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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진보신당 평당원의 당대회 참가기:
‘진보통합’의 열망을 배반한 9.4 진보신당 당대회

진보신당 임시 당대회에서, 통합 결의안이 부결됐다. 페이퍼 당원이었지만, 그래도 '당원'이라고 요 얼마 간 진보신당의 진로와 역할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나온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정리가 필요하다 여겨 메모를 남겨둔다.

부결

9월 4일, 송파구민회관에서 향후 진행될 진보대통합 과정의 향배를 결정할 진보신당 3차 임시 당대회가 열렸다. 대의원들의 참여열기는 높았다. 최초 성원보고 시 330명을 기록했던 재석자 수는 최종 안건 표결 시에는 410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2차 임시 당대회의 재석자 수(최초 성원보고 시 363명, 최종 표결 시 349명)보다 60여 명 증가한 수치다.

원안의 2항에 '또한 국민참여당은 통합대상이 아니라 연대의 대상임을 확인한 수임기관의 입장을 재확인한다'는 문장을 추가한 수정동의안의 상정이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작은 논란이 있었지만, 앞서 진행된 김형탁 사무총장에 대한 질의응답과 안건이 발의된 이후의 찬반토론은 비교적 질서정연하게 이어졌다. 찬성측과 반대측, 각각 3+1인의 발언이 있었다. 찬성자들은 협상의 결과물이 실질적으로 국참당의 통합진보정당 합류를 저지했다는 점, 현장과 지역의 민중들 절대다수가 진보양당의 통합을 원한다는 점, 고립된 소수로 남는 것이 아니라 통합정당 내부에서 치열한 정치투쟁을 벌이는 것이 진정 전투적인 태도라는 점 등을 강변했다. 반대자들은 북한에 대한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고, 국참당과의 통합이나 연정참여 문제 역시 명확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직 진보신당의 독자노선이 실패했다고 단정짓기는 이르다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었다.

표결 결과, 통합진보정당을 위한 합의문은 부결됐다. ‘5.31합의문, 패권주의 극복과 민주적 당운영에 관한 부속합의서2, 당명·강령·당헌 등 2차 협상결과를 포함한 최종합의문’은 재석 대의원 410명 중 222명 만이 찬성했고, 이에 앞서 표결에 붙여진 수정동의안은 재석 대의원 408명 가운데 213명 만이 찬성, 두 안 모두 부결됐다. 탄식과 환호성이 교차했다. 고성과 욕설은 없었다. 양 측은 담담히 결과를 받아들였다.

상황

지난 2차 임시 당대회에서, '당장 통합여부에 대한 결론을 짓기는 이르다'는 판단을 한 대의원들은 202명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통합파였고, 이들 중 일부가 '시간을 좀 더 갖자'는 주장에 동조한 독자파였다. 이를 감안하면 통합여부에 대한 최종결론을 내리는 시점에서 통합을 찬성한 대의원 수는 20여명 보다 더 많이 증가한 셈이다. 하지만 참석자 역시 60여명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통합을 반대하는 측과 찬성하는 측의 전체적 역관계는 두 달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화하지 않은 셈이다. 그간 정치적 상황이 급변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런 사실은 적잖이 실망스럽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추가협상과정에서 통합진보정당의 기구구성, 운영방식, 강령 일부 등을 담은 '부속합의서 2'는 진보신당의 요구안이 대부분 받아들여진채 일찌감치 합의됐다.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국민참여당의 통합진보정당 참여 문제였다. 민주노동당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국참당을 통합진보정당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압박했고, 진보신당은 국참당의 신자유주의적/친자본가적 정체성을 문제 삼아 이에 완강히 저항했다.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국참당은 당 내외 인사들의 칼럼과 인터뷰, 유시민과 이정희의 공동출판행사 등을 통해 전방위적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결국 당 내 좌파들의 정치투쟁과 민주노총, 전농 등 기층 운동단위의 조직적 반발에 밀려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협상 시한을 코 앞에 두고, 이정희는 결국 '국참당과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9월말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한다'는 조승수의 안을 받아들였고, 이어진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는 '진보신당과의 합의없이는 국참당과의 통합에 나설 수 없다'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진보신당은 협상과정에서 '부속합의서 2'와 관련된 요구들을 관철시켰고, 신자유주의 세력의 통합진보정당 합류를 막아내야 한다는 책임 또한 짊어지게 되었다. 지난 2차 임시 당대회때와는 명백히 다른 정치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럼에도 독자파들의 정치적 입장은 한치도 변하지 않았고, 대의원들의 표결 결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쟁점

만약 진보신당에서 통합결의안을 승인했다면, 독자파의 주장대로 이후 어떤 방식으로든 국참당과의 통합이 실현됐을까. 불가능했다. 정당법 상 대의기구에서 수임기관에 협상대상을 위임하는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수임기관은 임의로 협상대상을 결정할 수 없다. 진보신당의 안건에 명시된 통합대상은 민주노동당뿐이었다. 수정동의안이 아닌 원안만으로도 진보신당이 국참당과 협상에 나서는 일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국참당이 새통추를 통해 통합에 합류하는 것은 가능할까. 새통추의 구성원들은 새통추에 추가로 정당이 참여하는 것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합의했을 시"에 가능하다고 합의했다. 이 제안의 제안자인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명시적으로 이것은 "진보신당에 비토권을 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김형탁 사무총장과이 질의응답과정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국참당이 해산해서 개인자격으로 참가하지 않는 한, 국참당이 새통추를 통해 통합진보정당에 참여할 가능성은 없다.

