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라크 폭격 중단하라
—
제국주의가 손 떼는 것이 평화의 첫걸음이다
〈노동자 연대〉 구독
6월 초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 즉 ISIS가 이끄는 수니파 반군이 이라크의 제2도시 모술을 함락시키고 빠르게 진격하기 시작했다. ISIS는 지금은 ‘이슬람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시아파 주도의 이라크 정부는 매우 종파적이었고 부패했다. 그래서 이라크 국민의 환멸이 컸고, 이에 ISIS는 실제 군사력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그러자 8월 8일부터 미국은 이라크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철군한 지 불과 2년 반 만이다. 미국의 이라크 폭격에 왜 반대해야 하는지, 오늘날 이라크 위기는 무엇에서 비롯했고 진정한 해법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미국의 폭격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오바마는 '이슬람국가'한테서 이라크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폭격을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이슬람국가'가 잔혹하고 아주 종파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폭격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된 제국주의의 개입은 언제나 재앙을 낳았다. 1999년 미국은 밀로셰비치의 ‘인종 청소’에 반대한다며 나토를 앞세워 세르비아를 폭격했다. 그러나 서방이 명분으로 내세운 인종 청소는 상당히 과장이었고, 오히려 서방의 폭격 이후 인종 간 갈등이 더 격화됐다.
2013년 리비아에서도 서방은 독재자 카다피에게서 민중을 구한다는 구실로 폭격에 나섰다. 그러나 희생자의 상당수는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던 리비아 민중이었다. 지금 리비아에서도 내전 발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슬람국가'는 자신이 제1차세계대전 이래 중동을 지배한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다고 선전한다. 미국의 폭격은 '이슬람국가'의 명분을 강화하고 종파 간 갈등을 부추겨 더욱 극단적인 대응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폭격은 중동에 대한 자신의 패권을 위한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는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점령하며 친미 정부를 세워 중동 지배의 한 축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세계 최강대국이 10년 가까이 점령하며 수립한 정부가 저리도 엉망진창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미국의 위신은 큰 타격을 입었다.
지금 미국은 '이슬람국가'로부터 이라크 정부를 지킴으로써 자신의 패권을 지키려 한다.
서방은 물론이고, 다른 곳에서는 미국과 다투는 중국과 러시아 같은 제국주의 열강도 이라크 폭격을 재빨리 지지하고 나섰다. 제국주의는 국적을 불문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에는 전혀 관심이 없음을 보여 준다. 제국주의 지지자들은 이라크에 투자한 석유 시설이 '이슬람국가'로부터 보호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의 지배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라크에서 ‘한국 기업의 투자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한다.
중동은 원래 종파 갈등이 심하다는 착각
이슬람국가는 테러 조직 알카에다조차 “극단적”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잔인하고 종파적이다. 시리아에서는 같은 반군일지라도 종파와 종족이 다르면 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세력이 성장한 주된 책임은 제국주의의 중동 개입에 있다.
몇십 년 전에만 해도 이라크에서 종교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은 훨씬 작았다. 1958년 이라크 혁명은 제1차세계대전 때 영국이 세운 꼭두각시 왕정을 타도했는데, 시아파·수니파·쿠르드족이 함께했다. 사담 후세인 시절에조차 이라크는 아랍에서 가장 세속적인 나라의 하나였고, 수니파와 시아파가 결혼하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미국은 점령을 통해 시장주의 조처로 대중의 삶을 파괴하고 종파 간, 종족 간 갈등을 부추겼다. 미국의 점령 말기에는 저항세력의 일부가 미국과 친미 정부에 협력하며 대중의 환멸이 더 커졌다. 지난해 말에는 팔루자에서 일어난 저항 운동이 이라크 정부의 대대적 살인 진압으로 패배했다. 이 운동은 수니파가 주도하고 시아파가 지지한 것이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이슬람국가는 팔루자를 비롯해 이라크 곳곳에서 거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또한 시리아에서 주변 열강의 개입으로 혁명이 군사적 교착 상태에 빠졌고, 이에 절망한 사람들이 이슬람국가로 이끌렸다. 이슬람국가에 자원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팔레스타인·체첸 등 제국주의의 억압에 신음하는 나라 출신자들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점령하면서 무슨 짓을 했나
미국은 9년(2003~11년) 동안 이라크를 점령했다. 한국의 노무현 정부는 5년 동안 자이툰 부대를 파병하며 미국을 적극 지원했다. 점령기에 미국과 동맹국들이 실제로 한 일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이라크인 대부분의 삶을 망가뜨렸다.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조지 부시 등 미국의 네오콘들은 시장주의 광신도들이기도 했다. 오늘날 이라크는 시장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라크의 석유 생산량은 미군 점령과 함께 빠르게 치솟아 올 봄에는 3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은 인근 나라들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줌밖에 안 되는 부자들이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이라크인 9백만 명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비교적 안정적이고 시아파가 주민의 다수인 남부의 유전 도시 바스라에서도 3명 중 1명은 구걸을 해야 하는 처지다.
둘째, 종파 간, 종족 간 갈등을 부추겼다. 미국은 점령 초기 이라크인들의 저항 운동에 호되게 당한 뒤 분열을 조장하기 시작했다.
2004년 미국은 수니파가 주민의 다수인 도시 팔루자에서 수천 명을 학살했다. 그러면서 조기 선거를 실시하며 시아파 최고 성직자에게서 점령에 대한 협조를 얻었다.
이후 수립된 이라크 정부는 철저하게 종파를 따지며 관직과 자원을 배분했다. 가장 종파적인 자들이 성장하도록 부추겼다. 수니파 저항세력의 일부를 매수해 저항세력들끼리 싸우도록 했다.
지금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종파 간 갈등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낳은 산물이다.
약해진 미국 제국주의와 진정한 이라크 해방
오늘날 이라크 상황은 10여 년 전에 반전 운동이 했던 경고가 옳았음을 보여 준다. 곧,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수 없다. 미국과 영국이 그들이 침공한 나라 사람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전쟁[이라크 전쟁]은 테러를 근절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전쟁 때문에 테러 공격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전쟁으로 유혈 사태, 억압, 절망, 빈곤은 더 늘어날 것이고, 이에 좌절하고 절망한 사람들은 테러 공격에 의존할 것이다.”(격주간 〈다함께〉, 2003년 3월 29일자, 하단 사진)
전 세계적 반전 운동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고 한국은 파병을 강행했다. 그러나 점령군은 현지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사실상 끝도 없는 추가 병력을 원했지만, 국제적 반전 운동 때문에 그것은 정치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안정적 친미 정부를 수립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철군해야 했다. 지금 미국은 이라크에 군대를 대규모 파병하는 상황을 꺼리고, 한때 자신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란한테서도 손을 빌려야 하는 처지이다. 이처럼 반전 운동은 오늘날 미국 제국주의가 십여 년 전보다 약해지는 데 크게 일조했다.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세력들이 이라크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 이라크 평화의 첫걸음이다. 이라크 출신의 한 사회주의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일 이라크 등지에서 아랍인들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민주적인 정권이 탄생해서 중동에서 제국주의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개입하는 목적은 이 지역에서 이를 막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폭격에 반대하고, 한국 지배자들이 또다시 이라크에 개입하려 들면 이를 저지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