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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개혁주의와 선거를 무시해서 넘어설 수 있는가?

일부 급진좌파들이 ‘노동자연대다함께’가 낸 진보대연합에 관한 성명과 관련한 여러 쟁점들을 꺼내 놓은 것을 보게 됐다. ‘구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이 한 일이 무엇있냐’ 하는 주장부터 시작해서, 민주당, 국민참여당 세력과 민족주의 좌파를 동일시해서 ‘노동자연대다함께’가 추구하는 진보대연합을 야권연대의 다른 말로 보는 견해, 진보대연합의 귀결은 구 민주노동당이나 통합진보당이라고 하면서 이미 실패한 이론이라는 주장, 개혁주의 정당에 속하는 것은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절대 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 등이 있었다.

대부분 진지하고 건설적인 제기라기보다는 ‘노동자연대다함께’에 대한 종파적 비난의 성격이 강했고, 언급했듯이 민주당, 국참당 같은 부르주아 정당과 개혁주의 좌파를 완전히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초좌파적 주장이었다. 이 논쟁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관련해여 중요한 쟁점이 담겨 있어서 나름대로 내 생각을 써 봤다.

급진좌파들은 개혁주의자들의 만행들을 하나하나 꺼내 들면서 이들과 함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이들은 혁명가들이 혁명을 만들어 일으킬 수 있다거나, 개혁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운동을 운동 바깥에서 줄기차게 비판하기만 하면, 그 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고 혁명적 운동으로 바꿔버릴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상상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일상적 시기에 진보적인 대중들이 그런 개혁주의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선거를 통해 정치는 그들에게 맡기고 자신의 고달프고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한국의 노동계급의 의식이 이미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발전해서 개혁주의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노동계급에게 완전히 입증되었다는 것을 전제한 것인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입증은커녕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민주당 집권 10년을 마냥 좋게 보지는 않으면서도, ‘이명박근혜’와 새누리당에 치를 떨며 안철수 같은 지배계급의 일부를 지지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이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가 보다.

개입

개혁주의는 없는 것처럼 하려고 아무리 외면하고 무시하려고 해도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개혁주의자들이 대부분의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라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사회주의자는 그 운동을 주도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그 운동을 지지하고 참여하는 대중을 바라보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 운동의 바깥이 아니라 운동에 참여하고 개입하면서 개혁주의자들이 운동을 전진시킬 때는 지지하고 그것을 가로 막을 때는 비판해야 한다. 운동의 바깥에서 그런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운동에 대한(또는 개혁주의에 대한) 옳은 주장만 하면 개혁주의자들이 갑자기 혁명가가 되어 운동을 혁명적으로 전진시킬 것이라고 믿는 것과 다름없다. 절대 그럴 리 없기 때문에 이건 망상이다.

‘정당’을 ‘운동’에 대입시켜서는 안 된다. 당은 운동이 아니다. 혁명정당은 물론이고 개혁주의 정당 또한 운동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선거 시즌이든 아니든 간에 그 정당에 속하지 않더라도 운동에 개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정당 밖에서 (운동이 아니라) 그 정당을 비판할 수 있는가? 당연하다. 그것은 좌파들뿐 아니라 투표권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도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선거 시기가 되면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당이나 다른 여러 정당들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그런 얘기는 자신들의 비판으로 그 정당의 공약이나 정책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것일 수 있고, 그러지 않더라도 누구를 찍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의 일부일 수 있다. 우리는 당연히 그 정당이 아니라 평범한 대중들을 바라보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들의 투표 뿐만 아니라 정치 의식, 그리고 운동에 대한 개입이다.

선거와 계급투쟁

선거에 대한 물음이 여기서 나올 수 있다. 사회주의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선거 제도를 어떻게 바라 봐야 하는가? 당연히 선거로 세상이 바뀐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보다 운동, 즉 계급투쟁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선거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로 세상이 바뀔 수 없다는 것은 혁명가들에게 분명한 것이지만 개혁주의자뿐 아니라 다수의 노동계급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 물론 전략이 아닌 전술로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사회주의자의 전술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현재 사회 진보를 바라는 많은 선진적 노동자들이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패배하기를 원하고 있다. 생물학적이든 정치적이든 간에 그들은 독재자 박정희와 불통 이명박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의 대선 승리는 노동계급의 전반적 사기 저하를 불러올 것이고 우파, 지배자들은 기고만장해져서 날뛸 것이다. 이런 결과는 당연히 계급투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 또는 안철수에 의해 박근혜가 패퇴한다면 대다수의 진보적 대중은 이것을 ‘승리’(물론 불완전하지만 최소한 끔찍했던 이명박 5년에 대한)라고 여길 것이다. 이런 선거 결과는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운동을 전진시킬 자신감을 부여할 수 있다. 대선 전에 어떤 운동이 갑자기 떠오르고 그것이 정치 지형을 어떻게 바꿔버릴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으로서 선거의 판세는 아마 이 두 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가들은 어느 쪽이 되기를 바라야 하는가? 당연히 후자다.

그럼에도 안철수나 민주당이 이겨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 대한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투표에 대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열어 두자는 것이다.

진보 후보

동시에 우리는 다른 주장도 할 수 있다. 박근혜도 안철수도 민주당도 아닌 다른 진보 후보가 많은 표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후보가 얼마나 득표하느냐는 진짜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의 자신감을 높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은 당연히 계급투쟁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이것이 사회주의자가 지금 진보대연합을 추구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민주당이나 국참당 세력과의 묻지마 야권연대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롭게 건설되는 진보정치 연합체는 제주 해군기지, 한미FTA, 비정규직, 등록금과 청년실업, 무상보육 등의 중요한 쟁점들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내놓아야 하고, 이명박 정부의 경제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를 건설하며, 지리멸렬한 민주당과 안철수에 대해 분명하게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진보대연합이 통합진보당의 패권주의 등의 오류로 귀결될지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와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