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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세계화와 그 기구들

[편집자 주] 니콜라 불라르는 ‘남반구초점'의 주도적 활동가이자 반자본주의 사상가이다. 이 글은 불라르가 5월 9일 이윤 중심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네트워크 ‘아래로부터 세계화'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 연설을 옮긴 것이다. 이 토론회는 6월 13일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 항의 시위를 건설하기 위해 마련됐다.

저는 이번 강연에서 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의 구실과, 그 기구들과 세계화한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해 개괄하려 합니다.

세계화한 자본주의의 전반적 추세에 관해서는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그것을 일반화해서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우선 권력과 부와 자원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부자들에게로 이동하는 추세를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추세로, 남반구[빈국들]에서 북반구[부국들]로, 농촌에서 도시로,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실물 경제에서 금융 경제로, 생산에서 소비로, 민간 부문에서 군사 부문으로, 그리고 공동체에서 상품으로 권력과 부와 자원이 이동하는 추세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지역적 수준, 국가적 수준, 그리고 세계적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동체와 공적 영역의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서 사적인 영역의 엘리트와 개인들에게로 권력과 자원의 진정한 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 각자는 생산 과정에서 일정한 구실을 담당하는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소비자조차 되기 힘든 처지에 있습니다. 소비자 축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간으로 취급되며, 이러한 주변화는 소비 활동만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준다는 관념에 의해 강화됩니다.

이러한 이동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예컨대 금융 이동의 경우, 개발도상국에 개발 비용으로 유입되는 돈보다는 부채나 초국적기업의 이윤이라는 형태로 북반구에 회수되는 돈이 압도적으로 더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돈이 유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다수 개발도상국이 추구하는 경제 발전 모델은 수출 위주의 발전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있기에 농촌 경제의 대량 파괴를 수반합니다. 산업화를 향한 엄청난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주로 상업 농작물 재배와 기업형 농업 육성에 자원이 투입되고 있으며, 이는 종종 소규모 생산자의 희생과 농촌 공동체의 막대한 위기를 수반합니다.

또한 우리는 자원이 공공 부문에서 사적 부문으로 이동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의료와 교육 같은 공공 서비스가 사유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일부 사적 활동과 책임이 공공의 것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동아시아 금융 위기 때 사적 부문의 기업들과 은행들의 부실 채권을 정부가 떠안으면서 사적인 부채가 공공의 부채로 전환됐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이 그 빚을 갚는 데 사용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자유시장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데,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배후에는 시장만이 가장 효율적인 자원 활용을 보장한다는 사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규제와 제한을 없애고 시장이 자유롭게 작동하도록 내버려 두면 최적의 자원 배분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계화한 자본주의는 자유시장과는 거리가 한참 멉니다. 사실, 그것은 특정 이익 집단을 위해 규제되는 시장입니다. 그것은 금융 부문과 기업들의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고 대신에 노동자·농민·실업자·노인·납세자 들에게 위험 부담을 전부 떠넘기는 방식으로 규제되는 시장입니다. 체제의 위험은 모두 그 위험을 감당하기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가됩니다.

두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첫째, 금융 위기 이후 한국에서도 그랬듯이 많은 외국 투자자들이 들어와서 기업들을 사들였고 맨 먼저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부터 요구했습니다. 기업들이 이윤과 자산 가치를 보존하는 방법은 우선 노동자들을 해고해 인력을 감축하고 노동 비용을 절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사가 떠맡아야 할 위험 부담이 회사의 수익성 보존을 위해 해고당하는 노동자들에게 곧바로 떠넘겨지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례는 농업입니다. 농업이 개방되고 농산업체와 수출용 농업이 강조되면서 쌀·설탕 등 각종 농업 상품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격 하락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농산업체나 중간 상인이 아니라 바로 농민 생산자들입니다. 농민들은 똑같은 생산물을 해마다 더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합니다. 여기서도 모든 위험 부담을 농민들이 떠맡는 것입니다.

