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 투쟁》:
국제 노동운동의 교훈에서 한국 민주노조 운동의 부침을 돌아보다
〈노동자 연대〉 구독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시종일관 한국사회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생각했다. 제1차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동료 노동자의 징집에 맞서 비공인 파업을 벌인 영국 셰필드 노동자들의 투쟁에 관한 대목에서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방위산업체에서 노조를 만들었다고 해고(해고되면 곧바로 군대에 끌려가야 했다)된 동료를 복직시키라며 투쟁을 벌인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영국의 직장위원회 운동에 관한 대목에서는 1990년대 초까지 공식 지도부의 배신적 타협과 직권조인(위원장의 날치기 합의)에 맞서 즉각적으로 비상파업대책위를 구성하고 비공인 파업을 벌인 대공장 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가 떠오른다. 1990년대 초반까지 춘투 기간에 집행부를 갈아치운 경험이 있는 사업장이 65퍼센트나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리고 1987년 7~9월 대투쟁과 1989~90년 당시 노동자들의 전투성과 창의력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지게차와 중장비는 물론이고 경찰 침탈에 맞서 탱크를 몰고 나온 군수업체 노동자들도 있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샌딩기’(배의 녹을 벗겨내려고 고압력으로 모래를 분사하는 중장비로, 이 모래에 맞으면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를 몰고 나와 경찰력과 맞섰다. 파업하면 곧 공장점거와 거리 시위, 경찰 투입이 일상이던 시기였다.
이런 투쟁을 거치며 각 지역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조직들의 협의체와 연합체를 건설하고 1990년 1월 마침내 전국노동조합협의회라는 전국 조직을 건설해 냈다. 이런 전투성과 민주성은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압력과 동시에 혁명가들이 조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런 노동자 운동이 왜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좌파 지도부 세우기
이 책은 노동조합 역사가 1백50년 넘은 영국과 최초의 노동자 혁명이 성공한 러시아의 경험을 돌아보며 이런 물음에 대답한다. 특히, 노동조합 관료주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탁월한 분석과 현장조합원 운동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한국의 조직노동자 운동이 지금 겪고 있는 질곡과 위기를 ‘노동귀족’, ‘철밥통’, ‘배부른 자들의 투정’ 등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노동귀족’론은 이미 1백 년 전에 등장했다. 레닌이 서구 노동자 운동이 혁명적으로 분출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지적할 때 ‘노동귀족론’을 제기했다.
물론 레닌이 제기한 ‘노동귀족론’이 지금처럼 천박한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레닌의 분석에는 분명히 약점이 있었다. 노동운동 상층의 일부만이 문제라면 그들을 혁명적인 세력으로 대체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바로 이런 분석과 경향은 ‘좌파 지도부 세우기’ 전략으로 환원될 수 있는 약점이 있다.
이미 1백 년 전 영국에서 혁명가들은 ‘좌파 지도부 세우기’와 ‘아래로부터 압력으로 일상기에 노조를 혁명적으로 개편한다’는 전략을 추구했지만 이들은 참담한 결과에 직면했다. 일상적 시기에 ‘혁명가들이 노동조합을 장악하라’는 구호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영국 공산당의 윌리 갤러거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우리 동지들은 노동조합 지도부로 세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 우리 동지들을 타락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대형 노동조합의 지도부에 여러 차례 당선했지만 우리는 이런 활동이 혁명과 공산주의 운동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현장파 경향이 지속적으로 추구한 좌파 지도부 세우기가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었다는 점은 많은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1998년 민주노총이 정리해고를 노사정 합의한 것에 반발한 현장파의 지지로 당선한 이갑용 민주노총 위원장은 총파업을 철회하며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회피했다. 2002년 4월, 현재 좌파노동자회 소속인 허영구 당시 민주노총 직무대행은 발전노조파업 연대를 위해 총파업을 선언해 놓고 당일 취소했다.
현대차노조 이상욱 집행부의 무쟁의 행보와 윤해모 집행부의 쌍용차 파업 연대 회피와 사퇴, 기아차 김성락 집행부의 무쟁의 등 무수히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또한 계급 대리전 성격을 띠었던 철도 파업에서도 노동조합 관료주의 문제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박근혜와 지배계급은 온힘을 다해(하루에 총리, 국토부, 안행부, 법무부, 노동부 장관과 검찰정장, 경찰청장 등이 번갈아 기자회견을 하며 협박했다) 철도 파업을 파괴하려 했다. 하지만 철도노조 지도부와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조합의 힘을 온전히 발휘하려는 시도를 시종일관 회피했다. 민주노총에 경찰이 투입된 이후에도 김명환 위원장은 전면파업으로 전환하지 않았고 신승철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와 ‘전쟁을 선포’하겠다는 전투적 언사를 했지만 실질적인 파업을 2월 25일로 늦추며 파업 동력을 쇠진시켰다.
