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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이 계속 정체하는 상황에서 총선 후보 선출을 둘러싼 각 세력들의 갈등까지 커지면서 위기감이 나타나고 있다. 노회찬 대변인은 통합진보당이 현재 “심각한 위기”라고 걱정했다.

물론 통합진보당의 지지율 하락과 정체는 양대 자본가 정당에 우호적인 기성 언론의 의도적 외면 속에 대중의 시야에서 진보정당이 사라진 것이 핵심 이유일 것이다. 대중 투쟁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선거에서 될 곳을 밀어주자’는 정서가 큰 것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진보의 존재감을 스스로 갉아먹은 측면도 있다. 통합 과정에서 강령을 후퇴시키는 등 진보적 정체성을 훼손해 온 것이다.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민주통합당과 연대를 최우선시하며 진보의 차별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을 전술적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과제로 삼으면서 자본가 정당과 진보정당 간의 차별성을 흐리는 것도 문제다.

상당수 사람들이 친노 세력이 부상한 민주통합당과 ‘노무현(과 전태일) 정신을 계승한다’는 통합진보당이 무엇이 다른지 헷갈려 하는 판에, 그것을 더 증폭시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민주통합당이 ‘좌클릭’했고, 정책 공조를 전제로 할 것이라며 선거연합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이 믿을 수 없는 세력이라는 것은 몇 차례나 드러났다. 그래서 이정희 공동대표도 “[민주당이] 함께 하자고 약속한 사안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느냐는 점에서 상당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지지율이 상승한 민주통합당은 한나라당과 석패율제 등에 합의하며 진보정당의 몫을 축소하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따라서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민주통합당과 연대를 최우선시하며 진보의 차별성을 훼손하면 지지자들의 투지와 열정이 약해질 수 있다.

진보의 차별성 훼손은 통합진보당이 내건 총선 5대 비전에 ‘노동’ 의제가 빠진 것에서도 드러났다.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강령에서 ‘노동’ 의제를 후순위로 돌리더니, 그마저도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을 고려해 더 약화시킨 것이다.

그래서 통합진보당 권영길 의원은 “현재의 통합진보당에 민주노총과 노동자가 설 자리가 없으며 [통합진보당의 노동 정책이] 민주통합당 노동 정책과 차별성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은 “진보가 불안정하고 급진적이라는 멍에”(심상정 공동대표)를 벗어던지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통합당과 구분되는 급진적 대안을 제시하며 아래로부터 투쟁을 확대해 힘을 키워야 한다.

전투

2004년에 진보정당 국회의원 10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우파의 반동에 맞서 대규모로 벌어진 ‘탄핵 반대 운동’이 그 배경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선거나 투쟁에서 불가피한 특정 상황에서 민주통합당과 연대하거나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 점에서 최근 통합진보당의 일부 당원들이 당의 정체성과 지향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당명에 ‘노동’을 다시 포함하자는 의견을 제기한 것은 전적으로 옳다.

권영길 의원도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통합진보당의 지향이 좀더 좌파적이고 급진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가들조차] 다보스 포럼에서 자본주의가 위기이고 철 지났기에 이제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은 끝났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통합진보당이 총선 때 최대한 많은 지역에서 출마하고 독자 완주해서 진보의 가치를 선전·선동하고 정당득표율을 올리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도 반갑다. 실제 진보진영 후보가 대거 출마해 의미 있는 득표를 한다면, 정치판에 진정한 압력을 형성할 수 있고 많은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다.

한편, 통합진보당 일부 당원들이 ‘진보의 정체성과 노동 중심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약칭 진노사)’을 결성해 “당 지도부의 우경화 시도에 반대해 진보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계승”하려는 것도 주목된다. ‘진노사’는 “통합진보당에서 노동자 중심성이 약화되는 것에 반대”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상이한 계급에 기반한 세력들 간의 통합이 또 다른 분란과 분열을 잉태할 것”이라는 예측이 점차 입증되는 상황에서 좌파 활동가들의 구실이 더 중요하다.

그동안 민주적 토론과 당내 민주주의도 무시한 채 합심해서 패권적으로 우경화를 추진하던 세력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패권주의 비판’ 등을 내세우지만 각 세력이 서로 자기 지분·자리만 늘리려고 하는 듯하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지적하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자’는 심상정 공동대표의 주장도 우려스럽다. 심 대표가 바로 이런 논리로 2008년 분당 때 우경화를 추진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로 갈등하는 세력 중 어느 쪽도 더 급진적이고 투쟁적인 방향의 대안을 제시하며 그에 적합한 좌파 후보를 내세우려고 고민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좌파 활동가들은 통합진보당에 비판적 지지의 관점으로 개입하면서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우경화 시도에 반대하고 기성 정당과는 다른 진보의 독자적 가치와 급진성을 분명히 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더불어 ‘불안정한 3자 동거 체제’가 낳는 갈등에 대처하며 미래에 일어날 더 중요한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