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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22일간의 드라마, 철도파업을 일군 영웅들

* 이 글을 통해 철도민영화 저지 총파업 투쟁을 현장에서 함께한 철도노조 지부장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22일간의 철도파업을 통해 보고 느낀 소회를 간략하나마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런 까닭에 이 글은 다분히 개인의 주관에 의존한다. 그래서 또한 많이 부족한 글이다. 이번 철도파업과 관련한 제대로 된 평가는 다른 분들의 몫이리라.

** 이번 철도파업의 영웅은 2만 철도노동자와 김명환 위원장, 그리고 국민이었다. 특히,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필두로 분출된 국민적 성원은 열화와 같았다. 나로서는 평생 잊지 못할 감동 그 자체였다. 이 자리를 빌려 국민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첫번째 영웅, 철도노동자

2013년 12월 9일 아침,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 시각, 배낭을 짊어진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전국의 주요 거점역으로 분주히 모여들었다. 그들은 철도노동자였다.

114년 공공철도를 지켜내기 위한 철도민영화 저지 총파업투쟁을 앞둔 시점이었다. 아홉시를 기해 전국에서 모여든 철도노동자들은 지구별 총파업 출정식을 동시다발적으로 갖고 파업투쟁에 나섰다.

사실 이번 철도파업은 그들로서는 각자의 생존권을 내걸고 벌이는 한 판 승부였다. 그런 까닭에 겉으로 보기에는 이번 파업이 철도공사를 상대로 한 것이었으나, 성격상 그 상대가 박근혜 정권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정치파업의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었다. 그런 만큼 전국 주요 역사에 모여든 철도노동자들의 눈빛은 한결같이 결연했다.

당시, 출범한 지 1년도 채 안 된 박근혜 정권은 이미 우리사회 곳곳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 상태였다. 박근혜 정권은 정치계, 언론계, 교육계, 노동계를 막론하고,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세력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린치를 가했다. 박근혜 정권에게 그들은 단지 탄압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국민을 상대로 한 폭압이었고, 유신의 부활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서슬 앞에 대한민국은 숨죽이고 있었다.

그런 엄혹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하나 둘 모이고 모여 열이 되고, 백이 되고, 천이 되고, 어느덧 그 숫자는 팔 천을 넘겼다. 비필공 파업참가율로 보면 무려 80%를 넘긴 수치였다. 믿기지 않는 수치였다.

단순히 철도민영화 반대, 철도공공성 강화라는 명분만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엇을 철도노동자들은 가슴 한 켠에 품고 그곳에 모여 있었다. 사람은 명분만으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릇 그들의 마음 한 켠에는 '빚진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마음을 풀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지난 20여 년,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이 땅의 노동자를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 동안, 어느덧 노동은 갈가리 찢기고, 대다수 노동자의 삶은 끝모를 나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노동유연성이란 미명 하에 자행된 자본의 칼춤이 불러온 필연적 결과였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우리 철도노동자들은 그나마 정규직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다.

1년 365일 남들 쉴 때 제대로 한번 쉬지 못하는 철도노동자. 쳇바퀴처럼 6일을 주기로 반복되는 '주주야야비휴'의 변형근로를 소화하고, 때론 생리현상을 참아내며 밤열차를 몰아야 하는 철도노동자. 겨울이면 영하 10℃를 넘나드는 혹한의 칼바람을 맞으며 새벽일에 나서야 하는 철도노동자.

열악한 근로조건과 불규칙한 근무형태 때문에 늘 부족한 잠에 졸린 눈 비벼가며 살아온 노동자의 삶이 십 년, 이십 년 켜켜이 쌓여 우리네 육신을 좀먹고 망가뜨려도 단지 우리의 이름은 '정규직 귀족노동자'일 뿐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정규직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한 시도 귀족인 적은 없었다. 엄혹한 신자유주의 시대를 정규직으로 살아간단 이유만으로 철도노동자들은 가슴 한 켠에 '빚진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야 했다.