국제 경제 기구들의 역사

세계은행·WTO·IMF 같은 기구들은 제가 지금껏 설명한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이 대형 국제기구들은 규칙을 확립하고 정책을 결정하면서 세계적인 불평등과 불안정을 양산하는 이 경제 체제에 모종의 합법성을 부여합니다.

사실, 이 기구들의 주요 기능은 제3세계뿐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선진국 경제까지 구조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각국의 경제를 세계화한 자본주의와 금융시장에 훨씬 더 개방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정책들은 개발과 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이뤄지는데, 왜냐하면 그 기구들은 원래 경제 개발을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통성에 근거해 그들은 자신의 정책들을 제3세계에 강요하고 제3세계 국가들은 이에 따르는 것입니다.

‘브레턴우즈 기구'라는 것의 역사에 관해 매우 간략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1944년,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전에 미국의 브레턴우즈라는 곳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를 통해 연합국은 오랜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들의 재건과 개발을 담당할 기구를 설립하자는 데에 합의했습니다.

그 때 만들어진 기구들이 바로 IMF와 ‘재건과 개발을 위한 국제 은행'이었고, 후자는 ‘세계은행'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기구들은 브레턴우즈에서 설립됐기 때문에 브레턴우즈 기구들로 불리기도 합니다.

같은 시기에 국제무역기구(ITO)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더 이상의 시장 개방을 원하지 않았던 미국이 이 제안을 부결시켰습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의 경쟁을 피하면서 자국 경제를 개발 · 강화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부국들은 ITO 대신에 ‘무역과 관세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라는 느슨한 무역 협상 틀을 건설했고, GATT는 1947년부터 1995년까지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그다지 제도로 정착되지 않았지만 그 틀 안에서 무역 협상은 계속됐습니다. GATT에서 다루는 무역은 공산품 무역에 한정돼 있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세계은행과 IMF가 한 구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그 기구들의 임무는 주로 전후 유럽의 재건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유럽의 재건이 완료되고 유럽 경제들이 명백히 번영하기 시작하자 세계은행은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세계은행이 제3세계 개발 사업에 돈을 빌려주는 대출 기관, 즉 은행으로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의 일입니다.

