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편집팀 성명:
7·30 재·보선이 보여 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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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국회의원 재·보선은 세월호 참사, 인사 참극, 각종 민영화 추진 등 박근혜 정부의 악행과 위기 요인들이 어우러진 가운데 치러졌다. 선거 기간에 박근혜 정부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40퍼센트 대로 떨어져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그러나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은 노동자 대중에게 전혀 집권당의 대안처럼 비쳐질 수 없었기에 노동자 대중이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징벌적 투표’를 하는 것은 처음부터 어려웠다.
역대 재·보선 투표율이 24~42퍼센트 대에서 오르락내리락했던 점에 비춰 보면, 투표율(32.9퍼센트)을 근거로 공식 정치 전반에 대한 혐오와 거부감이 이번 선거에서 특별히 더 표출됐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두드러진 것은 새정치연합에 대한 불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 하에서 야당이 정부 견제라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오죽하면 그 당의 전통적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새누리당 2중대’, ‘박근혜 정부의 인공호흡기’ 소리를 들었겠는가.
특히, 전남 순천·곡성에는 노무현 정부 때 태광실업 전 회장 박연차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가 의원직을 잃었던 서갑원을 공천해 많은 지지자들의 반발을 샀다. 새누리당 후보 이정현이 “누가 더 깨끗한지 비교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떠들 정도였다.
그래서 새정치연합 지지자들 상당수는 실망감에 투표를 포기하고, 일부 선거구(특히 전남 순천·곡성)에서는 아예 새정치연합에 대한 ‘징벌적 투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은 경기도의 다섯 선거구를 승부처로 여겼으나 수원 영통구 한 곳을 빼고는 모두 패배했다. 이 선거구들의 투표율은 이번 재·보선 전체 투표율 평균보다 낮았고, 거물 후보라던 손학규와 김두관이 재·보선 치고는 꽤 큰 표차로 낙선했다.
진보정당들도 분열 속에서 존재감이 미미해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변수가 되지 못했다. 돌아보건대 우리들 〈노동자 연대〉 편집팀의 기대는 너무 낙관적이었다. 우리는 노회찬 후보와 김득중 후보 지지 성명(7.26)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거구에서 진보 정당 후보가 당선 기대감을 상승시켜 바람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재·보선 전체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었다.
동작을에서 새정치연합 후보가 사퇴하며 노회찬 후보가 새누리당 나경원과 맞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노회찬 후보는 아쉽게 패했고, 선거 초·중반 새누리당에 유리하던 전반적인 재·보선 판도도 바뀌지 않았다. 진보 후보들의 성적도 대체로 신통치 않았다.
이러한 대안 부재 덕분에 새누리당은 선거적 이득을 크게 챙겼다. 15곳 선거구 중 무려 11곳(기존 새누리당 선거구는 9곳)에서 이겼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과 관련해 여권은 유족에 대한 흑색선전을 하며 경제 문제로 쟁점을 돌리려 했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에 대한 위기감을 부추기며 보수 결집을 추구했다. 선거 전, 2기 내각 경제팀을 통해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대기업과 부유층 지원이 골자인 정책들임에도 중간계급 서민층과 사기가 낮은 노동계급 부분의 환심을 샀을 것이다. 낙후된 지역이며 새정치연합이 부패한 후보를 공천해 분열한 전남 순천·곡성에서는 대규모 개발 투자 공약으로 틈을 파고들었다.
역사적 경험은 경제 침체기에 이런 사회집단들의 정치적 동요가 매우 잦았음을 보여 준다.
