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주권 이양’
〈노동자 연대〉 구독
이라크 ‘주권 이양’
막도 오르기 전에 들통난 사기극
이라크 ‘주권 이양’이라는 사기극이 막이 오르기도 전에 벌써 정체를 드러냈다. 번듯한 제목이 엉성하고 빈약한 내용을 가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권 이양의 결정적 증거로 제시되던 미군 작전권에 대한 제한이 순전한 허구였음이 현실로 증명됐다.
지난 6월 19일 팔루자의 민가를 미군 폭격기가 공습해서 무고한 시민이 살해됐다. 이른바 임시정부 총리 알라위는 폭격기가 뜨기 일보 직전에야 공격 계획을 통보받았다. 미군 측은 알자르카위의 은신처라고 주장했지만, 팔루자의 이라크 관리는 “우리는 여성과 아동과 노인 시체를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대가족의 일원이었다”고 증언했다.
총리라는 자가 무고한 국민의 죽음에 항의하기는커녕 “우리는 이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공격을 환영한다”면서 미국 편을 들었다. 이것이 콘돌리자 라이스가 “꼭두각시가 아니”라고 우긴 임시정부 관리들의 본색이다.
유명한 미국 CIA(중앙정보국) 첩자인 알라위뿐 아니라 대통령 야와르도 조지 W 부시를 그대로 본 따 저항 세력을 “진정한 악”, “어둠의 세력”이라고 부르고 다닌다.
자연히 이들은 이라크 저항세력의 표적이다. 벌써 주요 관리 세 명이 암살됐고 내무장관과 보건장관의 자택이 공격당했다.
이들은 궁지에 몰리자 사담 후세인 시절에 만들어진 ‘특별법’을 이용해 계엄령을 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총리를 포함해 내각 중 상당수가 1968년 후세인의 유혈 쿠데타에 동조했던 전력에 비춰볼 때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들이 계엄령 선포 지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곳은 저항 세력의 힘을 상징하는 팔루자와 사드르 시(市)이다.
유엔 결의안이 열강 내부의 이견을 없앴다는 부시의 떠벌임이 벌써 옛 얘기가 됐다.
부시는 G8 정상회담에서 이라크에 관련해 실질적 소득을 얻지 못했다. 전통적인 친미 국가인 터키도 나토군을 파견하자는 미국의 의견에 반대했다.
미국의 처지에서 더욱 곤란한 것은 열강 내의 이견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내 미군과 민간 하청업자들에게 면책 특권을 부여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안보리의 열강이 모두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러한 분열은 이라크 내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군과 민간 관료들은 현재 이라크 상황이 악화된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라크에서 둘의 관계가 사상 최악이라고 보도했다.
미국과 꼭두각시 정부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성과는 남부 시아파 봉기를 주도했던 마흐디 군의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와의 타협뿐이다. 나름의 의도야 어쨌건 사드르의 타협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드르는 궁지에 몰린 꼭두각시 정부와 배후 조종자 미국에게 과분한 선물을 안겨 줬다.
그러나 타협은 불안정한 조건에 기초해 있다. 마흐디 군의 핵심은 알라위 정부가 이라크를 통제하기 위한 미국의 도구일 뿐이라고 경멸하고 있다. 이라크 주재 미군 당국은 마흐디 군의 일부가 사드르로부터 독립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실제로, 마흐디 군의 주 근거지인 사드르 시를 포함해 바그다드 지역을 중심으로 저항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타협으로 무마할 수 없는 뿌리깊은 분노가 이라크인들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연합군정청의 조사에 따르면 이라크인 중 92퍼센트가 미군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점령군이라고 답했다.
바로 이러한 분노에서 나온 투쟁 때문에 미군은 이제 그린 존에서 바그다드 공항으로 가는 도로조차 통제하지 못하게 됐다.
따라서 미국과 꼭두각시 정부의 입장에서 낙관할 만한 조건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지배자들은 자기 약점을 드러내면서 동맹들을 점령에 참여시키는 데 실패했고, 심지어 자기들끼리도 분열하고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 이러한 분열은 미국과 이라크 꼭두각시 정부 사이에 발생할 수도 있다. 벌써 후세인 재판권과 쿠르드족 자치권을 둘러싸고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런 갈등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 상황이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라크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미국 관리는 6월 30일이 ‘주권 이양’을 기리는 축제일이 아니라 “가장 위험한 날”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날 점령자들은 그린 존의 자기 방에 꼭꼭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리로 나서야 한다. 우리는 사기극의 진정한 실체를 똑똑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김용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