세계은행은 미국 정부(재무부)가 냉전 기간에 많은 나라들과 관계를 트고 공동의 이해관계를 구축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냉전 기간 내내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확장 경쟁은 냉전에 의해 제한돼 있었습니다. 어쨌든 세계은행은 친미 정권들에게 돈을 지원하는 매우 중요한 창구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세계은행은 아직 그 나름의 강력한 경제 개발 이데올로기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세계은행은 미국에 우호적인 정부라면 어떤 정부든 상관 없이 돈을 지원할 용의가 있었습니다. 설사 그 정부가 시장을 엄격히 통제하더라도 말입니다. 말하자면, 세계은행의 방식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다원주의적이었습니다. 그것의 주요 임무는 친미 국가들을 원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IMF는 그리 중요한 기구가 아니었습니다. 그 주된 기능은 국제수지 불균형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에 융자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국제수지 불균형이란 한 나라가 수출보다 수입이 지나치게 많아서 필요한 재화를 수입할 돈이 모자라게 된 상황을 말합니다. 또는 흉작이나 천재지변 때문에 한 나라가 정상적으로 무역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 단기 융자를 제공함으로써 그런 나라들이 정상적으로 무역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IMF의 기능이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는 금융 시장과 외환 시장이 매우 강력히 규제됐기 때문에 오늘날 같은 대형 투기나 해외 투자가 없었습니다. 세계 경제는 훨씬 더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1980년대의 외채 위기와 함께 급변했습니다. 그 전의 호황기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의 OPEC 회원국들은 석유 수출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들은 그 많은 돈을 쓸 수는 없고 누군가에게 대출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아랍 국가들과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여러 국가들은 특히 미국의 은행들에 많은 돈을 예치했습니다. 미국 은행들은 이 돈을 다시 개발도상국에 빌려 줬는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단지 부정부패나 여타 미친 짓에 쓰려고 돈을 빌렸거나, 빌린 돈을 스위스 은행의 비밀 계좌에 예치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막대한 돈이 미국 은행들을 통해 제3세계 나라들로 흘러들어 그 나라 통치자들 맘대로 사용됐습니다. 게다가 금리도 상당히 낮았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요인이 상황을 반전시켰습니다. 하나는 인플레를 겪고 있던 미국이 갑자기 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갚아야 할 외채가 크게 불어난 것입니다.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유가가 폭등함에 따라 석유 수입국들이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된 것입니다. 거의 하룻밤 사이에 많은 나라들이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졌습니다. 미국 은행들에서 빌린 돈은 지급 불능 상태가 됐고, 석유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경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처럼 1980년대 초반에 개발도상국들은 엄청난 경제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것은 세계은행과 IMF의 이른바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길을 열어 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한 나라 경제를 완전히 뜯어고쳐서 자유시장 경제로 만들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의 묶음을 말합니다. 이 때부터 국제 기구들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국민국가들에 강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3세계 국가들이 미국 은행들에 돈을 갚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세계은행과 IMF가 나서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돈을 빌려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당신들은 먼저 이거, 이거, 이거를 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나라 경제를 개조하는 데 필요한 세부 지침들을 한도 끝도 없이 열거해서 대출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개발도상국들은 이러한 조건들을 감수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한때는 채무국 카르텔이 대량으로 채무 불이행을 선언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은 하나둘씩 세계은행과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서명하기에 이릅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기구들은 국가 단위의 경제 정책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 나라들이 그만큼 심각하게 외채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세계은행과 IMF의 정책들은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불립니다. 빈곤을 초래하는 정책들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9가지 요소를 이루는 정책들은 1998년에 IMF가 한국 정부에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강요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1) 재정상의 균형 또는 흑자를 달성할 것, 2) 공공부문의 대량 사유화, 3) 자본 이동을 완전히 자유화함으로써 금융 자본이 아무런 제약 없이 국경을 드나들 수 있도록 할 것, 4) 각종 시장 장벽의 축소(예컨대 특정 수입품에 대한 관세나 내국 기업에 대한 특혜는 시장 자유화를 위해 없어져야 한다), 5)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일체의 누진세를 소비세로 대체해서 세금 부담을 사회 전체가 균등하게 지도록 세제를 뜯어고칠 것, 6) 노동시장 유연화, 7) 공공부문의 전면적 개혁을 통한 비용 회수 정책(즉, 공공 서비스 유료화), 8) 금융 부문의 완전한 구조조정, 특히 외국 자본이 은행과 증권에 투자할 수 있게 만들 것, 9) 마지막으로, 수출 경쟁력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

이러한 경제 모델을 따르면 새로운 자원들이 활용 가능해지고 갑자기 경제가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수출을 통해 커다란 수입을 올리고 그 돈을 다시 경제에 투자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연히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계은행과 IMF의 모델이 제대로 먹힌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정책이 성공한 면이 있다면 그것은 각국의 경제를 외국 투자자와 외국 기업과 금융시장에 개방시킨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임금 수준을 낮추고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며 많은 나라들의 독자적인 개발 정책 수립 능력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에도 성공했습니다. 광물·원석·목재·농산물 수출 같은 기초적인 경제 활동에서도 그렇습니다. 제3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특히 나누기 위해[녹취 불분명] 팔고 있는 것입니다. 북반구는 제3세계의 부와 유산을 현지 주민들에게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강탈해 가고 있습니다.

IMF와 세계은행과 미국 재무부와 월스트리트는 언제나 긴밀한 유착 관계에 있었습니다. 세계은행이나 IMF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과거에 미국 재무부에서 일했거나 증권회사 혹은 인수합병 전문 회사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 총재인 제임스 울펀슨은 예전에 인수합병 전문 증권회사의 사장이었습니다. 그는 국제 기구의 일원으로서 금융계와 미국 재무부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과 동일시하는 전형적인 부류의 인간입니다.