통합진보정당이 창당 이후 국참당과 2차 합당에 나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통합진보정당의 대의기구는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기타참여세력이 1:1:1 동수로 구성하도록 합의됐다. 정당법상 당의 통합을 위해서는 대의기구 구성원 중 2/3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진보신당 뿐만아니라 민주노동당과 기타참여세력 안에도 국참당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않게 존재한다. 따라서 이미 진보신당이 1/3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통합진보정당의 대의기구가 국참당과의 합당을 승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제시하는 '당원총투표' 역시 대의기구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파들이 "진지하게 논의"한다는 잠정 합의안의 문구만을 문제삼으며, 마치 국참당과 진보세력이 통합할 여지가 남아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지적능력의 결여, 혹은 의도적 왜곡으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통합진보정당의 구성과 운영방식에 있어서도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 대등한 지위를 보장받았다. 협상과정에서 대표적 독자파인 김은주 부대표조차 "(진보신당의)당력에 비해 (민주노동당에게)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내용"이라고 말한 진보신당의 '부속합의서 2'와 관련된 요구들은 대부분 합의문에 반영되었다.

그럼에도 합의된 강령 등에 "비정규직, 성소수자 문제등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없다"거나, "강령전문이 짧고, 철학이 담겨있지 않다"고 지적하는 것은 어긋난 비판이다. 강령 등에 미시적 전술을 담을 수도 없거니와, 현재의 당 강령은 완성되지 않은, 향후 건설될 통합진보정당의 전체적 방향을 다룬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의기구, 중앙과 지역에서 모두 민주노동당과 동등한 영역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았음에도 패권주의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도 설득력이 없다. 독자파 자신들도 참여한 수임기구에서 결정한 요구안이 대부분 받아들여진 합의 결과물을 이제와 원천 부정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북에 대한 관점'을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로 꼽은 것도 실망스럽다. 민주노동당의 모든 개인/세력이 북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가진것도 아니거니와, 비록 민주노동당 내 특정세력이 지닌 북에 대한 관점이나 태도가 진보신당과 다르다해도 민주노동당은 조직노동자, 농민, 서민에 기반한 정당이며, 노동자 투쟁, 농민 투쟁, FTA 투쟁, 생존권 투쟁, 핵 폐기장 투쟁 등 진보운동 전반에 걸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투쟁의 동지들이다. 진보신당과의 이런 물질적/실천적 공통점을 도외시하고 머릿속 이념을 근거로 민주노동당이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짓는 것은 진보적 정당의 구성원들보다는 탁상공론이나 일삼는 먹물들에게 어울리는 행동이다.

민주노동당 내 일부 민족주의 세력이 그들의 이념때문에 보이는 약점과 모순(보수 야당에 대한 구애, 몰계급적 전술, 북 정권에 대한 태도 등)은 당 내부에서의 정치투쟁과 토론, 진보적 실천속에서의 입증을 통해서 교정해나가야 한다. 특정집단과 얽히길 거부하고, 그 집단의 세계관이 알아서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은 몽상일 뿐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의 운동을 '종북주의 세력의 발호'라고 낙인찍을 수 있고, 진보신당 등 좌파들이 소수로 고립되는 상황이야말로 극우세력과, 더 멀리 신자유주의 세력이 원하는 정치지형이다. 우리는 그들의 바램과는 정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민족주의자들과 단결해서 싸워야 하고, 이를 통해서 그들의 단점을 교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을 위한 출발점이 통합진보정당 건설이다.

찬반토론의 과정에서 나온 "통합안의 부결에 기뻐할 자들은 조중동, 한나라당, 국참당이고, 통합안의 승인에 기뻐할 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민중들"이라는 한 대의원의 발언은 이런 점을 웅변한다.

교훈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국참당과의 통합논의를 밀어붙이다 후퇴한 일련의 과정으로부터, 아무리 '선거논리'가 판쳐도 이를 이유로 기층대중운동의 압력을 전면적으로 거스르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진보신당의 요구안 대부분이 받아들여진 상황으로부터,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에 비해 '상대적 소수'라도 진보대통합의 구현이 시대적 과제로 요구되는 상황 속에서는 통합의 당사자이자 한 축으로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했다.

단결을 해야하는 객관적 상황과 집단 간의 이념이 다르다는 현실속에서, 비록 이념은 달라도 두 집단의 계급적/실천적 토대가 같다는 것, 집단의 이념과 전략/전술은 '자연적 과정'이 아니라 '변증법적 투쟁 과정'을 통해서 변화할 수 있다는 것, 집단간의 이념과 전략/전술이 불균등한 것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투쟁의 상수'이며 이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라는 것은 투쟁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인지해야 했다.

진보신당의 독자파들은 이런 점을 파악하지 못했다.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들은 정치적 상황의 변화와 그 변화를 낳게끔 강제하는 요인들을 애써 무시하고, 자주파의 이념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진보대통합은 민주대연합으로 이어질 것이다, 진보신당은 자주파 계열에 지배당하고 말 것이다, 라는 식의 고립적 패배주의를 고집했다.

진보신당 임시 당대회에서의 통합결의안 부결로, 통합진보정당의 건설 과정은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이 와중에 다시금 제기될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통합과 연립정부 참여 문제'로 인해 기어이 통합진보정당이 좌초되거나 변질되는 일이 없도록, 진지한 변혁적/계급적 진보세력 모두가 단결된 행동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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