자본과 권력의 신자유주의 카르텔은 언제나 우리를 철밥통, 귀족노조란 이름으로 쉽게 매도했다. 그리고 철도파업은 '국민의 발을 볼모로 한 강성 귀족노조의 밥그릇 싸움'이란 저들이 짜놓은 촘촘한 그물에 갇혀야만 했다. 우리의 정당한 요구는 늘 그렇게 묻혀야 했고, 또 그렇게 우리는 매번 무너져내렸다.

그러나 국민들께 이 기회를 통해 분명히 밝히고 싶다. 우리는 귀족 노동자의 철밥통을 지켜내기 위해 파업을 결행하지 않았다. 우리는 유신의 딸, 박근혜가 '철도 공공성'을 두고 휘두르는 망나니 칼춤을 어떻게든 멈추어야 했기에 우리의 생존권을 걸고 이번 파업을 결행했다. 철도 공공성의 붕괴는 '공동체의 무장해제'를 의미한다. 그 사실을 철도노동자들은 또렷이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만큼 이번 싸움은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철도민영화를 막아내는 것만이 우리의 '빚진 마음'을 풀어내는 길이라 믿었다. 그렇게 우리는 22일을 버텼다.

두번째 영웅, 김명환 위원장

철도노조 25대 지도부를 이끈 김명환 위원장은 처음부터 국민과 함께 하는 파업투쟁을 준비했다. 철도민영화라는 박근혜 정권의 속내가 분명히 드러난 순간부터 그는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적 저항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김명환 위원장은 처음부터 투 트랙(two track) 전술을 구사했다. 안으로는 골간조직을 다지고, 밖으로는 지역별 연대단위를 구축했다.

정치계와 종교계, 그리고 시민사회 단체를 향해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공동전선을 함께 구축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리고 그 성과는 파업을 수개월 앞두고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철도민영화 저지투쟁의 연대단위는 KTX 민영화저지 범국민대책위, 민영화반대 공동행동, 철도공공성 시민모임 등 다양했다. 특히, 1200여 단체로 구성된 원탁회의는 정치권과 종교계 등을 총망라하는 규모였다.

이를 기반으로 철도노동자와 연대단위는 지역별 대국민 선전전을 주요 거점역에서 매주 진행해 나아갔고, 야3당 특위 구성 등을 통해 정치권을 압박해 들어갔다. 그렇게 십여 개월을 철도민영화 문제가 우리사회의 주요 이슈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진력을 다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파업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전국지부장확대쟁대위에서 '이번 파업은 전면파업으로 맞서야 한다'는 현장 지부장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불구하고 김명환 위원장은 끝까지 필공전술을 주장했다. 파업전술을 놓고 10시간 가까운 난상토론이 벌어졌으나, 그는 끝까지 필공파업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의 뜻은 관철됐다.

그가 볼 때 승리의 관건은 파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어떻게 담보하느냐'에 달려있었다. 그리고 이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철도파업의 정당성 확보'와 '국민 불편의 최소화'뿐이라고 그는 보았다. 그런 측면에서 전면파업은 그에게 적절한 전술이 아니었다. 이번 파업은 정당성을 등에 업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 길게 가는 싸움이어야 한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가 옳았다.

김명환, 그는 그렇게 그가 그린 구도대로 이번 철도파업을 이끌 수 있었다. 그리고 집권 1년차의 박근혜 정권을 마침내 위기의 구렁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성과였다. 그러나 김명환 위원장은 마치 모든 것을 예견한 듯하다.

2013년, 22일간의 철도파업을 통해 김명환 위원장은 원없이 싸웠다. 그리고 대한민국 노동사의 한 꼭지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멋지게 써냈다. 노동이 파편화되고, 운동이 정체된 오늘의 상황에서 그의 투쟁방식은 우리에게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경찰서 자진출석을 앞두고 김명환 위원장이 조합원들에게 보낸 마지막 영상메시지가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돈다.