노조 관료주의
이런 노동조합 상층 지도부의 불필요한 타협과 용두사미, 뒷걸음치기 등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왜 이런 문제가 노조 관료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관료들이 처해 있는 위치와 조건에서 비롯하는지를 탁월하게 분석한다.
“노동조합은 착취 제도 자체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착취 조건 개선을 위해 싸우는 조직이다.” 이런 조직의 지도부격인 “노조관료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립하는 양대 계급인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려 한다.” “관료는 사용자도 노동자도 아니다.” “야누스의 신처럼 두 얼굴을 가졌다. 즉,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노조 관료층의 최대 목표는 바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이자 물질적 토대인 노동조합의 조직 보전에 있다는 점을 차분히 논증한다.
이 책에서는 ‘현장조합원 운동 건설’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두 유형의 현장조합원 운동의 사례를 심도 있게 살펴본다. 1915년 영국의 금속 노동자들이 조직한 직장위원회와 탄광 지역의 노동자들이 ‘범좌파 연합’ 형태로 구성한 비공식개혁위원회가 있었다. 이 두 운동은 모두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집단행동을 고무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통점과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두 운동은 공통적인 약점도 있었다.
금속산업의 직장위원회 투쟁은 특히 대단했다. 1916년 11월 셰필드노동자위원회는 강제 징집된 젊은 동료 노동자의 복귀를 요구하며 숙련 노동자 1만 명이 작업장을 이탈해 파업을 단행했고, 파업 사흘째 되던 날 정부는 항복했다. 1916년은 제1차세계대전의 한복판인 시기였다. 만약 장차 한국에서 강제 징집된 노동자들을 방어하려고 금속 노동자들이 연대파업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
직장위원회가 현장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을 지도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보면, 금속산업의 직장위원회의 경우 “사용자들의 편의를 전혀 받지 않았(고), 조합원들과 나란히 노동했고, 조합원들이 느끼는 압력도 고스란히 함께 경험했다.” “대표자들은 노조 관료와 달리 조합원들의 요구를 대변하지 않으면 소환될 수 있었고 활동비를 추가로 받지 않았다.”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직장위원회의 목적은 아래로부터 노조 관료를 통제하려는 시도도 아니었고, 순수한 혁명적 노동조합을 건설하려는 시도도 아니었다. 이들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했다.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올바로 대변하는 한 지도부를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면 곧바로 독자적 행동에 나설 것이다.” 이 얼마나 간단하면서 명료한 태도인가! 1백 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이런 태도는 노조 관료에 맞서는 훌륭한 지침이 된다.
반면 광원들의 비공식개혁위원회는 “노동조합을 개혁하는 데 전념했다.” “물론 현장조합원의 대중적 압력을 최대한 반영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었지만 여전히 노동조합 기구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투사들이 노동조합 상층관료로 진출하는 것을 배제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비공식개혁위원회는 젊은 세대 활동가와 노동조합 관료기구에 편입된 활동가 사이의 끊임없는 마찰로 얼룩져 있었다.” 또한 “인간이 호흡하듯이 투쟁이 부침을 겪을 때마다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 같은 지적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좌파 노조 지도부 세우기에 전념한 오늘날의 한국에서 노동조합 운동 상황에 따라 부침을 겪는 현장파 활동가들을 연상시킨다.
혁명적 정당
이 두 운동은 놀라운 장점과 역사적 교훈을 남겨 주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취약했고, 조직을 느슨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속한 산업에 갇혀 협소한 시각을 극복하지 못하는 등 약점마저 꼭 닮았다.” 단적으로 이 두 운동은 “같은 시기에 활동했지만 한 번도 공동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혁명적 정당의 지도와 개입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두 운동 모두 민감한 정치 문제를 배제하는 약점으로 인해 혁명적 정당의 개입이 어려웠다.
이 책을 보면서 한국 노동조합 운동이 겪은 부침을 비교해 보며 대안을 찾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장조합원 운동은 원칙적으로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작업장에서 조합원들의 자주적인 행동을 고무하고 조직하는 것에서 출발하면 된다. 그리고 이런 운동이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다른 산업부문으로 확대해 나가는 지향점을 갖고 작은 실천이라도 목적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시작하면 된다. 그 과정에 노조 관료주의 문제를 고민하는 노동자 투사들과 혁명가들이 만날 것이다. 물론 현장조합원 운동이 원칙을 넘어 전략으로 현실화하는 건 노동계급 운동의 전반적인 고양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지금 노동자 운동이 지긋지긋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투사들과 노조 관료주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투쟁적 현장 노동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