사들이 느끼는 고용불안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다. 고액 등록금을 내고서도 콩나물 강의실에 시달리는 학생들, 여러 비정규직 교원과 정규직 교원, 그 밖의 대학 교육 악화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연대해 싸워나갈 것이다.
2019. 6. 5.
분노의 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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