"국민과 맞잡은 손 놓지말고, 동지를 믿고 지도부를 믿고, 다시한번 투쟁의 전열을 가다듬어 새로운 투쟁의 역사를 만들어가자!"

그러나 새로운 투쟁의 역사는 이미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세번째 영웅, 국민

돌이켜보자. 철도민영화의 폐해가 널리 홍보되자 파업을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민영화 반대 여론이 70%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진행된, 누가 보아도 합법적이고 정당한 철도노동자들의 필공 총파업을 박근혜 정권과 그 주구인 철도공사의 최연혜 사장은 단순히 파업에 참가했단 이유만으로 참가자 전원을 직위해제시켜버렸다.

최연혜 사장은 수구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단호한 표정으로 법과 원칙을 운운했지만, 그 법과 원칙은 청와대를 향한 애견의 꼬리흔들기에 지나지 않았다. 파업내내 그녀는 그저 박근혜 코스프레에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권과 철도공사의 안일한 강경대응은 그들로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한 수였다. 이는 국민적 지지를 넘어 국민적 저항을 촉발하는 단초로 작용했다. 그들 스스로 빌미를 제공한 꼴이었다.

소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과 함께 철도파업 지지 열기가 삽시간에 들불처럼 국민들 속으로 번져나갔다. 어느덧 국민들은 "불편해도 괜찮아. 철도 파업 이겨라!" 라고 쓰인 손피켓을 들고 철도파업을 응원하기 위해 엄동설한에 거리로 나섰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 뿐인가. 철도파업이 국민적 호응 속에 연일 계속되자 다급해진 박근혜 정권은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노동자의 심장인 민주노총 본부를 공권력으로 무자비하게 침탈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빨려들었다. 박근혜 정권의 야만성이 전파의 현장성을 타고 열 시간이나 전국으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

박근혜의 숨겨진 민낯을 본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국민적 공분은 급기야 취임 1년차 박근혜 정권의 퇴진 구호로 터져나왔다. 세상 사람들은 독재자의 딸이 더한 독재자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런 세간의 평가는 단순한 우려가 아닌 우리 모두가 직면한 냉혹한 현실임을 절감했다. 이번 철도파업을 통해 박근혜의 민낯은 여실히 드러났다.

박근혜 정권은 절차상으로, 목적상으로, 나아가 도덕적으로 의롭고 정당한 철도파업을 악의적으로 불법파업이라 호도했다. 마치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 국가권력을 동원해 철도노조와 민주노총을 무참히 침탈했다. 급기야 경찰의 출석요구에 당당히 자진출석으로 대응한 김명환 위원장과 지도부를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하기에 이른다.

또한 철도공사는 파업복귀후 철도를 하루라도 빨리 정상화하기 위한 노조의 대화 재개 요구를 보란듯이 거부한 채 단협축소, 사업소 주재 폐쇄, 업무외주화 등의 현장탄압과 파업참가자 중징계 및 강제전보, 손배 및 가압류 등 철도노조를 파괴하려는 폭압적 행태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다.

사장이란 자가 철도현장의 혼란은 수습할 생각도 않고, 국회의원 금뱃지에 혈안이 되어 인사청탁이나 하며 정치판을 기웃거린다. 그 행태가 참으로 가관이다. 꼴사납기 그지없다.

세상이 혼탁하다. 그러나 물극필반이라고도 했다. 2014년, 나는 희망을 본다. 그 희망은 예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이 한 곳에 있었던 것같다.

영화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노무현에게, 김명환 위원장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늘 희망은 한결 같았다.

쓸데없이 말이 길다. 맥없는 얘기로 들릴 지 모르지만 진실은 단순하고, 이 글의 결론 또한 단순하다.

〈변호인〉의 대사로 이 글을 마무리하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가 국민이다."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 2014년 청마의 해, 철도노동자의 철도민영화 저지 투쟁은 동지를 믿고, 국민을 믿고 힘차게 2라운드를 열어갈 것이다.

결국은 우리가 이긴다. 반드시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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