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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에 맞선 싸움, 어렵지만 끝까지 싸울 것”:
호텔롯데노조 박정자 성희롱 대책위원장 인터뷰

롯데호텔은 지난 1월 31일 성희롱 소송을 진행중인 계약직 5명에 대해 재계약을 거부했다. 근무 평점이 좋았던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에 노조는 재계약 거부가 성희롱 소송에 대한 보복 조치라고 규정하고 피해자에 대한 인사 압력 중단과 가해자 징계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2월 27일 오후 호텔롯데 노동조합 사무실로 찾아가 박정자 성희롱 대책위원장을 만났다. 박정자 위원장은 성희롱 소송을 진행중인 조합원들과의 간담회를 준비하느라 무척 바빴지만 민주노동당 학생 그룹이라고 밝히자 흔쾌히 시간을 내 주었다.

박정자 위원장은 “지난 1월 말 계약직에 대한 재계약 거부 이후 조합원들과 함께 사업장에서 선전전과 중식투쟁을 진행하고 있으며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중징계를 촉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고 최근 상황을 전했다.

현재 250명의 조합원들이 성희롱 민사소송을 진행중이다. 하지만 11월 21일 1차 심리가 시작된 이래 아직까지도 법원은 재판 일정을 잡고 있지 않다. 조합원들이 힘이 빠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뻔뻔스러움

노동청은 32명의 가해자에게 성희롱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징계를 회사측에 위임했다. 회사측이 제대로 징계를 내릴 리 만무했다. 최근에는 3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라는 노동청의 행정 명령을 받았지만 그것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 회사와 가해자들은 반성은커녕 소송을 제기한 조합원들에게 소송 취하 압력을 넣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회사는 승진과 재계약을 미끼로 소송을 취하하라고 회유하고 있다. 회유에 응하지 않는 조합원들에게는 노동 조건이 열악한 부서로 전보 처리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예를 들어 ‘신공항이 완성되면 영종도 외딴섬으로 보내겠다. 평생 거기에서 썩고 싶냐’는 식이다.”

가해자들도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왜 나만 걸고 넘어지냐”, “손등 정도 친 것 갖고 과민 반응하는 것 아니냐’, “당시에 말했으면 안 했을텐데 왜 지금 와서 그러느냐”, “당신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 정도는 관례라고 볼 수 있지 않냐” 하는 뻔뻔스런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박정자 대책위원장에 따르면,

“롯데호텔의 성희롱 사건은 노동청 조사관이 ‘성희롱 유형의 교과서’라고 불렀을 정도로 온갖 유형이 다 있었다. 임신한 조합원에게 모욕을 주는 것을 비롯해 여성 조합원들이 쓰는 컴퓨터 초기 화면에 포르노 사진을 설정해 놓고 컴퓨터 켤 때마다 자동으로 시작되게 해 놓거나, 업무중에 손님이나 다른 조합원들이 없을 때면 신체를 더듬기까지 했다.

“제일 흔한 사례는 원하지 않는 회식 자리에 강제로 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외부인 접대할 때 여성 노동자들을 외부 손님 사이에 앉게 하고 술 따르고 안주를 챙겨 주도록 강요하거나 고위 간부가 참가하는 회식 자리에서 시중을 들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1차가 끝난 뒤에는 2차로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에 함께 갈 것을 강요하고 술취한 것을 핑계로 2차에 가서 성추행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파업이 자신감을 주다

성희롱 피해는 아주 광범했으나 가해자들이 직장 상사라 저항하기란 쉽지 않았다.

“호텔이라는 사업장은 24시간 연중무휴이고 부서마다 근무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한번에 모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지난 20년 동안 직원 체육대회조차 없었다. 노동자들은 성희롱을 당하면서도 자신만의 일로 여겨 다른 사람에게 밝히지도 못했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서 성희롱 문제가 부각됐다.

“파업 당시 분임 토론 후 자신이 겪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대자보를 쓰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대자보의 대다수 사례는 성희롱과 관련한 피해 사례였다.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자신만이 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동료 노동자들이 같은 처지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조합에서는 즉시 성희롱 문제에 대응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구체적인 사례를 조사해 소송을 제기했다.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파업 전에도 성희롱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를 부서 전환시키는 것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파업 전에는 노동자들이 조합을 통해 싸우리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나 파업하면서 ‘조합은 조합원의 것이다, 단결하면 뭔가 해결할 수 있다.’는 의식이 확산됐다. 노동자들은 조합을 믿고 싸울 수 있었다. 파업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고 부서와 부서가 연결돼 지금까지 싸울 수 있었다.”

박정자 대책위원장은 성희롱 대책위의 성과를 이렇게 말했다.

“소송 이후 회사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 원하지 않는 회식 자리에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회식 이후 2차도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가 우리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진행되는 소송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3∼4월에 계약직 조합원 2백여 명의 재계약이 결정된다. 우리가 이번에 계약직 노동자의 해고 조치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회사가 재계약 과정에 함부로 인사 불이익을 주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해고되는 조합원이 있다면 파업 때 해고자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고 복직될 때까지 노조가 생계비를 지원하며 복직 투쟁을 함께하기로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했다. 우리는 파업 기간을 통해 정규직이나 계약직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모두 우리의 동지라는 의식을 갖게 됐다.”

가해자들에는 관대한 성희롱 관련법

그러나 대책위의 활동은 정부와 법원의 악의적 무관심과 사측의 압력 때문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정자 씨는 가장 큰 어려움을 이렇게 꼽는다.

“이번 투쟁을 통해 제일 많이 느낀 것은 성희롱과 관련된 행정의 한계와 법·제도의 미비함이다. 노동청에서 행정 명령을 내려도 집행권자가 사업주로 돼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별로 없다.

“사업주에게 예방 권한을 주고 있으나 영세 사업장에서는 가해자가 대부분 사업주인데 무슨 예방이 되겠는가. 또 성희롱 문제를 담당하는 노동청 감독관들조차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냐’고 피해자들에게 핀잔을 주기 일쑤다.

“결정적 문제점은 피해자가 소송 이후 현장에서 당하는 불이익에 대해서 아무런 보호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법 체계에서는 고소한 피해자가 성희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상사로부터 압력과 협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제2의 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다.”

박정자 위원장은 “노동자들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는 법이 주로 회사 임원인 성희롱 가해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며 법원을 비판했다.

박정자 위원장은 이런 바람을 나타냈다. “롯데호텔 투쟁을 통해 성희롱에 대한 문제제기가 현행 법·제도에서는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졌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계기로 성희롱 관련법이 실질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면 좋겠다.”

박정자 위원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책위가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롯데호텔에서 우리가 이기면 다른 사업장도 잘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진다면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과 후배 노동자들도 힘들 것이고 당분간은 아무도 성희롱 문제를 다시 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성희롱 대책위는 질질 끄는 재판 때문에 일단 지친 여성 조합원들을 묶어 낸 다음 가능한 대로 남성 대의원들부터 교육을 시작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박정자 씨는 성희롱을 없애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성희롱의 문제는 남녀의 문제라기보다 직장 상사와 평노동자 사이의 상하 관계에서 발생한다. 성희롱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여성 노동자들의 지위가 인정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 노동자가 생산에서 보조적 위치로만 규정되기 때문에 여성 차별이나 성희롱이 생기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들을 생산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인터뷰를 끝내고 조합 사무실을 나서는 데 면세점 성희롱 피해자 간담회가 있어서 여성 노동자들이 속속 조합 사무실로 모이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의 업무와 상사의 압력 속에서 지쳤을 법한데도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밝은 웃음을 보면서 저 노동자들이 아침에 눈을 떠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나올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