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알바들의 유쾌한 반란》:
어떻게 약자들의 연대를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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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롯데리아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근무표를 조작했다는 한 점장의 양심선언이 있었다. 롯데리아 본사가 이를 알고도 묵인을 지시한 사실도 폭로됐다.
지난해

이런 현실에 놓인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라는 운동에 주력해 온 알바연대와 알바노조가 자신들의 요구와 논리, 활동을 정리해 《알바들의 유쾌한 반란》을 내놓았다.
알바노조 조직화를 위한 교본처럼 보이는 이 책은 생생하게 현실을 폭로하고 최대한 읽기 쉽게 쓰려고 애쓴 흔적이 강점이다. 청소년, 청년들이 자기 권리를 깨닫고 행동과 자기 조직화에 나선 몇몇 경험담은 매우 고무적이고 흥미롭다.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가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니다. 요즘 편의점에서도 장년과 노년 노동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 정책으로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낮추려 한다. 이 책은 당사자들의 경험에 바탕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이 현대자동차 정규직처럼 기본급이 낮고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면서 부문을 뛰어 넘어 연대하자고 주장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소득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나, 그에 바탕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과 보편적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것도 공감의 폭을 넓힌다.
그러나 이 책의 이론적 알맹이들은 흥미롭지 않다. 케인스주의적 금융화론의 통속화된 설명과 프레카리아트론을 합쳐 놓은 분석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 혼란을 자아내기 십상이다. 이 책이 비록 최저임금이
저자들은 완전고용과 복지국가의 시대를 신자유주의와 금융산업 발전으로 성립된 금융자본주의가 대체했고, 이 시스템이 수익 창출을 위해 개인들을 부채 위기로 몰아넣고 노동유연화를 추구해 불안정노동을 양산했다고 말한다.
이는 전형적으로 좋은 자본주의와 나쁜 자본주의를 구분하는 개혁주의 사고 방식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금융자본주의가 국가를 무력화했다는 설명은 혼란을 자아낼 만한데, 왜냐면 이들의 핵심 실천은 모두 국가에 요구하고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의 주휴수당 받아내기는 그렇다 쳐도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 등은 매우 강력한 국가가 필요한 요구들이다.
노동계급이 정치적 해결을 위해 국가에 요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궁금한 것은 금융자본주의의 등장을 막지 못한 국가가 금융자본주의를 제어하거나 해체하는 데서는 유능할 수 있냐는 것이다.
물론 알바연대 활동가들은 국가를 강제하는 대중행동이 관건이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대답도 만족스럽진 않은데, 그렇다면 왜 1970~80년대에는 그렇게 못 했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사실 국가 개입으로 완전고용을 이룰 수 있다는
이제는
이처럼 조직노동자와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점 때문에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를 강조하는 이진경 교수 등의 프레카리아트론보다는 나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프레카리아트론은 칼 마르크스의 노동계급 이론을 계승
쌍용차, 한진중공업, KT 사례에서 보듯 정규직이라고 고용불안에서 면제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조직노동자들의 조직력, 투쟁력, 투쟁의 전통을 그런 힘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정확한 분석도 현명한 전략도 되지 못한다.
이들의
사실 자본들 간의 끝없는 시장 경쟁이 정치적 갈등과 국가 간 전쟁으로 발전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그 자체가 항구적인 불안정의 체제다. 주기적인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갈등이 상시적 불안정을 낳는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도 자본주의 안에서 항구적 안정성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불안정성을 금융자본주의에 와서 보편화한 새로운 특징적 현상으로 지목하는 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한편에서 이들은 노동의 불안정성은 과장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몇 가지 이유로 자본주의에 맞서 상대적 안정성을 획득할 능력이 있다. 노동자 개인들이 자본의 고용에 의존하듯, 이윤을 창출하려면 자본도 노동계급의 존재에 의존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잉여노동만이
또한 자본에게는 안정적 축적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 두 가지 요인을 배경으로 노동자들은 상대적 안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일상 투쟁은 항구적 불안정성에 맞서 상대적 안정성을 유지 확보하려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고용안정과 임금에서 전반적인 전진을 이룬 때는 박정희, 전두환의 국가자본주의 시대가 아니라 1987년 대투쟁 이후였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전체 고용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 자체는 축소되고 정규직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가 된 것도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요인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불안정 속에서도 지속적인 투쟁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노동계급의 특징이다.
그러나 불안정성에 기초한 프레카리아트의 연대는 이런 힘에 대한 개념이 없다. 기본적으로 약자들의 연대다. 자본과의 객관적 관계 속에서 생기는 단결의 조건과 힘에 기초한 연대가 아니라 의식과 각 주체들의 선의
그래서 개인들의 의식과 각성, 이데올로기 효과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한 장을 알바생과 알바노동자의 호칭이 가져올 이데올로기 효과를 다루는 데 쓴다. 노동자성 강조는 좋지만, 용어 사용이 세력관계와 대중의 의식을 뒤바꾸진 않는다.
이들의 전략에 국가를 외부에서 압박할 힘을 가진 주체가 없으니 국가가 무력해졌다는 분석을 하면서도 실천은 국가에 의존하거나 활용하는 전략에 기울 수밖에 없다. 또한 자영업자들과의 연대
이 책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대기업 갑과 자영업자 을 다음의 병이라고 주장한다. 갑에 맞선 을과 병의 연대가 이들의 주요 전략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공동 이해관계를 강조한다. 심지어 노동자들의 요구가
이것은 공동의 이익을 강조해 자본가들을 설득하겠다는 전형적인 개혁주의적 태도다. 이것은
그러나 자영업자와의 단결로 최저임금 인상을 이뤄낼 수 있을까. 상호간에 경쟁하는 자영업자들끼리의 단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기업을 위협할 힘이 없다. 설사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갑의 횡포를 줄인다고 해도 을과 병 사이의 고용주-노동자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인 아르바이트 노동은 상대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이 최저임금제, 기본소득제 등 정치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 엄청난 재원을 감안하면, 단지 개개인들의 의식 각성을 통한 동참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실현이 어려울 것이다. 이런 현실이 알바연대와 알바노조의 주요 활동이 사실은 노동상담지원센터 같은 구실에 머무르는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조직노동자들의 힘을 동원해야 하고 계급투쟁의 방식으로 정치적 운동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이 힘으로 더 많은 열악한 노동자를 싸우도록 고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체제와 국가를 압박하고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사회를 재조직할 힘을 보여 줘서 다른 계급의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 바로 노동계급의 주도성이다. 그 점에서 알바노조 자체도 민주노총에 가입해 더 광범위한 노동자들과 전투적인 노동조합 행동을 함께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이는 노동운동의 전투성뿐 아니라 노동계급을 변혁정치로 단결시킬 정치와 조직의 문제를 제기한다. 노동계급 중심 전략 아래서는 전투적 청년들의 자기조직화가 꼭 지금의 알바노조 같은 형식과 수준에 머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청년들은 더 넓은 차원의 노학연대나 사회적 연대에 참여할 수 있고,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현실을 바꾸려고 분투하는 변혁적 노동자정치단체의 일원이 돼서 노동계급 전체를 위한 투쟁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