진보정당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들은 경기 평택을 선거구를 제외하면 각개약진하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당선자는 한 명도 없고, 동작을 정의당 노회찬 후보와 광주 광산을 통합진보당 장원섭 후보, 경기 평택을 김득중 후보를 제외하면 양자택일 구도에 짓눌려 존재감도 보여 주지 못했다. 대체로 보아, 진보정당들은 분열로 말미암은 존재감 약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특히, 노회찬 후보의 낙선은 지금 진보정당들이 처한 모순을 보여 준다. 지지율 3위이던 노회찬 후보는 새정치연합 기동민과의 ‘후보 단일화’로 순식간에 당선권에 근접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야권 연대는 진보정당이 공공연하게 친자본주의적인 새정치연합과 차별화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았다. 노회찬은 ‘기동민과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선거 운동 기간 중인 7월 22일 하루에만 의료 민영화 반대 온라인 서명에 60만 명이 참가했다. 그날은 6천 명의 병원 노동자들이 의료 민영화에 반대해 파업을 벌인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노회찬 후보는 민영화와 노동문제들을 선거에서 부각시켜 진보정당의 차별화된 의제로 제시하지 않았다.
〈노동자 연대〉 편집팀은 이미 이 점을 7월 26일 성명에서 지적한 바 있다. “[노회찬 후보가] 이번 선거 공약으로 노동 관련 공약이나 민영화 반대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는 당선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어리석은 온건함이다.”
이런 침묵은 새정치연합과는 다른 진보적 대안을 바라는 대중에게 호소력을 약화시켰다. 야권 연대가 득표를 늘려 주기도 하지만, 진보적 대중에 대한 호소력은 감소시키는 모순된 효과를 낸 것이다.
전망과 과제
박근혜의 지지율이 취임 이후 가장 많이 떨어진 때 치러진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오히려 의석수를 늘렸다. 박근혜 정부는 선거 승리를 이용해, 난처했던 처지를 되돌릴 틈을 만들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로 계급 세력 균형이 박근혜 정부에 유리하게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선거는 사회세력 간의 관계를 간접적이고 굴절시켜 반영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돈, 언론을 장악한 세력에게 유리할 뿐 아니라 선거 제도도 승자 독식 구조로 돼 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재·보선 승리로 방자한 행동을 하다가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여전히 세월호 참사는 정권에 큰 정치적 부담으로 남아 있고, 관련 의혹은 갈수록 커져 가고 있다.
새정치연합에 대한 불신은 박근혜와 여권의 인기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현 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능력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제1야당의 지리멸렬함 덕분에 어부지리를 얻었을 뿐이다.
박근혜 집권 1년 반 동안 민영화를 비롯한 온갖 문제에서, 심지어 세월호 참사 대응 문제에서도 새정치연합은 무기력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는 이 당의 노골적으로 친자본주의적인 성격 때문이다. 지배자들 사이에서 커져 가는 경제·안보 위기감 때문에 엘리트 집단 내 자유주의자들의 입지는 좁아져 왔고, 따라서 새정치연합의 운신 폭도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 점에서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지도자들이 ‘야권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하되, 혁신적으로 하자’는 것을 이번 선거의 교훈으로 삼는 것은 엉뚱하다.
오히려 독자적인 진보적 정치 대안에 대한 노동계급의 염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 평택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노동자 후보 김득중 선본의 선전은 작은 희망을 보여 준다. 김득중 후보는 정리해고 금지,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확대 반대, 작업장 안전 강화 등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사회집단들의 요구를 대변했다. 진보정치 세력들은 노동자 후보를 함께 추대해 지원했다.
그 결과, 선거가 주류 양자택일 구도로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5.6퍼센트(3천3백여 표)를 득표했다. 쌍용차의 동료들이나 기아차 노동자 등 조직 노동자들의 표가 상당수 포함됐을 것이다.
점거 파업을 벌이고 해고된 무명의 노동자 후보가 (제도상 불리한 무소속으로) 선거 직전에 단기필마로 출마해서 옛 민주노동당 수준(2008년 8.15퍼센트)에 근접하는 득표를 한 것은 진보 정치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진보 정치 재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노동자 투쟁에 기초한 공통의 요구를 중심으로 뭉치면 단결할 수 있고, 이것이 선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의료 민영화, 공공부문 구조조정, 통상임금 개악 등 당면 이슈들을 놓고 대중 투쟁을 구축해 맞서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노력도 지속돼야 한다. 이런 투쟁을 건설하고 때로 승리해 정치 지형을 노동자 정치에, 근본적 사회 변혁에 유리하도록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
2014년 8월 1일 〈노동자 연대〉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