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울려퍼진 쌍용차 투쟁의 대의:
"사회적 타살을 막기 위한 연대는 '불법'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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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21〉 기자인 성지현 동지는 지난해 5월 19일 쌍용차 범국민 대회를 참가하고 거리에서 행진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2백만 원의 벌금에 기소됐다. 정당한 집회에 참가했다는 ‘죄’로 ‘벌금 폭탄’을 맞은 것이다. 4월 5일 이에 대한 재판이 있어서 나도 응원하러 갔다.
법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엄숙하고 권위적이었다. 왠지 나도 숨소리마저 조심하게 됐다.
그러나 성지현 동지의 최후진술은 엄숙한 척하며 위선 떠는 검사에게 통렬한 일격을 가했다.
“더 이상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고 사회적 연대를 만들려는 집회에 참가하고, 도로에서 행진한 것은 결코 ‘불법’이 될 수 없습니다.”
성지현 동지가 검사의 면전에 속 시원하게 쏘아 붙이자 검사는 얼굴이 완전 일그러져서 성지현 동지를 잡아먹을 듯이 째려봤다. 그러나 방청석에 있는 모든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최후진술을 경청했다.
“탈세, 부동산 투기, 전관예우 특혜는 기본이고, 별장 게이트 성접대 의혹을 받는 박근혜 정부 인사들은 이 사회의 고위층으로 떵떵거리며 사는데, 저와 같이 정당한 일을 한 사람을 단죄한다면, 과연 그것이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며 박근혜 정부의 “법과 질서”의 역겨운 위선을 폭로할 때 ‘힐링’이 되는 기분일 정도였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절절한 죽음의 행렬에 대해 말할 땐 방청하는 어떤 이는 듣는 중간 눈물을 훔치고 찡한 코끝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최후진술이 끝나자 법정에 있던 사람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응원 온 지인들만 박수를 칠 줄 알았는데, 법원 직원이 “박수치지 마세요!” 하고 제지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우연히도 같은 법정에 ‘와락’의 정혜신 박사가 또 다른 쌍용차 투쟁 관련 재판 방청을 기다리고 계셨다. 정혜신 박사도 최후진술이 끝나자 성지현 동지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높이 올려 박수를 보냈다.
검사는 약이 바짝 올라서 다음 피고인이 피고석에 올라왔는데도 우리를 노려봤지만 우리는 사기충천해서 법정을 나왔다. 아직도 그 통쾌함이 가시질 않는다.
재판이 끝나고 정혜신 박사가 대견하다며 성지현 동지를 와락 안아 주셨다. 그리고 쌍용차 투쟁의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열심히 싸워 보자” 하고 의지를 다졌다. 마음속에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쌍용차 투쟁의 대의를 굽힘 없이 주장한 성지현 동지와 함께 활동한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성지현 동지의 최후진술문
1. 들어가며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와 관련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9년 발생한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엇이 문제인지, 그 이후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그리고 공소사실에 해당하는 ‘5. 19 범국민대회’가 어떤 배경에서 열렸고, 왜 지금까지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 사건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지 말하고자 합니다.
2.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와 그 이후
2008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쌍용차 기업의 재무 상태가 취약해지자 쌍용차 사측은 2천6백46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했습니다. 노동자들은 “함께 살자”고 말하며 심지어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누겠다고 했지만, 쌍용차 사측은 모든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했습니다.
심지어 지난해 국회 청문회에서는 당시 쌍용차 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가 “먹튀”와 회계조작을 했다는 정황도 밝히 드러났습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현재까지 자살하거나 사망한 노동자와 그 가족이 23명입니다.
《의자놀이》에서 소설가 공지영 씨가 말한 것처럼 ‘일터는 단지 먹이를 구하러 가는 장소가 아’닙니다. ‘생활을 보장해 주고, … 품위와 자부심 그리고 긍지를 주는 내 인생이 펼쳐지는 현장’입니다. 그런 일터를 잃는다는 것은 생활, 품위, 자부심, 긍지, 가족이 무너진다는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쌍용차 노동자들은 단지 해고만이 아니라, 정리해고 반대 투쟁 속에서 인간사냥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국가 폭력에 노출됐습니다. 당시 쌍용차는 경제 위기의 구조조정의 시험대였고, 이명박 정부는 노동 유연화와 노조 죽이기를 통해서 경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와락’의 정혜신 박사님은 쌍용차 해고자들이 극단적인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쌍용차에서 일어난 23명의 죽음은 단지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회적 타살입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숨어있는 상태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3. ‘5.19 범국민 대회’
공소사실에 해당하는 ‘5.19 범국민 대회’는 22번째 희생자의 49재에 맞춰 열린 집회였습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자료를 보면, 경찰은 한두 명 시민들을 인터뷰해서 이 집회가 시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마치 많은 사람들이 이 집회를 지지하고 있지 않다는 듯 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지난해 3월 쌍용차에서 22번째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동료였던 노동자들은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무엇보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노동자들의 구호는 경제 위기 속에서 고용불안과 생활고에 신음하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습니다.
당시 쌍용차 이야기를 다룬 공지영 씨의 르포 《의자놀이》가 출판됐고,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이화여대에서도 분향소가 설치됐고, 많은 학생들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67개의 시민·사회·노동 단체가 모여서 ‘쌍용차 희생자 범국민 추모위원회’를 구성했고, ‘추모위원회’는 22번째 희생자의 49재에 맞춰 5월 19일에 ‘범국민대회’를 개최하고 참가를 호소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저도 ‘5.19 범국민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 집회는 부당하게 일터에서 쫓겨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고, 전 사회적 차원의 해결책을 촉구하는 자리였습니다. 더 이상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고 사회적 연대 만들려는 집회에 참가하고, 도로에서 행진한 것은 결코 ‘불법’이 될 수 없습니다.
4. 마무리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선 후 첫 임시국회에서 쌍용차 국정조사를 약속했지만, 당선하자마자 국정조사 약속은 휴지통에 버려졌습니다.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철탑에 올라간 노동자들은 백일이 훌쩍 넘도록 내려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중구청이 기어이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의 거점인 대한문 분향소를 강제 철거했습니다. 어제 이 소식을 듣고 저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도대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입니까?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저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함께 모이고, 거리로 나오고, 행동하고, 이 문제의 책임자인 정부와 쌍용차 사측에 항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2번째 죽음 이후로 이런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고, 제가 참가한 집회와 같은 대중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현재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가 무급휴직자 복귀와 8백억 원 유상증자 계획이라도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벌금을 내린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탈세, 부동산 투기, 전관예우 특혜는 기본이고, 별장 게이트 성접대 의혹을 받는 박근혜 정부 인사들은 이 사회의 고위층으로 떵떵거리며 사는데, 저와 같이 정당한 일을 한 사람을 단죄한다면, 과연 그것이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열심히 일했지만 휴지처럼 버려진 한국 노동자들의 자화상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끔찍한 정리해고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함께 살자”는 외침이 묻혀서는 안 됩니다.
저의 집회 참가와 행진은 정당합니다. 저는 무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