IMF와 세계은행에 관해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그것들이 은행이라는 것입니다. 은행의 일이란 돈을 빌려 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자선 단체도, 개발 기구도 아니고 NGO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들은 은행이고 은행에는 주주들이 있습니다. 은행의 임무는 빌려 준 돈을 돌려받아 주주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 기구들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투표권은 1달러에 1표씩입니다.

군대에 비유하자면 세계은행과 IMF는 선두 부대인 셈입니다. 그들은 한 나라에 쳐들어가서 일단 저항을 무력화시킵니다. 그 뒤에 들어오는 WTO는 점령군에 해당합니다. WTO는 각종 규칙과 분쟁 해결 장치들을 그 나라에 강요하며, 탈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올가미 같은 질서 속에 그 나라를 편입시킵니다.

WTO

WTO는 1995년에 창설됐는데, 같은 해에 GATT가 없어지고 우루과이 라운드가 종결됐습니다. 그들은 한 라운드의 협상이 시작된 나라나 도시 이름을 그 협상의 명칭으로 쓰는데, 우루과이 라운드는 우루과이에서 시작된 GATT의 마지막 협상 라운드였습니다. 그리고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합의된 사항 하나는 WTO를 상시적 기구로서 설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WTO도 세계은행과 IMF와 마찬가지로 자유 시장과 무역 자유화를 신봉합니다. 하지만 WTO 내부의 무역 관련 협약들은 자유 무역과 거리가 멉니다. 수많은 규정과 규제 장치들이 부국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습니다.

WTO와 GATT의 중요한 차이점 하나로, WTO는 몇 가지 새로운 협정들을 체결했습니다. 농업에 관한 협정, 서비스에 관한 협정, 그리고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이 그것들입니다. 이 때문에 WTO는 국제 무역 관계를 좌우지하는 매우 강력한 입법 기관입니다. 그리고 이 협정들이 얼마나 기업들의 로비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로서, 농업에 관한 협정 초안이 카길 회사의 부사장에 의해 작성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카길은 세계 최대의 농산업체로 손꼽힙니다. 또한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 협약의 초안도 대서양 양쪽의 서비스 산업 대표들에 의해 작성됐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IT 업계도 지적재산권 협약에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므로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WTO 내의 협약 체결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된 것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외채에 시달리는 덕에 IMF와 세계은행은 커다란 권력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빚을 채찍으로 이용해서 다른 나라들에게 자신의 경제 정책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WTO에게는 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분쟁 조정 기구입니다. WTO 협약은 법적 효력이 있으며 많은 경우에 심지어 국내법보다 더 큰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형식적으로는 어느 나라든 다른 나라가 협약을 지키지 않는다고 WTO에 제소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이 시스템은 가나 같은 약소국도 미국에 제소할 수 있는 매우 공정한 시스템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작은 나라들이 경제 대국을 상대로 제소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나 같은 약소국은 경제 대국을 상대로 경제 제재를 가할 수 없습니다. 가나가 경제 제재를 가한다고 해도 미국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습니다. 설사 분쟁 조정 위원회가 강대국에 불리하게 판결하더라도 강대국들은 판결을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반면에 약소국에 불리한 판결은 혹독한 징계 수단이 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강대국이 약소국에 가하는 경제 제재나 벌금의 파괴력은 막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분쟁 조정 시스템은 겉보기엔 공정하나 실상은 매우 불공정한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세계경제포럼·세계은행·IMF·WTO 사이에는 매우 강력한 이데올로기적·제도적 끈이 있습니다. 이 기구들은 하나같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중요한 기구들입니다.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바로 이런 곳에 모여서 세계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결정합니다. 바로 여기서 그들은 의견을 교류하고 국제 정세를 분석하고 세계를 어떻게 개혁할지를 결정합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지, WTO는 협상을 가속화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금융시장이 최상의 조건으로 작동하려면 IMF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해외직접투자가 적재적소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논의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경제포럼은 자신들의 의제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이 공공 기구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계경제포럼에 반영되는 이해관계, 즉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남북반구 모두의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이 공공 기구들을 운영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강력한 연계 고리가 있습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 참가자 명단에는 언제나 경제포럼의 토론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IMF·세계은행·WTO 대표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기

