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논란:
우파에 맞서기 위해서도 옳고 그름은 분명히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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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2억 원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9월 10일 구속됐다. 이것은 무상급식 투표 패배 이후 불리해진 정세를 뒤집고, 곽 교육감이 추진해 온 무상급식과 혁신교육, 학생인권조례 등을 중단시키려는 우파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다.
이번 구속은 ‘교육계의 MB’,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서 검찰이 한없이 관대했던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공정택은 교육감 선거를 위해 사립학교 이사장 등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은 사실이 폭로됐으나 검찰은 “대가성이 없다”면서 수사를 거부했었다. 이후 마지못해 수사를 할 때도 “서울 교육 공백이 우려되어 불구속 기소”했다.
이명박 정권이 연루돼 있는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도 검찰은 한없이 무능하다. 도곡동 땅-다스-BBK로 이어지는 비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전 국세청장 한상률은 2년간 도피 후 연초에 돌연 귀국했는데, 검찰은 “개인 비리에 국한한다”며 불구속 수사를 했고, 그는 최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결국 이명박, 이상득 등이 연루된 이 정부 최대의 부패 의혹은 묻혔다.
부산저축은행 비리 문제에서도 검찰은 핵심 로비스트인 박태규가 출국하는 것을 사실상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다가 반년이 지나서야 그를 구속했으나, 비리의 몸통은 건드리지 않고 있다. 권력 핵심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이런 부실 은행에 포스코와 삼성이 수백억 원을 투자하고 감독기관들이 눈 감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2억 원 지급 사실을 먼저 인정한 곽 교육감을 ‘무죄추정의 원칙’까지 어기며 추석 연휴 직전에 구속한 것과 대조적이다. 따라서 이런 검찰의 역겨운 위선을 폭로하고 우파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곽 교육감의 잘못을 정치적·도의적으로도 문제 삼을 수 없다거나 방어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곽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 대상자인 박명기 교수에게 현금 2억 원을, 그것도 은밀한 방식으로 전달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었고 정당화될 수 없다. 만약 곽 교육감이 선거와 전혀 무관한 인물의 딱한 사연을 듣고 ‘부조’를 했다면 논란에 휩싸일 일도 없었을 것이고 진보 진영에 타격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뢰와 정당성
그러나 그는 개인이 아니라 진보 교육 운동을 대표했기 때문에, 그가 2억 원을 건넨 행위가 법적으로 유죄든 무죄든 무관하게 이미 진보 운동의 대의는 상처를 받았다. 경쟁 교육에 반대하고 복지를 더 늘려야 한다는 진보 진영의 주장이 더는 신뢰를 잃는 것을 막아야 한다.
따라서 “언제 끝날지 모를 법리 공방을 벌이는 건 그의 자유이자 권리일지 몰라도 그 기간 동안 멍들”(시사평론가 김종배) 진보 운동의 대의를 생각해서 곽 교육감은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은 또한 개인적 방식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집단적인 방식으로 선거에 대응해 온 진보 진영의 방식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미 오랫동안 진보정당의 후보들은 이런 방식(노동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지지금과 자발적인 무급 선거운동원들의 도움)으로 선거를 치러 왔다. 이번 사건에서도 곽 교육감이 개인 돈으로 ‘선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진보 운동의 전통에 따라 집단적이고 공개적인 논의를 통해서 이 문제에 대응했더라면 이런 잘못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곽 교육감의 잘못을 옹호하는 주장이 진보 진영 안에서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가 검찰과 조중동에 의해 공격받고 있는 만큼 일단은 그를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진보 진영의 경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2005년에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민주택시노조연맹 위원장으로서 택시 사업주에게 8천여만 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다. 당시에 그는 ‘돈을 빌린 것이며 조합원 치료비 등에 썼다’고 변명했지만 비공개적으로 기업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에 검찰이 이것을 폭로한 목적은 노무현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노동계의 결집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운동 진영이 강승규를 옹호하고 나섰다면 진보 운동이 받는 타격은 더 컸을 것이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강승규를 제명했고, 부패를 단호하게 도려내겠다는 취지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조기 사퇴했다.
우리 편이라는 이유로 방어할 수 없는 것을 방어하면 진보 지지 대중의 환멸을 자아내고 운동 세력을 약화시켜 오히려 우파의 득세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곽 교육감을 방어하는 사람들은 그가 물러나면 우파들이 득세하고 진보적 교육 개혁도 중단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고, 이것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걱정이다.
그러나 교육 개혁의 진정한 동력은 진보교육감 개인의 능력이나 명망이 아니라 그것을 염원하는 대중을 운동으로 얼마나 잘 결집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애초 진보 진영이 곽노현의 당선을 위해 노력했던 이유도 교육감이라는 자리가 대중 의식과 운동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이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운동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진보교육감이 우파에 맞서 교육 운동의 요구를 대변할 때는 지지하지만, 그가 그것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고 잘못된 태도를 취할 때는 분명히 비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선 직후 일제고사 시행을 앞두고 곽 교육감이 약속과 달리 일제고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전교조 서울지부는 공개적인 비판을 통해 이를 바로잡고 대체 프로그램 지침을 이끌어낸 바 있다. 또 올해 5월에는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교육부의 압력에 밀려 교원평가를 수용할 듯하자, 전교조 전북지부가 열흘 넘게 교육감 접견실을 점거하고 단식 농성을 벌인 끝에 이를 무력화하기도 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검찰과 곽 교육감 사이의 진실 공방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 운동의 성과를 지키기 위한 대안과 운동 건설을 지속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