하지만 지금 현재 이들의 의견 일치는 여러 차례의 패배로 인해 매우 약화된 상태입니다. 시애틀에서 시작된 WTO의 패배, 그리고 도하 라운드는 9·11을 틈타 감쪽같이 이뤄진 작품이었지만, 칸쿤에서의 패배로 WTO는 자유화를 더 진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WTO는 엄청난 정당성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의견 일치를 심각하게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IMF는 1997년과 1998년의 경제 위기 이후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IMF를 혹독하게 비판한 뒤로 결코 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IMF는 마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사막을 헤매고 다니는 사람처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아 방황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방팔방으로 헤매고 있습니다.

세계은행 또한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는 듯합니다. 워싱턴 DC에 있는 세계은행 본관 로비에는 대리석으로 된 멋진 홀에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꿈은 빈곤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절대빈곤선 이하에 살고 있는 사람 수는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은행은 스스로의 기준에 비춰 보더라도 자기 임무에 완전히 실패한 것입니다. 세계은행이 현재의 경제적 사고에 집착하는 동안에는 빈곤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부시 정부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를 가속화하는 데 여러 면으로 훌륭하게 기여했습니다. 우선 부시 정부의 고립주의적이고 보호무역주의적 태도는 세계화와 다자주의 전체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미국이 다자간 틀을 벗어나 협소한 이익을 좇으려고 일방적으로 행동한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한 것이든, 미국 철강산업을 보호하려고 나선 것이든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라크 침략이야말로 가장 일방주의적인 결단이었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또한 미국과 몇몇 유럽 국가들 사이에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프랑스·독일과 미국 사이에 모종의 경제·이데올로기적 경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매우 확고했던 대서양 양쪽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의견 일치가 중대한 변화를 겪은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트 층에서는 이해관계의 파편화와 혼란이 만연해 있는 듯합니다. 많은 국가들이 자신이 처한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들 가운데 많은 수는 전투적인 사회운동의 등장에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운동들은 이제 전쟁, 사유화, 실업, 환경 등 모든 사회·정치적 쟁점들을 중심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의 성장은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세계경제포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모임도 한 겨울에 산꼭대기에 있는 비싼 호텔에서 비밀리에 개최하다시피 합니다. 또한 그것은 매우 배타적인 모임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IMF·세계은행·WTO 같은 공공 기구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얻는 모임이기도 합니다. 사실, 세계경제포럼에 맞서 시위하는 것은 전쟁이나 WTO나 사유화에 맞서 시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세계경제포럼은 바로 마스크 뒤에 있는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이익집단들이 바로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세계화한 자본주의의 의제들을 추진하는 기업가 집단과 금융가 집단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경제포럼의 마스크를 뜯어 내고 그들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전쟁과 금융 자유화와 사유화를 추진하는지를 폭로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들이 바로 대량 실업의 배후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환경 파괴의 배후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우리가 계속해서 전쟁에 반대하는 행동을 조직하고 WTO에 맞서 압력을 행사하고 우리 정부에 의해 주변화된 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압력을 넣는 한편으로, 세계경제포럼의 적들도 숨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비싼 호텔에서 비공개 회의를 하고 무사히 넘어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6월 13일에 여기 한국에 와서 여러분과 함께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폐쇄시키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우리가 ‘평화'라는 단어를 우리의 언어로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는 ‘경제 번영과 평화'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제목은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제목입니다. 저들이 원하는 경제 체제에서 평화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사회 정의이며 자유이지 경제적 축적이 아닙니다. 그러니 세계경제포럼에게서 우리의 언어인 ‘평화'를 되찾고 민중의 평화를 건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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